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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자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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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정주(丁柱)
작품등록일 :
2024.05.30 07:44
최근연재일 :
2024.07.0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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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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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025. 인간이라는 이름의 지옥

DUMMY

토마스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 사이.

멀리 있던 촌장의 아들이 토마스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뚜두둑!


그의 옷소매가 터져나가며 피부와 뼈가 자라나 빠르게 뻗어 나와 길어지고 끝으로 갈수록 넓어졌다.

고무 인간처럼 그냥 쭉 늘어나는 게 아니라, 불에 녹은 피부가 증식하는 것같이 징그러운 색감과 질감이었다.

이것은 촌장 아들이 가진 육첩수(肉疊手)란 이름의 고유스킬이었다.

징그럽지만 멀리 뻗은 상대를 공격할 수 있고 살과 뼈가 늘어난 만큼 커다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팔을 다시 회수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

옷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그만 공격한 게 아니었다.

촌장의 사위, 조금 전 안에서 가축 얘기를 하는 것 같이 하프 엘프를 새끼 치면 노예로 팔자던 차기 촌장.

그가 조용히 있다가 육첩수가 펼쳐지는 걸 보며, 바닥에서 포크같이 생긴 쇠스랑을 주워 토마스를 향해 던졌다.

창투척(槍投擲)이라는 이름의 고유스킬로 흔하다면 흔하겠지만, 명중률과 힘의 보정이 창을 화살처럼 날아가게 하는 스킬이다.

그것은 시야를 가리면서 은밀하게 던져졌다.

두 공격은 충분히 위험한 공격이었다.

그것이 토마스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면.


‘이건 인간이야 몬스터야?’


충분히 오해할 만한 거대한 살덩어리를 보며, 토마스는 마법을 외웠다.


-거친 힘과 끊임없는 기운이여 내 몸에 깃들어 강해져라. 스트렝스!


양손으로 칼을 쥔 토마스는 위로 점프하며 그대로 자신의 전신을 향해 뻗어오는 촌장 아들의 거대한 주먹을 맞받아쳤다.


푹!


칼이 꽂혔다.


“아얏!”


모습은 변해도 신경은 이어지는지 촌장의 아들이 여자 같은 비명을 질렀다.

칼을 손등에 박아 넣었지만, 박히는 순간 칼을 놔버린 덕에 토마스가 위로 붕 떠올랐다.

고릴라 같은 힘을 가진 엘리나와 진검을 섞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을 흘릴 수 있는 방법에 익숙해진 덕이다.

그를 노렸던 쇠스랑이 텅 빈 허공을 스치며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쇠스랑은 하나만 날아오는 게 아니었다.

바로 뒤이어 날아오는 쇠스랑.

공중에 떴다가 착지하려는 토마스를 노리고 있었다.


“격추!”

=키싯! 내가 하지!


바람의 하급 정령 질로트가 뒤로 날아간 쇠스랑에 빠르게 빙의했다.

날아가던 쇠스랑이 회전하며 돌아왔고.

그대로 날아오는 쇠스랑을 격추했다.


콰직!


모든 공격을 다 방어해 낸 토마스는 스트렝스로 강해진 발로 땅을 굴렀다.

순식간에 촌장을 향해 거리가 좁혀졌다.

스킬을 쓰기 위해 다급히 술을 마시는 촌장.

그의 입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퍽!

뿌드득!


입술이 터지고 피와 술이 섞여서 뿜어져 나오고 하얀 알갱이들도 쏟아졌다.


“이빨도 회복초로 고쳐보시지?”


회복초도 한계는 있다.

뼈는 붙이지 못한다는 거다.

촌장의 입을 털어버린 토마스는 단숨에 촌장의 사위에게 거리를 좁혀갔다.

창을 던지는 솜씨는 일품이지만, 쇠스랑으로 어색하게 찔러오는 폼은 초보자가 따로 없었다.

토마스가 앞차기로 쇠스랑을 걷어차 내고 그대로 무릎을 꺾으면서 몸을 비틀어 촌장 사위의 목을 내리쳤다.


퍽!

뚜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목이 아니라 어깨, 빗장뼈를 부러트린 거라 즉사는 하지 않았다.


“아아악!”


촌장 사위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토마스는 촌장 아들에게 접근했다.

