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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무술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유선전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무적무술
작품등록일 :
2019.10.22 17:18
최근연재일 :
2021.10.22 19: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96,884
추천수 :
2,167
글자수 :
197,732

작성
21.09.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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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
11쪽

9. 오호대장군

DUMMY

맥성에서 밖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가 있다. 그는 대춧빛 얼굴에 늠름한 긴 수염을 가진, 한 눈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그렇다. 그는 바로 촉의 오호대장군이자 그 명성과 위엄으로 천하를 진동케 한 관우였다. 하지만 그의 지금 모습은 자신의 위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행색이었다.


몇 달 전만해도 관우는 거칠 것이 없었다. 관우는 많은 수의 형주군을 이끌고 전진하며 그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조리 박살내고 양양과 번성 앞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양양과 번성 역시 관우 앞에 떨어질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보였다.


그랬던 전황이 한순간에 역전이 됐다. 조조군의 새 지휘관인 서황은 관우군의 공격을 잘 틀어막았다. 설상가상으로 동오군까지 뒤를 노리고 쳐들어왔고, 결국 강릉 쪽은 전투도 없이 그냥 빼앗겼다.


고립된 관우는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 해보려했지만, 지원군도 없으니 아래위로 계속 몰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 맥성에서 이런 초라한 몰골을 함에 이르렀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아직 관우를 따르고 있는 충신들, 관평, 주창, 조루 등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관우는 답답한 표정으로 주창에게 물었다.


“요화에게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장군. 아무래도 요 장군에게 변고가 생겼거나,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상용에서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주창의 대답에 관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관우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훗! 그렇겠지. 그들이 군사를 보낼 거였다면 진즉 보내왔겠지. 결국 남은 군사만으로 저 대군을 상대해야 된다는 뜻이로군. 그래. 오늘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탈주를 했는가?”


관우의 다음 질문에 주창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장군. 이제 남은 병력은 천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장도 탈영하는 이들을 최대한 색출해내 목을 베었으나, 그 수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평소라면 주창의 대답에 불같이 격노했을 관우다. 하지만 지금은 허탈한 마음이 너무 커서일까? 그저 허허 웃으며 자조적인 음성으로 격려 아닌 격려를 할뿐이다.


“허허허... 자책하지 말게. 주창. 그게 어찌 그대의 탓이겠나. 탈영을 하는 군사들도 이해가 가네. 전황이 뻔히 보이는데, 죽을지 뻔히 아는데 어찌 싸울 마음이 들겠나. 상황을 이리 만든 내 탓일세. 그나마 천기라도 남았으니 다행이로군....”


그나마 가장 어린 관평은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듯 격려의 말을 꺼냈다.


“아버지. 말 그대로 아직 우리에게는 천여 기의 군사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손권 역시 아직 우리를 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작 군사들을 보내 전투를 할 수 있음에도 서신만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손권 그 배신자 놈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구나. 그래놓고 지금 나보고 항복을 하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애초에 범이 어찌 그런 쥐새끼 밑으로 들어가겠는가?”


허탈하고 의욕 없어 보이던 관우도 손권 얘기가 나오니,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루는 그런 관우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군. 어찌됐든 결단을 내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결단 말인가?”

“이제 군사도 거의 남지 않은 마당에 여기서 수성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형주를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형님 전하께서 나보고 이 형주 땅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대로 버리고 돌아가자는 말인가?”

“장군께서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암울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 병력으로 저 동오군 배신자 놈들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물론 적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 역시 명예로운 일입니다. 허나 정정당당하게 맞붙은 적과의 싸움에서 진다면 억울하지 않겠지만, 저 배신자 놈들 손에 죽는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돌아가서 형주를 지키지 못한 벌을 받는 것이 차라리 낫지, 저놈들의 손에 죽는다면 차마 억울하여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습니다.”


관우는 조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관우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전장에서 죽고 싶은 관우라도 동오의 배신자 놈들에게 잡혀 죽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결국 관우는 조루의 조언을 받아들여 탈출을 감행했다. 성벽 위에 사람 모양의 허수아비를 세워둔 채, 성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맥성을 빠져나왔다.


고작 천여기도 채 되지 않은 군사들만 이끌고 탈출하는 모습은 형주를 넘어 중원을 진동시키던 관우와 그 군사들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구성이다.


하지만 그런 초라함을 무릅쓰고 감행한 탈출마저 여의치 않았다. 관우의 탈출을 진즉 예상했는지, 그들 앞에는 어느새 동오군 한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하하핫! 천하의 관운장이 어디를 그리 몰래 기어가는가?! 쥐새끼인줄 알았구나. 나는 마충이라고 한다!”

“이름 없는 졸장이 감히 아버지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가?!”

“크흐흐!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이 입만 살았구나.”


관평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지만, 마충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능글맞은 표정으로 조롱할 뿐이었다.


