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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4.12.26 22:17
최근연재일 :
2014.12.28 19:12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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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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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582

작성
14.12.27 15:35
조회
2,114
추천
85
글자
20쪽

[2권] 9

DUMMY

수풀이 울창한 정원은 지우보다도 리레이쉰에게 더 유리한 전장이었다. 그는 적이 어디에 몇 명,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 지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사실 리레이쉰에게는 불리한 전장도 거의 없다.

단 한 가지 제약은 그의 힘이 반경 1미터 이내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최대 유효사거리가 50미터 안팎인 권총의 한계가 양쪽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베트남에서 여섯 살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그 후로도 수도 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사격 실력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 안에 있었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권총은 사실상 접근전 무기에 가깝다.

그러나 접근전이야말로 리레이쉰의 전문 분야다. 그는 총알과 폭탄의 파편을 튕겨낼 수 있는 그 힘을 자신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도 쓸 수 있었다. 그의 몸은 그의 반경 1미터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양손에 권총을 든 것은 적의 무기를 사용하여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적게 남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던 리레이쉰은 매캐한 냄새를 맡고 속도를 늦췄다.

‘연막탄이다. 지우가 한 짓이군.’

보통 연막탄은 방심한 적을 더욱 혼란 시켜 일거에 제압하기 위해 사용한다. 야쿠자가 침입자 한 명을 제압하려고 연막탄을 터뜨렸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건 지우가 한 짓이다. 그래서 저 앞에 야쿠자들이 몰려 있는 것일 게다.

‘지우는 없어. 저기서 죽은 게 아니라면 저기엔 야쿠자 시체가 몇 구 구르고 있겠군. 뻔한 속임수에 발이 묶여있다니, 저기 있는 건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 못 된다는 얘기야.’

사실 대단한 놈들이라도 리레이쉰에게는 별 상관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진짜 대단한 놈들이 여기가 아니라 지우 근처에 몰려 있다는 점이었다.

리레이쉰이 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발소리를 죽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야쿠자들은 리레이쉰이 바로 옆까지 다가오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대여섯 명의 시야를 절묘하게 비껴가는 동선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거침없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적의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 하나, 친구 하나. 이 정도면 너희들을 모두 죽여버릴 이유로 차고도 넘친다. 그렇지?”

야쿠자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도 곧바로 총을 겨누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저게 누구 목소리더라?


하지만 머리 속에 떠오른 의문의 답을 찾는 시간보다 영어 문장을 해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았다. 그 중 하나가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총을 겨누자 나머지도 그에 반응해 총을 들었다. 리레이쉰은 총구 여섯 개가 모두 자신을 향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아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여섯 명이 코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침입자를 사로잡은 것이다. 게다가 침입자는 브리핑 받았던 서지우라는 풋내기가 아니었다. 달빛을 받아 더욱 매력적으로 빛나는 이 키다리는 그 유명한 리레이쉰이 분명했다. 그들이 독단으로 처치해도 좋은 상대가 아니었다.

리레이쉰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야. 기회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고 순순히 협조한다면 살려줄 수도 있다. 자, 대답해라. 강서연이 여기에 있는 게 확실한가?”

어리둥절한 얼굴들 중에서 개중 영어를 가장 잘하는 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 총을 버리시지요. 우리 아가씨께서는 안전하게 잘 계시니 안심하고요.”

리레이쉰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서지우, 아니, 역시 NSA다. 서연이가 정말 여기에 있단 말이지?”

조금 여유를 찾은 야쿠자 하나가 그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지금 당신도 여기에 있지요. 듣던 대로 로맨틱하시군요. 여자들이 좋아할 만 합니다. 자 순순히 총을 버리고 따라 오시지요. 만나게 해드릴 테니.”

리레이쉰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 됐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거든. 그나저나 묻는 말에만 대답하지 그랬냐? 그랬다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야쿠자 여섯이 그 말이 전혀 허풍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리레이쉰은 탄창을 갈아 끼울 것도 없이 한 번도 발사되지 않은 총 두 자루를 골라 바꿔 들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리레이쉰의 발걸음은 수색 중인 야쿠자들을 대부분 앞질러 버렸다. 요정 입구에 닿을 때까지 그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두 개 조, 네 명뿐이었다. 쓸데없이 부지런하게 죽음을 향해 달려간 자들이었다.

