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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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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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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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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년 2개월차 -4-

DUMMY

“투쾅!”

“으억!”


대놓고 고개를 돌려 남의 답안을 베끼려던 자 하나가 콩주머니 탄에 맞아 그대로 혼절한 후, 질질 끌려나갔다. 단순히 기호만 적으면 되는 객관식의 특성상, 목숨을 걸고 부정행위를 시도하는 자가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3번에...4, 4번에....”

“218번, 219번, 208번, 217번 수험자, 탈락.”

“탕! 탕! 탕! 탕!”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답을 불러주던 자와 그 일대에 있던 자들도 차례대로 총에 맞고 끌려나갔다.


“목숨거는 사람들이 그래도 있긴 하군.”

“그래도 평소같으면 이때쯤 난입해서 수험자를 두들겨 패고 답지를 강탈하거나 이름만 바꿔 붙이는 무뢰배들이 등장할 때인데, 기관총이 있어서인지 오늘은 그런 자들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한편, 직접 시험을 치르는 선비들의 경우에는 당황하기는 했으나 그 중 일부는 금방 적응하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제를 내었는데도 꽤나 능숙히 푸는 자들이 많군요.”

“아아, 그 녀석들은... ‘진짜’다.”


이제는 과거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고 공부 대신 다른 방법을 통해 준비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늘 그렇듯 어느 집단에나 ‘진짜’들은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진짜’들은 한 때 존경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허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방구석 백수 취급을 당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내가 이른바 ‘진짜 선비’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언제 치를지 모르고, 치르더라도 돈과 인맥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합격하지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선비들로 간주하고 한사코 경전이니 인간의 도리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들은 내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라던가


“당시 주위에서 너를 아끼던 문인이나 시를 짓던 선비들은 본격적인 학문을 시킬 일이지 과거 따위나 시키고 있느냐고 모두 나를 욕심쟁이라고 나무랐고 나도 마음이 허전했었다.”

라면서 사람을 평가할 때 인성이나 됨됨이를 보는 대신 과거 시험에 특화된 공부를 하는 것이 참된 선비인가 하는 의문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 ‘진짜’들은 평생에 몇 번 기회가 없을 과거를 보며 준비를 하는 자들로, 그것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공부량은 평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사서삼경, 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시경, 서경 주역, 그리고 여기에다 춘추와 예기까지는 기본으로 외우다시피 읽었어야 했다. 게다가 저들 중 상당수는 지어진 지 오래 된 책들이었기에 그 해석과 번역도 여러 가지였으니, 그 중 적어도 다수 의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교과서 외에 교과서 해설서가 몇 종류나 있고, 그것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셈이었다.


그것만 해도 수십여 권에 달하는데, 또 과거 시험 문제를 적어내면서 논거를 쓰지 않고 적어내면 낙방이 확실시되었으니 최소한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 정도는 머릿속에 넣고 다니다 필요할 때 적절히 끌어다 쓸 정도로 뇌 안에 쌓아둬야 했는데, 그 권수가 무려 290권이 넘었다.


게다가 그 내용 또한 장황하기만 하고 핵심이 없으면 낙방이었기에 답안을 짧고 간결하되 논거와 사례를 모두 포함하여 작성할 줄 알아야 했으니, 말 그대로 제대로 공부한 선비는 순식간에 주어진 글을 읽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여 이해한 후, 필요한 부분을 끌어다 쓸 줄 아는 훈련이 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산술이나 과학에 대한 내용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지금 이 시험장에 있는 자들 중 대략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자들은 매우 생소하더라도 주어진 지문을 읽고 필요한 답안을 뽑아낼 수 있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반면, 미리 관리를 매수하거나 집안 끗발로 예상 문제를 뽑았거나 늘 그러했던 것처럼 과거 시험 파티를 꾸려 온 자들은 말 그대로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할 뻔 하였으나... 이번 시험은 객관식이었다.


“이래서 상께서 답안은 서른 자면 족하다 하셨구나.”

“허허.. 이렇게 되면 공부의 깊이가 얕더라도 임의로 답을 작성하여 점수를 얻는 자가 있지 않겠는가?”

“채점관도 필요가 없고 먹과 종이의 사용량도 줄어들 것이니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살림에 도움이 되는 시험 제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미리 정해 둔 답변 중 몇 가지를 고르게 하는 것은 결국 상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로 따르게 할 뿐이지 수험자의 생각이나 인성, 사람됨은 전혀 보지 못하게 하는 시험 아닌가.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가...”

“사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니겠소이까. 이런 식으로 과거를 치른다고 한다면, 결국 상의 의도와 생각에 부합하는 자들만 조정에 출사하게 되는 것 아니겠소이까? 결국 이것은 신하들의 생각을 제한하고 종국에는 힘을 꺾어 왕권에 힘을 싣기 위한 큰 그림이 아니겠소이까?”


객관식 시험에 대한 의견은 크게 갈렸으나 신료들 중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일단 왕이 직접 주관을 하고 채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하들에게는 왕권 강화의 포석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물론 왕의 의도도 거기에 있긴 했으니 신하들의 우려가 틀린 것도 아니었고.


그 외에 전혀 다른 부분에서 이 시험을 평가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시험 문제를 미리 예측하여 사전에 명답을 몇 가지 작성해 두는 것이 어렵지 않겠소?”

“오히려 좋소. 이런 식의 시험이라면 시험지를 복제하는 과정에 단 한 부씩만 빼돌릴 수 있어도 정답을 알아내어 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그렇소이다. 지금은 별시인데다 처음 치러지는 것이니 미처 대비하지 못하였으나, 한양에 돌아가서 큰 규모로 과거를 치르게 되면 그 중간에 시험지 한 부야 못 빼낼 것이 있겠소이까?”