늘어나 있던 그의 팔은 아직도 회수되는 중이었고 주먹에는 아직도 칼이 매달려 있었다.

살짝 각을 본 토마스는 촌장 아들의 다리를 걸어서 그를 바닥에 넘어트렸다.

그가 일어나려고 바둥거리다가.

어느새 회수된 그의 손등에 달린 칼이.


푹!


손바닥을 뚫고 있는 채로 배까지 꿰뚫어 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악!”


촌장 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제법 싸울 줄 아는 사람들 모두가 제압되어 버린 상황.

사람마다 고유 스킬은 다 달랐고 남은 이들 중에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마을의 남자들은 그대로 굳어있었고 여자들은 오들오들 떨며 두려움을 표했다.

특히 지난번 입을 잘못 놀렸다가 입을 다쳤던 잭스는 고개까지 돌리며 토마스의 시선을 피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이 새끼들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 우리 가족 몰살시키고 노예로 팔고, 나랑 내 스승은 팔다리 잘라서 노예로 만든다며? 들어와? 해봐 새끼들아!”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회를 보는 자도 없었다.

토마스의 실력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토, 토마스... 우리는... 촌장님 때문에...”

“마, 맞아. 이게 다 촌장님 때문이야.”

“네 실력은 잘 알겠어. 이제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할 수 있겠어? 다, 다음 촌장은 너야. 네가 촌장을 하면 되겠다.”

“맞아. 너라면 저 사람보다 우리 마을을 더 훌륭하게 이끌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눈치를 보다가 상처를 입고 뒹굴고 있는 촌장 탓을 하며 용서를 구해왔다.


“그래? 여기서 다 끝내줄까?”


끝내준다.

그것은 여기서 그들의 삶을 끝내준다는 얘기다.


“그래. 여기서 끝내자.”

“우리가 보상할게.”

“마, 말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두 마리 빌려줄게. 아니 한 마리는 너네 집에 줄게.”

“나, 나도. 우리는 소!”

“그래. 여기서 끝내자. 우, 우리가 보상할게.”


사람들은 토마스의 말뜻을 오해하고.

좋다고.

여기서 끝내달라 말하며 협상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살인미수에 납치계획을 세우고 가족 모두를 인신매매하겠다는 것에 모두가 동조하는 것을 두 귀로 똑똑하게 들었다.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들의 고통을 그렇게 쉽게 끝내주는 대신, 그들에게 현실이란 이름의 지옥을 선사하고 싶었다.


“준비 다 됐어?”

=준비 끝. 축을 무너트리면.

“실행해.”


땅의 최하급 정령 에씨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땅속으로 사라졌다.


우릉!


그 순간 바닥이 흔들렸다.

무릎을 굽힌 토마스가 스트렝스로 강화된 각력을 이용해 한 방에 발을 쭉 펴며 위로 뛰어올랐다.

자기 몸의 몇십 배만큼 높고 멀리 날아가는 개구리보다 토마스의 점프가 더 높고 멀리 날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구구구구구구구...

“어어어어 엇?”

“사, 살려줘! 땅이!”

“지진이다!”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촌장의 집과 그들이 서 있던 대지가 흔들리며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토마스 같은 점프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구덩이는 한 번에 15미터 정도를 내려갔다.

상당히 깊었지만, 흙바닥이라 충격이 흡수됐고.

여기 있는 사람들 수와 촌장 집에 있는 농기구 그리고 그들이 농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겨울이라 땅이 좀 딱딱하겠지만, 한두 시간 정도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의 깊이였다.

땅에 가볍게 착지한 토마스가 구덩이를 향해 돌아왔다.


“미리 경고할게. 이곳엔 재앙이 찾아올 거야. 죽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이곳을 떠나는 걸 추천할게. 죽고 싶다면 여기 있어.”

“어? 재앙?”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런 지진이... 계속해서 난다는 소리가 아닐까?”

“지... 지진이?”


사람들은 땅이 무너졌기 때문에 지진이 날것이라고 쉽게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 무슨 재앙이 내릴지는 토마스도 모른다.

스스로도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배틀. 지금 상황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넵! 주인님! 명령을!

“지금 즉시 정령계로 돌아가. 그리고 네 아래로 위로 모든 정령한테 앞으로 나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당장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한다고 해. 가급적 모든 정령한테... 그들이 정령왕이라 할지라도.”


