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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inante 님의 서재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Rocinante
작품등록일 :
2023.11.04 18:34
최근연재일 :
2024.04.19 07:0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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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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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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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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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1. 스철케이드

DUMMY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되었어요." 스철케이드는 사빌라밀이 무척이나 노쇠해졌음을 느꼈다.


가온의 대공장장인 그녀는, 젊은 시절의 금발 머리는 은색 명주실처럼 새하얗게 바뀌었다. 미간 사이에 눈썹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눈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생겼고, 코 옆에도 팔자주름이 늘어났다. 붉게 칠한 입술이 생기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늙은 얼굴을 더 늙어 보이게 했다.


“하얀 별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지는 석 달이 지났어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단순히 통신이 늦어지는 걸로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전에도 이런 일이 있다가 한 달 뒤쯤 연락이 됬었거든요. 알다시피 동부는 척박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연락이 끊긴 한 달 뒤쯤에 이상하다 싶어 탐색꾼을 보냈죠.”


“탐색꾼이 뭐라고 하던가?” 스철케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되돌아오지 못했어요.” 사빌라밀의 말에 스철케이드는 눈을 지끈 감았다.


“그래서 2주 뒤에 한 번 더 탐색꾼을 보냈죠.”


“그래서?” 스철케이드는 다음 답변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탐색꾼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돌아버리겠군." 사빌라밀은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나 스철케이드가 있는 탁자 앞으로 걸어왔다.


“탐색꾼이 매수되었는지, 아니면 도망간 건지, 죽은 건 지 알 수가 없어요. 이건 마치 증발해 버린 것 같아요.”


“그래 되돌아오지 않으니 알 수가 없겠지.”


“스철케이드, 부탁할게요. 하얀 별에 가서 진상 파악을 해 줘요.” 스철케이드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졌다.


“거절한다면?”


사빌라밀은 작은 서랍을 열어 찻주전자에 말린 히비스커스의 꽃잎을 넣었다. 꽃잎이 닿은 물에서 진한 붉은색으로 우러나왔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면 도장이 혼란에 빠지는 걸 두 손 놓고 보고 있어야 하죠.”


“고작 하얀 별에서 연락이 안 온다고 도장이 혼란에 빠진다는 말은 너무 과장이야. 하얀 별이 디젤을 공급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공장가는 아니니까. 좀 더 침착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어." 스철케이드의 말을 듣고 사빌라밀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하얀 별에서 디젤유 공급이 중단되었어요.”


“언제부터!!!” 스철케이드는 사빌라밀의 예상하지 못한 실토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화가 나도 눈만 끔벅끔벅하며 화를 삭이던 스철케이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사빌라밀은 스철케이드에게 등을 돌린 채로 집무실 중앙의 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원통 속에는 밀알에서 가져와 심은 흑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밑으로 꽃을 핀 히비스커스가 자라 있었다.


“한동안은 송유관에서 공급이 계속되다가 한 달 전쯤 부터요. 재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스철케이드는 별안간 심각해졌다.


마음속이 복잡해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도장의 디젤유는 석유류의 일종으로 디젤기관이나 발전기 등에 쓰이는 연료였다. 도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디젤유의 공급은 필수였다.


“도장의 재고분이 얼마나, 아니 긴축하면 얼마나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두 달 정도 쓸 수 있을 거예요.” 사빌라밀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오. 낡은 신이시여.” 스철케이드는 탄식했다.


“너무 늦은 건 사실이에요.”


“미리 말하지 않는 이유가 뭐야?”


“나는 지금 황금은행하고도 골치 아픈 문제로 속을 썩이고 있어요. 이 사실을 황금은행에서 알게 되면, 더욱더 저를 곤란하게 하겠죠.” 사빌라밀이 안경을 벗고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나에게는 미리 말할 수 있었잖아. 그동안 일언반구도 안 한 이유는 뭐야?”


“미안해요. 스철케이드. 당신과 관련된 사람 중에 첩자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어요.”


“뭐? 나와 몇십 년을 같이 일했는데도 의심했다는 게 말이 돼?”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요.”


“내 주변인을 의심하는 게 나를 의심하는 거야. 알잖아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또, 모르죠.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니까요. 아니 당신 말이 맞아요. 판단력이 흐려졌나 봐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사빌라밀은 한숨을 쉬었다. 스철케이드는 중년의 대부분을 사빌라밀과 함께 보냈는 데에도, 사빌라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아니 누군가가, 여자를 이해하는 게 남자의 평생 과업이라고 했던가.



여자는 감정이 복잡하고 다양했다. 남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짓수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학계에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가 있다면 제1순위는 여자였다.


“그래요. 문제가 생겼을 때 말했었으면 좋았겠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구요.” 사빌라밀은 울음을 터트렸다. 스철케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빌라밀에게 다가가 두 팔로 어깨를 잡았다.


“정신 차려 당신은 전쟁도 이겨 낸 여자야, 고작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아.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우리는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들을 해쳐왔어. 이보다 더 상황이 힘들 때도 많았지. 이대로 무너져서 철혈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어.”


