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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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정호성이 휘날두의 프리킥을 막았다.
골키퍼의 반대편 골대 근처에 있다가 막았다.
프리킥 시 수비 선수가 골대 부근에 서서, 킥을 막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위협적인 키커가 프리킥을 할 때는, 상대 팀 수비수들이 골 라인에 위치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먼저 오프 사이드 전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비수가 골 라인 근처에 있으면 그만큼 상대 팀의 선수들이 앞으로 나아가 위치할 수 있기에 수비가 더 까다로워지는 결점이 있다.
그리고 상대 선수를 밀착 수비할 수 없다. 프리킥 시 공격 팀의 선수들은 보통 골문 앞쪽에 위치한다. 키커의 패스를 받아 득점을 노리거나, 키커가 직접 슈팅을 했을 때 수비 벽에 차단되거나 골키퍼에게 선방을 당했을 시 튕겨 나오는 공을 혼전 상황 속에서 차지해 역시 또 득점을 노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수비 팀의 선수가 골대 근처에 있다면, 그만큼 공격 팀의 선수를 막기가 수적으로 부족해진다.
마지막 세 번째, 골키퍼를 오히려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프리킥 시, 수비 벽과 선수들의 위치는 거의 전적으로 골키퍼의 뜻을 따른다. 어쨌든 직접 프리킥은 골키퍼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골대 반대편에 팀 동료가 있다면 오히려 키퍼가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호성은 골대 부근에 위치했다가는, 휘날두의 프리킥을 놀라운 동작으로 막아 냈다.
우선 그가 수비벽 쪽에 있거나 다른 상대 선수를 마크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휘날두가 무조건 슈팅을 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휘날두는 원래 프리킥 때 패스를 잘 하지 않는다.
워낙 자신감이 있는 선수인 데다 실제로 실력도 받쳐 주고, 과거 프리킥 골 경험이 너무도 많기에 패스보다는 슛을 할 성향이 훨씬 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경기, 휘날두는 작정하고 나왔지만 정호성에게 거의 압살 당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었다. 슛, 무조건 슛이었다.
그래서 호성은 골대 부근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위치를 잡았다고 프리킥을 막을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수비 선수는 골키퍼가 아니기에 손을 쓸 수 없다.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고는 해도 프리킥이 워낙 빨라, 공을 제대로 막기까지 엄청난 감각과 신체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냈다, 정호성은 해냈다.
심지어 공이 골대 사이드 상단 쪽으로 빠르게 와 역시 손을 쓸 수 없고 헤딩으로 차단하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그는 점프 후 몸을 기울여 다리로 막아 냈는데.
일명 아크로바틱이었다. 축구 선수들은 때로 곡예를 하듯 공중에서 몸을 기묘하게 돌리고 움직이며 패스 또는 슛을 한다. 물론 워낙 고난도의 동작이라 주특기처럼 반복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기본 실력은 물론 유연성과 집중력 등 여러 능력이 꽤 받쳐 줘야 한다.
한데 그런 동작을 호성이 축구 선수가 된 이래 처음으로, 그것도 완벽하게 하며 휘날두의 프리킥을 막아 냈다.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호성.
자신이 지금 휘날두의 프리킥을 그런 고난도의 동작으로 막아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해당 동작이 그로서는 무척 자연스러웠다.
“됐다.”
호성은, 그렇게 짧게 한마디 하고서 전방으로 달려간다.
동료 선수들은 호성에게 다가와 그런 그를 가볍게 툭툭 치고 칭찬한다.
“호성.”
이내 뇨이마르가 다가와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지?”
“뭐가?”
“그러니까, 묘기를 하듯 프리킥을 막았잖아!”
“흠.”
뇨이마르도 물론, 세계적 선수답게 그런 고난도의 동작으로 슛을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해당 동작을 응용해 수비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블로킹 위드 베리 디피컬트 무브먼트!”
하고서, 역시 짧은 영어 실력을 자랑하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뇨이마르.
“···뭐? 디피컬, 뭐?”
호성은 순간 초희에게 배운 단어 중 디피컬트의 뜻이 떠오르지 않아 헷갈린다.
분명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아.”
그러다가는 입을 연다.
“더럽다고? 뭐? 내가 더러워?”
디피컬트와 더티를 헷갈리는 호성.
자신을 칭찬하는 뇨이마르에게 인상을 쓴다.
“아니, 아니!”
