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Rocinante 님의 서재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Rocinante
작품등록일 :
2023.11.04 18:34
최근연재일 :
2024.04.19 07:0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2,279
추천수 :
9
글자수 :
800,193

작성
23.11.13 06:30
조회
17
추천
0
글자
21쪽

12. 알도린 크래프터

DUMMY

알도린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소매로 훔쳤다. 사람들은 더위에 옷깃 단추를 풀고 다운 타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늦은 오후였지만 햇볕은 아직 뜨거웠다.


여자들은 양산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렸다. 거리 중앙의 분수대의 거리 악사들이 호리병 모양의 류트로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땀을 흘렸지만, 활기찬 표정이었다.


알도린은 도로까지 침범하여 돗자리를 깔고 갖은 물건을 올려놓고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는 호객꾼들과 손님들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코잉밀 덥지 않아?” 베리칼라는 달 문양을 새긴 흰색 드레스를 입고 연신 부채를 부쳤다.


“더워. 대시장으로 들어가서 땀 좀 식힐까?” 코잉밀은 검은색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었다.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안 그래도 살 것도 있고. 나올 때쯤에는 해가 져서 이렇게 덥지는 않을 꺼야.”


“알도린. 내 앞으로 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알도린은 꽃집을 지나쳐 뒤따라가면서 베리칼라와 코잉밀이 꽃집에서 본 백합의 꽃과 잎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큰누나.” 알도린은 재빠르게 뛰어 기다리는 베리칼라 앞쪽에 섰다.


“알도린 덥지 않니?” 코잉밀이 친절하게 물었다.


“조금” 알도린은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줄까?”


“레몬 맛으로 먹을래!” 알도린은 신이나 대시장의 문을 열었다. 찬 공기에 기분까지 시원해졌다. 알도린은 고개를 들어 대시장을 구경하였다.


“알도린 여기가 어딜까?” 베리칼라는 알도린이 모를 거 알면서 짓궂게 물었다.


“아주 큰 시장이지.” 알도린은 도장에서 나오기 전에 본 지도를 떠올렸다. 타브리즈는 신성 도장을 중심으로 타원 형태로 둘러싼 시가지였다. 타브리즈의 북동부는 교역지구로 대시장이 형성되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부유한 장소였다고 써있었다.


“여기는 낡은 대륙 각지의 특산물들은 대시장으로 운반되어 거래되고 다시 낡은 대륙으로 뻗어 나가 각지로 흩어져. 마치 심장 같지?”


대시장은 일반 도로변의 가게와는 다르게 뜨거운 태양을 피해 아치형으로 벽돌을 쌓아 올려 내부에 그늘을 만들었다. 중간중간 환풍구를 겸하는 채광창이 나 있었지만, 큰시장 내부는 비교적 어두웠다.


인도 위쪽으로 건물과 건물을 가로지르는 거미줄 같은 전선에 전구들이 달려 내부를 밝혔다. 코잉밀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가왔다. 알도린은 혀로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핥아먹으며 쇼핑하는 베리칼라와 코잉밀을 지켜보았다.


건물 그림자 안으로 들어오자 알도린은 한층 시원함을 느꼈다. 양철 그릇과 주전자를 쌓은 가게와 가게 기둥 중간중간에 달린 양쪽 모퉁이 부분이 닳은 광고지들, 사람들이 탁류처럼 움직이는 좁은 통로 안에서 알도린은 베리칼라가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보드랍고 살짝 땀이 나 축축함이 느껴졌다. 쇼윈도우 안의 실크 의복들, 생필품들 인도 안까지 두껍게 쌓인 하얀 별산 양털 카페트와 솜이불들, 수레 위로 과일을 잔뜩 실은 채 움직이며 과일을 파는 상인들, 황동 기계와 톱니바퀴를 잔뜩 쌓은 철물점들,


