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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4.12.26 22:17
최근연재일 :
2014.12.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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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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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권] 3_2

DUMMY

주희는 뉴욕의 슈퍼 히어로가 되었다. 열두 시가 넘으면 창문을 열고 할렘가로 날아가, 온갖 강력 범죄를 저지했다. 특히 성범죄에 대해서는 가차없었다.

주희의 힘은 대단히 섬세했지만, 리레이쉰이나 지우처럼 강력하지는 않았다. 전적으로 주희의 상상력, 그녀만의 상식에 좌우되는 힘인 만큼,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총알을 막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다행히 총알을 막을 일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다. 멀리서 현장을 발견하고, 범인 근처에 놓인 벽돌이나 우산 창살 같은 것으로 급소를 때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완전범죄였다. 주희가 자백한다 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을 것이다. 직접 시범을 보이지 않는 한 말이다.

주희의 몸은 벽돌 등의 물건보다 훨씬 더 무거웠지만, 하늘을 나는 건 그렇게 체력소모가 크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자기 몸무게 만한 짐을 옮기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희는 하늘을 나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눈에 띌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하다 보니, 자연히 기척을 감추고 상대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그런 훈련이었다. 주희의 상상력은 지우나 리레이쉰처럼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사고가 아니어서 기척을 감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리레이쉰조차 주희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까지 발전해나갔다.

그러나 골목 모퉁이 저편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희에게 인간이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돌멩이 하나와 크게 다를 게 없었으니까. 단 한 사람, 리레이쉰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뉴욕 뒷골목에서 강도 둘에 강간범 하나를 처단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강간 현장은 너무 늦게 발견했다. 가해자를 벌했을 뿐, 피해자를 구하지는 못한 것이다. 자기 몸 위에서 뒤통수에 벽돌을 맞고 죽어버린 범인을 보며, 피해자는 어쩌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희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울함을 달래려 센트럴 파크를 찾았다. 한밤중의 센트럴 파크는 인적이 드물고 공기도 좋아 도심 속에서 대자연을 느낄 수 있었지만, 주희는 그 시간의 그곳이 우범지역일 수 있다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몇몇 아베크족이 수풀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주희는 깜짝 놀라 그들 중 몇몇을 죽여버릴 뻔했다. 어린 아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더욱 흥분한 연인이 큰소리로 음란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날 밤 꽤 많은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것이다.

연인의 행위를 아름답게 여기는 주희였지만, 그날은 그걸 구경하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주희는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큰 나무 위로 날아올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니, 가지려고 했다.

먼저 주희를 방해한 건 센트럴 파크의 모기떼였다. 귓가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날갯짓하는 모기를 쫓고 보면, 어느새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 아래 종아리 근처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주희는 모기에 신경을 쓰느라 누군가 주희가 앉아있는 나무 바로 아래까지 달려오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가씨,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를 내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 말을 들은 소녀가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녀를 안고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주희는 눈으로 날카로운 돌멩이를 찾았다. 말하는 투로 봐서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사내가 어린 소녀의 몸에 손을 대려 한다면 끝장을 내줄 작정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분위기로 볼 때 곧 누군가 그들을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 만일 사내가 소녀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라면 쫓아올 자들은 악당이 분명할 터였다.

수풀에 숨은 사내는 소녀를 꼭 끌어안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확실히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나쁜 의도를 가진 자들이 당도했다. 그들이 데려온 강아지 한 마리가 나무 아래 수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봐, 요 녀석이 작다고 무시한 모양인데, 이게 다리가 짧아서 그렇지 이래 봬도 사냥개라고. 수풀에 숨으면 찾아달라고 사정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청년 하나가 말하자 나머지 넷이 큰소리로 웃으며 나무 주위를 에워쌌다. 주희가 보기에도 숨어 있는 사내가 실수한 것 같았다. 개를 데리고 있는 자들에게 쫓기면서 멀리 도망치지 않고 수풀에 숨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쫓는 자들이 그리 서둘러 달려오지 않았으니,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소녀를 내려놓고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내를 보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옆구리에 대고 있던 손을 떼자 피가 엄청나게 묻어나온 것이다. 총에 맞았던지 칼에 맞았던지, 더 도망칠 힘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추격자가 데리고 있는 개가 평범한 애완견이기만을 기대했을 것이다.

사내가 말했다.

“이분이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네놈들 지금 돈 몇 푼에 목숨을 팔려는 거다.”

청년 하나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우리가 누구 명을 받고 이러는지는 알고 그런 소릴 지껄이는 거냐? 아마 네놈이 우리를 손봐줄 거라 믿는 그분이 우리에게 돈을 주실 거다.”

사내가 코웃음 쳤다.

“멍청한 양아치 놈들. 네놈들이 말하는 그분도 일이 끝나면 너희를 제거하려 하실 거다. 그 정도 되시는 분께서 여동생이 강도한테 당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체면이 살겠어?”

