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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inante 님의 서재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Rocinante
작품등록일 :
2023.11.04 18:34
최근연재일 :
2024.04.19 07:0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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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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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수 :
80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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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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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 팔라이네

DUMMY

제2 함포 장전실 내에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질식할 것만 같은 매캐하고 덜탄 유황냄새가 코를 찔렀다.


젊은 시절 팔라이네는 조건반사적으로 함포에 화약을 채워 넣고 장전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치는 기색 없이 함포에서 포탄이 전장으로 쏟아졌다.


적 연대 병력이 대치하는 전선에 포탄이 닿자 땅 울림이 공기를 타고 하늘까지 전해졌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팔라이네는 적색등이 황색등으로 바뀌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장전을 시도했다.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전선의 적 연대 대부분 전투 능력 상실.” 팔라이네는 망원경이 달린 관측 창으로 지상을 훑어보았다.


팔라이네는 상반신에서 하반신이 떨어져 나온 지도 모르고 내장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적병사들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상처 부위를 붙잡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 머리만 따로 놀고 있는 사람들, 피탄되어 시커멓게 불타 숯과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이 차례로 보였다.


지상에서는 기관총으로 아직 살아 있는 적병사들을 확인 사살하고 있었다. 아군은 환호성을, 적병사는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전함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미안 해요. 미안 해. 미안 해요.” 팔라이네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되뇌었다.


“저들은 적이라고! 이 전쟁에서 패하면 우리 가족은 철혈군에게 끌려가 여자들은 노리개가 되고 아이들은 노예로 길러질 거야!” 동료가 팔라이네의 어깨를 붙잡고 다독였다.


“적들을 사냥감이라고 생각해야 해.” 황색등이 다시 적색등으로 바뀌었다. 팔라이네는 고개를 들었다.


“적색 경보. 동남쪽 방향 적 전함 출현.” 기내방송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들렸다.


팔라이네는 다시 장전실로 몸을 돌렸다. 화약실에서 올라오는 장전장치가 움직였다.팔라이네는 함 내 전체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튕겨 나가며 장전실 내를 뒹굴었다.


중력을 지배에서 벗어난 것처럼 함포 벽체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감각적으로 머리를 손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두개골이 깨져 죽었을 터였다. 팔라이네는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 시선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기둥 같은 구조물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보였다. 함포 내에 빈 탄피들이 적재함을 벗어나와 내부로 굴러떨어졌다.


관측 창으로 미세하게 보이던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머리 위로 하늘이 보였다. 적함의 포탄에 함포가 반쯤 날아가 버렸다. 적함이 계속하여 발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대응 사격을 하는 건지 전함 내부에 큰 진동이 느껴졌다.


팔라이네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를 찾았다. 동료는 충격으로 일그러진 내부 구조물에 하반신이 짓이겨진 채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팔라이네 거기 있어?” 동료는 스러지는 목소리로 팔라이네를 찾았다.


팔라이네는 네발로 기어가 동료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여기 있어.”


“너무 아프고, 너무 무서워.” 동료의 하반신이 완전히 짓눌려, 흘러나오는 피에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다.


팔라이네의 몸에도 따뜻한 피가 묻어 축축해졌다. 팔라이네는 눈물이 흘러나오며 흐느꼈다.


“괜찮을 거야. 우리가 지금, 이기고 있어.”


“너무 추워.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엄마!” 팔라이네는 동료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걸 느꼈다. 동료는 죽어 가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팔라이네의 팔목을 손으로 꽉 잡았다.


“엄마! 엄마...” 허공을 쳐다보던 동료의 동공이 풀리고, 팔라이네의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이 풀렸다. 팔라이네는 초점 없는 동료의 얼굴을 쓸어 눈을 감겨주고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 해.” 팔라이네는 눈을 떴다. 이마를 훔치자 손에 땀이 축축하게 묻었다.