스철케이드는 말하면서도 사빌라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사빌라밀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하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흐느낌이 잦아들고 진정되자 사빌라밀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방법을 찾아야겠죠.” 사빌라밀은 손수건으로 탁자에 흘린 눈물을 훔쳤다. 스철케이드는 사빌라밀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아직 늦지는 않았으니, 여명 호를 타고 하얀 별에 방문해야겠어. 다녀오고도 한 달 정도 남을 테니, 처리할 시각은 충분해”


“알았어요. 고마워요 스철케이드.” 사빌라밀의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코잉밀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스철케이드는 사빌라밀에게서 떨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사빌라밀은 재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코잉밀은 문을 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와 분위기를 살폈다. 스철케이드는 코잉밀이 맞은편 의자에 앉자 차를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스철케이드 아저씨. 베리칼라랑 놀러 가기 전에 잠깐 들렀어요.” 코잉밀은 청량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디로 갈 건데?” 사빌라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스럽게 이야기했다.


“다운타운에 갈 거예요.”


“어제도 늦게까지 놀지 않았니?”


“맞아요. 저는 파티같은 부산스러운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빨리 빠져나왔지만, 광맥가 자제분들은 성대하게 놀았던 모양이에요. 그 여파로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지요..” 코잉밀은 즐거운 듯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스철케이드는 두 부녀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찻잔을 들었다.


“괜찮으신 거죠?”


“뭐가?” 스철케이드는 코잉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스러웠다.


“밖에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고함 소리가 들려서요.” 코잉밀은 스철케이드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응, 사빌라밀과 처리할 문제 때문에 대립해서 말이야 언성이 좀 높아졌어.” 스철케이든느 이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잘 처리될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그러면 다행이네요.” 코잉밀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코잉밀 데임은 밀알가의 성품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소녀였다. 고상하고 기품있고 무엇보다 다정했다. 부유함과 관대함이 만들어낸 소산이었다.


코잉밀은 얇은 검은색 블라우스에 복부에 황동색 버클 3개가 달린 짙은 카키색 써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을 때마다 하늘거리는 치마가 활기차 보이게 하였다. 허리 뒤에 단정하게 맨 리본이 봉긋한 엉덩이 윤곽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사빌라밀은 대공장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딸을 가온으로 데리고 왔다. 스철케이드는 코잉밀과의 첫 대면을 했던 11살 나이의 쑥스럼 많은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철케이드가 손을 흔들자, 스철케이드가 무서웠는지 사빌라밀 뒤로 숨고 얼굴 반쪽만 내밀고 살펴보고 있었다.


떠오르는 기억이 또 있었다. 코잉밀이 12살 때였을 터였다. 코잉밀은 다운타운 빈민가 구호 행사에 자기가 먹을 빵까지 나눠 주고 굶은 채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스철케이드는 코잉밀에게 물을 건네주며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그 나이 때 어린아이들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 쉬웠다. 알고 그러듯 모르고 그러듯 마치 본능처럼 제 몫을 뺏기기 싫어할 나이였다. 코잉밀은 허기가 졌는지, 도장 식탁에 앉아 음식을 실컷 먹으면 대답했다.


“전 돌아와서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양 갈래머리로 귀엽게 땋은 금발 꼬맹이는 이미 의젓하게 성장해서 스철케이드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럼 됐어요. 잠시 들린 거라서요. 전 베리칼라를 깨우러 가야겠어요. 더 늦게 나갔다가는 돌아올 때, 한밤이 돼 버릴 테니까요.”


“늦기 전에 돌아와.” 사빌라밀이 잔소리 아닌 잔소리했다. 코잉밀은 들어왔던 것처럼 산뜻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철케이드는 코잉밀이 내심 사빌라밀을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좋은 딸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사빌라밀이 스철케이드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을 코잉밀에게는 말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코잉밀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스철케이드와 사밀라밀이 숨소리만 들리는 적막이 흘렀다.


“그래서 언제 출발하면 되는 건데?”


“앞으로 사흘 뒤에.”


“준비하느라 바쁘겠군. 물품은 부족하지 않게 실어둬.” 스철케이드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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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팔라이네 23.11.23 10 0 12쪽
21 21. 스철케이드 23.11.22 10 0 14쪽
20 20. 유니스 알페렌 23.11.21 11 0 13쪽
19 19. 베리칼라 23.11.20 14 0 11쪽
18 18. 파스키은 23.11.19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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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카트란 23.11.14 14 0 13쪽
12 12. 알도린 크래프터 23.11.13 1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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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팔라이네 크래프터 23.11.10 19 0 14쪽
8 8. 베리칼라 23.11.09 23 0 13쪽
7 7. 파스키은 크래프터 23.11.08 22 0 15쪽
6 6.카트란 깁슨 23.11.07 39 0 12쪽
5 5.스철케이드 크래프터 23.11.06 41 0 12쪽
4 4.알도린 크래프터 23.11.05 68 1 14쪽
3 3. 유니스 알페렌 23.11.04 9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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