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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바람의벗
작품등록일 :
2012.11.14 05:41
최근연재일 :
2020.12.2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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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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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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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회귀의 장-99

DUMMY

카한세올의 출생에는 비밀이랄 것이 없다. 취중에 건드린 하녀에게서 태어난 아이. 그게 다다. 귀족 가문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녀는 보상금을 받고 나왔고, 아이는 유모에게 맡겨졌다. 부친은 귀족치고는 양심적이라 최소한의 도리를 지켰고, 계모라 할 수 있는 정실부인은 하녀에게도 아이에게도 무관심했고, 이복형은 동생을 귀여워했다. 여기까지는 귀족가에서 원치 않게 태어난 사생아치곤 조건이 좋았다.

문제는 아이의 유모였다. 그녀는 카한세올의 친모, 그러니까 로레라자의 친한 친구였다. 겉으로는 친구의 아들이라며 자기 아들처럼 아끼는 척을 했으나 실제론 친구의 인생을 망가뜨린 아이라며 미워했다. 그녀는 주변 하인들까지 끌어들여서 아이를 정신적으로 학대를 해왔다.

육체적 학대까지 가지 않았던 것은 분단위로 짜인 스케줄에 치여 살면서도 틈틈이 동생을 보러오는 이복형 때문이었다. 그것도 배다른 동생이 싫어서 괴롭히러 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귀여워서 보러오는 바람직한 형님이었다. 게다가 유력한 가주 계승권자인 부친의 전폭적인 신뢰와 더불어 직계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벌써부터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작은 권력자이기까지 했다.

애정 섞인 관심을 보이는 든든한 형님이 있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만나는 시간은 짧은데다, 카한세올이 아직 제대로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기였던 탓에 유모의 행실이 알려진 것은 고작 얼마 전이다. 물론 그것을 눈치 채고 감시하여 알아낸 사람은 카한세올의 이복형이었다.

주동자인 유모가 쫓겨났음에도 하인들의 태도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테밀시아가 교육 및 감시를 하고 있는 중이나 이미 하인들에게 있어 카한세올은 무시해도 좋을 대상으로 굳혀진 듯했다.

아마도 조만간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상황에서 테밀시아가 카한세올의 친모를 찾아왔다. 그것도 가문 어른들 몰래. 대체 왜?

킨사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찾아온 거야 그렇다 치고, 왜 그 자리에 자신을 끌어들였냔 말이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카한세올의 출생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내밀한 가정사인데.

아아! 나는 아무 것도 못 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로레라자가 카한세올의 친모라는 것도! 테밀시아가 카한세올의 친모를 가문 어른들의 이목을 피해서 직접 찾아왔다는 것도! 전부, 죄다, 몽땅 모른다.

‘젠장! 알아서 뭘 어쩌겠다고 굳이 확인을 해본 거야!? 아예 모르는 편이 속편했을 텐데!’

호기심 같은 사치스런 감정 따위 가져봐야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모른 척 하면 그만이었던 것을! 역시 카한세올은 자신의 천적이다!

킨사나는 절규했다. 물론 속으로만. 그가 눈치챘다는 걸 테밀시아가 알면 입막음을 위해 제거……될 턱은 없지. 대신 그에 준할 만큼 골치가 아파질 거다.

킨사나와 함께 오기 위해 옷을 준비해뒀던 것과 킨사나를 여러모로 시험 및 이용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테밀시아는 처음부터 킨사나가 로레라자의 정체를 알아채리라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은 모른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킨사나가 알고 있다는 것을 테밀시아도 알게 되겠지.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 무섭다.’

기대에 부응하려 들면 자신이 피곤해질 것 같고, 부응하지 못하면 뒤가 찝찝해질 것 같고. 아아, 출구가 없구나.

겉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태연한 열 살 미만의 너구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위에 누군가가 기름을 끼얹었다.

“여어! 반가워, 꼬마 도련님들.”

