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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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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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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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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7년 3개월차 -2-

DUMMY

그렇게 내일을 기약하지 못할 중병을 얻어 내려갔던 왕은 돈과 군사력, 그리고 장래에 왕의 권력기반이 될 것임이 분명한 새로 뽑은 신료들과 함께 당당하게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부 신료들만 따라 내려갔었던 온양온천과는 달리 한양은 아직 대왕대비를 수장으로 하는 세도가들의 본거지였고, 왕의 뜻을 꺾으려는 힘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신하들이 태클을 걸고 들어온 것은 바로 돈 문제였다.


먼저 왕이 말했다.

“지금 조선 제일의 학술 기관이라고 하면 홍문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홍문관의 학문이라 함은 유학과 문예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인사 또한 홍문록에 오른 이들 중 기존 홍문관에서 일하는 자들이 논의하여 낙점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여가 이번에 공충도를 다녀와 보니, 그 변화한 모습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과연 ‘이곳이 공충도가 맞는가.’할 정도로 부유하고 아름답게 변하였으니, 그 바탕에는 과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이 있는 것이라 하였다.


여는 이에 크게 깨달음을 얻어 이번에 여의 사비로 공충도에서 과학하는 자들과 수학한 자들을 불러 새로 인재들을 가르치고 조선의 나아갈 또다른 길로 삼아보고자 하니, 마량진의 이양인들이 지원해 준 인재들, 흔히 학사라 하는 자들을 가르치는 자들로 삼아 마포나루 앞 대선에 학당을 차리고 거기서 나온 인재들로 하여금 다양한 연구와 편찬 활동을 하게 하려 하니, 홍문관의 전신이었던 집현전을 다시 마포 인근에 설치하여 종합 연구 시설로서 삼고자 한다.”


당연히 기존 신료들은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기존 신료들을 물갈이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 아니겠는가.

이럴 때 훌륭한 명분은 항상 돈이었다. 조선은 원래 돈이 없고 가난한 나라 아니었겠는가.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명분은 늘 먹히는 법이었다.


"금년 재해의 흉작은 예전에 없던 바로서 경기 지방이 조금 낫다고는 하지마는, 노상에서 소량의 피륙이나 곡식을 가진 자라도 살해와 약탈을 당한다고 하오니 타도는 이를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신은 앞으로 도적 떼가 크게 일어나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의 근심이 있을 것이니, 다만 백성이 굶주려 죽는 참사에만 그치지 아니할까 두렵습니다.


얼마 전 금산의 도적은 전임 좌수가 괴수가 되어서 장수현의 병기를 약탈해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가 웅거하면서 각 고을을 협박 약탈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의 민심은 또 예전과 같지 아니하니 큰 도적들의 계획이 어찌 한 곳에만 그치겠습니까? 올해는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아직 큰 눈이 오지 않았으니, 내년의 보리 농사는 또 어떠할는지 알 수 없으며, 저축한 곡식이 떨어지면 그 때에 비해 볼 때 또 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크게 경계하고 크게 절약하는 조처가 없어서는 나라를 유지할 방책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곡례에 이르기를, ‘재해로 흉년이 들면 군주의 선(膳)에 부제폐(不祭肺)하며, 말에게 곡식을 먹이지 아니하며, 제사에 불현(不懸)하며, 대부(大夫)가 양(粱) 을 먹지 아니하며, 사(士)는 술을 마시고 즐기지 아니한다.’ 하였고, 그 주해(註解)에 이르기를 ‘선(膳)은 미식(美食)의 명칭(名稱)이고 부제폐(不祭肺)란 짐승을 잡아서 음식을 풍성하게 잘 차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사(祭祀)에는 반드시 종과 북을 달아 놓고 음악을 연주하는 법인데, 불현(不懸)이란 주악(奏樂)을 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다. 대부(大夫)는 서(黍)와 직(稷)을 먹고 양(梁)으로 가식(加食)한다. 군주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각각 한 가지씩만 들어서 말하였지만 그 실상은 서로 통하는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왕은 새삼 자신의 어법이 공충도를 다녀오면서 많이 간략해지고 수사가 적어졌음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자신도 과거에 글을 쓸 때 뿐 아니라 말을 할 때에도 저렇게 고사들을 인용해 가면서 장황하게 하지 않았던가.


‘사영, 박규수나 저 영국인들과 대화할 때가 오히려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구나.’