뇨이마르는 자신의 영어가 호성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사실,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뇨이마르는 이내 다른 단어를 떠올린다.
“아, 판타스틱!”
“···!”
“판타스틱 무브먼트! 유 디드!”
“하하하하!”
그제야 호성은 웃는다.
“내가 킹왕짱이라 이거지?”
“그래, 그래!”
“으하하!”
호성은 사실, 칭찬에 좀 약하다.
그렇게 호성은 입이 양 귀에 걸렸고, 뇨이마르는 그런 호성을 보며 즐거워한다.
한편 이 모든 모습을 휘날두가 필드 한편에서 잠자코 바라본다.
“···”
그리고 더 이상 흥분도 분노도 하지 않는다.
체념이었다. 휘날두는 놀랍게도, 체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순간, 정호성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계속된 공격 실패에 반쯤 자포자기를 할 즈음, 회심의 프리킥 찬스가 찾아왔다.
이거였다. 이거만 득점으로 만들면 다시 분위기가 바뀌고, 그렇게 호성을 상대로 2라운드 대결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완전히 패배했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는 호성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이전처럼 그를 뒤쫓지 않았다.
호성을 이기고자 하는 그 모든 시도가 더 이상은 소용 없다는 것을, 휘날두는 경기 말미에 겨우 깨달았다.
*
으하하!
기분이 좋다.
휘날두 새끼의 프리킥을 막고 우리 팀은 재차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웬걸, 휘날두가 나를 안 따라오네?
오늘 경기 내내 나를 의식하며 신경전을 펼쳤던 휘날두가?
심지어 뒤를 슬쩍 돌아보니 표정도 평소와 다르게 침울하고, 결정적으로 오프 더 볼에서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그리 열심히 뛰고 있지도 않다.
뭐지 저 새끼? 똥 마려운가?
하여간 나는 모처럼 자유롭게 전방을 향해 질주했고.
이내 동료들은 익숙한 플레이로 내게 공을 돌린다.
간만에 내가 전방에서 공을 잡았다.
머릿속 미니 맵이 번쩍거린다. 정확히 스물두 개의 점이, 우리 팀은 물론 상대 팀을 포함해 스물두 개의 점이 사정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육안으로도 주위를 둘러본다.
그런데 한순간 나는 깨달았다.
상대 팀, 그러니까 알 야스르의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스코어는 2대0, 경기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은 상황.
알 야스르의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던 휘날두의 프리킥이 나로 인해 좌절됐다.
결국 그들은 희망을 모두 잃었고, 벌써부터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이런 상대 팀이, 낯설지는 않다.
작년 한국 프로 리그에서부터 꽤 경험했거든.
압도적인 실력 차로 점수를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끝나는 시간이 가까이 오면 상대 팀은 이런 식으로 의지를 상실하고는 한다.
물론 라이벌 매치나 중상위권 강팀은 잘 안 그러고, 보통 하위권 팀들이 자주 이런 모습을 보인다.
패배가 익숙한 거다.
그런데 지금, 비록 승점 차가 크기는 하지만 리그 2위로 우리를 나름 추격하고 있는 알 야스르가.
더군다나 리야드 더비 매치에, 무엇보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휘날두가 뛰고 있는 알 야스르가.
우리를 상대로 의지를 잃었다.
이에 오히려 내가 조금 허탈해졌지만, 어쨌든 경기는 경기.
나는 상대가 어떻든 봐주지 않는다. 필드 위에서 만났으면 끝까지 조져 놓아야 속이 풀린다.
그리고 그것이 스포츠 세계에서, 오히려 상대를 향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라?
새끼들이 나를 안 막네?
물론 내가 패스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고.
올 시즌 우리 팀 구단주인 찐 왕자께서, 어시스트 한 방에 1500만 원을 내 계좌에 꽂아 넣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를 안 막아? 이렇게 내가 패널티 박스 가까이 왔는데도?
에라이, 새끼들아.
펑-!
나는 곧장 공을 강하게 찼다.
옜다, 슈팅.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내 발끝에서 공중으로 뜬 공은 빠르게 회전하더니.
가뜩이나 그다지 뛰고 싶어하지 않는 알 야스르의 수비수들 곁을 지나쳐 골키퍼 옆 골대 안쪽으로 들어간다.
철-썩!
골이었다. 나는 그렇게 중거리 슛으로 쐐기 골을 알 야스르의 골문에 박아 넣었다.