요정에 들어선 그를 맞은 것은 이미 죽은 사람들과 개 다섯 마리, 그리고 그곳에 상주하는 종업원과 여자들뿐이었다. 그들 모두가 리레이쉰을 안내했다. 점점이 이어진 시체가 지우의 동선을 보여주는 이정표였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어 한곳을 가리키며 그의 진로가 옳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나 리레이쉰이 잊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은 3차원 좌표 속이 아니라 4차원 시공간이다. 같은 장소라도 언제 도착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답이 될 수도 있고 철저한 오답이 될 수도 있다. 지우를 지나치게 신뢰하여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그를 거의 죽게 내버려둘 뻔한 것이다.

리레이쉰은 어깨를 관통 당한 지우가 내동댕이쳐지는 모습, 그리고 일본인의 칼끝이 쓰러진 지우의 눈을 향해 날아가는 광경을 보며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지우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바로 그의 열등감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서지우다. 그 대단한 놈이 이런 곳에서 죽을 리 없다. 그리고……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차라리 지우가 여기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영원히’ 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아직은 지우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리레이쉰의 은밀한 마음은 오직 지우가 너무나 멋있는 남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단어, 바로 ‘질투’였던 것이다. 상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리레이쉰이 열 다섯 살 때부터 특별한 존재로 마음 속에 간직해왔던 서연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영혼 저 깊은 곳에서부터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처음 지우를 스카우트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그 자체가 지우에 대한 열등감의 또 다른 근거가 되었다. 리레이쉰은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려 맨손으로 칼날을 움켜쥐었다.

그가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알면 됐어. 그런데 그건 뭐라고 부르는 쇼냐? 서연이한테 멋있게 보일 생각이라면 좀 늦었어.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더 멋있거든.”

지우가 조금 전 카론의 나룻배에 몸을 반쯤 실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여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레이쉰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런 그가 밉지 않았다. 더 늦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정한다. 만회하려면 앞으로 애 좀 먹겠어. 그런데 이 쇼의 관객은 너희 둘이 아니야.”

리레이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살짝 힘을 주자 일본도가 그의 손 안에서 힘없이 부러져버렸다.

리레이쉰이 천천히 돌아서며 덧붙였다.

“내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야 할 놈들은 내 뒤에 있거든.”

서연은 그 말을 듣고서야 16년 전 뉴욕에서 있었던 동화 같은 일을 기억해냈다. 외할아버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만 이 결혼은 정략 결혼이 아니다. 먼저 청혼한 것은 여섯 살 꼬마 서연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연에게, 특히 추억을 더듬는 그녀의 머리 속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리레이쉰이 지나쳐 온 야쿠자 20여 명이 어느새 그들이 있는 건물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레이쉰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미쳤지. 안전한 건 나 하나뿐이잖아! 내 수비범위로는 이 둘을 다 완벽하게 지켜줄 수가 없어!’

둘 앞에 버티고 서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면 안 될 것도 없지만 그건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었다. 유탄도 유탄이지만, 일단 힘을 보여준 다음에는 한 명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지우처럼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건 살기나 시선과 같은 인간의 의지, 그리고 반경 1미터 내에 다가온 실제적인 위협이었다.

다행히 밖에서는 방안으로 총을 난사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리레이쉰과 서연 중 한 사람만 죽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중에서도 리레이쉰이 죽는 편이 낫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산다면 그건 아마 리레이쉰일 것이다. 따라서 야쿠자들로서는 무리하게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였다.

칼잡이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리레이쉰은 일단 이 녀석이라도 잡아 족쳐 지우에게 조금이나마 사죄하기로 마음먹었다.

리레이쉰이 손에 쥔 칼날을 앞으로 뻗었다. 칼잡이는 반 토막 난 일본도를 휘둘러 막으려 했다. 칼잡이는 힘을 사용하는 리레이쉰과 접근전을 벌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른 채, 칼잡이는 일본도를 쥔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맨손으로 날이 선 일본도를 움켜쥐고 부러뜨리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뉴런이 손가락의 통증을 뇌까지 모두 실어 나르고서야 그게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고 비명을 질렀다. 리레이쉰은 그의 왼쪽 어깨에 지우와 똑 같은 관통상을 입힌 다음에야 칼날을 놓았다.

칼잡이는 어깨에 박힌 칼날을 뽑을 수도 없었다.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없고, 왼손으로는 왼쪽 어깨에 박힌 가시 하나도 뽑기 어렵다. 오른손에 손가락이 남아있다 해도 손잡이도 없는 칼날을 뽑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리레이쉰이 손수건을 꺼내 오른손의 얕은 자상을 동여매며 지우에게 말했다.

“넌 무슨 일을 그렇게 요란하게 하냐?”

“누구처럼 일을 굼뜨게 하는 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젠장. 굼뜰 거면 꼼꼼하기라도 하던가…… 지금 밖에서 몇 명이나 이쪽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지 알아?”