정령 총집합령이 떨어졌다.

몇 명의 정령이 이곳으로 올지 그리고 그 효과가 어떻게 될지는 토마스도 알지 못했다.

토마스의 표정이 굳어있는 가운데.


=넵! 주인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파이어배틀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정령계로 돌아갔다.

정령들도 감정이 있는 생명체다.

그 또한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 * *


마을 사람들을 전부 묻어두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 집에 들러 말이나 소 중 한 마리씩을 훔쳐 왔다.

훔쳐 왔다는 표현이 좀 그러네?

그동안의 빚을 딱 가축 한 마리씩으로 정산해 준 거다.


이히히힝...

푸르르..

모오오오...


마당에서 들려오는 말과 소 울음소리에 가족들이 집에서 빠져나왔다.


“너희들은 창고에서 마차부터 꺼내고 대피소 창고에 있는 물건 다 꺼내와 줘. 바로 말만 연결하면 떠나갈 수 있게. 드론, 너는 가서 엘리나 스승한테 우리 집으로 오라고 전해주고.”

=알았어! 주인.

=맡겨주시길.

=자자. 다들 시작합시다!


정령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가족들이 다가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란이냐? 말이랑 소는 다 어디서 나온 거야? 근데 너... 무슨 일 있었니?”

“아들. 왜 이렇게 심각해 보여? 뭔 일 있어?”

“토마스 왜 그래? 화났냐? 누가 그랬어? 뭐 때문에 그래?”


아버지, 어머니, 큰형.

모두 내 표정을 보고 한 마디씩 해왔다.

표정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래 같이 살았던 가족들이라 숨겨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짐 챙겨서 나와요. 우리 이 마을 버리고 떠날 겁니다.”

“뭐? 동생아. 그게 무슨 소리냐? 갑자기 마을을 버린다니? 이제 막 새 밭 개간도 끝나서 간신히 서른 마지기 짓게 됐는데?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개간해서 3년에 한 마지기씩 간신히 늘렸어. 이걸 다 버리고 어딜 간다는 소리야?”

“아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엄마 피곤해. 빨리 들어와 자. 창고는 너무 추워. 너 얼어 죽겠어.”


큰형이나 어머니는 의문을 표하며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진 달랐다.


“음...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여보 헤일리 깨우고, 너도 네 부인 깨워서 당장 중요한 것만 챙기라고 해. 우리는 마을을 버릴 거야.”


평소 아버지와는 대화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같은 공간에 오래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마을 소문이라든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눈 기억이 없었다.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느낌?


“그러면 아버지한테 맡길게요. 전 짐 챙기러.”

“그래. 다들 뭐 해? 빨리들 들어가서 짐 챙겨!”

“아니 아버지! 동생 말만 듣고 어떻게 갑자기 마을을 버려요? 우리가 여기에 해놓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이 겨울에 갑자기? 아버지! 제 집도 이제 막 새로 짓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버려요?”


어머니야 아버지가 하자면 바로 하는 사람이지만, 큰형은 이 마을에 미련이 많아 보였다.


“네가 어렸을 때 내가 너한테 말했지? 중요한 건 땅과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모든 걸 다 잃어도 사람만 멀쩡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러니까 네 사람 챙겨서 빨리 나와.”

“아버지! 하지만 이유를 모르잖아요. 이유를? 아 저 녀석 왜 설명도 안 해주고...”

“토마스가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 봤냐? 그런 녀석이 이유도 설명 안 해주고 이렇게 까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넌 네 동생을 그렇게 몰라?”

“...”


아버지가 형을 설득하는 사이.


-불어라 거친 바람, 거스트 오브 윈드!

휘휘휘휘후휘휘...

콰지직!


나는 마법으로 창고 천장과 벽을 날려버리고 마차를 꺼내기 쉽게 만들었다.

정령들이 판마차를 조립하고 지하 대피소에서 짐들을 꺼내는 사이, 완성된 판마차부터 말들을 연결했다.

그때 엘리나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빨랐다.

원래 밤늦게 여길 찾아오긴 하는데, 아직 한두 시간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엘리나도 항상 약속 시간보다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고 기다렸나 보다.


