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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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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벗
작품등록일 :
2012.11.14 05:41
최근연재일 :
2020.12.25 19:06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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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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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회귀의 장-118

DUMMY

무턱대로 로레라자를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위치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지금의 킨사나가 홀몸으로 돌아다니기엔 수도는 여러모로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일단 결심을 하자 바로 움직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오늘이 아니면 언제 시간이 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로 로레라자를 만나러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 테밀시아를 찾아갔다.

테밀시아는 막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던 참이었다. 뮤비라는 옷에 가슴에 달 장신구를 고르고 있었다.

“벌써 숙제를 끝냈나?”

“······아니요.”

갑자기 굳건한 결심이 조금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지금 한가하게 어디 쏘다닐 땐가? 쌓인 숙제가 얼만데······.

아니,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재차 마음을 굳힌 킨사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로레라자 씨를 만나러 가보려 합니다.”

“오늘? 지금 바로 말인가?”

어차피 저녁에는 숙제 검사를 받으러 와야 하는 킨사나가 굳이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을 보고서, 테밀시아는 쉽게 답을 유추해냈다.

“한 시간 뒤에 용무가 있다. 금방 끝낼 테니 그 뒤에······.”

“아니요. 혼자 가야해요.”

테밀시아는 지나치게 조숙하다. 아니, ‘조숙’이라는 표현조차 귀여울 지경이다.

직접 찾아가볼 생각은커녕 소식조차 알아보려하지 않으면서도, 로레로자는 아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환상 속의 아이는 천진난만하고 해맑고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카한세올은 그녀의 환상에 부합되는 아이다.

그렇기에 테밀시아는 로레라자와의 만남에선 썩 도움이 되질 않는다.

“······.”

테밀시아는 킨사나를 잠시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가볍게 웃어보였다. 역시나 해맑거나 순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웃음이었지만, 맹수 도령답게 듬직하기는 했다.

“호위를 붙여주지.”

“감사합니다.”

킨사나가 테밀시아를 찾아와 목적을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호위.

킨사나는 수도에서 조심해야 하는 몸이었다. 고아원의 ‘선생님’들은 행동반경 등을 훤히 꿰뚫고 있는 덕에 벌써 2년 동안이나 무사할 수 있었으니 제쳐놓고, 가닉 부부가 문제였다.

청월에게는 허접하게 당했지만 그건 그가 마스터여서고, 가닉부부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황성에 일자리를 알선할 수 있을 만큼 발이 넓고 영향력 있는 자들인 것이다.

킨사나가 수도를 떠날 생각이 아니었다면 결코 건드리지 않았을 인간들이다. 본의 아니게 수도에 돌아온 이상, 그리고 본의 아니게 청월 없이 움직이게 된 이상, 테밀시아는 킨사나의 안위를 책임져줄 의무가 있었다.

“보이지 않게 기사가 한 명 붙을 거다. 안심하고 다녀와라.”

“괜찮으시겠어요?”

얼마 전에 봤던, 은신한 채로 테밀시아를 호위하던 기사를 붙여주려는 모양이었다. 눈에 띄는 호위가 붙어 있으면 쓸데없는 마찰을 피할 수는 있지만, 내내 은밀히 움직이던 테밀시아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사실 테밀시아의 신변도 썩 안전한 것만은 아닐 텐데, 전력이 줄어도 괜찮은 걸까? 만에 하나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킨사나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테밀시아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떡였다.

“한 명 정도는 괜찮다.”

테밀시아의 곁에 기사가 몇 명이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킨사나가 본 것보다는 분명 많은 듯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잘 부탁한다.”

안심하고 돌아서려는 킨사나에게 테밀시아가 매우 진지하고도 정중하게 말했다. 그 옆에서 뮤비라도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테밀시아가 부탁한 것’을 잘해내주길 바란다는 의미의 인사였다.





킨사나 혼자서 오르세만 가를 나서는 것은 쉽지만 조금 번거로웠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오르세만 가에서 킨사나의 위치는 청월의 의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청월은 존경받아 마땅한 마스터이자 휴첼부단장이었다.

자, 이제 감이 잡혔을 것이다.

오르세만 가를 나오는 동안 마주친 기사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부단장의 의동생이 혼자서 외출하는 것을 걱정했다. 뭔가 사러 가는 길이라면 대신 사다주겠다는 기사도 있고, 오늘은 휴일이니 같이 가주겠다는 기사도 있고, 수도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위험을 늘여놓으며 대처방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것은 킨사나에게 용돈을 쥐어준 기사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호의에 감사해하면서도 겸손하게 거절하는 것은 열 살 미만 너구리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번거롭고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아, 물론 용돈은 매우 감사히 받았다.