전통 도자기들을 뒤집어 진열한 도예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쇼핑몰 안에는 화장품 가게와 옷 가게들, 도장의 기념품들 가게를 거닐었다. 코잉밀은 색모래로 밀알의 수도 허수아비를 그린 작은 예술품을 샀고,


베리칼라는 기계부품용 윤활제를 구매했다. 슐레이반 삼촌이 부탁한 모양이었다. 알도린은 파스키은 형에게 줄 선물을 고민했다. 며칠 전에 파스키은이 쓰러진 후, 마음 한 켠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파스키은 형은 뭘 좋아할까라는 생각하다가 파스키은 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아는데, 정작 자신은 파스키은 형이 좋아하는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자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풀이 죽었다.


알도린은 힘없는 목소리로 베리칼라에게 물었다.


“큰누나 파스키은 형은 뭘 좋아할까?” 코잉밀이 대신 대답했다.


“내 생각에 알도린의 선물이라면, 파스키은은 어떤 걸 사가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도 파스키은 형이 좋아하는 걸 사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알도린은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그러면 같이 생각해보자.” 베리칼라는 지그시 웃었다.


“응” 알도린은 따귀를 때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제네트샤가 한 남자를 때리며 소리쳤다. 남자는 제빵사인 듯 앞치마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빵을 판매하려다가 제네트샤에게 손을 댄 모양이었다. 그 옆으로 베어검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제네트샤를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역겹고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제네트샤의 독기에 찬 목소리가 대시장 안에 울렸다. 제빵사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베어검이 제빵사를 손찌검하려는 제네트샤를 떼어 놓으며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죄송합니다.” 제빵사는 제네트샤의 뒷모습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네가 뭘 알아! 당장 가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어.” 제네트샤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투덜거렸다.


“그래 내가 새 옷을 선물하게 양복점으로 가자. 앞장서.” 베어검은 잠시 제네트샤가 앞서 걷어가는 동안 제빵사의 손에 은화 몇잎을 쥐여주었다.


“미안 하네. 함구하여 주게.” 제빵사는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빨리 와!” 제네트샤가 이미 한 블럭이나 먼저 걸어가 멀리서 소리쳤다. 베어검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한 채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낡은 대륙에 소문날 정도이니, 제네트샤의 성격은 여전하네.” 코잉밀은 제네트샤가 대단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베리칼라가 수긍하는 동안 알도린은 철혈 종자들은 상종하지 말라는 슐레이반 삼촌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옷을 만졌다고 때리다니 제네트샤는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도린은 양탄자들이나 공예품들 밀안 산 견과류와 씨앗들 사이에를 걷고 있으니 지하 속에서 거도 있는 착각이 들었다. 곳곳에 뚫린 환풍구 사이로 동그란 햇빛이 들어왔다.


젊은 사람들은 호기가 있어 행동이 크고 목소리가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도린은 햇빛에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햇빛을 피해 그늘로 걸었다. 알도린은 베리칼라가 자기 쪽으로 손을 당기는 느낌을 느꼈다.


작은 기계마차들이 황동 몸체를 뽐내며, 곡식 포대나 나무 상자를 잔뜩 싣고 대시장 안쪽으로 천천히 물건을 운반했다. 알도린은 모퉁이 쪽에 바짝 붙었다.


기계마는 콧구멍으로 김을 내뿜으며 에메랄드 눈동자로 알도린을 훝어보고 지나쳐갔다.


“베리칼라. 피하는 게 좋겠다.” 코잉밀이 먼저 걸어가 반대쪽을 살펴보고 되돌아오며 베리칼라에게 말했다.


“왜 그러는데?”


“반대쪽 길은 꽉 막혔어. 시위대가 있는 모양이야.” 알도린은 시위대라는 말에 흥미가 생겨 꼭 가보고 싶었다. 반대쪽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들렸다.


“사빌라밀은 퇴임하라! 황금은행장은 사퇴하라!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 노동자에게 걸맞은 대우해라! 일자리를 달라! 퇴임하라! 퇴임하라!” 코잉밀은 얼굴을 찌푸렸다.


