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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4.12.26 22:17
최근연재일 :
2014.12.28 19:12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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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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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2
글자수 :
604,582

작성
14.12.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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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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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글자
18쪽

[3권] 6_1

DUMMY

지우는 모텔에 들어오고 30분째 말이 없었다. 애니가 20분 가까이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긴 시간이었다. 애니는 지우의 표정을 보고, 자기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그가 언제까지고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속옷 생각뿐이었다. 백화점에서는 얼결에 민망한 속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모텔에 투숙해 몸을 씻은 다음에는 도저히 그걸 다시 걸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지우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지났다. 지우야 어느새 팽팽한 긴장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현장에서 뛴 경험이 거의 없는 애니는 긴장이 풀리자 녹초가 되어 깜빡 잠이 들었다.

사실 지우도 반쯤 자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유의 사고 능력으로 어떤 일이건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가, 한 시간 반이나 멍하니 앉아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우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악몽을 꾸고 있었다.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지우에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서연과 태영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죄의식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가 서슴없이 더 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이렇게 살아있는 이유였다.

서연 곁에는 막강한 리레이쉰도 있으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가 조금만 더 도와주면 된다. 그 방법도 이미 찾았다. 그러나 태영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태영의 곁에는 리레이쉰보다 더 막강한 두르가가 있지만, 그리고 그 둘이 연인이라는 점에서 서연 쪽보다도 더 안심할 수 있었지만, 지우를 괴롭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두르가가 나를 도왔어. 레이도 이런 식으로 도왔겠지. 그런데 왜? 레이를 도운 이유는 두르가의 것이겠지만, 나를 도운 건 태영이의 의지일 거야.’

태영이라면 제한된 정보 속에서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다. 두르가가 가진 정보만으로도 태영은 이미 NSA보다도 더 많은 걸 유추해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그가 핵무기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지우가 아는 한, 태영은 악당이 아니다. 그러나 정의의 사도 또한 아니다. 윤태영이라는 인간은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인간이라는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현생 인류가 모두 사악한 존재라면, 그는 망설임 없이 인류를 멸종시키는 선택을 할 것이다.

태영의 사상과 가치관은 대단히 논리정연하고 매력적이지만, 그건 태영이 평범한 대학생일 때 얘기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때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다. 지우는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태영보다 위험한 존재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히틀러가 악마인 이유도 그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상이 펜 대신 창과 칼에 실렸다면, 히틀러는 장난꾸러기 소년 정도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상은 펜에 실렸을 때보다 칼에 실렸을 때 훨씬 더 과격해지는 법이니까.

따라서, 지우의 고민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백화점에서의 일은 두르가의 힘에 태영의 의지가 실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두르가의 손에서 태영을 구해내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그 길을 가는 데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우가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코지로나 NSA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지우가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할 상대는 어쩌면 태영일지도 모른다.

문득 왼손 검지 두 번째 마디 거죽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입술을 떼자 선명하게 새겨진 검붉은 이빨 자국이 드러났다. 얼마나 오랫동안 깨물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냉장고를 열고 싸구려 드링크제 뚜껑을 땄다. 그 소리에 애니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지우는 손에 든 걸 애니에게 권하고, 냉장고에서 하나를 더 꺼내 애니 곁에 앉았다.

“무슨 잠꼬대가 그렇게 심해요?”

애니는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지우의 장난스런 표정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옆으로 노려보았다.

“거짓말이죠? 내가 잠꼬대를 했을 리가 없어요.”

“입 냄새와 잠버릇은 원래 본인만 모르는 거에요.”

“흥! 왜요? 입 냄새도 난다고 하시죠?”

지우는 대답 대신 애니에게 입을 맞추었다. 한참 후 입술을 떼며 지우가 말했다.

“입 냄새는 아니고, 꽃향기네요.”

애니가 피식 웃으며 곱게 눈을 흘기자 지우가 다시 말했다.

“거 봐요. 자기는 절대 모른다니까.”

“알았어요. 내가 졌어요. 잠꼬대 뭐라고 했는데요?”

“말 못해요. 너무 야해서.”

“아, 진짜…….”

애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드링크제를 반쯤 마시고 내려놓았다. 지우는 단숨에 한 병을 비워버리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애니가 앉은 채로 그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요?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잖아요.”

“음. 무서워서 기절했던 거였어요?”

“자, 이제 농담은 그만. 잠깐만 진지하게 얘기 좀 해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지우도 그럴 생각이었다. 얻어낼 것도, 합의할 것도 많았다.

“일단 여기서 한 이틀쯤 지내요.”