그러다보니 오르세만 가를 나왔을 때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대 귀족의 저택이 있는 곳과 중저가대의 상가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킨사나의 입장과 산처럼 쌓여있는 숙제를 생각해봤을 때,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오는 것이 나을 테니까.

그리하여 킨사나는 예전에는 이용할 엄두도 못 냈던 영업용 마차를 탔다. 테밀시아가 붙여줬을 그림자 기사가 생각나긴 했지만, 평소에 테밀시아가 마차를 잘만 타고 다녔던 것을 보면 상관없을 듯했다.

영업용 마차에는 일정 노선으로만 이동하는 마차와 손님이 원하는 행선지로 가는 마차가 있는데, 후자가 더 비쌌다. 고로 전자의 마차를 탄 킨사나는 상가거리의 초입에서 내렸다. 이 안의 거리는 혼잡해서 걷는게 더 빠르기도 했다.

눈에 익은 거리를 걷다보니 곧 로레라자의 가게가 보였다. 가게 앞에는 매우 우울한 표정의 디윈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가게 입구를 막고 있으니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으응······.”

디윈은 고개를 무릎 사이에 박은 채로 끙끙거렸다. 대답을 하는 건지, 신음을 흘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킨사나는 천진난만함을 전면에 내세워서 디윈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척 지나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어디 아프세요?”

“······으응?”

재차 말을 걸고 나서야 디윈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우울함에 찌든 상태로 킨사나를 멍하니 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그를 알아본 듯 했다.

“아, 얼마 전에 왔던······. 어서 오세요.”

“많이 아프세요? 로레라자 씨를 불러올까요?”

만난 것도 몇 번 안 되고 말을 섞은 것도 몇 마디가 다이지만, 디윈이 로레라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훤히 보였다. 로레라자도 그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동업자 사이에, 가게 앞에서 우울하게 앉아있는데 나와 보지도 않는 것은 이상했다. 어쩌면 로레라자와 싸운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

디윈이 흠칫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보니 로레라자와 관계된 문제인 것이 확실했다.

킨사나는 놀라서 어깨를 움츠리며 기가 죽은 듯이 눈을 껌뻑이며 디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쭈그리고 있었기에 눈높이가 맞아서 표정에 더욱 신경을 써야했다.

“아······! 미, 미안해요.”

“예에······.”

킨사나는 여전히 시무룩한 모습으로 몸을 작게 움츠렸다. 디윈은 아이에게 소리를 친 것 정도로 미안해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모습으로 죄책감을 돋우면, 대답을 듣는 것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정말 아픈 거 아니에요?”

“예. 진짜 별거 아니에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역시나 디윈은 안절부절 하면서도 킨사나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아차 하며 물었다.

“로렐을 만나러 온 건가요?”

“헤헤헤.”

킨사나는 대답대신 순진하게 웃어보였다. 쑥스러운 듯이 시선을 피하며 볼을 붉히는 것은 옵션이었다. 매번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도 일이니, 이참에 어머니가 없는 어린 아이가 로레라자에게 정을 붙였다는 설정으로 나가볼까 해서였다.

“어쩌죠? 오늘 로레라자는 일찍 돌아갔어요.”

“예? 왜요?”

“그러니까, 그게, 갑자기 몸이······.”

핑계거리를 쥐어짜내는 것이 훤히 보였기 때문에, 킨사나는 얌전히 들어주는 대신 울상을 지었다.

“로렐도 아파요? 많이 아파요? 이제 맨날 누워있어야 해요?”

“그, 그게······.”

킨사나는 어머니를 병으로 여읜 아이처럼 눈물도 글썽여주었다. 이것도 다 디윈이 성격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수작이었다.

“아니요! 아주 건강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왜 없어요?”

여전히 훌쩍이는 킨사나를 보며 버벅거리던 디윈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도로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저 때문이에요. 서두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아, 이제 로렐 얼굴을 어떻게 보지? 괜히 청혼 따위를 해버려서. 로렐도 나한테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었나? 설마 이제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청혼! 둘이 결혼하는 거예요?”

대답하다말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다윈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킨사나가 반갑게 손뼉을 치며 물었다. 로레라자가 거절했다는 것은 디윈의 몰골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정보를 들으려면 상처를 들쑤시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쑤셔봐야 피도 안 나는데, 조금 쑤셔본들 어떤가?

“그러고 싶었는데······. 모르겠네요. 미안하다며 그냥 가버려서······.”

“그럼 거절한건 아니네요!”

“······그러게요. 거절은 아니죠?”

디윈은 그렇게라도 희망을 잡고 싶은 건지, 고작 열 살 미만 너구리의 말에 홀랑 넘어갔다. 그리곤 또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는데, 거기까지는 들을 필요가 없어보였다.

“전 아줌마 있을 때 다시 올게요!”

“그렇게 해요. 왔었다고 전해줄게요.”

“예! 헤헤!”