“내부상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공산주의자 놈들. 아직 굶어 죽지 않은 정도로 바른 정치를 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지.” 코잉밀은 얼굴을 붉혔다.


“공산주의가 뭐야?” 알도린은 베리칼라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이익을 거져 달라는 사람들이지.” 코잉밀은 경멸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가 되고, 공공 소유의 기반을 둔 무계급 사회야.” 베리칼라는 알도린이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표정으로 말했다. 알도린이 너무 어려워서 흥미를 잃어 버리자 괜히 이야기를 했느냐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시위대는 대시장으로 진입하려고 치안대와 몸싸움했다. 치안대는 방패로 시위대를 차단하고 있었지만, 점차 뒤로 밀려났다. 긴급하게 다른 골목에서 치안대가 뛰어와 합류했다.


시위대와 치안대의 몸싸움이 격렬해지자 베리칼라는 알도린과 코잉밀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시위대에서 멀어져 한쪽 모퉁이로 빠져나왔다.


코잉밀은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시위대의 동향을 살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골목에서 치안대들이 투입되어 시위대의 전진을 막았다.


“노동자에게 걸맞은 대우를 하라!” 라는 함성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알도린은 숨을 헐떡이며 밖으로 나왔다. 베리칼라와 코잉밀도 숨이 찼는 지 숨을 골랐다.


“시위대 수가 많아져서 큰일이야.” 코잉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저 사람들은 제대로 일하지도 않으면서 임금을 더 달라고 하지.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알도린. 절대 저런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 돼.” 알도린은 코잉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코잉밀 누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마도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일 거로 생각했다. 알도린은 시위대를 피해 대시장 밖으로 나왔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찬 바람과 섞여 미즈근한 바람이 불었다. 알도린은 인도와 도로를 분리하는 알루미늄 난간에 매달려 반대쪽 도시를 구경했다. 반대편 다리 너머는 이쪽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디서 버려 둔 양철판을 지붕으로 삼았는지, 색깔도 제각각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집들이 누더기를 기운 듯이 제멋대로 생겨 보였다. 골목 곳곳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쓰레기를 물고가는 비쩍 마른 주인 없는 개가 알도린을 쳐다보고 무슨 소리가 났는지 갑자기 어둠 속으로 달려 사라졌다. 한적한 아스팔트 도로에 디젤차 몇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디젤차들은 엑셀레이터를 밟아 도로를 빠져나갔다. 신호등은 초록 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다. 알도린은 횡단보도에 허름한 복장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아이의 복장은 엄마보다 비교적 단정했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줄무늬 손수건으로 머리를 덮어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몸에는 여러 무늬가 그려진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는 여러 천 조각을 꿰매 발목까지 내려왔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엄마 아이는 횡단보도로 발을 떼었다. 알도린은 저 멀리서 디젤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걸 보았다.


디젤차는 뒤에서 빨간등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까이까지 왔다. 그리고 디젤차는 엄마와 아이를 보고 경적을 울렸지만, 끝까지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엄마는 뒤늦게 디젤차를 발견하고 아이를 뒤로 밀쳤다. 알도린은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베리칼라와 코잉밀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알도린은 눈을 다시 떴다. 디젤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횡단보도 위에는 쓰러진 여자와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뿐이었다. 알도린은 베리칼라가 ‘잠깐만’이라는 소리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시장의 사람들이나 반대편의 빈민가 사람들은 멀리서 보고만 있을 뿐,쓰러진 여자는 행색이 초라해서인지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움직이지 않았다.


“집시네.” 베리칼라는 뒤따라와 옆에 섰다.


