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도시의 첫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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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살아있었구나!”
가족들과 엘리나가 환한 얼굴로 토마스를 맞이해주었다.
그런데 토마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느새 옷은 벗고 있었고 목 아래로 몸의 반쪽이 거의 구워져서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거의 죽다 살아나온 분위기였다.
“회복초! 회복초 어딨어!”
오자마자 회복초를 찾은 토마스는 엘리나가 상비한 회복초를 받아서 몸의 화상부터 치료했다.
회복초를 거칠게 으깨 온몸에 바르자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었다.
통증이 있었을 텐데도 토마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몸을 움직여 쌓아둔 짐에서 옷을 찾아 맨몸에 걸쳤다.
“안 아프니?”
“아플 텐데...”
“음. 남잔 이래야지.”
어머니나 형은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아픔을 잘 참는 아들이 대견하다는 듯 토마스를 바라봤다.
토마스는 그제야 부모님과 스승에게 생존 신고를 했다.
“이야! 다들 살아 있었네요? 오다가 소들이 죽어 있길래, 깜짝 놀랐네. 별일 없었죠?”
너스레를 떨었지만 엘리나의 눈에는 과장된 그의 동작과 과하게 열린 동공이 보였다.
토마스는 흥분 상태였다.
재해를 피해 도망치느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엘리나는 그가 왜 아직도 흥분 상태에 있는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촌장에게 말하지 않고 무단으로 마차로 마을을 상당히 벗어났는데도 계약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토마스는 분명 촌장을 죽이거나 죽게 방치하고 왔을 것이다.
“고맙다.”
“네 덕분에 재앙을 피했어.”
“어떻게 안 거야? 너 아니었으면 나나 네 형수, 그 배에 있는 내 자식까지 모두 다음 해를 보지 못할 뻔했어. 정말 고맙다.”
가족들은 재앙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가족들을 대피시킨 토마스를 칭찬해 주며 그를 환영했다.
하지만 재앙의 원인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엘리나는 빤히 토마스를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녀의 표정을 의식한 토마스가 가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아까 마을에서 우리 가족이 없는 마을 회의가 열렸다는 걸 아세요?”
“응? 우리 가족만 안 불렀다고?”
“저도 말 빌리러 갔다가 알게 된 건데...”
* * *
토마스는 촌장의 집 안에서 흘러나왔던 얘기에 대해.
하나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가족에게 공개했다.
촌장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였다는 얘기나, 입을 잘못 놀린 몇몇 마을 사람들의 이동 속도를 고의로 늦추고 오느라 늦었다는 말은 제외했다.
그냥 마을 사람들에게 도망가라고 알리다가 늦었다고.
얼버무리며 토마스는 설명을 마쳤다.
“아무튼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용암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화산이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마을이 있던 자리에...”
설명을 끝낸 그는 마을이 있던 자리에 마그마가 굳어서 생긴 화산을 가리켰다.
“네 말대로,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겠구나. 다시 빈손으로 시작해야겠군...”
“괜찮아요. 그래도 만들어 온 가구를 최대한 챙겨왔으니까. 도시 가서 팔면 되죠.”
토마스는 마차를 덮은 천을 슬쩍 들어올리며 아버지에게 자신이 만들어 둔 보석함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버지나 형에게 가구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두 사람은 별로 성에 안 차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지만.
여동생과 어머니는 아들이 만든 보석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빠. 진짜 예쁘다. 나도 나중에 그런 거 하나 만들어줘.”
“그런 거 도시에서는 얼마에 팔릴까? 마을보다는 비싸게 받을 수 있겠지?”
어머니와 여동생의 반응 덕분에 자신을 가진 토마스는 화산재 섞인 비가 더 묻지 않게 다시 보석함을 천 아래로 집어넣었다.
가족들을 안심시킨 토마스는 뒤쪽에 있는 마차로 가서 스승의 옆에 앉았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네. 잘했어. 천벌을 받은 거야 그 사람들은.”