킨사나는 쑥스러운 듯 몸을 꼬다가 돌아서서, 경쾌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뛰듯이 떠났다.





골목을 꺾고 나서는 속도를 조금 늦추긴 했지만 킨사나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을 유지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상대가 없다고 바로 태세전환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었다.

디윈은 좋은 사람으로 보였고 로레라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로레라자가 디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면, 테밀시아는 그녀에게 관심을 끊을 것이다.

로레라자는 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카한세올와는 아무 접점 없이. 그편이 서로를 위해 좋았다.

하지만 끝까지 거절을 한다면······.

“킨?”

“······!”

곰곰이 생각에 잠겨서 걷고 있던 킨사나의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곧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갑게 돌아보았다.

“라야!”

“진짜 너네? 심부름 나온 거야?”

“그런 셈이지.”

마찬가지로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 이는 킨사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 에일라야였다.

지난 2년 동안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이리 연이어 만나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니지. 에일라야 쪽에서는 킨사나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간 적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킨사나가 오르세만 가에 들어갔으니 나름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어온 거고.

킨사나는 에일라야의 주위를 살펴보고 물었다.

“넌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거냐?”

“이 옷을 입고 있는 한 안전해.”

에일라야는 희극적으로 두 손을 펼쳐보였다. 하급 궁인에게 지급되는 깔끔하고 단정한 유니폼이었다.

궁내의 파벌싸움 따위에 말려들어가 제거되는 거라면 모를까, 궁인이 황성 밖에서 납치 또는 살해당하는 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황실에 대한 도전이자 도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기사까지 대동한 대대적인 수색대가 움직이고, 그렇게 찾아낸 범인은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에일라아의 유니폼은 그녀의 생명줄이자 방어막이자 힘이었다.

둘은 주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방향은 둘 다 같았다.

“그러는 너야 말로. 왜 혼자 움직여?”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킨사나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호위도 붙어있어.”

“시종한테 호위씩이나? 인심 좋네. 청월 경이 붙여준 거야?”

“아니. 테밀시아님이.”

“······!”

에일라야는 놀란 눈으로 킨사나를 보았다. 그리고 같이 목소리를 낮췄다.

“금안의 귀공자님과도 가까이 지내는 거야?”

“금안의 뭐?”

“금안의 귀공자!”

에일라야는 작은 목소리로도 재주 좋게 강세를 주었다.

“언니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있는데. 어쩌다 잠깐이라도 대화를 한 날에는, 하루 종일 여기저기 붙잡혀서 그분과의 대화를 하나부터 열까지 빼놓지 않고 전부 세세하게 말해주고 다녀야해. 하지만 두 번이나 연이어 대화를 하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하지. 그 귀한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하거든.”

“알 것 같긴 한데 모르고 싶은 세계구나.”

구구절절 떠드는 것에 비해서 에일라야 자신은 테밀시아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저 궁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억해둔 처세술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얻으면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아니야, 그 전에 받게 된 경로를 일일이 털어놔야하고, 만에 하나라도 정표로 판정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으니 위험부담이 너무 큰가?”

“그 전에 고위 귀족의 머리카락이나 피, 손톱 등은 함부로 유통하면 큰 일 난다. 특히 카르민 계층의 것이라면 법정까지 갈 것 없이 바로 처리될 거야. 만약 손에 넣더라도 절대, 절대 유통하면 안 된다. 들키지 않으면 소장까지는 괜찮겠지만, 그것도 걸리면 위험해.”

오늘의 너구리는 이 정도 암묵의 규칙쯤은 꿰뚫고 있었다. 황성에 들어온 지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에일리야는 아무래도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급 궁인이 고위 귀족들을 상대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라 이런 방면의 교육은 상대적으로 허술하기도 했다.

“쳇······!”

에일라야는 혀를 찼지만 딱히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녀에게 테밀시아는 하늘 위의 존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킨사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게 신기할 뿐이지.

킨사나는 에일라야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개인 물건이라고 보기에는 부피가 상당했다. 옷도 주지, 밥도 주지, 돈까지 주는 직장에서 에일라야가 사비로 사들일 물건이 저리 많을 리 없었다.

“이 거리에 황성에서 쓰는 물건을 팔아?”

“아니. 언니들 심부름.”

에일라야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 뒤에, 킨사나에게 부피 작은 장바구니 하나를 넘겼다.

“잘됐다. 와봐.”

그리고는 두 건물을 지나 있는 상점에 먼저 들어갔다.

아하!

킨사나는 일부러 무거운 물건을 들 듯 장바구니 아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작은 몸집을 더욱 작게, 그리고 연약하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막 상점 안으로 들어간 킨사나에게 에일라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많이 무겁니? 누나가 든다니까 고집은······.”

“괜찮아! 안 무거워!”

킨사나는 조금 가픈 숨을 내쉬면서도 씩씩하게 답했다.