리레이쉰은 지우의 감각이 벌써 그렇게까지 날카롭게 단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이내 지우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메커니즘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도 저격수를 발견했었지? 이제 총을 든 자의 살기는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된 모양이군. 어이없게 칼을 맞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강점 하나만을 극한까지 밀고 나갔단 말이지? 정말이지 서지우답다.’

그러자 지우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야?”

“글쎄? 구구단 게임 정도?”

“좋아. 머리는 돌아간다는 얘기군.”

지우는 좋긴 뭐가 좋다는 얘긴지도 모르고 리레이쉰이 던져준 손목시계를 가슴으로 받았다. 리레이쉰이 서연에게 말했다.

“그거 좀 거기 뇌만 남은 녀석 손목에 채워줘. 멋지게 등장해서 이제 나만 믿고 좀 쉬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군. 좀 도와줘야겠어.”

서연은 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우의 손목에 채웠다. 잠시 후 지우가 비명을 질렀다.

“뭐야 이거! 뭐가 찌르잖아!”

리레이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칼에 맞고도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던 녀석이 바늘에 좀 찔렸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 거야? 안심해. 고농축 포도당과 인슐린이야. 혈당을 체크해서 자동으로 주사하게 만들어뒀어.”

지우가 더욱 호들갑을 떨었다.

“아악! 역시 주사였어! 차라리 칼을 맞고 말지!”

“아우, 시끄러워요! 근데 오빠 당뇨 있었어요? 그런 보고는 없었는데.”

서연이 지우를 가볍게 한 대 때리며 말했다. 긴장은 완전히 풀린 목소리였다. 리레이쉰은 지우의 호들갑이 서연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알고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보고가 있었다면 곤란하지. 저놈하고 나한테 인슐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놈들은 살아 있어선 안 되거든. 여기 이놈처럼 말이야.”

리레이쉰이 그렇게 말하며 쓰러져 신음하는 칼잡이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지우는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힘껏 뱉어내 발치에 떨어뜨린 다음 안간힘을 써 발로 차 보냈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냐. 사형수도 죽기 전엔 최후의 만찬을 즐기게 해주는 법이라고. 사탕이라도 한 입 먹여주고 보내줘.”

리레이쉰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너 그런 취미였냐?”

“취미라니?”

“이거 간접 키스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아우! 진짜 이 남자들 짜증나 죽겠어!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해요? 그게 웃겨요? 아니, 지금이 농담할 때에요?”

“농담이라는 건 말이야, 꼭 해야 할 때만 있을 뿐, 하면 안 되는 때라는 건 없어.”

리레이쉰이 정색을 하며 대답하자 지우가 거들고 나섰다.

“그래. 농담 자체엔 문제가 없어. 안 웃긴 게 문제지.”

서연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비참할 운명을 맞게 될 칼잡이의 최후를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한 마디 덧붙이는 건 잊지 않았다.

“이 인간들이 이렇게 죽이 잘 맞을 줄이야…… 나 외로워졌어.”

지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나도 유감이지만 농담에 대해서만은 양보할 수 없어. 아무튼 레이, 그건 꼭 좀 먹여줬으면 좋겠는데. 나 걔 때문에 흙 먹었거든.”

리레이쉰이 인상을 찌푸렸다.

“먹겠냐? 얘 이래봬도 사무라이 같은데. 근데 흙은 왜 먹고 난리야? 뱃속에 모래주머니라도 있냐? 닭이야?”

“확실히 소화는 잘 되는 것 같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더라고. 그랬는데……”

지우가 말끝을 흐리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경탄의 눈빛이었다.

리레이쉰이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시계 괜찮지? 시간도 아주 잘 맞아.”

“그런 것 같군. 7시 77분인 걸 보니.”

“잭팟이라…… 어디 정말로 한 번 터뜨려볼까?”

리레이쉰이 칼잡이의 목을 밟고 사탕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지우가 서연에게 기댄 채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총알은 내가 막을게. 넌 나가서 하나씩 줄여.”

리레이쉰이 지우를 빤히 쳐다보며 뒤로 손을 뻗어 칼잡이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그가 말했다.

“아니, 반대로 하자. 내가 막을게, 네가 공격해.”

“뭐라는 거야…… 나 일어설 힘도 없거든?”

지우가 짜증을 냈다. 그러나 리레이쉰은 단호했다.

“창으로 막고 방패로 때리자는 거냐? 네가 거기서 총을 막겠다는 건 총알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럴 수 있다면 날아오는 총알이 아니라 날아가는 총알의 궤적을 바꾸는 게 더 낫지.”

