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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바람의벗
작품등록일 :
2012.11.14 05:41
최근연재일 :
2020.12.25 19:06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4,38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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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9
글자수 :
791,920

작성
13.02.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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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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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글자
18쪽

회귀의 장-109

DUMMY

“대치 상황을 자세히 말해봐라.”

키시유안이 명했다. 다행히 생생하게 기억을 더듬은 직후라 헤매지 않고 답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식사를 마친 청월은 깨끗이 비운 주스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깊이 몸을 묻었다. 마일다는 키시유안의 반응에 자세를 바로하고 에이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에이든의 이야기가 끝난 뒤, 키시유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일다와 에이든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소리도 낮췄다.

“저들의 목적은 짐작이 간다.”

키시유안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발목을 잡고 있으려는 거다. 예의 그 암살자도, 이번 암습도 이쪽의 운신을 제한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 암살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 자가 나타나면 일이 매듭지어지는 건 시간문제니까. 저들의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게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 태도나 음성엔 아무런 힘도 의욕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당연한 사실로 여겨졌다.

“본가의 경비 레벨을 올려둘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키시유안은 칼 같이 마일다의 대안을 끊었다. 그렇지만 마일다로서는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휴첼단장과 부단장을 훌륭히 따돌린 적의 수단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키시유안은 그렇다 치고, 청월이 휴첼단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정보를 신속히 입수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략을 짜내어, 오르세만 가의 수뇌부 회의에 의해 자연히, 키시유안과 청월 둘 다 수도로 치워버린 철두철미한 적이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스터 둘을 따돌려가며 암약하고 있는 적이 본가에 있다. 태평히 넘겨도 될 문제가 아니다.

“단장님과 부단장님, 두 분의 발목을 붙들면서까지 일을 벌이려고 하는데, 주의를 해둬야…….”

“우리가 아니다.”

키시유안은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단언했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태도도 똑같았다. 의아해하는 마일다에게 답한 것은 의외로 청월이었다.

“우릴 따돌리려 한 거면 예전에 사릭 가에서 했던 실수를 모방하는 게 훨씬 쉽지.”

적어도 상급 기사 다섯이 호위하는 천재 마법사를 위협하는 것보단 싸게 먹힐 거라는 건 분명하다. 그 모략꾼이 암살자 장본인인 건지, 고용한 것인지, 손을 잡은 것인지 등은 알 수 없지만, 모처럼 그만한 실력을 갖춘 자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고작 청월과 키시유안을 오르세만 가의 영지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쓰기엔 아깝다. 적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청월과 키시유안은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청월의 생각이다.

“그럼……?”

보통 마일다는 묻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보는 성격이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에이든 역시 다소 긴장한 상태로 키시유안과 청월을 번갈아 보았다. 사실 에이든은 본인자체가 계략에 강한 덕에 근래 들어서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일다의 두뇌회전이 에이든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다양한 업무에 쫓기고 있는 마일다에겐 예의 암살자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반면에, 에이든은 오로지 그 사건에만 투입되어 있으니 관심도가 다른 것이다.

부관의 질문에 키시유안은 시간을 끄는 일 없이 바로 답했다.

“저들이 묶어 놓으려는 건, 얀 형님이다.”

“……!”

마일다는 단번에 납득했다. 미처 생각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한번 듣고 나니 그 외의 답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이든은 역시나, 하는 태도였다.

청월은 시큰둥했다. 정식으로 휴첼부단장 자리에 앉겠노라 결정하긴 했지만, 오르세만 가 내부의 일까지 그의 관심이 미치지는 않았다. 휴첼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은 곧 오르세만 가에 소속되었다는 뜻이긴 하지만, 심적으로는 별개로 나눠져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권력다툼이나 모략과 음모 따위, ‘지긋지긋’하다.

이번 암습이 오르세만 가 내부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는 소리도 들었고, 자신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호위라서 신경 껐지만, 사실 청월은 황실 연회에 처음 간 날 적의 목적을 간파했었다.

그때 카스야나는 구태여 청월을 따돌리며 휴게실로 들어갔었다. 마법사로서의 자부가 있다 해도 최고급 귀족으로서 살아온 그가 강력한 암살자가 어디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땅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청월을 따돌린 것은 지나치게 경솔하고 철없는 행동이었다.