애니는 약간 불안한 표정이었다. 모텔은 천호동 현대 백화점에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그날 하루만도 같은 수를 벌써 몇 번이나 써먹은 터였다.

지우가 애니의 표정을 읽고 덧붙였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이동할 수도 없어요. 필요도 없고, 소용도 없고요. 애니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움직이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애니도 짚이는 데가 있는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지우는 더 많은 걸 얻어내려면 이쪽도 줄 것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우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져 죽은 야쿠자 이야기를 해주자 애니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두르가가 근처에 있다는 말이군요! 그가 지우 씨를 도왔단 말이죠? 레이가 부탁한 걸까요?”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레이 말을 믿어요. 그 녀석도 두르가의 정체를 몰라요. 신문에 광고라도 내지 않는 이상 나를 도와주라고 부탁할 수도 없어요.”

애니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두르가가 지우를 도와주었듯이, 레이도 같은 방식으로 도왔을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지우는 이 정도 정보라면 애니가 주희를 의심하리라 생각했다. 두르가는 레이와 지우를 모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고, 동선(動線)과 동기를 생각한다면 주희가 용의 선상에 오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애니는 곤혹스럽기만 한 표정이었다. LA에 있는 줄 알았던 두르가가 지금 한국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행보가 나날이 예측 불가능한 쪽으로만 뻗어간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우에게도 애니가 표정을 꾸며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두르가에 대해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한 눈치였다. 지우는 NSA가 두르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보공유가 목적이었다. 사실 지우도 두르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는 연예인 송주희의 대표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프로파일러로서 말해봐요. 두르가 그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애니가 웃으며 지우의 팔을 베고 누웠다. 그녀가 일전에 리레이쉰이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두르가라는 건 희생자 중에 힘으로 여자들을 짓밟은 남자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에요. 권력이건, 재력이건, 폭력이건 간에……. 하지만, 두르가가 그 이름대로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건장한 남자들을 아무 흔적도 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려면 완력이 상당해야 하니까요.”

주희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삼청동 저택에서 지우가 한 일을 보면 이제 생각이 좀 바뀔 때도 되었지만, 지우가 둘러댄 어설픈 설명을 그냥 믿어버린 애니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특유의 사고능력을 회복한 지우는 다른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소말리아에서 인공위성의 위력을 경험한 바도 있었다. 일개 저격수가 접한 영상이 그 정도일진대, NSA가 가진 영상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그건 사실이었지만, 지우는 인공위성의 성능을 조금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영상을 분석해서 내가 총알을 휘게 한다는 것도 알아냈을 거야. 애니는 몰라도 이제 한스는 그 힘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그렇다면, 두르가가 꼭 남자일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야. 송주희가 용의 선상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야.’

애니가 뜻밖의 이야기로 지우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지우 씨가 찍힌 인공위성 영상을 분석하면서, 두르가의 힘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어요. 초능력이냐, 마법이냐 하는 얘기까지 나왔죠. 그래서 NSA는 일단 두르가에게 상식 이상의 힘이 있다는 걸 전제로 움직이기로 했어요. 그동안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서 전혀 실마리를 잡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두르가가 남자일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거예요.”

“왜죠?”

“예를 들어보죠. 돈 많은 배불뚝이 사장님이 좌우로 예쁜 여자 서너 명을 끼고 풀장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어요. 그걸 보고 그 사장님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할 사람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지우는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생각도 못해본 이야기였다.

애니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두르가는 아마 여자한테 인기 없는 중년 남성일 거예요. 희생자 주변의 여자는 대부분 대단한 미녀들이거든요. 하긴, 그런 미녀들은 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 주변에 몰려 있겠지만.”

“예외도 있는 것 같은데.”

지우가 애니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애니가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쯤 되면 여자들한테도 분노가 표출되어야 정상이에요. 하지만, 두르가는 그러지 않죠. 분노가 철저히 강자들한테만 향해요.”

“그건 두르가가 여자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애니 말대로, 여자한테 인기 없는 남자들은 인기 많은 남자가 아니라, 그런 양아치를 좋아하는 여자를 더 미워하며 비뚤어지기도 하거든요.”

“인기 많은 남자가 그런 건 또 어떻게 아실까?”

“미녀 심리학자와 사랑을 나누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죠.”

“말 하나는 정말……. 아무튼 그래요. 두르가는 평범한 외톨이는 아니에요. 일단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좋아요. 힘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우리 NSA가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여자 문제만으로 표적을 선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최근 미국 외교관 연쇄 살인만 해도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아무나 죽여놓고 봐도 여자관계가 복잡한 게 당연하죠. 보통 이런 종류의 살인은 여자들의 패턴이 아니에요.”