“천벌은 무슨, 다 내 선택인데. 하지만 벌은 맞지. 벌은...”
“하지만 앞으로 도시로 가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정령왕들까지 불러서 도시에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든가 하는 건 하지 마라. 거긴 사람이 정말 많이 살아. 네가 있던 마을과 다르게... 결백한 사람들도 많다고.”
엘리나는 다음에도 혹시 제자가 폭주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듯 말했다.
“봐서.”
토마스는 웃으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다시 안... 할... 거지?”
엘리나가 다시금 물었지만.
토마스는 그저 웃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는 거니까.
* * *
마을이 있던 자리가 화산으로 변하고.
하루 동안은 한시라도 빨리, 멀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정신 없이 마차를 몰았다.
이틀째가 되자 드디어 비와 바람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대신 눈과 함께 재가 섞여 흩날렸고 사방에서 번개가 미친 듯이 쳤다.
너무 번개가 심해 정령술로 길 한가운데 굴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쉬었다.
부모님이 되게 신기해했지만.
나는 정령술에 대한 공을 모두 엘리나에게 돌리며, 새 밭을 사서 개간을 할 때 스승이 도와줄 거라고.
사람들 모두가 기대하는 앞에서 스승이 거절하기 힘든 약속을 잡게 했다.
한 사람 손이 아까운데, 부릴 수 있는 손은 부려 먹어야지.
엄마는 엘리나와 반말을 하는 나를 보더니.
“사제 간인데 말도 편하게 하는 걸 보면... 둘이 사이가 정말 좋은 것 같구나...”
뜬금없이 우리 사이를 언급했다.
“네가 누굴 만나든 네 자유라고 생각한다. 난... 차별 없는 사람이야.”
과묵한 아버지도 거들고.
“근데 하프엘프는 어려서 납치당하기 쉬우니까 애를 키우려면 엘프 마을에 가야 한다던데. 우리 아들 그러면 조만간 못 보게 되는 거 아니야?”
어머니는 아주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시고 있었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냥 사제관계라니까? 이상한 소문 듣고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아셨어요?”
정색하며 선을 그었다.
“그렇구나? 음...”
아버지는 그냥 납득했고.
“그래 뭐... 네가 아쉬운 거지... 내가 아쉽겠냐? 호호. 우리 아들이 운이 없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분하고 인연이 없다니.”
어머니는 아쉽다는 듯이 괜히 엘리나 쪽을 한번 힐끔거렸다.
엘리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책인 어머니라 괜히 내가 더 미안했다.
마을을 나와 사흘째가 되자 번개가 그쳤다.
우리는 토굴에서 나와 도시를 향해 말을 달렸고.
날이 갑자기 추워진 관계로 혹한의 추위와 싸우면서.
처음 도망쳤을 때보다 확실히 느려진 속도로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체력이 떨어지면 쉬었다가, 다시 갔다가, 밤에는 동굴을 만들어 자기도 하고 꾸준히 나아가다 보니.
엿새째 점심쯤.
어느새 눈이 잦아들고.
비로소 도시의 성곽이 일행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알레니말레르 성.
이곳이 도시(都市)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곳들과 다르게 시장(市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선출직이며 시장의 신분은 귀족이다.
민주주의 사회도 아닌 왕정국가에서 시장을 선출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6개나 되는 귀족 가문에 의해서 공동 통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터레트 백작가, 레오타스 백작가, 니스 자작가, 말페런 자작가, 레이너드 남작가, 르멜리온 남작가.
알레니말레르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각 가문의 이름 중 앞 글자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거였다.
현재의 시장은 니스 자작가에서 선출된 사람이라고 한다.
시장은 권력을 행사한다기보단, 다른 귀족들을 대신해 행정을 운영하는 실무자라고.
그런데 이런 도시가 세상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도시가 있는 곳에는 공통으로 ‘던전’이라는 고대의 신비한 유산이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몬스터는 원래 이 던전에서 나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거라고.