어째 눈에 익은 소년이 앞을 막아서서는 껄렁하게 한쪽다리를 까딱인다. 굳이 기억을 더듬을 것도 없이 누군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까 마주쳤던 소매치기 소년이다.

‘아, 젠장!’

킨사나는 겉으로는 조금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재빨리 눈만 굴려 주위를 체크했다. 역시나 소매치기 소년은 혼자 오지 않았다. 심지어 또래 패거리를 끌고 온 것도 아니다. 나이는 물론 위험도도 저 소년보다 배는 많을 것이 분명한 건달들이 소년 옆의 골목길 어귀에 기대어 히죽이고 있었다. 알아챘다는 걸 들키면 바로 거칠게 나올지 모르니 대놓고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방금 지나쳤던 좁은 골목길 안쪽에도 한 사람 이상은 대기하여 퇴로를 막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를 어쩐다!? 마차가 서있는 곳은 아직 한참 더 가야 나온다. 뛴다 한들 저들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거다. 도와줄 사람 따위 아예 기대도 안 한다. 삭막한 인심 이전에, 이곳은 인적이 드믄 곳인데다 일단 일이 벌어지면 눈길을 끌만한 소란이 나기도 전에 끝나 버릴테니 말이다. 테밀시아가 검술을 익혔다고 해도 실전에 능한 어른들의 힘을 뿌리쳐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테밀시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킨사나와 뮤비라를 등지고 섰다. 둘을 보호하기 위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킨사나는 별로 든든하지 않았다. 과연 테밀시아가 저 골목길에 서 있는 건달들을 알아차렸을까? 좀 전처럼 소매치기 소년 한 사람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역시 네 놈이 나서는군!”

좀 전에 테밀시아에게 당했었던 소매치기 소년은 원한으로 찌든 눈으로 살벌하게 웃어보였다. 그때 비쩍 마른 건달 하나가 히죽거리며 소년의 옆으로 걸어왔다.

“이 도련님들이냐?”

“네, 형님!”

소매치기 소년의 얼굴에 떠올랐던 살벌함은 순식간에 비굴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대로지요?”

그리곤 대뜸 테밀시아를 손가락질했다.

“귀티 나죠?”

다음은 뮤비라다.

“곱상하죠?”

다음은 킨사나.

“그리고……!”

“…….”

묘한 침묵이 흘렀다. 물론 킨사나는 그런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일생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인상을 최고로 치며 살아왔다. 질 나쁜 고아원에 버려진 꼬마가 귀티 나고 곱상해봐야 변태 아저씨한테 팔려가거나, 변태 아줌마한테 팔려가거나다. 거기서 도망친 뒤에도 인상착의가 뚜렷하면 잡히기 쉽다. 하물며 코앞에서 ‘상품가치’를 논하고 있는 흉악범들에게 잘 보이는 것은 사양이다.

그런 것보다 문제는, 이 경우 상품가치가 없는 것이 득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아예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를까, 가치 없는 상품은 결국 목격자라는 귀찮은 존재로 변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테밀시아나 뮤비라나, 저 소년 말따라 귀티나고 곱상하니 제법 사는 집 자제로 보이지 않은가? 납치범의 얼굴을 본 자가 있어봐야 저들에게 득될 것이 없다. 가장 쉬운 처리방법은 역시 입막음이겠지.

“흠흠. 저 놈은 조용한 데서 처리하면 되죠.”

저거 봐라. 역시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어쩌지?

킨사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테밀시아에 대한 원망이 울컥 치밀었다. 이러라고 형님이 날 맡긴 게 아니건만!

“아니, 저 놈도 데려간다.”

마른 건달이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면서 킨사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벼, 변태인가? 아니, 표정이며 기색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런 쪽으론 아니다.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입막음으로 처리되는 신세만은 면한 셈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는데……. 산전수전 다 겪어본 킨사나지만 이런 식의 봉변은 처음이라 딱히 좋은 대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코앞에서 작당질하는 둘을 무심히 지켜보던 테밀시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놈들을 내 선에서 해결하긴 힘들겠군.”