“무슨 일이야?”

“곧 있다 알게 될 거야. 아무튼 이 마을 버릴 거니까, 스승은 중요한 짐 챙겨서 빨리 이곳으로 돌아와. 급해.”

“안돼. 말했잖아. 나는 계약마법에 묶여 있어서, 계약이 끝나기 전까진 여기서 못 떠난다고. 촌장한테 허락 맡아서 네 성인식 때 널 도시에 데려다주는 정도가 전부라고.”


그러고 보니 모험가들의 계약은 계약마법이라는 것 때문에 강제성을 띤다고 했다.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상호 동의가 필요하다든가, 한쪽이 계약을 어기면 모험가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페널티를 준다든가 하는 얘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계약을 파기하는 방법은 상호 동의 말고 다른 방법도 있었다.


“스승. 그 계약. 촌장하고 맺은 거지?”

“응. 근데?”

“그러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짐을 챙기고 있는데.


“너... 설마?”


스승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짐 챙기는 데 집중했다.


“야! 너 모험가가 되겠다는 놈이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해? 살인자는 모험가가 될 수 없다니까? 모험가 길드에는 살인 여부를 조사하는 수정구가 있어. 너 그 사람을 죽였다간 모험가 길드에 가자마자 살인죄로 잡혀들어갈 거야!”


스승이 화를 내며 다그쳤다.

고개를 돌리니 나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는 살인 여부를 조사하는 수정구가 있다고 했다.

예전에 살인자를 파악하는 고유한 스킬을 가진 사람과 남의 고유 스킬을 수정구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힘을 합쳐서 모험가 길드에 보급했다고.

그 수정구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험가 길드는 불한당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부터 엘리나를 괴롭혔는데도 그녀가 날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가.

툭 건드리면 죽을 것처럼 약해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당시는 거의 모험가를 은퇴한 상태였지만, 살인하지 않는 습관은 남아서 내가 멀쩡했던 거다.

지금 와서 고릴라 같은 스승의 힘을 생각하니까, 그때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구나 싶다.

하지만 수정구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괜찮아. 스승이 그랬잖아. 살인자를 죽이는 건 살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내 대답에 엘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눈에는 촌장이 살인을 저질렀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오늘 이 마을에서 사람이 죽어나간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죽이는 건 아니니까.”


내가 주위에 있는 정령들을 가리키자, 엘리나가 화를 냈다.


“바보야! 네가 계약한 정령으로 죽이는 것도 당연히 포함이라고!”

“당연히 알고 있지. 난 내가 계약한 정령으로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다니까?”


스승이 말해준 내용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죽이고 수정구를 속이는 편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모험가들 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비중이 높다고.

그것을 다 알려줘 놓고도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살인에 익숙해지면 계속 살인에 의존하다가 다크 길드 쪽으로 떨어지는 모험가를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엘리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였다.


우웅...


나와 엘리나는 동시에 깜짝 놀라며 촌장의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게 무슨? 이 존재감은... 정령왕?”


지난번 창고에 정령왕이 나타났을 때와 다르게.

정령들의 기운이 쌓여 있지 않은 곳에서 정령왕이 나타나서 그런지, 멀리 있어도 그들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벌써 왔네. 시간이 없어. 빨리 짐 챙겨서 와. 여기 대충 마무리하고 나는 저쪽으로 가볼게.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 있어. 나 기다리지 말고, 짐 챙겨서 오자마자 바로 마차 끌고 도시 쪽으로 가고 있어. 뒤따라갈 테니까.”

“토마스? 대체...”


그때였다.


두우우웅...


이번에도 새로운 존재가 출현했다.

커다란 존재감과 또 다른 커다란 존재감은 마치 둘이 공명하는 듯했고 정령사인 엘리나와 나에게 그 존재감만으로도 심한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


“빨리 갔다 와! 시간이 없다니까?”


나는 엘리나를 다그쳤고, 엘리나는 말없이 초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사이, 또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 * *


쿠르릉!


마른하늘에 갑자기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인데 후덥지근해지고, 갑자기 거친 바람이 불어오며 소나기라도 내릴 것처럼 구름이 몰려왔다.


“뭐야 이거?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데?”

“태풍이라도 오는 거 아니야?”

“토마스 말이 맞았나? 진짜 재앙이?”