그래서 던전은 몬스터의 기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던전에선 몬스터를 잡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보물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던전이 나타나면 원래의 영지를 포기하고 다른 귀족들과 힘을 합쳐 던전 주변을 개간해 도시로 만든다.
즉 도시 말고 다른 성이나 영지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다만 도시에서 나오는 수입이 다른 영지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힘이 강한 가문에서만 도시를 개간하고.
일반 영지에 남은 비도시 영주 가문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생활 수준도 낮다고 한다.
이곳의 최고 귀족이 백작인 걸 보면 알겠지만, 알레니말레르 던전은 던전 중에는 제법 쉬운 레벨이라고 한다.
하지만 권장 입장 레벨은 실버 등급의 파티로, 솔로로 활동하면 골드 등급인 엘리나가 간신히 입장 컷을 맞출 정도라고 한다.
물론 권장 사항이 그럴 뿐이고 랭크 낮은 자들이 들어가서 자살하는 걸 말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모험가의 업무는 던전을 탐험하는 것만이 아니다.
던전 주변에는 과거 던전에서 나와 지상에 적응한 몬스터들이 많고 그들을 퇴치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의뢰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엘리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모험가로서 제법 시작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배웠던 내용을 곱씹으며 서쪽 성문 앞에 선 줄로 가서 마차를 세웠다.
그때 엘리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토마스. 여기서부터는 따로 행동하자. 모험가 길드도 가야 하고 나는 뒤따라 들어갈게. 성문을 들어가 북문 쪽으로 가는 대로를 타면 중간쯤 지점에 황색 밥상이라는 이름의 여관이 있을 거야. 내게 신세를 졌던 곳이니, 가서 내 이름을 말하면 싸게 해줄 거야.”
그녀는 따로 행동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알았어. 그럼 먼저 들어갈게. 황색 밥상에서 만나면 되는 거지?”
“그래. 황색 밥상. 여주인에게 엘리나의 소개로 왔다고 하고.”
한 번 더 당부한 엘리나는 챙겨온 짐을 짊어지고는 안에서 로브를 꺼내 종족의 상징인 귀를 가렸다.
엘프면 몰라도 하프엘프는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고 하던데.
여기는 도시다 보니 하프엘프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괜히 우리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따로 행동하려는 것 같았다.
차례를 기다리자 점점 줄이 줄어들었고 어느새 경비병과 얼굴을 맞닥뜨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랑 형을 물리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둘에겐 돈이 없었으니까.
“흐음...”
경비병은 나와 가족들을 보더니 아래에서 위로 대놓고 스캔했다.
성문의 경비병이 하는 일이 이런 거라고는 하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왠지 우리 가족을 하찮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쪽에 있는 개척촌에서 왔지? 그 이름도 없는.”
“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이쪽 길로 오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설마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앞질러서 온 건가?
아니면 이 사람 우리 마을 출신?
‘나야 토마스.’ 하면서 반겨주는 건 아니겠지?
“어쩐지 가난해 보이더라고. 근데 짐이 많아보이는데...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통행료요?”
알고야 있지만, 처음부터 통행료에 대해 물어보다니...
우리 일행이 돈도 못 낼 것 같이 생겼다고 보는 건가?
잠시 뒤를 돌아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경비병의 얼굴을 한 번 봤다.
그랬더니 경비병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알겠다.
경비병의 얼굴은 붉은빛 생기가 돌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만 얼굴 톤이 회색이라 빛바랜 자들 처럼 보였고.
가구를 덮어둔 천도 화산재 때문에 검회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했다.
처음 기분 나빴던 시선의 정체가 바로 이거 때문이었구나?
“얼마나 내야 하는 겁니까? 저희가 이제 막 시골에서 와서 돈도 별로 없고 정보도 어두워서...”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원래 인당 10 실버에 말 한 마리당 20 실버야. 마차는 따로 내용을 봐서 가격을 매기는데...”
이런 미친 날강도 새끼들을 봤나?