그야 처음부터 그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테밀시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킨사나는 암담해졌다. 기대 안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맹수도령이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새삼 두려움이 치민 킨사나는 무심코 뮤비라를 돌아보았다. 그에게 뭔가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같이 궁지에 몰린 동지를 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뮤비라가 차분하다 못해 차가운 얼굴로 마른 건달과 소매치기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딜 봐도 두려움 따윈 없었다. 그보다는 분노와 왠지 모를 자괴감 같은 것이 뒤섞여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 테밀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적당히 처리해라.”

“……?”

킨사나는 물론 소매치기 소년, 마른 건달, 기타 등등이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상황이 급변했다. 아무 것도 없었던 허공에서 순식간에 물감이 덧칠해지는 듯이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소매치기 소년과 마른 건달을 동시에 후려친 것이다. 그리곤 땅을 딛지조차 않고 날아가서 전방에 남아 있는 건달도 걷어찼다. 먼저 맞은, 그리고 맞는 순간 기절한 소매치기 소년과 마른 건달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일이 끝났다. 거의 동시에 뒤에서도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킨사나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이쪽 길과 연결되어 있는 좁은 골목 안에 남자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방금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자와 같은 차림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를 짓밟고 있었다.

테밀시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 없는 듯, 여상스럽게 명령했다.

“앞으로 몇 번 더 올 거다. 일이 커지지 않도록 마무리 지어라.”

테밀시아는 지금 저들을 죽이지는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그가 말한 대로, ‘앞으로 몇 번 더 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뒷골목’이란 음지의 세계에서는 건달들은 대부분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 여기 온 건달은 세 명이지만, 그들이 테밀시아와 뮤비라, 덤으로 킨사나를 납치할 예정이었다는 건 패거리 쪽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시체로 돌아오면 범인은 테밀시아로 굳어진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 그들 패거리는 뭣 모르고 보복을 하기 위해 나설 수 있다. 그리되면 가문 어른들의 이목까지 피해가며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테밀시아에게 방해가 된다. 그러니 저들에게 자신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시킨 뒤 풀어주려는 거다. 귀티 나고 곱상한 아이만이 아니라 쟁쟁한 그림자 기사가 둘이나 붙어 있는 고위급 인물이라는 걸 알면 후환이 두려워 조용히 있을 테니까.

두 남녀는 테밀시아에게 말없이 예를 갖춰 인사한 뒤, 양 손에 건달들을 잡아서는 골목길 안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소매치기 소년과 마른 건달도 끌고 갔는데, 솜털이라도 들고 있는 것 모냥 움직임이 가벼웠다. 그리곤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한 명도 남지 않고 둘 다 가버렸다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그림자 기사가 있다는 뜻일까? 대체 몇 명이나 호위가 붙어 있는 건가, 이 맹수도령한테?

다다음 가주로 꼽히고 있고 가주와 직계의 인정을 받고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킨사나는 깨달았다. 테밀시아가 쥐고 있는 권력은 단순히 가문 내의 하인들을 휘두르거나 자유로운 외출을 한다거나 상당한 수준의 자금을 유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킨사나는 순식간에 벌어지고는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을 멍하니 구경하다가 물었다.

“호위기사가 있었네요?”

그리곤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뮤비라를 떠올리며 덧붙였다.

“혹시 처음부터……?”

“당연하지. 내 위치를 아는데, 무방비하게 움직일 리 없잖아?”

그리곤 테밀시아는 피식 웃었다. 역시나 천진함따윈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대단히 잘 어울리는 미소였다. 덧붙이는 말도다.

“내 실력으로는 아직 호위 없이 움직일 수 없어.”

……아, 예. ‘아직’이라고요?

킨사나는 이 완벽한 대귀족의 속내를 이번만큼은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오르세만 가에서의 테밀시아의 위치를 처음으로 체감하면서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보다 몇 배는 큰 거리감과 껄끄러움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안심도 됐다.

그래, 생각 없이 나다니는 건 아니었어. 겁도 없이 마부도 떼어놓고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철없는 도련님‘들’ 때문에 덩달아 죽어나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어쨌거나 신변의 위험은 없겠어.

