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연재수 :
166 회
조회수 :
156,402
추천수 :
6,522
글자수 :
832,090

작성
23.03.22 18:37
조회
444
추천
29
글자
9쪽

7년 1개월차 -8-

DUMMY

카레밥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화학 개론과 수리, 기초 영어까지 들은 왕은 박규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날 본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도 했다.


“그리고 여기 시각으로 아홉시면 하루를 정리하고 열시면 취침한다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잠을 네 시진이나 자게 하는구나.”


저녁을 먹고도 보통 저녁 문안을 올리고 상소문을 검토한 후 비답을 내리고 하다 보면 해시 끝이나 자정, 즉 밤 11시나 12시가 넘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조선 왕의 일과에 비추어 본다면 이들은 확실히 잠을 충분히 자는 편이었다.


“저 전등이라는 것이 있어 밤도 낮처럼 환하니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을 것임에도 잠을 길게 자게 하는 것에는 역시 그 건강과 관련이 있는 것이더냐?”


“그렇다고 하옵니다. 수면이라는 것이 단순히 피로를 푸는 것 뿐 아니라, 뇌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뇌 안에 차 있는 물들이 오가며 노폐물을 청소하기도 하고 하룻동안 있었던 일들을 평가하고 분류하며, 필요 없는 내용은 지워버리는 것도 자는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억은 줄이거나 지우게 되니 생각을 긍정적으로 편향시켜 행복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 또한 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하더이다. 잠을 충분히 자게 되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기억에 비해 부정적인 기억을 더 잊어버리게 되니 그로 인해 사람을 더 행복하게 느끼도록 매개해 준다더이다.”


“그렇구나. 사실 여도 잠을 오래 자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충분히 자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여가 잠을 두세시진만 자고도 멀쩡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여가 아직 젊어서이겠지.”


‘젊다기보다는 어린 것에 가깝지만, 열다섯이면 솔직히 숨만 쉬셔도 체력이 회복되는 나이 아닙니까.’


박규수는 마지막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보통 식사 중에 대화를 하는 것은 조선 예법으로는 드문 일이었으나 왕은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던 것을 박규수에게 말했다. 그 정도로 왕은 지금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이다. 당장 1:1로 식사를 같이 해야 하는 박규수는 죽을 맛이었지만...


“물리, 화학, 생물, 수리, 영어 각 분야 중 셋 이상에서 일정 수준의 지식을 쌓아야 다음 수업을 들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였다지? 그렇게 다음 수업을 들을 자격이 주어진 자들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학사(學士, Bachelor's degree)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학사... 배우는 선비라는 것인가? 학생과는 또 분명 다른 성취를 이룬 자이니 적절한 호칭이로고.


그래, 내 이곳을 떠나기 전에 사영에게 청할 것이 있다. 그 학사들 중 각 과목에 좋은 성과를 낸 자들을 한양으로 보내어 줄 수 있겠는지 알아보라. 이곳에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도성 안에서도 그 대학원이라는 것을 세우고 배우고 가르치게 한다면 분명 사영에게도 득이 될 일이고 조선 전체를 봐서도 득이 될 일이니... 그 주제를 가지고 만남을 청해보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사영의 배는 내부가 폐쇄되어 사영 그 스스로도 안쪽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하였다지? 건조중인 영국군의 배를 볼 수 있겠느냐?”

“아마 가능할 것 같사옵니다.”


“그것까지 보고 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슬슬 온양행궁에 있는 자들이 나를 잡으러 올 때가 되어가지 싶구나.”

“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말은 그렇게 했으나 박규수도 이 왕의 아버지였던 효명세자와 함께 잠시나마 중앙 정계에서 일을 해 본 몸이었기에 바로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당장 효명세자가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효명세자의 나이가 거의 스물이 다 되어서였고, 왕의 후계로서 교육도 탄탄하게 받은 후인데다 순조의 건강이 심히 좋지 않았기에 실무에도 이미 왕을 대신하여 상당히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말 그대로 경력직 신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인이 이론과 실무 모두 빠삭하고, 뒷배 또한 순조가 직접 밀어줬으니 정권을 휘어잡는 것도 순식간이었고 부자지간에 사이도 좋은데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 한 몸처럼 움직이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조선이 다시 위대하게 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도 했었다.


그러나 효명세자 또한 과로로 채 4년이 지나지 않아 먼저 영면에 들었고 순조도 사실상 정무에 손을 놓자마자 조선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잘 준비된 왕이나 세자가 얼마나 빠르게 권력을 장악하고 숙청에 들어가는지 겪은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은 비록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티격태격 하기는 했으나, 똑똑하고 강력한 왕이 다시 생겨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기 위해 뜻을 같이했다. 이런 흐름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현 왕의 할머니이자 효명세자의 어머니, 순조의 정비인 왕대비 김씨가 어린 왕의 일거수 일투족에 태클을 건 지도 몇 해가 흐른 것이었다.