“그렇군요. 두르가는 교육수준이 높고, 아나키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종류의 권력을 증오한다고 봐야겠네요.”

“그래요. 그리고 점점 더 발전하고 있어요.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사고는 그 자체로 교육수준이 높다는 걸 방증하지만, 사실 그동안 두르가가 표적으로 삼았던 건 권력의 핵심이 아니라 주변부였거든요. 최근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에요.”

“두르가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최근에 새로 뛰어난 참모를 영입했다거나…….”

애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라면 그렇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단독범일 때와 공범이 한 명 더 있을 때만 해도 남기는 흔적이 그야말로 천지 차이인데, 조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죠. 최근의 변화는 두르가가 어떤 모임이나 학계에 속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맞아요. 그곳에서 어떤 지적 성취를 이룬 거겠죠. 모임은 두르가의 정체를 모를 거고요. 일반인에게 권력의 실체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학자와 단체는 아주 많아요. 우리는 MIT의 노암 촘스키 교수 주변의 인물과 단체를 중심으로 수사망을 넓혀가고 있어요. 그런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지적으로 성숙한 인간이라면 분노를 힘없는 여자들에게 돌리지 않을 정도로 지각이 있다고 봐야겠죠?”

지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태영이 주희를 조종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태영이라면 단독범행과 공범이 있을 때 남는 흔적의 차이 정도는 간단하게 지워버릴 수 있다. 오히려 주희 혼자 움직일 때보다 더 철저하고 과감하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공범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꼬리가 길어지는 건 인간이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장(場)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옆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일정한 질량으로 그 집 방바닥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모든 것, 배출하는 쓰레기, 다시 말해서 그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엔트로피가 그의 존재를 설명한다. 혼자 살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면 그 사실은 문앞에 쌓이는 신문, 우유, 그리고 더는 배출되지 않는 쓰레기 등을 통해 알려진다.

하지만, 더 큰 단서는 모든 인간이 다른 인간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문앞에 쌓인 우유가 썩어 냄새가 진동하기 훨씬 전에, 친구나 거래처 직원, 도시가스 점검원 등이 그의 부재를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아무도 살지 않던 집에 누군가 몰래 들어와서 살기 시작해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만의 독특한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난 만큼 그 개성이 더욱 뚜렷하다. NSA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가정집에 숨어 있는 테러리스트를 찾아내는 데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될 수 있었다.

‘공범 하나가 늘어나면 그만큼 흔적이 많이 남는다는 건 사실이구나. 최근에 두르가가 보인 변화에는 태영이의 색깔이 아주 짙어. NSA도 잡지 못했던 두르가의 흔적이, 태영이와 손을 잡으면서 내 눈에 드러나 버린 거야.’

그걸 아는 건 세상에 지우밖에 없다. 만일 태영이 지우를 제거한다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흔적을 남기는 셈이다. 물론 태영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우가 결코 자기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을 테니까. 인간의 약점은 주로 다른 인간에게 있다. 태영이 지우의 약점이듯이, 지우는 태영의 약점이었다.

‘어쨌건 지금 NSA가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어떻게든 손을 써볼 여지는 있겠어.’

지우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두르가가 권력자에게 놀아나 상처입은 여자일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낮아요. 두르가는 약 15년 전에 등장했어요. 아무리 어려도 40대 안팎이라는 얘기죠. 그런 동기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중년 여성이라면, 그 분노가 자기보다 젊고 예쁘면서도 지각없이 자신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여자들한테도 향할 거에요.”

지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애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르가가 레이나 지우 씨한테 호의적인 것에서도 그의 사고패턴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레이의 실체가 갱단 두목이긴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갱이에요. 의적에 가깝죠. 마약에 손을 대지 않고 합법적인 사업으로 전환하면서도 세력권을 유지해서 다른 갱단이 설 자리를 잃게 하거든요. 그리고 그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어요. 매춘사업도 하지만 거리의 여자들을 착취하지도 않아서 모두 그의 영역으로 몰려들어요. 경찰도 그를 건드릴 이유가 없죠. 그러니 당연히 적이 많을 수밖에요.”

애니는 백화점에서 두르가가 야쿠자를 제거해준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지우는 그 논리가 리레이쉰한테는 적용될지라도 이번 일에는 태영의 의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애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코지로하고 한판 붙은 걸 알고 있다는 뜻이군요. 하긴, 그러니 나를 위해 야쿠자를 제거했겠지.”

“그런 거겠죠?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지우는 진작에 생각해뒀던 방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애니는 NSA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나랑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애니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 임무는 미인계예요. 지우 씨랑 꼭 붙어 다녀야 해요.”