그러다 퍼뜩 고개를 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 그랬다는 건 아니다. 그런 속내를 겉으로 드러낼 만큼 어수룩한 열 살 미만의 너구리가 아니다.

‘애초에 저 도령이 날 끌어들이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안심은 무슨! 원흉이 저 맹수도령이구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중신 회의의 분위기는 제법 팽팽했다. 다루는 사안도 여러 가지 이권이 걸린 예민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치싸움에 이력이 나다 못해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중신들은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와중에도 알게 모르게 청월을 살펴보고 있었다. 청월은 시큰둥한 얼굴과는 달리 호위기사로서 흠 잡을 데 없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일 텐데도 묘하게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라 다각도로 해석이 분분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자 시종장이 차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내왔다. 중신들은 암묵 하에 신경전을 잠시 접고 휴식을 취했다.

가야다 가주, 이칼리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황실연회에 교황께서 참석하신다더군요.”

“그래?”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입을 축이던 황제가 피식 웃었다.

교황이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대단할 것이 없는 일이다. 욤 제국은 신성제국. 치유와 중재의 교황 역시 욤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다. 단지, 현 교황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전대 교황에 비해 연회 참석률이 저조했다. 연회 성격상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거나 격조가 있는 연회에만 나왔는데, 이번 연회는 대규모다보니 말썽도 많고 소란도 많았다.

게다가 법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참석과 출입이 자유로운 연회에 참석할 때는 미리 통지를 해오는 것이 보통이다. 황제와 시간이 엇갈리면 피차 모양새가 안 좋고 골치가 아파지니까.

만약 황제가 이미 왔다간 상황에서 교황이 왔다 치자. 이때 황제가 도로 연회장에 오면 그의 체면이 구겨지고, 안 오면 교황의 체면이 구겨진다. 미묘하면서도 소소한 문제지만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존재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때문에 피차 서로의 체면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다. 말한 사람이 이칼리나가 아니라면 헛소문을 들은 거라 흘려들었을 것이다. 이칼리나의 취미는 정보 수집 및 분석이고, 그 방대함과 정확도는 수차례 검증 된 바 있다. 그녀의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

“이런 대규모 연회는 그 고상한 분의 취향엔 안 맞을 텐데.”

교황이 이번에 참석하려는 이유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황제는 짐짓 의아한 척 말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분이지만 포용력이 넓으니 문제야 없겠지요.”

“신도들에게만 발휘되는 포용력이라 문제지만.”

“문제가 생기면 좋은 구경 하나 하는 거죠, 뭐.”

자하라 가주, 수가 맞장단을 쳤다.

짧은 휴식시간에 주고받는 한가로운 수다 같은 모양새였지만,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본래 황실과 신전은 상호보완이라는 명분하에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고 힘 싸움을 해왔다. 물론 제국에 위기가 닥치면 즉각 유착하여 적에 대항하지만, 워낙에 견실한 제국이다 보니 지금껏 그리 큰 위기는 별로 없었다.

황제는 시종장에게 손짓하여 식은 차를 바꾸게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긴 하는군.”

“그러게요. 총회의 때나 뵐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총회의는 교황을 비롯한 신전 측 핵심 인사들이 참석하여 제국의 앞날을 논하는 회의다. 그 실체는 황제와 교황의 신경전 및 힘싸움이고. 전에도 말했듯이 현 황제는 황권 강화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고, 때문에 신전과의 힘 싸움에도 꽤나 적극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신하들이 그 사이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길을 적절하게 막았다. 해서, 신하들은 우선 지켜보고 있는 추세였다.