“집시든 뭐든, 큰누나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게 될 거야.” 알도린은 무릎을 꿇고 여자를 들어 보려고 했다. 골절되어 부서진 정강이뼈가 피부를 뚫고 기괴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알도린은 손에 흥건하게 묻은 피를 바지에 닦아내었다.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할지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도장은 너무 멀었다. 타브리즈는 복잡하고 초행길이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알도린 잠깐만 의사에게 가기도 전에 출혈로 쇼크사하겠어. 긴급하게 지혈을 해야 해.”


“알도린 꽉 잡고 있어 봐.”


“알았어. 어떻게 하면 돼?”


“베리칼라 날 좀 도와줘. 저기 부서진 각목 보이지. 지혈하고 나서 부목도 함께 대어야겠어. 운반하다가 상처가 더 심해질 거야.” 베리칼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쓰레기 더미에서 각목을 가지러 가는 사이에 코잉밀은 가죽 허리띠를 풀어내었다.


다리가 보이게 여자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었다. 알도린은 밖으로 삐져나온 뼈를 보고 질끈 눈을 감았다.


“베리칼라 반대편 허벅지를 누르고 있어 지혈을 할게”


“알았어!”


코잉밀은 허벅지 밑으로 허리띠를 넣어 있는 힘껏, 밸트를 꽉 조였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다가 혼절하였다. 다친 다리에서 피가 흐르는 게 조금 줄어들었다.


“아직 부족해. 베리칼라 손으로 밸트를 당겨봐.” 코잉밀이 당기는 밸트를 베리칼라가 한 손으로 좀 더 당겼다. 밸트는 좀 더 조여들었다. 허벅지가 바짝 조여들었다.


“됐어. 피가 멎었어.” 코잉밀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코잉밀 우리 완전 피범벅이야.” 알도린은 눈을 떴다. 코잉밀은 여자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베리칼라는 두 손 모두 핏속에 담갔다가 꺼낸 것처럼 묻어 있었다.


“아직 살아 있어 의사에게 데리고 가면 살 수 있어.”


“의사! 의사가 필요해요!” 알도린은 상점가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다가 상업지구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 이유를 알아냈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상업지구와 건물과 반대편 건물의 행색이 너무나 달랐다.


알도린은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자기 옷의 질이 너무 다른 걸 깨달았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알도린이 입은 옷에 비하면 거의 헐벗은 것과 다름없었다. 단추가 없는 셔츠나 신발도 없이 맨 발인 사람이 많았다.베리칼라와 코잉밀이 계속해서 망설이는 중이었다.



“베리칼라 코잉밀 누나 정말 죽어!” 알도린이 소리치자 베리칼라와 코잉밀은 알도린을 도와 여자를 들쳐 없었다.


여자의 양쪽 겨드랑이 팔을 끼고 알도린은 다친 발을 들었다. 남은 여자의 발은 이동할 때마다 질질 끌렸다. 아이는 울면서 엄마를 따라 걸어왔다. 빈민가 안쪽에서 한 남자가 알도린을 보며 소리치며 손짓했다.


“여기예요 여기로 오세요!” 알도린은 땀을 흘리며 부축하여 걸어가자 구경꾼 사람들은 길을 터주었다. 알도린은 어깨가 진득하게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곧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건물 틈 사이를 얼마나 걸었을까. 안쪽은 좁아지다가 넓어지기도하고 빛이 들다가 또 칠흑처럼 어두워지기도 했다. 확실한 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거였다.


알도린은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전기가 부족하여 어두컴컴한 빈민가는 희망이라곤 한 점도 없는 악마의 소굴 같았다. 건축물이라고 하기에는 조잡한 나뭇조각과 양철판들을 쌓아 만든 집들 사이사이의 골목마다 신기한 눈으로 알도린 일행을 바라보는 눈길을 느꼈다.


남자는 미로 같은 길을 건물 계단을 몇층이나 올라갔다. 허리춤까지 콘크리트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지붕을 받치는 기둥들이 녹슬어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빨랫줄에 걸린 형형색색의 빨래가 바람에 나풀거렸다.