청월은 카스야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오르세만 가라는 거대한 가문을 책임지는 차기 가주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철딱서니 없이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사람’이 아닌 자에게는 어떻게든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껏 호위해오면서 본 카스야나의 업무에는 외부인에게 보이기에 꺼림칙한 것은 별로 없었다. 물론 다소의 모략과 음모는 있지만, 크게 껄끄러운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즉, 카스야나가 청월이라는 외부인의 이목을 고려하여 ‘무언가’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있다는 거다. 카스야나가 청월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첫날 황실연회에서 청월을 따돌리려는 서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그 ‘무언가’와 카스야나의 단절이 아닐까?

강력한 암살자로 인해 마스터를 호위기사로 붙이게 한다. 가문에서 공식으로 내린 명을 따르는 마스터를 따돌릴 명분도 없고, 마스터의 밀착 호위를 따돌린 재간도 없다. 설령 따돌렸다 해도 길게 유지할 수는 없다. 매우 자연스럽게 카스야나의 발목에 족쇄를 단 것이다.

만약 그 무언가가 오르세만 가의 비공식적인 프로젝트 같은 거였다면, 직계들이 청월을 호위로 붙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즉, 그 일은 카스야나의 사적인 일일 확률이 매우 높다. 때문에 정식으로 휴첼부단장이 되자고 결정한 이후에도 신경 끄고 있었다.

“과연……. 청월 경을 붙임으로써 자연스럽게 합법적으로 방해한다는 거군요.”

“그것만은 아닐 테지만, 현재 간파된 목적은 그거 하나다.”

“그렇다면 저번 주에 아무런 손도 걸어오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갑니다. 단순한 시간벌이였다면, 공으로 일주일을 벌 수 있는 거니까요. 이번 주 들어서 계속 암습을 걸어오는 것은 그때의 암습으로 끝났다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한 세공이겠군요.”

“거기에 완급을 주어 이쪽의 경계심을 자극하려는 목적도 있겠지. 얀 형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도록.”

이어지는 대화에도 내내 시큰둥한 청월을 에이든은 흠모와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이 없음에도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안목은 타고난 거겠지! 저 통찰력에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지성,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대범함과 뒤끝! 거기에 압도적인 무력까지! 그야말로 에이든의 이상이 그대로 실체화되어 있는 존재! 오오, 앞으로도 찰싹 붙어서 보고 배워야지!

재차 다짐하는 에이든의 등 뒤에, 삼각형 피막이 달려 있는 검은 꼬리가 마치 충견의 것과 같이 경쾌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듯한 것은 분명 착시 현상일 것이다

“적이 노리는 것이 얀 형님이상, 지금 시점에서 본가의 경비 레벨을 올리는 것은 인력 낭비다.”

“그렇군요. 카스야나님께선 수도에 계시니 본가와 관계없을 확률이 높을테니…….”

키시유안은 재차 납득하는 마일다에게서 시선을 돌려 청월을 보았다.

“오늘은?”

“두 번.”

“줄었군.”

청월은 어깨를 으쓱였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였다. 물론 마일다와 에이든은 바로 알아들었지만. 청월이 키시유안에게 보고하는 것은 단 하나. 연회장에서 감지했던 빨강머리 여자의 동태뿐이다. 그리고 저 숫자는 그 여자가 청월 쪽을 탐색하는 ‘척’ 자신의 기척을 은근히 흘린 횟수를 뜻한다. 아직까지 그 여자의 동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꽤나 신경에 거슬렸을 것이다. 여자가 원하는 것도 그거겠지.

카스야나가 알면 억울해할 지도 모르지만, 청월이 호위를 하면서 세세하게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카스야나가 아니라 연회장에서 때때로 감지되던 기척의 주인이었다. 교황의 방문 덕에 찾아낸 이후로도 줄곧 청월의 신경은 그 여자한테 집중되어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연회장에 있는 ‘신분이 불분명한 자’ 중에서 그 여자가 가장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 여자가 종종 청월 쪽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것,

암살 위협을 받고 있는 호위 대상자가 개방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그를 바로 옆에서 지키고 있을 수 없다면 차선책은 암살을 기도했을 때 가장 위험이 될 자를 중점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청월에겐 그렇다. 카스야나가 연회장 안에만 있다면 언제든 한 호흡 만에 곁에 갈 수 있으니까, 그 한 호흡을 노릴 수 있는 자만 감시 하에 두면 나머지는 문제될 것이 없다.