들은 것보다 두 배는 비싼 값을 부르고 있었다.
통행료가 그새 올랐을 리도 없고, 뒷돈을 챙기려고 그러는 거다.
정해진 금액은 있지만, 더 받고 덜 받고는 경비병 마음이라고 엘리나가 말했다.
아니면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근데 어려워 보이는 시골 촌놈한테 그걸 다 받겠다고?
그럼 우리 가족은 나까지 여섯이니 60 실버에 말만 따로 80 실버를 내야 한다.
벌써 1골드 40 실버인데, 마차는 또 따로?
“아이고! 어르신! 저희가 그렇게 돈이 많치는 않습니다요. 시골에서 막 올라와서 마시장에 가서 말이라도 팔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큰돈은 낼 수가... 고작 땔감 팔러 왔는데 그렇게 큰돈은...”
바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경비병은 내 저자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흠... 하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그냥 통과를 시켜줄 수가... 우리 재량에 따라 다르긴 한데...”
경비병이 슬쩍 몸을 틀며 자신의 갑옷 배 옆 부분, 주머니가 있는 쪽을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거...
뇌물 달라는 거잖아?
바지 주머니에 슬쩍 손을 넣어 동전들을 집었다.
“아이고 어르신. 조금 전에 주머니에서 이게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경비병의 주머니에 동전들을 찔러넣어 주었다.
“어?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주머니에 넣어야겠네.”
경비병은 너스레를 떨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동전을 꺼내 몇 개나 들어있는지 살폈다.
주머니에 넣은 돈은 10 실버 짜리 동전 2개.
사람과 말 수에 딱 2 실버씩 곱해서 계산했다.
“흠... 원래 20 실버 밖에... 안 들어 있었던가? 이거? 돈이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어디 갔지?”
지독한 놈!
이 몰골을 보고도 돈을 뜯어내고 싶단 말이냐!
조금 열받았지만,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잔돈을 긁어 그의 주머니에 다시 찔러넣었다.
“아이고, 여기 돈이 더 있네요. 저 아니었으면 잃어버리실 뻔했습니다.”
“아이 고마워. 맞아. 돈이 더 있었다니까.”
경비병은 웃으면서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얼마가 들어 있나를 살폈다.
그의 표정에서 살짝 웃음이 사라졌다.
더 집어넣은 돈은 3 실버.
돈은 더 있었지만, 일부러 없는 척.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경비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에 말에... 그대로 내면 마차 통행료도 못 냅니다요. 어르신. 반으로 깎아서 한 1골드에 맞춰주시면 한 10 실버는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크흠...”
경비병은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까, 통행료를 딱 반값으로 해줄게. 사람하고 말에 70 실버, 그리고 마차 통행료까지 해서... 딱 1골드만 줘. 근데 혹시 내 10 실버 못 봤어?”
“어? 바닥에 이런 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말이 바뀌기 전에 빨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10 실버와 1골드를 지출했다.
골드 코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거지 같은 놈이 골드를 꺼내면 돈이 더 있다고 의심할 것 같아서.
적당히 실버와 쿠퍼 동전을 섞어서, 보는 앞에서 숫자를 세며 경비병의 손에 넘겨주었다.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는 돈을 더 넘기라고 압박하듯 자신의 빈 주머니를 보이는 경비병.
하지만 더 이상은 한 푼도 건내주지 않았다.
돈이 돌지 않아서 도시 물가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시골에서 이걸 어떻게 모았는데!
“쩝... 진짜 가난한가 보네.”
“사정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계속 굽신거리면서 가족들에게 얼른 신호해 마차를 몰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하자.
가족들이 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야? 니 원래 남들한테 아부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
헤일리가 대표로 물어보자.
“내가 싸가지가 없지, 눈치가 없냐? 왜들 그래?”
어이없다는 듯 답변해 주었다.
“아아...”
“하긴...”
가족들은 다들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그때 뒤에서 경비병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군 죽이기의 외팔이 하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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