청월은 신성제국을 표방하는 욤 제국의 내부 상황, 황실과 신전의 미묘한 애증(?)어린 신경전, 황제가 신전을 상대로 걸은 싸움의 내용은커녕 욤 제국이 신성제국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호위기사로서 완벽한 자세, 즉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관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모르기에’ 생기는 무관심이 아니라 ‘이력이 나서’ 생기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지겹다’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런 자신의 심리를 정확히 읽지 못했는데, 그건 그가 둔해서가 아니라 그런 속내를 가늠해볼 정도의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애초에 숨길 필요를 못 느끼는 탓에 청월의 속내는 여과 없이 겉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노련한 중신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곤 각기 취향껏 해석하고 살을 가미하여 그럴싸한 사연을 지어냈다. 몇몇 정보를 토대로 청월의 출신을 유추해내려는 자도 있었다.

하여튼 아는 거 많고 눈치가 빨라 제 골치를 팍팍 썩이고 있는 중신들이었다. 어디 사는 열 살 미만의 너구리처럼.

뭐, 그냥 그랬다는 거다.


작가의말



1. 첫경험 : 생전 처음 (절 노린건 아니지만)납치범과 맞닥뜨렸습니다.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ㅁ-a
2. 연기 : 난 암 것도 모름. 전방에 건달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모름. 후방에 건달들이 대기타고 있는 것도 모름. 암 것도 모름....웅? ㅇㅅㅇ???;;;;;
3. 공포 : 맹수도령에겐 그림자 기사가 몇 명이나 딸려 있다는 걸 알고 말았습니다. 외부인은 모르는게 좋은 존재인 걸 코 앞에서 보고 말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덕분에 큰일 안 당한 건 다행이지만, 대신 맹수도령한테 덜미를 꽈~악 잡히고 말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은 것이 깨름찍한 것이 ......(후략)

ps. 진정한 공포 : 아직 '오늘'이 안 끝났습니다. ㅠ_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ps2. 믿거나 말거나, 킨사나의 굴욕 : 아놔, 납치범들한테 떨이취급 당했어. 2 +1 행사에서 덤으로 붙어 있는 사은품 취급 당했어. 귀티도 안나고 곱상하지도 않대. ....랄까, 비교 기준이 너무 높잖아! ........(투덜투덜투덜투덜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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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5

  • 작성자
    Lv.3 세실피린
    작성일
    11.11.13 11:42
    No. 91

    재밌게 읽고가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청룡도
    작성일
    11.11.13 19:42
    No. 92

    다음편도 기대되네욤ㅋㅋㅋ 재밌습니다 항상 감사해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소보소보
    작성일
    11.11.14 16:13
    No. 93

    언제쯤 다시 오실까요... '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세옌느
    작성일
    11.11.14 23:19
    No. 94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킨사나의 하루는,.. 2011년 8월 25일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하루가 언제 끝날것인가 하는거죠 !!!

    1. 그래도 석달안에.. (11월 25일)
    그나름 대로 계간지가 될것이다.

    2, 작가님을 물로 보는거냐... 크리스마스 선물로 꿍쳐놓구 계실거다.
    (12월 25일설)

    3, 킨사나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절망적인지..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작가님은 눈물을 머금고 해를 넘기실거다!

    4. 과연 그날이 올까 ㅠ.ㅠ?


    자자~ 열분 돈거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길가의돌
    작성일
    11.11.15 06:44
    No. 95

    그냥 막! 오시면 행복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암중가하
    작성일
    11.11.15 09:10
    No. 96

    원래 댓글 100개는 최소치라 생각되네요~ ㅋㅋㅋ 언젠간 오시것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서빈
    작성일
    11.11.15 14:32
    No. 97

    킨사나.... 테밀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한 느낌이? 가문의 중신으로 쓰일 것 같습니다ㅋㅋ 쓸데없이 머리 좋고 눈치가 빠른 거군요ㅋㅋㅋ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41 주인아저씨
    작성일
    11.11.23 21:51
    No. 98

    오랜만에.. 첫글 날짜를보니.. 4년간 연재 중이신거군요......

    완결은 언제 될까요.... 이제 겨우 초반인듯한 느낌인데...