문은 열려 있었다. 베리칼라와 코잉밀을 따라 남자가 안내한 곳에 도착하니 빈병상이 보였다. 알도린은 새부리가면을 쓴 의사를 보고 흠칫했다. 검은 유리창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죽부리 안쪽에서 소름 끼치는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영 안 좋군. 비용은 지급할 수 있나?”


“얼마가 필요하는데요?”


“얼마 안 해. 다리를 잘라낼 거니까. 절단 비용이랑 감염 방지 항생제, 인공 다리 비용하면 금화 1개면 되겠군.”


“여기 있어요.”


코잉밀은 피 묻은 손으로 가방을 뒤져 금화 한 잎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의사는 금화를 집어 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병상에 올리게” 알도린은 코잉밀을 도와 허름한 의료 침대에 다친 여자를 올리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의사가 가위를 여자를 진찰하는 동안에 알도린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뼈톱으로 톱질하는 소리가 들리자 코잉밀과 베리칼라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더는 못 있겠어. 해도 지니까 여기서 나가자.”


“그런데 코잉밀 왔던 길을 기억해?”


“응? 나도 모르지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코잉밀이 물로 씻어내고 손수건으로 핏물을 닦아내었다. 알도린은 공터에 내려오자 현기증이나 휘청거렸다.


“괜찮아 알도린? 좀 쉬어야겠어.”


“응. 좀 어지러워.”


“아까 너무 무리했나 봐. 코잉밀 좀 쉬었다가 내려가자.”


“그래.” 알도린은 1층 공터로 내려와 무너진 건물 더미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팔다리의 근육이 저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상하의에 여자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알도린은 검은 코트를 입은 의사의 모습이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았다. 베리칼라와 코잉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베리칼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알도린을 바라보고 있었고,


코잉밀은 주변을 둘러보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정말 못 말려. 고집은 정말 세다니깐” 베리칼라는 알도린의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코잉밀은 내려오다 개똥을 밟았는지, 나뭇가지로 단화 굽사이에 묻은 변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못 말리는 소년이네.” 코잉밀의 핀잔에 알도린은 멋쩍은 웃음을 짓고 베리칼라와 코잉밀에 가까이 앉았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공장가를 처음 본 듯이 몰려들었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기름때 묻은 청년들과 깡마른 노인들이 공장가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청년하나가 코잉밀에게 접근해 옷을 만지자 코잉밀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큰누나 어떻게 해서 들어오긴 했는데, 어떻게 도장으로 돌아가지?” 알도린은 난감했다.


“사람을 살리기는 했지만 알도린 너무 막무가내였어. 나도 여기는 처음이야.”


“이거 놔!” 코잉밀이 소리쳤다. 문신한 근육질의 사내가 코잉밀의 손을 갑자기 붙잡았다.

알도린은 곧장 일어나 코잉밀에게 가려고 했지만, 건장한 다른 두 사내가 베리칼라와 알도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자코 있는 게 좋을 거야.” 머리에 문신한 사내가 말했다.


“너희들도 봤잖아. 우리는 단지 다친 사람 때문에 들어온 거뿐이야.” 알도린은 사내를 올려보며 말했다. 사내는 알도린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코잉밀이 계속해서 소리치자 근육질의 사내가 코잉밀의 뺨을 올려붙였다.


코잉밀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알도린은 코잉밀에게 달려가려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나뒹굴어 배를 움켜쥐었다. 다른 한 남자가 기회를 봐 걷어찬 거였다.


베리칼라는 알도린에게 다가 갔다. 근육질 사내는 코잉밀을 끌고 안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도망치지 않게 잘 봐, 끝나고 오면 다음은 니들이 하게 해줄게” 민머리 사내는 다른 사내들에게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내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도린은 다시 일어나 코잉밀에게 가려고 했다.