왕이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신하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용도도 역시 예전처럼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니, 정해진 예산안을 마땅히 수입을 계산해서 지출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수년 동안은 그러한 방침으로 재정을 운용할 계획임을 먼저 백성에게 널리 알려서 피폐된 민력이 조금 펴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임시 조치일 뿐이고, 본래 영원토록 준수할 규정이 아니므로 평상시에 적용할 근본적인 공안 또한 마련해서 백성에게 공포하여 외방의 소민으로 하여금 국가의 본뜻을 환하게 알도록 해야만 후일 국가가 믿을 수 없다는 비방을 면할 것입니다.“


”신이 또 생각하건대, 옛 예법에 이렇게 강등하고 감축하는 것은 단지 흉년의 재력에 맞추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평소에 절감 검약함으로써 재화(災禍)를 멎게 하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향은 흉년으로 인하여 감하게 되면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한 가지 조항도 고례(古禮)에 따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이 또 근래 고 정승 이경여가 효종조에 올린 차자를 보니 세종 대왕(世宗大王) 때는 궁인(宮人)이 1백 명 미만이었고, 어구(御廐)의 마필(馬匹)이 열 마리도 안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종 대왕은 곧 우리 나라의 성군이십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마땅히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니, 이 점을 생각하소서.

신이 듣건대 사치의 폐해가 천재(天災)보다 더 심하다 하오니, 신이 걱정하는 바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뜻하시는 바를 조금 강등하여 감축할 경우 견식이 있는 사대부들이 반드시 모두 안일에 젖은 습성을 버리고 일반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살길을 찾아가기를 생각한다면 우리 나라의 기반이 영구히 견고해질 것입니다.“


”신이 또 전해 오는 옛이야기를 들으니, 세종 대왕께서 민간에 자못 사치스러운 풍습이 있음을 늘 걱정하시어 정승 황희에게 말씀하시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신이 마땅히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하였었는데, 훗날 등대할 적에 황희가 굵은 베로 장복과 내의를 지어 입고 들어와서 임금을 뵙고 말하기를, ‘신은 백관을 통솔하는 자로서 신 자신이 이런 차림새를 하였으니, 백관이 어찌 감히 사치를 범하겠습니까? 그러나 성상께서도 이러한 뜻을 이해하셔서 몸소 검약을 실천하여 보여 주심이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세종께서 그 말을 받아들이시자 한때의 사치스러운 폐습이 크게 고쳐졌다고 합니다. 신과 같이 못난 사람이 비록 외람되게 정승의 직위에 있아오나 어찌 감히 그러한 것을 거론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거룩한 군주와 어진 정승이 생각을 한 번 전환시키는 데 달린 것이므로, 이것이 신 역시 희망하지 않을 수 없는 바입니다.

의정부에 하문하신 외에 또 원임 대신과 밖에 있는 대로(大老)에게 물으셔서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두 불가하다고 반대한다면 신 또한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잠시 생각하다 답하기를,


"경들이 차자에 진달한 사연은 나라를 근심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말이므로, 내가 칭찬하여 감탄하는 바이다. 허나...“


왕이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자, 신하들도 긴장했다. 지금의 왕은 한 달전의 그 왕과 달랐던 것이다.


”...생각하건대, 오늘날 군신(君臣) 상하가 한마음 한뜻으로 걱정하여 위로는 하늘을 받드는 성심을 극진히 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진실한 마음을 가진다면, 진실로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내 듣기로는 너희들이 과인처럼 마음처럼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음식과 의복 등의 소비를 평상시와 다름없이 하면서 여더러 먼저 절감하라 한다면 과인이 몸소 삭감하는 지성(至誠)을 보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신하들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전하께서 몸소 굵은 베와 거친 명주 옷을 입고 검약을 실천하시고 군신(君臣) 상하가 진흙과 이슬 속에 있는 것처럼 하면서 절약한다면, 그 절약한 물화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백성을 구조할 것입니다.


백성이 있어야만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만 종묘와 백신이 의지할 데가 있을 것인데, 지금 백성이 장차 살아 남을 수가 없게 된 판국이니, 비록 중요한 종묘 제향이라도 절감하자는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옵니다.


지금 흉년을 만나 백성이 굶주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있으므로, 대신이 고례(古禮)를 인용하여 차자를 올린 것은 대체로 국가의 용도를 절약해서 백성을 구제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가 공충도에서 본 바로는 상하가 마땅히 서로 힘쓰고 노력하여 절약하는 것 뿐만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곡식이 모자라면 벌레를 먹고, 기술과 재능을 팔아 재물과 곡식을 사들여 널리 퍼뜨리고 있었으니, 그렇게 흉년을 마땅히 극복할 만한 실효를 거둔 뒤에라야 바야흐로 절약을 하더라도 유감이 없을 것이다.


헌데 여기에 모인 문무 백관들은 과인더러 통절히 절약하여 과인의 하고자 하는 바를 꺾어 놓으려 하니, 여 혼자 이 절감하는 조처가 어찌 급박한 국가의 재정을 돕고 백성을 구휼하는 장본이 될 것인가?