    10년은.. 쓰실꺼다 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신기淚
    작성일
    11.11.26 17:43
    No. 99

    킨사나의 하루가 길다라는 걸 체감시켜주시기 위해 연재가 느린 거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너의여름
    작성일
    11.11.29 12:37
    No. 100

    오실때가 되었는데..... 하아....... ㅜㅜ 벗님은 언제쯤 되어야... 빠른 연재가 가능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빠른 연재는 최소 주 1회... 연재입니다..ㅋㅋㅋ 매일연재따윈 바라지도 않음..ㅠㅠ;;
    한달에 한편 기다리는게 익숙해지긴 했지만....그럼 완결 보는데 넘 오래걸릴테니 ㅜㅜ 책으로 빨리 보고싶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나무나무나
    작성일
    11.12.01 23:44
    No. 101

    벗님 언제 오시나요 ㅠㅠㅠ 매일매일 'N'가 뜨길 기다리고 잇심니다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주율
    작성일
    11.12.02 01:10
    No. 102

    너무 안 오셔서 걱정되어 날짜를 봤는데 이제 한 달 정도 지난 거였네요....느린 연재는 익숙해지기 힘든데 빠른 연재는 얼마나 빨리 중독되는지 벌써 계간지 시절을 어떻게 버텼나 싶어요ㅠㅠㅋㅋ지난회는 페르노크 소장본 생각으로 그리 기다림이 길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ㅠㅠ올해 안엔 오시길 기원하며 부질없이 덧글 남깁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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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1 빨강마녀
    작성일
    11.12.09 12:14
    No. 103

    오실때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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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의지
    작성일
    11.12.09 21:40
    No. 104

    정말 벗님 언제까지 안 돌아오실건가요???
    기다리다 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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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kazema
    작성일
    11.12.10 02:52
    No. 105

    잘 보고 갑니다...그리던 님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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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장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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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회귀의 장-118 +142 20.12.25 3,332 94 19쪽
117 회귀의 장-117 +83 18.02.28 5,210 112 15쪽
116 회귀의 장-116 +112 18.01.25 4,247 135 14쪽
115 회귀의 장-115 +155 16.03.31 7,939 247 18쪽
114 회귀의 장-114 +112 15.02.09 10,785 319 14쪽
113 회귀의 장-113 +112 14.12.31 9,611 278 18쪽
112 회귀의 장-112 +178 13.10.01 15,723 419 18쪽
111 회귀의 장-111 +77 13.05.08 14,954 254 15쪽
110 회귀의 장-110 +77 13.03.20 13,687 222 19쪽
109 회귀의 장-109 +66 13.02.28 11,810 227 18쪽
108 회귀의 장-108 +38 13.02.28 12,205 205 15쪽
107 회귀의 장-107 +88 13.01.22 12,886 231 13쪽
106 회귀의 장-106 +141 12.11.14 16,126 298 16쪽
105 회귀의 장-105 +117 12.06.20 17,226 254 17쪽
104 회귀의 장-104 +85 12.06.04 16,371 256 19쪽
103 회귀의 장-103 +144 12.04.19 16,633 252 15쪽
102 회귀의 장-102 +96 12.02.28 17,426 250 16쪽
101 회귀의 장-101 +98 11.12.30 18,775 252 19쪽
100 회귀의 장-100 +123 11.12.10 18,495 247 16쪽
» 회귀의 장-99 +105 11.10.30 19,301 260 18쪽
98 회귀의 장-98 +109 11.09.10 21,345 271 18쪽
97 회귀의 장-97 +128 11.08.25 20,988 255 17쪽
96 회귀의 장-96 +111 11.08.17 21,010 286 16쪽
95 회귀의 장-95 +119 11.08.10 20,806 258 12쪽
94 회귀의 장-94 +104 11.08.05 20,253 258 15쪽
93 회귀의 장-93 +136 11.07.24 21,799 260 13쪽
92 회귀의 장-92 +111 11.07.20 21,709 262 13쪽
91 회귀의 장-91 +230 11.06.26 23,886 266 15쪽
90 회귀의 장-90 +105 11.06.25 20,656 231 12쪽
89 회귀의 장-89 +157 11.05.20 23,571 23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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