아직도 구덩이에서 땅을 파며 반신반의하던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하늘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뭣들하고 있어? 언제 그걸 삽으로 다 팔려고? 기둥을 뜯어와서 박고 사다리로 벽을 파서 발판을 만들면 되잖아!”

“하지만 그렇게 하면 힘 약한 여자들은...”

“먼저 올라가서 밧줄을 내려두면 될 거 아니야! 생각을 해 이 멍청이들아!”


이빨이 다 나갔어도 촌장은 촌장이다.

그는 집에 비치한 회복초로 상처를 회복시키고 오더니.

마을 사람들을 무섭게 다그치며 작업 방식을 바꿨다.

땅을 파던 마을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 촌장 집의 기둥을 뜯어왔다.

토벽에 기둥을 대고 사다리를 가져와 발판을 만들어서 기둥을 잡고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방향이 정해지고 모든 작업이 끝나자.

가장 먼저 촌장이 앞장서 땅 위로 올라왔다.


“당신 먼저 올라올 줄 알았어.”

“토마스!”


그런 그를 기다려 준 것은 다름 아닌 토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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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033. 성인식은 고유스킬 뽑는 날! +4 24.06.26 2,063 76 17쪽
32 032. 헤어짐이 있고 만남이 있다 늘 그렇듯 +8 24.06.26 2,095 61 13쪽
31 031. 도시 정착을 도와주다 +3 24.06.26 2,105 58 16쪽
30 030.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6 24.06.24 2,153 65 18쪽
29 029. 괜찮은 거래처를 찾았다 +1 24.06.23 2,127 59 13쪽
28 028. 첫인상은 중요하다. 나 말고 너. +5 24.06.22 2,251 64 17쪽
27 027. 도시의 첫인상 +11 24.06.22 2,336 59 16쪽
26 026. 정화의 불길이 솟아오르다 +15 24.06.20 2,450 65 19쪽
» 025. 인간이라는 이름의 지옥 +5 24.06.19 2,498 63 17쪽
24 024. 마을 회의 우리 가족만 없는 +8 24.06.18 2,532 62 13쪽
23 023. 내가 모르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1 24.06.17 2,476 61 17쪽
22 022. 내 제자는 환생자? +5 24.06.16 2,632 71 16쪽
21 021. 합체하면 기쁨이 배가 된다. +1 24.06.15 2,620 69 20쪽
20 020. 수상한 제자 +5 24.06.14 2,709 59 14쪽
19 019. 엘프 궁술을 배우다 +5 24.06.13 2,783 67 16쪽
18 018. 사탕 두 알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 +2 24.06.12 2,759 65 15쪽
17 017. 불청객 접대 +3 24.06.12 2,918 65 17쪽
16 016. 한가지 채웠다 +7 24.06.11 2,955 76 16쪽
15 015. 흔들다리 효과 +4 24.06.10 3,035 77 13쪽
14 014. 쩌는 활 있습니다(못당김) +2 24.06.09 3,104 73 12쪽
13 013. Spring goes where?(용수철은 어디로 가는가?) +5 24.06.09 3,174 87 12쪽
12 012. 정령들의 취직희망 1순위 직 +5 24.06.08 3,396 90 12쪽
11 011. 정령이 머물다간 거리 +9 24.06.07 3,508 85 12쪽
10 010. 정령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좋은 이유 +6 24.06.06 3,698 87 14쪽
9 009. 내가 이 마을을 싫어하는, 강해지려는 이유 +1 24.06.05 3,938 97 18쪽
8 008. 이름의 특별함 +2 24.06.05 4,282 105 16쪽
7 007. 정령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다 +2 24.06.04 4,950 101 18쪽
6 006. 즐거운 막대기를 배워보자 +2 24.06.03 5,382 108 16쪽
5 005. 정령사, 정령과 계약한 사람이라는 뜻 +1 24.06.02 5,598 127 12쪽
4 004. 나만 목소리가 들려 +9 24.06.01 6,066 132 13쪽
3 003. 4가지 결핍 +10 24.05.31 6,663 141 12쪽
2 002. 촌놈과 폐인 하프 +4 24.05.31 8,068 158 13쪽
1 001. 전생이 기억나버렸다 +10 24.05.30 8,981 17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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