지우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임무에는 조금 있다가 아주 충실하게 임해야 할 거에요. 좋아요. 일단은 한스한테 연락해서 내가 완전히 넘어왔다고 전해요. 대포폰 두 개 구해올게요. 오늘 있었던 일도 전하고요. 내가 하는 일을 도우면 두르가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요.”

애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다음엔요? 지우 씨는 어쩔 건데요? 설마 정말로…….”

지우가 애니의 말허리를 잘랐다.

“일이 너무 복잡하게 꼬인 것 같지 않아요? 풀 수 없는 실타래라면 하나씩 잘라나가자고요. 코지로는 NSA로서도 눈엣가시잖아요. DEA나 이 일에 더 끼어들지 못하게 손을 쓰라고 해요.”

애니는 지우가 또 어떤 무모한 행동을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그를 말릴 수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지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의 두 눈이 어떤 모습으로 빛나고 있을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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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3권] 1 +3 14.12.27 2,218 77 26쪽
47 [2권] 11_2 +5 14.12.27 2,120 74 12쪽
46 [2권] 11_1 +3 14.12.27 2,253 73 11쪽
45 [2권] 10_2 +4 14.12.27 2,465 84 20쪽
44 [2권] 10_1 +4 14.12.27 2,882 75 19쪽
43 [2권] 9 +5 14.12.27 2,112 85 20쪽
42 [2권] 8 +2 14.12.27 2,428 81 24쪽
41 [2권] 7 +4 14.12.27 2,497 83 24쪽
40 [2권] 6_3 +4 14.12.27 2,438 84 17쪽
39 [2권] 6_2 +2 14.12.27 2,167 77 19쪽
38 [2권] 6_1 +5 14.12.27 2,210 71 17쪽
37 [2권] 5 +8 14.12.27 2,534 81 25쪽
36 [2권] 4_2 +6 14.12.27 2,225 75 13쪽
35 [2권] 4_1 +7 14.12.27 2,506 77 22쪽
34 [2권] 3_2 +4 14.12.27 2,515 87 13쪽
33 [2권] 3_1 +4 14.12.27 2,643 110 16쪽
32 [2권] 2 +3 14.12.27 2,683 97 12쪽
31 [2권] 1_3 +4 14.12.27 2,575 93 14쪽
30 [2권] 1_2 +3 14.12.27 2,523 86 15쪽
29 [2권] 1_1 +4 14.12.27 2,735 99 15쪽
28 [1권] 11 +4 14.12.27 2,895 100 13쪽
27 [1권] 10 +7 14.12.27 2,880 102 20쪽
26 [1권] 9_2 +6 14.12.27 3,461 84 15쪽
25 [1권] 9_1 +3 14.12.27 2,806 90 15쪽
24 [1권] 8 +5 14.12.27 2,990 105 10쪽
23 [1권] 7 +4 14.12.27 3,005 98 16쪽
22 [1권] 6_2 +10 14.12.27 2,826 116 10쪽
21 [1권] 6_1 +4 14.12.27 3,062 122 17쪽
20 [1권] 5_2 +4 14.12.27 3,105 105 7쪽
19 [1권] 5_1 +5 14.12.27 3,039 109 10쪽
18 [1권] 4_3 +9 14.12.26 3,240 128 16쪽
17 [1권] 4_2 +5 14.12.26 3,177 110 11쪽
16 [1권] 4_1 +4 14.12.26 3,197 111 7쪽
15 [1권] 3_4 +3 14.12.26 3,835 121 13쪽
14 [1권] 3_3 +6 14.12.26 3,523 126 13쪽
13 [1권] 3_2 +7 14.12.26 3,606 141 12쪽
12 [1권] 3_1 +4 14.12.26 3,633 123 10쪽
11 [1권] 2_5 +4 14.12.26 3,802 123 9쪽
10 [1권] 2_4 +3 14.12.26 3,905 118 11쪽
9 [1권] 2_3 +3 14.12.26 3,867 116 8쪽
8 [1권] 2_2 +7 14.12.26 4,039 122 13쪽
7 [1권] 2_1 +4 14.12.26 4,443 123 11쪽
6 [1권] 1_5 +4 14.12.26 4,585 135 12쪽
5 [1권] 1_4 +3 14.12.26 5,016 134 13쪽
4 [1권] 1_3 +6 14.12.26 5,450 147 12쪽
3 [1권] 1_2 +7 14.12.26 6,081 159 14쪽
2 [1권] 1_1 +6 14.12.26 7,361 172 8쪽
1 0. +10 14.12.26 8,060 17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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