“총을 들 힘도 없으니까 그렇지.”

“내가 쏘면 되지. 사실 너만 서연이한테 안겨있는 것도 질투 나서 더 못 봐주겠어.”

리레이쉰은 그렇게 말하며 서연 곁으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으며 한 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서연은 이 남자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이라면 허튼 짓만은 아닐 터였다. 괜히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순순히 그들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반면 지우는 리레이쉰의 의도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이쪽의 스펙을 알아야 작전도 수행할 수 있는 법이다.

“어디까지 가능해?”

“반경 1미터 정도. 이 자세라면 서연이는 안전해. 너까지 완전히 보호하려면 내가 직접 너를 안고 서연이를 등 뒤로 보내야 하지만, 설마 나한테 안기고 싶진 않겠지?”

“아, 그냥 총 맞을게. 방탄조끼도 입었어.”

“그거 벗어서 다리를 덮어. 몸통까지는 내가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아니, 됐어. 그 정도는 내가 어떻게 해볼게.”

가운데 낀 서연은 두 남자가 자기를 몸으로 보호해주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런 일에서 자기가 고집을 피우는 건 방해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둘을 믿지 않으면 세상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지우와 리레이쉰이 의기투합했다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직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지우의 말대로 감이 좋은 여자가 좋은 여자라면, 서연은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정말 좋은 여자였다.

사실 서연이 있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였다.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최강의 방패와 최강의 창,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던 것이다.

리레이쉰은 지우조차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레이더이기도 했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지우의 레이더로도, 리레이쉰이 겨냥한 방향으로 주의를 집중하면 적을 찾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표적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지우도 쉽게 적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아무리 권총 사격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리레이쉰의 사격실력은 지우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익숙지 않은 왼팔로 겨냥할 때보다 힘을 훨씬 덜 쓰고도 표적을 향해 총알을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지우는 부상당한 부위의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둘은 호흡도 잘 맞았다. 방문 밖에서, 심지어 건물 밖의 적들까지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도 공포에 질려 한두 명씩 총을 난사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쪽은 이쪽의 위치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고, 얇은 나무로 만들어져 총알을 막아낼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총알의 궤적을 비틀어버리기에는 충분한 미닫이 문과 벽이 몇 겹이나 둘러쳐져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날아오는 총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리레이쉰의 반경 1미터는 철옹성이었고, 지우가 방어해야 하는 것도 그의 영역에서 벗어난 두 다리뿐이었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난사해댈수록 지우에게 위치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꼴이 되어 명을 재촉할 뿐이었다.

리레이쉰의 권총 두 자루가 탄창을 모두 비웠다. 아무래도 눈으로 보고 쏠 때만큼 정확할 수는 없어서, 인원수보다 많은 총알을 낭비해야 했다. 그러고도 아직 두 명이 남아있었다. 총이 아니라 칼을 든 놈들이어서 지우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놓친 자들이었다. 그나마도 하나는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을 잠시 내버려두고 다녀오려는 리레이쉰을 지우가 붙잡았다.

“그냥 총만 들고 다닌 거냐? 내 주머니에 탄창이 두 개 있어. 나는 누구랑 달라서 요란스러운 대신 꼼꼼하거든.”

서연이 지우의 주머니를 뒤져 리레이쉰에게 탄창을 두 개를 건넸다. 사탕 하나가 딸려 나왔다. 리레이쉰이 웃으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콜라맛이면 나 줘.”

지우가 큰 소리로 웃었다.

“줘버려! 콜라맛이면. 커피맛이면 나 주고.”

서연은 대답 없이 껍질을 까서 자기 입에 집어 넣어버렸다.

“무슨 맛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서연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천상의 맛. 하던 일이나 계속하시죠.”