사내는 알도린의 멱살을 쥐어 어깨까지 올려 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시야가 흐릿흐릿해지고, 두 눈에서 눈물이 났다. 코잉밀의 녹색 옷이 점점 멀어졌다. 코잉밀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만두는 게 좋을껄?" 알도린은 머리 위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민머리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2층 남짓한 옥상에 가죽 부츠를 신은 여자가 다리 한쪽을 걸치고 아래를 보고 있었다.

청명한 하늘 같은 푸른 눈이 빛났다.


“노라.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겠지.”


“잘 생각했어. 그 여자는 대공장장의 딸이거든, 괜히 건드렸다가는 내일 아침에 이곳에 경비병들이 쏟아질 거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민머리 사내는 도장 경비병이라는 말에 흠칫 놀라면서도 코잉밀을 놓아주기가 아쉬운 듯 천천히 풀어 주었다.


코잉밀은 사내의 뺨을 때렸지만, 민머리 사내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알도린은 멱살이 풀어지는 걸 느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소를 요구하는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였다. 알도린은 격하게 기침하며 숨을 쉬었다.


“괜찮니?” 베이지색 셔츠에 때 묻은 가죽 장갑을 낀 소녀는 옥상에서 훌쩍 뛰어 고양이처럼 바닥으로 착지했다. 알도린은 그 몸짓이 우아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베리칼라가 소녀가 누군지 알아챈 듯했다.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오셨네. 나는 노라야. 노라 코로나. 반가워.” 알도린은 베리칼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코잉밀은 노라 코로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노라는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모술은 상류층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말이야. 실례하게 됐네. 함부로 들어온 너희의 불찰도 있으니 퉁치기로 하지.” 노라는 경쾌하게 말했다.


“아 그리고 여기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모술 밖까지 안내해 주겠어. 내가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거야. 동의하지?” 코잉밀은 노라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라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구경하는 모술 사람들이 짜증이 났는지, 허리에 두 손을 데고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자. 구경거리는 끝났어. 이제 다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1. 스철케이드 23.12.02 12 0 11쪽
30 30. 카트란 23.12.01 12 0 11쪽
29 29. 파스키은 23.11.30 11 0 14쪽
28 28. 베리칼라 23.11.29 9 0 10쪽
27 27. 스철케이드 23.11.28 11 0 11쪽
26 26. 파스키은 23.11.27 9 0 11쪽
25 25. 카트란 23.11.26 11 0 11쪽
24 24. 알도린 23.11.25 10 0 11쪽
23 23. 파스키은 23.11.24 11 0 11쪽
22 22. 팔라이네 23.11.23 11 0 12쪽
21 21. 스철케이드 23.11.22 11 0 14쪽
20 20. 유니스 알페렌 23.11.21 12 0 13쪽
19 19. 베리칼라 23.11.20 15 0 11쪽
18 18. 파스키은 23.11.19 12 0 13쪽
17 17. 파스키은 23.11.18 13 0 11쪽
16 16. 스철케이드 23.11.17 13 0 11쪽
15 15. 팔라이네 23.11.16 14 0 10쪽
14 14. 팔라이네 크래프터 23.11.15 15 0 10쪽
13 13. 카트란 23.11.14 15 0 13쪽
» 12. 알도린 크래프터 23.11.13 18 0 21쪽
11 11. 스철케이드 23.11.12 21 0 10쪽
10 10. 스철케이드 크래프터 23.11.11 22 0 11쪽
9 9. 팔라이네 크래프터 23.11.10 20 0 14쪽
8 8. 베리칼라 23.11.09 24 0 13쪽
7 7. 파스키은 크래프터 23.11.08 24 0 15쪽
6 6.카트란 깁슨 23.11.07 41 0 12쪽
5 5.스철케이드 크래프터 23.11.06 44 0 12쪽
4 4.알도린 크래프터 23.11.05 71 1 14쪽
3 3. 유니스 알페렌 23.11.04 109 1 17쪽
2 2. 파스키은 크래프터 23.11.04 219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