입장은 반대지만, 암살을 기도하는 자 역시 타켓보다 그 호위의 동태에 주의한다. 교대시간, 성품, 버릇, 컨디션 등을 살펴서 호위망이 가장 약해진 틈을 노리기 위해서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류 암살자라면, 그리고 표적의 호위가 강하다면 대체로 신중하게 확률을 높이려 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여자는 충분히 수상하다. 청월의 동태를 살피는 체 실제로는 자신의 존재를 은밀히 과시하고 있다. 마스터에 대한 호승심 따위가 아니다. 다른 마스터들, 그러니까 첫날 같이 왔던 키시유안이나 황제 곁에 항시 붙어 있는 근위기사단장, 지금까지 딱 두 번 본 근위기사, 교황과 왔었던 신성기사단장에게는 자신의 기색을 철저하게 감췄으니까.

그럼에도 아직은 그 여자가 카스야나를 노리는 암살자라 확신할 수 없다. 확률상 높긴 하지만 확신까지 가진 않는다. 거기다 그 여자가 청월이 기다리고 있는 ‘특정 암살자’라 해도, 그쪽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청월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이야 말로 양동작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월은 그 여자의 행동에 집중하면서, 그 점을 키시유안에게 제대로 보고해왔다. 황실 연회에 간 첫날, 청월과 마찬가지로 그 여자의 기척을 감지했던 키시유안 역시 기척의 주인을 찾는 일과 찾아낸 여자의 동태에 집중하는 일에 찬성했다. 현재 청월의 업무에 방해가 될 만한 사람은 그 여자밖에 없었으니까.

“카스야나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마일다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위를 마땅치 않아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카스야나다. 첫날의 해프닝 이후로 방해는 하지 않지만, 적의 의도를 알면 어찌 나올지 모른다. 적이 방해하려는 카스야나의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휴첼단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카스야나의 안전이다.

“적의 목적은 현재로선 중요하지 않다.”

역시나 키시유안은 부정적인 답을 했다.

“잊지 마라. 우리가 수도에 올라오게 된 것은 예의 암살자 때문이 아니다.”

“예?”

“……?”

마일다와 에이든이 의아한 눈으로 키시유안을 바라보았다. 키시유안은 매우 건조한 음성으로, 그들이 잊고 있던 ‘진실’을 되새겨주었다

“나와 청월이 여기까지 온 건, 숙부님의 ‘생각’ 때문이다.”

“아…….”

“아…….”

현 오르세만 가주, 세옌느의 ‘생각’을 싫을 정도로 생생히 체감했고, 하고 있고, 할 예정인 희생자들, 즉 마일다와 에이든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당연히 그걸 알 턱이 없는 청월은 묘한 방향으로 튄 화제에 잠시 의아해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묻진 않았다.

“자! 그럼 청월 경은 지금처럼 호위를 맡는 걸로 하고! 에이든 경은 지금처럼 청월 경의 보충을 잘 부탁하네.”

“네! 물론입니다! 맡겨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치 ‘잠시나마 ‘생각’에 반하는 언급을 한 것으로 상황이 꼬여서 일이 밀려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다급하게 화제를 매듭지어버리는 마일다와 에이든의 행태에도 청월은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그런 청월에게 키시유안은 부하들의 행태를 해명하는 대신 공무를 말했다

“그 여자가 그때의 암살자인 경우가 가장 깔끔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쪽이든 조만간 움직임을 보이겠지. 잡어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상대해야 할 자는 그때의 암살자뿐이다.”

잦은 암습으로 경계심을 자극하는 것 외에도, 고만고만한 암살자로 툭툭 건드리다가 갑자기 몇 급 높은 암살자를 투입하여 틈을 노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성과를 보여도 좋지만 전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겠지.

키시유안이 화제를 정리하며 청월에게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지시하자, 자연히 회의도 끝났다. 회의보다는 보고회라 보는 편이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청월에게는 야식시간이기하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일다가 말하고 일어났다. 문에서 제일 가까웠던 에이든이 경례를 한 뒤 먼저 나가고, 마일다가 바로 따라 나갔다. 청월도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반쯤 열린 문을 밀며 한 걸음 내딛다가, 문득 고개만 돌려 뒤를 보았다.

새로운 서류도 펴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던 키시유안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뭐지?”