동료가 잡은 팔목을 다른 손으로 매만졌다. 생생한 기억이었다. 등유 램프의 빛이 희미하게 선장실을 비추고 있었다. 공기 저항에 여명호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등유 램프의 불빛이 함선의 흔들림에 맞춰 반대편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코트와 모자가 사람 그림자차럼 천장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또 악몽을 꾸셨나 보네요.”


“이 일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군.” 먼저 일어난 콘마일이 떨어진 패브릭 소파에 앉아 개인 휴대조명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에 콘마일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팔라이네는 매트리스 침대에서 반쯤 누운 상태로 자세를 고쳤다.


“목이 타는군, 위스키좀 주게.” 팔라이네는 손으로 탁자위를 가리켰다.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이 놓여 있었다.


“위스키를 그렇게 마시다간 여행이 끝나기 전에 부족하게 될 거예요.”


“그럴 일은 없어. 평소보다 2배나 화물을 실어놓았거든 영 불안 해서 말이야.”


“위스키는 결국 도움이 안될 거예요.” 콘마일은 팔라이네의 손에 위스키를 쥐어쥐고 자리로 돌아가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되니까. 그리 오래 살것도 아니라서.” 팔라이네는 마개를 따고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수십 년이 지났는 데도 잊을 수 없나보네요.”


“평소에는 괜찮아. 무의식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거니까. 전선에서 싸워온 군인들은, 자신만의 악몽 하나 쯤은 그림자처럼 가지고 있지.”


“나중에는 저도 갖게 될까요?”


“지금 같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그럴 일이 없을 거야.” 팔라이네는 군인의 숙명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말했다.


“책 내용이 어때?” 팔라이네는 술기운이 올라와 얼굴이 후끈해졌다.


“사실은,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을 보고 있었어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콘마일은 책을 덮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딴 생각하고 있구나 걱정이 있나?”


“파스키은과 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콘마일은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팔라이네는 며칠 전에 파스키은과 콘마일이 설전을 벌일 일을 떠올렸다.


“파스키은의 말처럼 광맥과 철혈은 쉽사리 친해지기가 힘들 거야. 공동의 적이 있다면, 인간은 협력할 테지만 전쟁으로 생긴 인간의 증오는 가라앉기가 어렵지.”


“그렇다고 서로 볼 때마다 영역을 침범한 늑대처럼 으르렁 대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설 때가 많단다.” 팔라이네는 타이르듯 말했다.


“낡은 대륙 곳곳에는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고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죽어 가는 아이들이 너무 나도 많잖아요. 전쟁 물자를 그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우리는 함께 더 발전할 수 있잖아요?” 팔라이네는 콘마일이 비행함선을 타고 물류 수송을 나선 경험 덕분인지,


생각이 많이 어른스러워졌다고 느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거야. 물자를 무료로 공급했다가는 노동자들이 시위를 할 수도 있어. 인도주의적인 물자지원으로 한다고 해도 말이야. 광맥가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많잖아?우리가 넉넉하다면 모를까. 광맥가의 빈민에게 지원하지 않고 다른 공장가에게 지원해주는 것도 어불성설이야."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대신에, 지원해주면 어떨까요? 단기적으로는 손실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늘어날 거예요.”


“아마도 그런 세상은 모두가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 거야.” 팔라이네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전, 왜 그렇게 철혈과 하얀 별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과거는 적이었지만, 평화 조약을 맺었으니,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요?”


“평화가 지속 되었으니 그럴 말이 나올 법 하지. 세대가 바뀌긴 했구나. 하지만 철혈에 친구나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늙은이들이 많아. 그들은 아직도 철혈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 버린다면 죽을 때까지 증오하지 않겠니?”


“물론. 철혈가의 행태는 저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어요. 그치만 광맥가 뿐만 아니라. 대륙의 공장가들의 황금이 점점 부족해지고 물자 또한 부족해지고 있어요. 소중한 자원을 전쟁으로 불태워서 낭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될 뿐이예요.”


“굳이 설명하자면, 비효율 적인 물자 시스템을 고쳐서 얻는 비용이 보다 다른 사람의 물자를 강탈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겠지.” 팔라이네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협력 없이는 우리는 성장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먼저 배신을 당하는 게 두려운 건 걸까요?”