“물론 할마마마께서는 여 또한 만기를 친람하고 권력을 나눠야 하는 피냄새 가득한 정치판에 깊숙하게 끼지 않았으면 하시는 걱정도 있으신 것은 알고 있네. 할마마마 또한 아바마마와 내 숙부, 고모들처럼 나 또한 단명하는 것이 아닐까 어릴때 부터 늘상 걱정해오셨으니...”


“수렴을 거두실때가 머지 않았으니 군자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반드시 시세(時世)를 살펴보는 것이니, 조야의 기대하는 것은 진실로 성세를 이루게 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성세(聖世)...성세를 이루게 하려면 진실로 그 수단이 정한 것이어서는 조선에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구나. 여기 와서 보고 나서야 진실로 내가 보고 배운 것들이 한낮 우물안 개구리와 같았음을 깨달았다. 시세를 살펴 수렴을 거두실 때를 기다렸다 친히 정사를 맡아 보려 한들 조정의 신료들이 여의 말을 듣겠는가?

여가 여기서 두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고 듣고 배운 바를 널리 알리고, 마땅히 그 번영한 바와 변화한 바를 조선 땅에 널리 퍼뜨려 경장(更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도와 이 지식을 널리 퍼뜨리고 그 뒤를 받춰 줄 사람들이 필요하겠구나.”


그러나 왕의 이러한 의지는 사영과 만나게 되면서 한풀 꺾이고 말았다.


“허나 이 곳은 이미 반향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양선과 사사로이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었고, 선왕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혹은 선왕이 승하한 후 실록청을 여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올라갔던 정약용이나 홍희근, 그리고 그를 따르는 많은 선비들이 고문당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용병을 풀어 그들을 구출해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장 조선 국왕께서 여기 오셨음에도 그 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고 미복 차림으로 다니시게 한 것 또한 이곳에는 당시 그 일을 기억하고 슬픔과 원한이 가득한 자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기에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알고 있다. 사사로이 외국과 통교한 자는 참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나, 국법이 지엄했던 것도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고 지금은 법도를 다룸에 있어 신분 고하와 권력의 유무에 따라 법의 칼날이 피해 나가게 된 것이 참람한 사실이다.


여가 죽은 사람들 살아 돌아오게 할 수는 없고, 혈육을 잃은 사람에게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느니라. 허나 여가 약조하건대, 앞으로 여가 치세하는 조선에서는 저렇게 억울하게 떼죽음을 당할 일이 없도록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인정을 베풀어야 할 부분에는 인정을 베풀며, 이미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사면복권을 약조하겠노라.”


“허나 전하께서는 아직 그럴 힘이 없지 않습니까? 학사들을 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한양으로 갔을 때, 전하는 그들을 지켜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


다소 직접적인 사영의 물음에 왕은 생각에 빠졌다.


“...여의 힘이 아직은 미약하여 그들을 완전히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음주 화요일부터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2 23.06.09 54 0 -
공지 휴재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23.04.29 71 0 -
공지 다음 연재는 3월 2일, 혹은 6일부터 재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2 23.02.24 101 0 -
공지 이직 거의 파토났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23.02.16 209 0 -
공지 잦은 휴재 죄송합니다. +4 23.02.07 111 0 -
공지 이번에는 조금 휴재가 길어질 듯 합니다. +6 23.01.19 158 0 -
공지 23년 1월 1주차 휴재공지 23.01.04 108 0 -
공지 12월5~7일 휴재공지 +2 22.12.04 169 0 -
공지 11월 29일 휴재공지 +2 22.11.21 707 0 -
166 7년 6개월차 +2 23.07.20 273 17 8쪽
165 7년 5개월차-2- +7 23.07.19 197 15 11쪽
164 7년 5개월차 +10 23.07.14 214 19 12쪽
163 7년 4개월차 -4- +4 23.06.17 270 18 7쪽
162 7년 4개월차 -3- +2 23.06.16 242 20 7쪽
161 7년 4개월차 -2- +6 23.06.14 231 19 5쪽
160 7년 4개월차 +10 23.06.13 247 23 6쪽
159 7년 3개월차 -4- +7 23.05.20 451 21 14쪽
158 7년 3개월차 -3- +8 23.05.11 352 25 8쪽
157 7년 3개월차 -2- +4 23.05.09 352 22 20쪽
156 7년 3개월차 +8 23.05.02 400 24 7쪽
155 7년 2개월차 -4- +8 23.04.22 403 25 12쪽
154 7년 2개월차 -3- +10 23.04.14 408 26 14쪽
153 7년 2개월차 -2- +12 23.04.07 413 32 10쪽
152 7년 2개월차 +6 23.03.31 417 27 7쪽
151 7년 1개월차 -9- +13 23.03.24 473 30 11쪽
» 7년 1개월차 -8- +9 23.03.22 445 29 9쪽
149 7년 1개월차 -7- +12 23.03.17 468 32 13쪽
148 7년 1개월차 -6- +12 23.03.14 451 31 9쪽
147 7년 1개월차 -5- +13 23.03.09 479 28 9쪽
146 7년 1개월차 -4- +12 23.03.08 481 29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