할 말이라도 있냐는 그 질문에, 청월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인 뒤 한 손을 건성으로 들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에이든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일다는 벌써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가 있었다. 다소 예의에 어긋나지만, 장본인을 포함하여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마일다의 업무량을 알면 그쯤은 자연히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렇게 나와서 단저 앞에서 헤어졌다. 원래라면 방 앞까지 동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면 카스야나의 방의 양쪽 방을 각기 청월과 에이든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청월은 공적 업무가 모두 끝난 뒤엔 별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먼저 말하지 않는 한 질문을 던질 사람은 없었다. 현재 수도 저택에서 청월의 행동에 참견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차기 가주인 카스야나와 단장인 키시유안뿐인데, 굳이 설명할 것 없이 둘 다 성격이…….

어쨌든, 말없이 전송하는 에이든과 헤어진 청월이 향한 곳은 뮤비라의 거처였다. 물론 그의 동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은신도 하고, 우회도 하면서 찾아가고 있다.

뮤비라를 본격적으로 가르쳐보니까, 테밀시아가 왜 그렇게 아까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래부터 근골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근성이나 성질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킨사나의 영악함과는 조금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매우 영리해서 청월이 말하려는 바로 바로 알아듣고 요구한 이상의 것을 이해한다. 거기에 잔꾀를 부리지 않고, 향상심이 높고, 그 나이에서는 찾기 힘든 절제심도 있어 청월이 말한 주의사항을 어기는 일 없이 성실하게 따라온다. 될 성 부른 나무가 뭔지, 뮤비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테밀시아는 그런 귀여운 단계를 넘었거나 건너뛰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뭐, 아둔한 놈 가르치는 것보다 확실히 손은 덜 가고 좋다. 이대로만 가면 쓸 만한 결과물이 나오겠지.

청월은 잠시 멈춰서, 휴첼단저를 돌아보았다.

“흠…….”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고, 따질 필요도 없어서 넘어갔지만, 키시유안은 도중에 명백하게 화제를 돌렸다. 흐름 자체는 매우 자연스러워서 마일다나 에이든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청월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화제를 돌리는 거나 상대의 주의를 돌리거나 이쪽이 원하는 언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화법에 ‘숙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왠지 모르게 알았다.

아마도 키시유안이 ‘적의 목적’이라는 중대한 화제를 꺼내면서 덮어버린 소소한 키워드는 ‘초점이 없는 암살자’. 적의 목적 앞에서 적의 ‘암살 수단’은 하찮아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것 자체는 지금 휴첼단에 당면한 사건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지. 휴첼단이나 오르세만 가의 수뇌부만 알고 있는 내부 문제였다면 마일다도 반응했을 테니. 거기다 공적인 문제로서 수뇌부와 공유된 상태라면 적어도 청월에게는 언질을 줬을 것이다. 청월 자신은 대단히 이해가 안 되고 매우 생소하지만, 그는 키시유안에게 ‘신뢰’받고 있으니까.

‘개인의 일이라면 이번에도 모른 체 하는 게 낫겠지.’

남의 일에 참견하는, 한가로운 취미는 없다. 아, ‘남의 일’하니까 생각난 건데…….

“숙부의 ‘생각’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가?”

세옌느가 그렇게 고압적인 가주였던가? 좀비 직계들이 하는 냥을 보면 썩 존경받고 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돌이켜보니, 세옌느가 확고히 정한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인간들은 못 봤다. 꼴은 그래도(?) 능력은 있나보다 했는데, 좀 전의 마일다와 에이든의 반응은 공포에 가까웠다. 그것도 순수한 공포라기보다는……좀 묘한 표현이지만, ‘지긋지긋한 공포’ 정도 였달까?

아무래도 오르세만 가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킨사나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 같지만…….

“이런 일은 모르는 게 약이지.”

정답이다.

정신 건강에 득이 되는 결론을 내린 청월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암습으로 또 한 번 의욕을 고취시켰을 제자에게로.



작가의말

<밤마다 행방이 묘연!? 휴첼부단장의 진실을 파헤치다!>

 

떠오르는 유명인사 청월 경이 밤마다 종적을 감춘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본 기자가 출동했다. 익명으로 한다는 약속 하에 어렵게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자 : 청월 경이 밤마다 종적을 감춘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계자 1 : 그 전에, 인터뷰 하면 인터뷰비 주는 거죠? 얼마나 줘요? 시간당으로 주나요? 건당으로 주나요? 설마 알아야 할 권리니 뭐니 하면서 날로 먹으려는 건 아니겠죠?