“그럴지도.”


“전 그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 하나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이런 교착상태가 지속 되잖아요. 결국에는 둘 다 공멸할 거예요.”


“그래. 콘마일 시대에는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팔라이네는 콘마일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되지?” 콘마일은 팔라이네의 물음에 손목시계를 보았다.


“1시가 막 지났어요.”


“아직 한밤중이군. 그런데 초저녁부터 지금까지 안잔 거야?”


“아니요. 자다 깬 김에, 항로가 어떤지 보러 갔다가 잠이 오지 않아서 앉아 있었어요.”


“항로는 어때?”


“배교자의 사막을 지나 노란바위 강을 따라 순항하고 있어요. 아침이면, 노란 평원에 도착할 예정이예요.”


“그래, 하얀 별 공장까지 직선항로도 있지만, 늪지대에 내려앉을 순 없으니까.”


“하얀 별 공장에서 보급 하는 방법도 있지 않잖아요? 그렇게 하면 여명호도 빠르게 도착하고 저희 쪽 보급도 문제없어서 도장으로 돌아가는 시일이 단축될 텐데요?”


“하얀 별 공장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까. 일각에서는 전염병이 돌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그렇게 되면 여명호는 하얀 별 공장에서 발이 묶이기 될 거야. 물자보급도 없이, 굶주리며 죽어 가겠지.”


“그렇군요. 만약 전염병이라면 꼼짝없이 갇히게 되겠네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아임에 노란 평원에 도착이라...” 콘마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라이네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스철케이드를 좀 더 가깝게 내려주고 싶지만, 라라미 마을부터는 협곡이라 함선이 착륙할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잠을 좀 자둬. 내일 착륙하고 재이륙하면 항로를 반대로 바꿔 바로 도장으로 돌아갈 거야 여독을 풀 충분한 시간이 없어.”


“알겠습니다. 함장님.” 콘마일은 침대옆에 램프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팔라이네는 다시 자세를 고쳐 침대 위에 바로 누워 선장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가죽이 벗겨진 여행용 가방 옆에 잘 닦인 장교용 가방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앞코에 진흙이 묻은 가죽 부츠가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오동나무 책상 위에 낡은 대륙의 항로가 그려진 지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책꽂이에는 크기가 다른 낡은 책들이 꽂혀 있고 창문 앞에는 별을 관찰하는 망원경이 있었다.


간이 요리할 수 있는 파이프 벽난로 라지에이터와 급수관, 하수관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다. 굳은 잉크병에 걸린 만년필과 현미경.


일기장들, 등유 램프에서 나는 희미한 디젤유 냄새, 축음기와 LP판들, 닉시 시계의 주황색 불빛들 수십 년의 세월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인간은, 인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팔라이네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읖조리고 램프에 불을 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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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스철케이드 23.11.28 11 0 11쪽
26 26. 파스키은 23.11.27 9 0 11쪽
25 25. 카트란 23.11.26 11 0 11쪽
24 24. 알도린 23.11.25 10 0 11쪽
23 23. 파스키은 23.11.24 11 0 11쪽
» 22. 팔라이네 23.11.23 12 0 12쪽
21 21. 스철케이드 23.11.22 11 0 14쪽
20 20. 유니스 알페렌 23.11.21 12 0 13쪽
19 19. 베리칼라 23.11.20 15 0 11쪽
18 18. 파스키은 23.11.19 12 0 13쪽
17 17. 파스키은 23.11.18 13 0 11쪽
16 16. 스철케이드 23.11.17 13 0 11쪽
15 15. 팔라이네 23.11.16 14 0 10쪽
14 14. 팔라이네 크래프터 23.11.15 15 0 10쪽
13 13. 카트란 23.11.14 1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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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팔라이네 크래프터 23.11.10 20 0 14쪽
8 8. 베리칼라 23.11.09 24 0 13쪽
7 7. 파스키은 크래프터 23.11.08 2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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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스철케이드 크래프터 23.11.06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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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유니스 알페렌 23.11.04 109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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