“와아아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심이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
3대0. 우리는 이겼다.
완벽하게 이겼다. 내 전략대로 휘날두를 묶어 두니, 알 야스르는 이렇다 할 공격을 선보이지 못했고.
반면 우리 팀은 평소처럼 공격을 효율적으로 진행해 세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사실 휘날두를 막는 게 잘 안 풀리면, 지난 경기처럼 한 골 먹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된 일이다.
경기를 마치고, 나는 동료들을 따라 라커룸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휘날두였다.
뭐냐, 얘. 하, 이젠 좀 진짜 지겹다.
“호성.”
휘날두는 말한다.
“널 인정한다.”
“···뭐라고?”
휘날두가 영어를 하는데, 나는 모르는 단어를 말한다.
“널 인정한다, 호성.”
하고서 내게 오른손을 내미는 휘날두.
“내 후계자로.”
“···”
나는 여전히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놈이 악수를 청했으니 천천히 나 또한 손을 내밀려고 하는데.
“세컨드 휘날두.”
“···!”
“호성. 유아 세컨드 휘날두.”
뭐, 이 새끼가.
누가 네 세컨드 하고 싶대?
나는 앞으로 나가고 있는 오른손을 즉각 왼손으로 제지하고서 입을 열었다.
“셧 더 마우스.”
“···!”
“퍽 오프, 유 동키.”
하고는 녀석을 지나쳐 걸었다.
인마, 네 놈의 시대는 갔다니까, 뭔 세컨드 휘날두 이러고 있어. 그냥 졌으면 졌다고 하면 되지.
“···”
휘날두는 우두커니 서 있고.
그렇게 나는 경기장을 떠났다.
*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삼촌, 그 아저씨 혼내 줬어?”
초희가 나를 보고 말한다.
“누구?”
“그때 그 아저씨! 방송에서 영어로 삼촌 무시했던 사람!”
“아, 휘날두?”
하고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튜브에 접속했다.
아이튜브에는 요즘 새로운 영상이 퍼져 나가고 있다.
바로 ‘휘날두의 두 번째 굴욕’이라는 영상이다.
“봐 봐, 이거. 이 사람 누구야?”
“어, 삼촌이다!”
초희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 그리고 이 사람. 이 사람은 누구야?”
“···그때 그 아저씨네! 나쁜 아저씨!”
초희의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어둡다.
“그렇지.”
하지만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영상 속에서는 지난 알 야스르와의 경기가.
그러니까 정확히 하면 휘날두가 나를 상대로 번번이 공격을 실패하고 좌절하고, 나는 반면 녀석을 옆에 두고 거침 없이 공격을 해 도움은 물론 득점까지 하는 모습이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경기가 끝나고 내가 라커룸으로 향하는데 휘날두가 나를 가로막고 뭐라고 말하고는 악수를 청하고.
나는 그 악수를 거절하고서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이 있다.
휘날두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이게 바로 저번 ‘휘날두의 굴욕’이라는 첫 번째 영상보다 훨씬 길고 반응도 폭발적인 ‘휘날두의 두 번째 굴욕’이라는 화제의 영상이다.
“하하하, 어때, 초희야?”
초희가 어느새 다시 생글생글 웃고 있다.
역시, 내 조카. 웃는 게 예쁘다니까.
“삼촌이 혼내 줬어!”
“그렇지?”
“응! 제대로 혼내 줬어!”
하고서 초희가 만족한 모습으로 나를 안는다.
이제 아이는 키가 꽤 커서 내 허리 가까이 팔이 닿는다.
“으하하!”
나는 기뻐서 크게 웃었다.
“삼촌 기분 좋으니까.”
“응?”
그리고 결정적으로 초희는 이제.
“초희가 해 주는 라면 먹고 싶네?”
라면을 끓일 줄 안다. 그것도 혼자서.
“아, 정말?”
“그럼.”
물론 안전 차원에서 내가 계속 보고는 있지만, 하여간 제법, 얼추, 맛있게 초희는 라면을 끓인다.
언젠가 또 내가 해 준 라면을 먹고 있던 초희가, 자기도 나한테 라면을 끓여 주고 싶다고 해서 이뤄진 일이다.
“그러면 기다려 봐!”
크흐흐, 기특한 녀석.
“금방 끓일게, 삼촌!”
“그래, 그래.”
달달하구나. 축구도 라이프도 참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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