서연이 입을 열자 달콤한 딸기 향이 세 사람을 포근히 감쌌다. 지우와 리레이쉰은 서연의 입 속에서 녹아 내리고 있는 사탕이 틀림없이 장미맛일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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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3권] 11_3 +1 14.12.28 1,893 51 13쪽
68 [3권] 11_2 +2 14.12.28 2,010 53 10쪽
67 [3권] 11_1 +1 14.12.28 2,068 59 12쪽
66 [3권] 10 +2 14.12.28 2,156 59 18쪽
65 [3권] 9_2 +3 14.12.28 1,844 57 13쪽
64 [3권] 9_1 14.12.28 1,919 59 12쪽
63 [3권] 8_2 +3 14.12.28 1,835 62 11쪽
62 [3권] 8_1 +1 14.12.28 2,116 62 18쪽
61 [3권] 7 +2 14.12.28 2,246 64 14쪽
60 [3권] 6_2 +3 14.12.28 2,372 66 12쪽
59 [3권] 6_1 +2 14.12.28 2,695 66 18쪽
58 [3권] 5_3 +1 14.12.28 2,170 61 14쪽
57 [3권] 5_2 +2 14.12.28 2,083 70 14쪽
56 [3권] 5_1 +2 14.12.28 2,200 72 13쪽
55 [3권] 4_2 +4 14.12.27 2,264 70 14쪽
54 [3권] 4_1 +2 14.12.27 1,931 64 16쪽
53 [3권] 3_2 +5 14.12.27 2,134 66 15쪽
52 [3권] 3_1 +4 14.12.27 2,240 70 14쪽
51 [3권] 2_3 +2 14.12.27 2,067 71 10쪽
50 [3권] 2_2 +1 14.12.27 2,706 74 13쪽
49 [3권] 2_1 +2 14.12.27 2,301 73 13쪽
48 [3권] 1 +3 14.12.27 2,221 77 26쪽
47 [2권] 11_2 +5 14.12.27 2,122 74 12쪽
46 [2권] 11_1 +3 14.12.27 2,255 73 11쪽
45 [2권] 10_2 +4 14.12.27 2,467 84 20쪽
44 [2권] 10_1 +4 14.12.27 2,885 75 19쪽
» [2권] 9 +5 14.12.27 2,115 85 20쪽
42 [2권] 8 +2 14.12.27 2,430 81 24쪽
41 [2권] 7 +4 14.12.27 2,499 83 24쪽
40 [2권] 6_3 +4 14.12.27 2,440 84 17쪽
39 [2권] 6_2 +2 14.12.27 2,169 77 19쪽
38 [2권] 6_1 +5 14.12.27 2,212 71 17쪽
37 [2권] 5 +8 14.12.27 2,536 81 25쪽
36 [2권] 4_2 +6 14.12.27 2,227 75 13쪽
35 [2권] 4_1 +7 14.12.27 2,508 77 22쪽
34 [2권] 3_2 +4 14.12.27 2,517 87 13쪽
33 [2권] 3_1 +4 14.12.27 2,646 110 16쪽
32 [2권] 2 +3 14.12.27 2,685 97 12쪽
31 [2권] 1_3 +4 14.12.27 2,577 93 14쪽
30 [2권] 1_2 +3 14.12.27 2,525 86 15쪽
29 [2권] 1_1 +4 14.12.27 2,737 99 15쪽
28 [1권] 11 +4 14.12.27 2,897 100 13쪽
27 [1권] 10 +7 14.12.27 2,882 102 20쪽
26 [1권] 9_2 +6 14.12.27 3,463 84 15쪽
25 [1권] 9_1 +3 14.12.27 2,808 90 15쪽
24 [1권] 8 +5 14.12.27 2,992 105 10쪽
23 [1권] 7 +4 14.12.27 3,007 98 16쪽
22 [1권] 6_2 +10 14.12.27 2,829 116 10쪽
21 [1권] 6_1 +4 14.12.27 3,064 122 17쪽
20 [1권] 5_2 +4 14.12.27 3,107 105 7쪽
19 [1권] 5_1 +5 14.12.27 3,043 109 10쪽
18 [1권] 4_3 +9 14.12.26 3,242 128 16쪽
17 [1권] 4_2 +5 14.12.26 3,179 110 11쪽
16 [1권] 4_1 +4 14.12.26 3,199 111 7쪽
15 [1권] 3_4 +3 14.12.26 3,837 121 13쪽
14 [1권] 3_3 +6 14.12.26 3,525 126 13쪽
13 [1권] 3_2 +7 14.12.26 3,609 141 12쪽
12 [1권] 3_1 +4 14.12.26 3,635 123 10쪽
11 [1권] 2_5 +4 14.12.26 3,806 123 9쪽
10 [1권] 2_4 +3 14.12.26 3,907 118 11쪽
9 [1권] 2_3 +3 14.12.26 3,868 116 8쪽
8 [1권] 2_2 +7 14.12.26 4,041 122 13쪽
7 [1권] 2_1 +4 14.12.26 4,445 123 11쪽
6 [1권] 1_5 +4 14.12.26 4,586 135 12쪽
5 [1권] 1_4 +3 14.12.26 5,017 134 13쪽
4 [1권] 1_3 +6 14.12.26 5,451 147 12쪽
3 [1권] 1_2 +7 14.12.26 6,082 159 14쪽
2 [1권] 1_1 +6 14.12.26 7,362 172 8쪽
1 0. +10 14.12.26 8,061 17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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