그대들에게 묻노라.

그대들은 오늘날 필요하지 아니한 모든 용도 중에서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삭감하지 못하고 먼저 과인더러 절감한다면 미안하지 않은가?“


"우의정이 아뢴 본뜻은 기민을 구제하기 위함이었을 뿐, 감히 상께 상고하여 난처하게 하시고자 아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마음에 찜찜한 점은 이렇게 변통한 뒤에 조정에서 실행하는 모든 행사가 표리와 명실이 조금도 미진한 유감이 없게 될 수 있을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는 위아래의 도리에 있어서 지대한 관계가 있으니, 다만 성상(聖上)께서 깊이 생각하셔서 처결하시기 바랍니다."하였다.


임금이 전교하기를,


"대신들이 아뢴 차자의 사연은 참으로 나라를 극진히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라고 일단 생각해 두겠다. 허나 큰 흉년을 만날때마다 이렇게 절약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함은 되풀이하여 생각해 보아도 충분한 답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백성들은 하루에 쌀 1되를 먹지 않으면 굶주린다. 도성에 백성이 백만이면 하루에 십만 말을 먹는 것인데, 우리나라 관례에 15말을 1석이라 하니 하루에 5천여 석을 먹여야 하고, 한 달이면 15만 석이 필요하다. 그것을 운송하기 위해서 조운선도 필요하고 우마들도 필요하나 그것들의 먹이는 제한다고 하더라도 15만석이 필요한 것이다.

공충도 마량진 한 곳에서 영국에 전선을 만들어 팔아 버는 돈이 한 척에 32만석이니 세 척만 팔아도 100만석에 가깝다. 혼자서 배만 팔아도 도성 백성들이 먹을 쌀 반년치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경들이 과인더러 아끼고 나서라 한들, 저 만큼을 아껴서 만들 수 있겠느냐? 아니면 그 배를 만들고 온갖 기물을 만들고 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신묘한 비료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낫겠느냐?“


그 숫자에 놀랐는지, 왕에게 앞다투어 부당함을 말하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대신 웅성거림이 그 자리를 채웠다.


”혼자 1백만석이라니, 만석꾼 백명을 모아도 그 하나에 못 미친다는 소리 아니오이까?“

”...이거 영상과 좌상 대감이 속죄한답시고 공충도 마량진으로 내려가서는 가끔 서신이나 보내오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군요.“

”백만석..백만석! 그 정도라면 콩고물도 크겠군! 찢어 먹을 방법이 없겠소이까?“

”배 ‘만’ 팔아서 백만석이라고 했소이다. 다른 것들도 많다는 뜻 아니겠소이까?“


”다들 조용히들 하시오. 주상 전하의 앞입니다.“

”커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왕은 부글거리는 감정을 참아내려 애썼다.


‘여도... 예전엔 저랬겠지? 여에게 상처받은 백성들도 이렇게 참아내는 법을 애써 찾고 있었겠지.... 억지로... 어쩔수 없는 현실앞에서....

세도가의 이 자식들...! 모조리! 쓸어 버릴까?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도륙(屠戮)을 내버릴수도 있다. 장담한다. 여가 마음만 먹으면 모조리 짓밟아서, 시궁창에 던져 버릴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러나 참아내려 해도 왕은 이제 10대 중반의 청소년이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막을 정도로 원숙한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대사간이 아뢰었다.


"삼가 살펴 보건대, 전하께서는 성지(聖智)를 타고나셨으므로 명석하지 못한 것을 걱정할 것이 없고 결단력이 없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여움을 갑자기 발하여 너그럽고 서서히 안온하게 하는 기운이 적습니다.

그리하여 군하(群下)가 진달하는 말이 조금만 성지(聖旨)에 어긋나면 그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엄한 위엄으로 실정 밖의 죄명을 가하면서 마치 영원히 버리고 다시는 반열에 끼이지 못하게 할 듯이 하십니다. 군신의 의리가 어찌 이런 것이겠습니까.”


“대사간도 저들이 여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과인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일천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 있는 신하들 중 상당수는 과인의 신하가 아니라 자신의 가문의 영달이나 일신의 광영만을 위해 일하는 것들이며 어찌 보면 개보다도 충성심이 약한 것들이 다수이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삼가 듣건대 지금의 대신들은 개만도 못하다는 하교가 있었다고 하니, 아, 너무도 심했습니다.