“오히려 선접꾼이나 사수, 거벽 등을 굳이 사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문제 아니오? 어지간한 집안에서는 그런 거자들을 구해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누구나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지 않겠소?”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나 별시가 끝나고 합격자 발표가 있자, 신하들이 몹시 놀라 단체로 왕에게 가서 부당함을 아뢰게 되었다.


바로 합격자 숫자가 33명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었다.


“조종조(祖宗朝)의 옛 법도를 따르는 것은 후사로서는 마땅히 준수하여 잘못됨이 없게 해야 합니다. 만약 한때의 의논 때문에 혹시라도 법을 변조하여 단서를 열어놓게 되면 그 폐단은 장차 못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이 어찌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국가에서 실시하는 별시의 합격자 수는 분명히 법전(法典)에 실려 있습니다. 33인의 수 외에 더 뽑으라고 한 것은 선왕의 옛법에 크게 위배되는 일입니다. 전에 우연히 정액 외에 한 사람을 더 뽑았었는데 지금 와서는 수십인을 한꺼번에 뽑았으니, 이 폐단이 한번 열리면 그 액수가 10배가 늘어나는데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속히 성명을 거두소서."


하고, 헌부가 아뢰기를,


"문과(文科) 33인, 무과(武科) 28인은 조종조에서 그 액수를 정하여 분명히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금석 같은 것이라서, 한때의 의논 때문에 증감(增減)하여 후일 법을 무너뜨리는 단서를 열어놓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대신의 아룀에 의해 별시에 응시한 유생 수십인을 33인 수 외에 더 뽑으라고 명한 것은 조종의 성헌을 준수하는 뜻에 크게 위배되는 것입니다. 가령 후일 직부하는 자의 숫자가 지금의 배가 되더라도 모두 수 외의 직부를 명하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거두소서."

하였으나 왕은 뜻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문무의 직부인을 수 외에 시취하는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요, 선왕조 때에도 있었던 일이다. 대신이 의논하여 아뢴 것이니, 개정할 필요가 없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과거라고 함은 장차 조정에서 쓸 사람을 뽑는 것이옵니다.

문장으로 사람을 시험하고 그 문장을 이용하는 것은 마치 활 쏘는 것을 잘 하는 자를 뽑아 전시에 그 사람의 활 솜씨를 이용하려 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사옵니까?


허나 작금에 와서는 이전 과거에 합격한 사람도 미처 다 임용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자리가 없어 임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흉년과 청국의 침입으로 국고가 메말라 녹을 줄 예산이 없어 그러하는 것이옵니다.


하여 수십여 년 동안 대과와 소과에 합격한 인원이 관직 정원의 몇 배나 되고 있사오니, 어찌 헛되이 과거를 실시한 것이 분명치 아니하겠습니까?“

”그러하옵니다. 과거 대과와 소과에 합격한 자들은 모두 시, 부 표, 책에 능한 자들이오니 다들 일세의 인재가 될 만한 자들이오나 아직 임용을 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하물며 이번 시험처럼 그저 문장을 쓸 필요도 없이 기호만 써서 내는 자들에 비하겠습니까?“

”시, 부, 표, 책에 능한 인재라 하였는가?

사서니 오경이니 하는 것이 비록 올바르고 참된 경전이라 하나 오래되어 대개 진부하고 해석 또한 여러 가지라 하나 이미 그것도 묵고 오래되어 같은 것이 많아서 한 글자라도 새로운 해석이나 지식이 없다. 그것을 공부하는 자가 글자를 보면 운을 띄워 시 짓는 것이나 생각하니, 그 말을 가져다 쓰기는 하더라도 사실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니 그것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 어찌 허술한 시험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남의 글 솜씨를 빌리기도 하고, 남의 글을 대신 지어주기도 하며, 무리를 지어 과장에 난입하거나 하는 폐단은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족하다.

오늘 별시에도 천여명 가까이 응시했고, 대동과에는 만명이 넘는 자들이 응시하니 그들의 시집을 언제 다 보고 채점하겠는가?


그런데 반 나절만에 합격자를 알리는 방이 내붙으니, 제대로 된 채점이 된 것인가?


더구나 문벌이다 당파다 하여 그 연고로 덕을 보는 자가 부지기수이고, 힘을 겨루어 뽑기도 하니 이쯤 되면 임용하는 것은 과거를 주관하는 자의 농간에 달렸고 선비들의 실력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과거가 인재를 뽑으려 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과거는 싹수 있는 자들을 짓밟고 제한하려 함이 아닌가.


하물며 지금은 많은 유생들이 먹과 붓 외에도 짐과 책을 대놓고 들고 입장하며 힘센 무인이 앞을 트고 심부름하는 종이 과장을 들락거리며 심지어 술장수가 들어오니 어찌 과장이 난잡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이들이 서로 도끼와 망치, 칼과 장으로 서로 치고 찌르고 베기도 하며, 문간을 막고 길에서 욕하고 변소까지 따라가 칼침을 놓으려 한다.


그런 까닭에 재능이 있는 자라 하더라도 감히 응시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명망이 있는 자는 되려 과거를 외면한다.


옛 제도와 법도대로 덕행과 육예를 쌓은 자를 뽑아서 백 사람만 있다면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데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상께서 뜻이 있어 이번에 인재를 백여 명 가까이 뽑으셨다고 하더라도, 국고가 말라 녹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하시려고 이러시나이까?“


”과인이 개인적으로 이들에게 녹봉을 지급할 만큼의 재물은 있느니라.

임용될 자리도 미리 다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경들은 두 번 논의하게 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재물이...있다? 저 어린 왕이?’


그저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아파서 내려왔던 왕은 어느새 무력과 돈을 바탕으로 조선을 장악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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