기자 : 아, 그게……. (본 기자는 그때 너구리 한 마리를 보았다. 관계자 분이 환각 기능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본 기자는 꼬박 한 시간동안 협상한 끝에 10분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후략)

 

기자 : 청월 경이 밤마다 종적을 감춘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계자 2 : 그 전에, 제보자에 대해 몇 가지 알려주셔야겠습니다.

기자 : 죄송합니다만, 본 지는 비밀준수를 절대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은 잡지사로서 당연한…….

관계자 2 : 그렇군요. 그럼 그쪽의 입장을 생각해서 이름 등은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보를 받았는지 알려주십시오. 아니면 오르세만 가의 내부에 세작을 심어둔 혐의로 잠시 저희 단저에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잡지사에 알아보니, 이번 제보는 귀하가 직접 받아서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자, 제보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배후자’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본 기자는 그때 악마를 보았다. 관계자 분이 환각 기능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자 : 아, 그게…….

(본 기자는, 꼬박 하루 동안 휴첼단저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본 기자의 명예를 위해 밝히는데, 본 기자는 결코 제보자의 신변을 밝히지 않았다. 제보 받은 일시, 제보가 적힌 서신, 제보자에게 지급한 정보료만 밝혔을 뿐이다. 이 정도로 제보자의 신변이 밝혀질리 없으니 안심하길 바란다.)

 

 

ps. 기자는 관계자 1에게 인터뷰비를 지급한 뒤, 삼개월치 월급이 감봉되었다고 합니다.

 

ps2. 믿거나 말거나, 기자가 관계자 2와 인터뷰를 나눈 뒤 오르세만 가에 실직자 한 명이 발생했습니다. 기자는 시말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3/1 ps 2의 내용을 약간 수정**)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6

  • 작성자
    Lv.2 탱탱이
    작성일
    13.03.14 17:08
    No. 61

    이건 꿈이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 버벅버벅
    작성일
    13.03.16 20:45
    No. 62

    연참 때려놓고 년단위로 잠수 타시려는 건 아니겠죠!!!!! 제발 아니길 기도합니다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ashell
    작성일
    13.03.29 15:56
    No. 63

    다들 반응이 ㅋㅋ 연재 후 독자 반응도 넘 재밌어요..
    그나저나 제자 키우기에 재미들렸군요 청월은ㅋㅋ

    “적이 노리는 것이 얀 형님이상,
    이 분분.. 얀 형님인 이상, 이 자연스러울것 같아요ㅎㅎ

    담편도 있어서 햄볶아요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웅찌
    작성일
    13.04.02 22:59
    No. 64

    ㅎㅎㅎ 작가님 쨩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마카롱카롱
    작성일
    13.05.09 12:57
    No. 65

    댓글을 잊고 있어서 새삼 와서 달고 있습니다ㅋ '생각'에 얽히기 시러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하세르
    작성일
    14.02.01 21:44
    No. 66

    생각, 맞아요 잠시 잊고 있었네요 그 생각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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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회귀의 장-108 +38 13.02.28 12,205 205 15쪽
107 회귀의 장-107 +88 13.01.22 12,886 231 13쪽
106 회귀의 장-106 +141 12.11.14 16,126 298 16쪽
105 회귀의 장-105 +117 12.06.20 17,226 254 17쪽
104 회귀의 장-104 +85 12.06.04 16,371 256 19쪽
103 회귀의 장-103 +144 12.04.19 16,633 252 15쪽
102 회귀의 장-102 +96 12.02.28 17,426 250 16쪽
101 회귀의 장-101 +98 11.12.30 18,775 252 19쪽
100 회귀의 장-100 +123 11.12.10 18,495 247 16쪽
99 회귀의 장-99 +105 11.10.30 19,300 260 18쪽
98 회귀의 장-98 +109 11.09.10 21,345 271 18쪽
97 회귀의 장-97 +128 11.08.25 20,988 255 17쪽
96 회귀의 장-96 +111 11.08.17 21,010 286 16쪽
95 회귀의 장-95 +119 11.08.10 20,806 258 12쪽
94 회귀의 장-94 +104 11.08.05 20,253 258 15쪽
93 회귀의 장-93 +136 11.07.24 21,799 260 13쪽
92 회귀의 장-92 +111 11.07.20 21,709 262 13쪽
91 회귀의 장-91 +230 11.06.26 23,886 266 15쪽
90 회귀의 장-90 +105 11.06.25 20,656 231 12쪽
89 회귀의 장-89 +157 11.05.20 23,571 23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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