신이 듣건대, 성인은 말을 박절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나는 평생에 나쁜 말로 사람을 꾸짖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설령 당시에 언책을 맡고 있던 사람이 식견이 혹 부족하고 체례(體例)에 혹 구애되는 것이 있어서 성의(聖意)에 다 합치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또한 그것이 무슨 큰 죄가 되기에 갑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지척할 수 있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전하의 말씀이 신중을 기하지 못한 것이 되었는데, 입시했던 신하들이 감히 한 마디 말로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것에 대해 신은 매우 애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동방의 성주였습니다. 신이 삼가 그 행장을 살펴보건대, 그 내용에 ‘신하들을 예우하였으며 선한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고 능치 못한 사람을 딱하게 여겼다.’고 했으니, 어찌 전하처럼 준엄한 말로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책한 적이 있었겠습니까.


재상의 반열과 시종신에 이르러서도 어떤 사람은 일을 말하다가 어떤 사람은 과실로 인한 죄 때문에 시장에서 종아리 맞는 듯한 수모를 받은 사람이 얼마이며 감옥에 내려 다스린 사람이 얼마이며 사적(仕籍)에서 삭제되어 귀양간 사람이 또 그 얼마입니까. 오가는 사람들이 도로에 끊이지 않고 있으니, 이는 실로 선조 수십년 사이에 있지 않던 현상입니다.


임금이 사람을 쓰는 법은 반드시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위에 둠으로써 지극히 공평한 정치를 행하게 한 연후에야 사람들이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되어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 근본을 연마하지 않고 그 말단만 바로잡기를 힘쓰면서 그저 성기(聲氣)에 의한 위노(威怒)만 발하게 되면 위에서 엄하게 할수록 아래에서는 더욱 태만해지게 되어 그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삼가 살펴 보건대, 근래 식자들은 개탄하고 장로들은 탄식하면서 모두들 법망이 점점 조밀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스스로는 재물을 더러운 방법으로 쌓으면서 성상께 아끼고 거두라 하며 표리부동한 짓을 하는 것은 전하께서도 이미 상세히 통찰하고 계십니다.

저들이 어전의 사대에서 성의(聖意)를 살피지 못하고 나아가서 논계한 것은 또한 곡진함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율(照律)하기를 꺼리고 처치하기를 겁내면서 시비를 분명히 가리지 못한 채 인피하고 들어가는 것을 일삼으면서도 경망스럽게 스스로 기뻐하는 다른 신하들에 견주어 본다면, 일을 피하지 않는 언관(言官)이라고 할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인자하시어 살리기 좋아하는 덕이 있고, 강건하고 과욕(寡欲)하시어 성색(聲色)을 즐기는 일이 없으시니, 참으로 불세출의 자질을 타고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발현되고 일에 시행되는 데 있어서는 간혹 이와 같은 유감스러운 점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 만도 합니다. 신이 듣건대, 너무 침잠(沈潛)한 사람은 강한 것으로 일으켜 세우고 너무 고명(高明)한 사람은 부드러운 것으로 억제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학문을 해야만 덕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오랫동안 외지에서 수고하였으므로 이미 학문을 강론한 날이 적었고, 즉위한 뒤에는 또 일이 많은 때를 당하였으므로 공리(功利)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구 진달되는 반면 성리(性理)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끊겼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항상 학문을 절실하게 힘쓰시고 병통을 다스려 바로잡으시어 항상 의리로 가슴속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기질에 의해서 하는 일이 적고 학문하는 공력이 많게 하소서. 그러면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이 저절로 순수하여 하자가 없게 될 것은 물론이고 윤음(綸音)을 내리는 것도 온후하고 화평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어 충분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차마 들을 수 없는 유감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번부터 그 사영이라는 자가 인재를 탐내어 뽑아가는 것이 어느 새 그 수효가 꽤 되는 고로 매양 중요한 논의를 준비할 때가 되면 항상 사람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물이 적은 때를 당하여 어찌 인재를 아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죄가 지극히 중하여 공의에 낄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과실로 인한 가벼운 죄는 수록해 주어야 될 것 같습니다. 대신들과 의논하여 조처하소서."


하니, 왕도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대사간에게 명했다.


"그대는 퇴청하지 말고 남아서 여와 독대하도록 하라. 진달한 일은 유념 하겠다.“


하니, 나머지 신하들도 비로소 자신들의 목이 달아날 뻔 하다가 붙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빠르게 퇴청했다.


왕은 대사간을 불러 같이 어딘가로 걸으며 말했다.


”여가 대신들 다수가 충성심이 개보다 못한 자들이라 한 것은 진심이야.

허나 그것은 여가 덕이 부족하고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탓도 있으리라 보는 바, 내 믿을 만한 자들을 좀 키우려 하네.

여가 그대를 믿어도 되겠는가?“


바로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어었으나, 대사간은 순간 느껴지는 오싹한 기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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