“누나는 다시 바로 일하러 가야하잖아! 나도 도와줄 수 있어!”

“킨······.”

먹먹한 어조로 킨사나를 부른 에일라야는 이내 애써 웃는 얼굴로 상점 내의 진열장을 돌아보았다.

“그럼 같이 고르자. 이거 애나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아니.”

킨사나는 눈을 반짝였다가 이내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왜? 애나의 밀짚색 머리에 딱 어울릴 것 같은데.”

“안 어울려! 그러니까 애나꺼 말고 누나꺼 사.”

조용한 상점에 킨사나의 씩씩하고 기특한 말이 뚜렷이 울렸다. 상점의 주인장은 기특함 반, 안쓰러운 반의 눈으로 킨사나를 보고 있었다. 즉, 미끼를 덥석 물었다.

킨사나는 고집스러운 얼굴로 재차 말했다.

“아니면 연고라도 사. 신입이라고 찬물 빨래만 시킨다면서. 다 부르터서 피까지 나고.”

“그걸 네가 어떻게······.”

“다 들었어! 다 알아!”

“괜찮아. 처음에만 그랬지, 이젠 다 나았어.”

그러면서도 에일라야는 두 손을 꼬물거리며 뒤로 숨겼다. 킨사나에게는 보이지 않고, 주인장에게는 보이는 각도였다.

킨사나의 말대로 에일라야의 두 손은 거칠게 부르튼 상태였다. 킨사나도 에일라야의 상태를 확인하고 던진 말이었다. 물걸레질과 빨래 등을 하다보면 따로 관리를 하지 않는 한 이리 되는 것이 당연했다.

주인장의 시선이 에일라야의 손에 닿는 것을 확인한 뒤에, 킨사나가 말했다.

“저번 달에는 수잔 선물 샀잖아. 누나도 생일이었는데······.”

“어머! 내 선물은 너희가 줬잖니?”

일부러 명랑한 척 말하는 에일라야에게 킨사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고작 꽃반지일 뿐이잖아. 그까짓 거······.”

“쉿! 고작이라니. 얼마나 이뻤는데.”

에일라야는 킨사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에, 주인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곤 작은 지갑을 두 손으로 꼭 쥐고는 애써 웃어보였다.

“이 반지 얼마에요?”




나란히 길을 걸으며 킨사나가 말했다.

“언니라는 사람들이 심부름 시키면서 돈을 적게 주냐?”

“아니, 딱 제 값을 줘. 심부름 값은 없을 뿐이지. 휴일이면 심부름 다니느라 시간을 다 쓰지. 지금 산 게 마지막. 이제 들어가야지.”

“고생이 많네.”

“대신 차액이 쏠쏠해.”

“보람이 많네.”

킨사나와 마찬가지로 에일라야도 흥정에 능통했다. 그 차액을 꿀꺽할 수 있다면, 열정과 성의를 다하여 팍팍 깎았을 것이다.

“아쉽다. 처음부터 널 만났으면 더 짭짤했을 텐데.”

“적당히 해.”

“당연하지.”

킨사나는 영업용 마차가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골목에 접어들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

에일라야는 놀란 얼굴로 킨사나를 보았다. 킨사나도 자신이 한 말에 놀라서 잠시 굳었다.

곧 에일라야는 씩 웃으며 답했다.

“그래. 다음에 봐.”

“······그래.”

둘은 처음으로 나중을 기약하면서 돌아섰다.

그리고 에일라야는 큰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괜한 쑥스러움에 걸음 속도를 높이다가, 흠칫하며 멈춰 섰다.

“아! 내 장바구니!”

좀 전에 킨사나에게 넘긴 채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서 상점에 나와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짓이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돌려받을 생각이었는데, 둘 다 처음해보는 작별 인사에 정신이 팔려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바로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에일라야는 왔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갔다.

“킨! 장바구니가 너한테······!”

골목길에 접어서자마자 급히 외쳤던 에일라야는 우뚝 멈춰 섰다.

“······어?”

에일라야의 장바구니가 입구 부근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귀중품 없이 여성용품만 들어 있던 장바구니지만 킨사나가 함부로 내던지고 갈 리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벌써 골목을 벗어났을 리 없었다.

“킨······?”

길게 뻗어있는 골목 어디에도 킨사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메리 크리스마스~>ㅁ<~



기다려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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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회귀의 장-104 +85 12.06.04 16,399 256 19쪽
103 회귀의 장-103 +144 12.04.19 16,661 25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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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귀의 장-92 +111 11.07.20 21,737 262 13쪽
91 회귀의 장-91 +230 11.06.26 23,921 266 15쪽
90 회귀의 장-90 +105 11.06.25 20,689 232 12쪽
89 회귀의 장-89 +157 11.05.20 23,602 23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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