마충 정도의 장수가 천하의 관우를 보면서도 저리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다른 게 아니다. 관우가 이끄는 군사들은 천여기의 패잔병들이고, 현재 마충 주위에는 오천이 넘는 대군이 있었다. 게다가 바로 근처에는 주연이 이끄는 대군 또한 있었다. 아무리 관우가 대단하다고 해도 이 차이는 절대 넘지 못할 차이였다.


관우는 마충의 조롱에 반응을 하는 대신 언월도를 들었다. 그리고 관평과 주창, 조루 등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흥이는 성도로 보냈지만... 너는 그러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 아닙니다. 아버지. 끝까지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 죽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 장군, 조 장군. 그 동안 부족한 나를 따르느라 고생 많았네. 저승에서 다시 만나세....”

“크흐흑! 장군....”

“장군!”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크게 휘두르며 동오군에게 돌격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린,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는 마지막 돌격이다.


그런 관우의 모습에 관평, 주창, 조루 그리고 나머지 천여기의 군사들은 눈물을 뿌리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동오군을 두려워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죽어도 끝까지 싸우리라 다짐하면서.


관우는 홀로 동오군 사이에 들어갔다. 동오군 군사 몇몇이 공에 눈이 멀어 감히 관우에게 병장기를 뻗었다. 그 군사 몇몇은 관우의 언월도에 순식간에 목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관우를 둘러싼 병력은 줄지 않아보였다.


겹겹이 싸여있는 동오군 한가운데에서 관우는 칼춤을 추고 또 췄다. 관우의 온몸이 피와 땀, 먼지로 흠뻑 물들었다.


어느 순간 전장이 고요해졌다. 아니. 그건 관우만 느끼는 것이었다. 분명 전장에서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군마와 군사들의 비명소리, 또 그들이 쓰러지는 소리까지 다양하게 들렸다. 하지만 관우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와 함께 시야 역시 흐려졌다. 관우의 눈앞에 있는 적군들이 희미해졌다. 그래도 관우는 용케 눈앞의 적들을 베고 또 베었다.


어느 순간 관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채, 보이지도 않은 채 무아지경으로 계속 눈앞의 적을 베어내기만 했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장수들과 군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신경을 쓸 필요도 정신도 없었다.


관우는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죽기 직전까지 애병인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살 길도 없고.... 그저 한 놈이라도 더 저승길의 길동무로 삼을 뿐이다. 오너라! 내 앞에 서는 자는 그 누구든 벨 것이다.’


모든 것을 본능에만 맡긴 관우지만, 그 모습은 평소 그의 모습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그야 말로 무신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용맹, 아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해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 그는 눈앞에 흐릿한 무엇이 또 나타났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여태까지 관우가 언월도를 휘두르기만 하면 무조건 쓰러졌던 적들이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관우의 언월도를 받아낸 것 같았다.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 아무래도 사람의 살을 벤 것 같지는 않았다. 여태껏 계속 상대해왔던 일반 군사들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내 언월도를 받아 내다니... 오에도 이런 장수가 있었던가? 아니면 하늘이 허락한 내 신력이 다한 탓인가....?’


관우는 포기하지 않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그 흐릿한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상대는 관우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본능만 남은 관우지만, 계속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적은 관우의 공격을 막고 있으면서도, 반대로 관우에게 반격은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군. 어째서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이 정도로 내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정도라면 반격을 할 여유가 없지는 않을 텐데.... 아니. 그 전에 내 공격을 이 정도로 막아내는 상대는 대체 누구 말인가? 정말 동오의 장수가 맞는가?’


이런 의문점들은 관우의 이성을 점점 되돌아오게 하고 있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관우는 눈앞의 인물을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 순간. 관우의 잃었던 시야와 청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뿌옇던 시야가 점차 또렷해졌고, 전장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관우는 곧 눈앞에 있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외치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인물은 관우가 너무나도 잘 아는, 그리고 너무나도 그리워 한 인물이었다.


“관 장군! 관 장군! 정신 좀 차리시오! 나요! 나란 말이오!”

“자, 자네? 자네가 여긴 왜....?”


관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어두워졌던 시야와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볼 수 없었던 주변 상황도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서 관평과 주창, 조루가 눈물을 흘리면서 관우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물론 눈물의 의미는 앞전과는 너무 달랐다.


“아버지! 앞을 보십시오! 살았습니다!”

“장군! 구원군이.... 구원군이 드디어 왔습니다!”


관우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군사들이 둘러 싸 있었다. 마충이 이끌던 오천의 동오군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촉나라의 군복을 입은 수만의 군사들이 오나라의 군대를 학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의 대장기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촉한 오호대장군 익군장군 조운 (蜀漢 五虎大將軍 翊軍将軍 趙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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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병법은 모르지만 +4 21.09.30 2,560 5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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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계급이 깡패다 +6 21.09.27 2,636 60 12쪽
14 14. 이번에는 머리로 +2 21.09.25 2,729 5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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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기사회생 +5 21.09.21 2,889 74 11쪽
» 9. 오호대장군 +9 21.09.20 2,878 7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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