청년들이 움찔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손을 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얌전히 시키는 대로 일하고, 의뢰인이 약속을 지키기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리더 격인 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말싸움하러 온 거 아니지? 빨리 끝내고 뜨자!”

그 말을 신호로 나머지 넷이 포위망을 좁혔다.

주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다섯을 한꺼번에 치는 것도 만만치 않고, 용케 성공한다 해도 목격자가 남을 터였다. 소녀를 지키려는 사내는 뒷골목에서 강도를 만난 피해자처럼 당황한 것도 아니고, 지금 주희는 현장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주희가 망설이는 사이에 한 청년이 칼을 뻗었다. 사내는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여의치않아 둘이 엉켜 수풀 속으로 쓰러졌다. 그 속으로 두 사람이 더 뛰어들었다.

수풀에 가려 누가 누구인지도 보이지 않는 속에서 고함과 비명이 난무했다. 주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다른 사내 하나가 징그럽게 웃으며 소녀에게 다가가는 걸 보고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 돌을 들어 그 녀석을 쳐 봤자 대세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주희는 소녀에게 다가가는 청년을 일격에, 그러나 눈에 띄지 않게 보내버릴 수 있도록 돌멩이를 골랐다. 그러나 돌멩이는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다시 바닥을 굴렀다.

‘뭐지? 사람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봐도 마찬가지였다.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나 발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거기에 있었다. 주희는 소녀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그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그림자 하나가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갑작스레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키 크고 잘생긴 동양인 소년이 여유를 부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휘파람 소리를 들은 청년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소녀를 붙잡은 놈 하나, 이미 정신을 잃은 사내를 깔고 앉은 놈 하나를 뺀 나머지 셋이 소년을 막아섰다.

“꼬마야, 여긴 통행금지다. 멀리 돌아가라.”

청년 하나가 말하자 리더 격인 청년이 타박을 주었다.

“미쳤냐? 얼굴 다 보여주고 어딜 그냥 보내?”

그 말을 들은 다른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꼬마야, 이리 와 봐라. 나랑 얘기 좀 하자.”

소년 리레이쉰은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처음 모퉁이를 돌아 나온 순간부터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리레이쉰은 다짜고짜 상대의 턱에 돌려차기를 먹였다. 건달이 빠르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건달들은 리레이쉰이 자세를 바로잡는 걸 보고서야 그가 방금 돌려차기를 했다는 걸 알았다.

얻어맞은 녀석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리레이쉰은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가 손으로 이마를 살짝 밀쳐 쓰러트리고는 터벅터벅 걸어왔다.

“싱거운 놈. 할 얘기 있다더니 그냥 잠들어 버리는 건 뭐야?”

두 사람이 한두 걸음 물러서자 수풀 속에서 사내 하나가 뛰쳐나와 가세했다. 리레이쉰은 까치발을 하고 방금 그가 나온 수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본 아베크족 중에서 제일 하드한 커플이다. 남자끼리, 그것도 피까지 보면서 사랑을 나눈 거야? 통행금지일만 하다.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피해줬을 텐데.”

리레이쉰은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을 그냥 지나쳐갔다. 건달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한꺼번에 뒤에서 달려들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리레이쉰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냥 지나쳐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수풀 속으로 뛰어들며 꼬마 소녀를 붙잡은 건달에게 달려든 것이다. 건달은 목에 당수를 맞고 힘없이 쓰러졌다.

리레이쉰이 말했다.

“오늘 본 아베크족 중에서 가장 용서 못 할 커플이다.”

주희가 나무 위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리레이쉰의 말은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저렇게 못 생긴 녀석이라니. 이봐, 아가씨. 저런 놈 상대하지 말고 나랑 차 한잔하는 건 어때?”

주희는 분노에 휩싸였다. 어린 소녀에게 찝쩍대는 모습을 보니 뉴저지 주의 대저택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분노를 폭발시킬 틈은 없었다. 소녀의 대답이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놈들을 모두 쫓아주면요. 그럼 내가 데이트해줄게요. 착한 사람 같으면 결혼도 해줄 수 있어요.”

주희와 리레이쉰이 같은 표정으로 여섯 살 꼬마 서연을 바라보았다. 주희도 아직 어렸지만,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지도 모르고 서연이 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내려가 서연을 안고 뽀뽀해주고 싶었다. 리레이쉰도 같은 심정이었다.

“결혼이라.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 데이트까지만. 그럼 어디 한 번 공주님을 구출해볼까?”

리레이쉰이 몸을 일으키며 한 손으로 서연의 등 뒤를 가리켰다. 서연이 돌아보자 그 틈에 품 속에서 칼을 꺼내 목에 당수를 맞고 쓰러진 건달의 발목 인대를 끊어버렸다. 혹시 정신을 차리더라도 서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는 배려였다. 서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기절한 건달도 자기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깨닫지 못했다.

주희는 리레이쉰이 서연을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세워두는 걸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 정도면 공주를 구할 기사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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