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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WG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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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09.08.16 09:43
최근연재일 :
2009.08.16 09:43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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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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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글자수 :
330,864

작성
09.02.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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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WGRS - 제 5장(8)

DUMMY

"…나 옷 좀 갈아입으면 안 될까."

잠시간의 침묵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리야는 응, 대답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옷을 들고 방에서 퇴장해주었다. 아무도 없는 방이 있을 테니 그 중 하날 잡고 갈아입지 뭐.

……곧 갈아입고 왔다. 밖에서 잠깐 둘러본 바로는 방들이 꽤나 많고 집 안이 무척 넓다는 것과 메이드가 상당수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꽤나 인상적인 풍경이라 넋을 잃고 쳐다보던 순간 내가 여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을 방을 찾았는데 아무도 날 수상쩍게 보지 않았다. 이거 조금 슬프군. 그렇게 여장이 어울린단 말이냐.

아무튼 아리야는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 내게 바로 한 마디 했다.

"진호. 오늘 자고 가면 안 될까?"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아리야에게 감격을 느끼는 동시에 약간 당황하였다. 자고 가라니? 대충 늦어질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늦어지게 될 줄이야.

"……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조금 무서워서…."

그렇게 중얼대는 아리야가 왜 이리 연약해 보였던 걸까. 그 마음에 덜컥 허락해버렸다.

"알았어. 자고 가마."

집에는 따로 연락해 둬야지.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뻥쳐야겠다. 물론 이러저러한 잔소리는 각오하여야겠다.

"고, 고마워."

아리야는 인사를 한 뒤 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웅크린 채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하아…."

그러면서 길게 내뱉는 한숨. 나는 이런이런, 고개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날마다, 거의 날마다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왔어."

응? 문득 아리야가 한 마디 꺼냈다.

"집이든, 학교든 말이야. 특히 아버지가 쓰러졌을 땐 제일 심했어. 하나같이 더러운 마음을 품고 더러운 시선으로 날 봤어.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긴 했지만 아까의 제리 녀석도 그렇고 찾아오는 녀석이 있긴 있을 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무서웠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충은 알겠다. 나는 처음 아리야의 방에 출입했을 때를 떠올리며 끄덕였다. 진래나 미젠다나 나라와 이에 대해 이야길 나눈 적은 있었는데 아리야 녀석이 이렇게나 무서워했다니.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역지사지란 말이 왜 존재하겠는가,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오늘은 그래서 고마웠어. 아니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아."

그러냐? 그렇다면 나야 영광이다.

"…………."

내 인삿말에 침묵을 지키는 아리야.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저 녀석은 저대로 자버릴 생각이고…

살며시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옷장이 발견됐다. 바닥에 이불이라도 펴야겠다. 맨 바닥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방이 꽤나 많던데 하나쯤 빌려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리야 녀석이 불평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핸드폰 시계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리야는 침묵만이 감돈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어찌됐든 별 걱정은 하지 마라. 나 말고도 널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뭣하면 ISPO에게 경호라도 맡겨볼까? 내 능력으론 안 되지만 충분히 진래 씨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은데."

반은 농담을 섞어 말하며 크큭 웃었다. 아아, 그나저나 양복 입고 자기엔 무지 답답하군. 나는 재킷과 넥타이를 풀어 해쳤다. 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그냥 자리에 누웠다. 마음 같아선 바지도 벗고 싶었지만 그건 실례다.

"흐음."

조그맣게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자고 가라는 말에 바로 자버리는 나 자신이 약간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할 걸까. 잠이나 자자. 오늘은 잠이 금방 올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꿈에서 가끔 등장하는 가면녀석 때문에 기분이 뒤숭숭하긴 하다.

뭐, 뒤숭숭이든 뭐든… 피곤하다. 나는 곧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누구나 그러듯 자다 일어날 땐 문득 눈을 뜨기 마련이다. 그렇게 눈을 떠버리면 왠만한 잠꾸러기가 아니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편이라 나는 살짝 떠신 눈을 다시 감으려 했지만 이미 깨어버린 몸이 뇌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툴툴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이고 오늘도 학교를 가야 하는 건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러다가 뭔가 어설픈 감촉을 느꼈기에 나는 깜짝 놀라며 이불을 걷어냈다.

"아으응…."

짜증내는 얼굴로 신음하는 아리야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녀석은 잘 때도 얼굴을 찡그리는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어제 침대에서 잠자릴 했을 녀석이 왜 내 옆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냐는 거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해볼 새도 없이 대뇌에서는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분명히 이 녀석은 자존심은 쓸데없이 세서 잠에서 깨고서 내가 던지는 의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을 게 분명하고 쓸데없는 표현을 갖다붙이며 나를 짜증나게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지."

나는 푹 한숨을 내쉬고 잠꾸러기 꼬마 아가씨를 번쩍 들어올렸다. 별로 무겁지 않았다. 음, 그나저나 누군가 너 왜 이렇게 태연하게 구냐고 물을지도 몰라 한 마디 하겠다. 여동생이 있는 몸으로서 너무 익숙할 뿐이다. 별 생각도, 흑심도 없으며 무의식도 아니다. 익숙할 뿐이다. 이런, 내가 말하고도 변명같군.

아무튼 아리야를 침대에 눕힌 다음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보며 기억에 남아있는 보건실의 창가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어젖히며 메이드 줄리아 씨가 들어왔다.

"………."

어찌된 일인지 침묵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줄리아 씨. 왜 그러시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푸풋 웃더니,

"결국 한 건가요?"

"무슨 소리세요? 하나 같이 하는 말들이…"

"아, 죄송해요. 실례 했네요. 전 아가씨를 결코 그냥 애로 안 보거든요. 산전수전 다 겪은 신선이시죠. 그렇죠."

그렇겠지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런데 좀 씻고 싶네요. 세면대는 있겠지요?"

약간 건방진 질문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벌써 내뱉었다. 줄이라는 그런 나에게 물끄러미 시선을 던지다가,

"맞은 편에서 씻고 오세요."

고맙습니다.

잠시 후, 볼 일을 마무리한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방에 돌아왔다. 아리야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이 녀석, 생각 보다 잠꾸러기네. 여동생보다 더하다.

"원래 스스로 일어나시곤 하는데 오늘 따라 왠지 푹 주무시네요."

스스로 일어난다면 칭찬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저렇게 자는 걸 보니 안심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아가씬… 언제나 불안해하셔서 말이에요."

"안심이요? 소고기는 아닐 테고 왜 안심하죠?"

시도때도 없이 고개를 드는 내 농담 개그에도 줄리아는 별 대꾸 없이 후훗 미소를 유지했다.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할 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집에서도 제대로 안심하질 못하는 아리야 녀석에게 동정의 한 표를 던져줄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림이든 사진이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좋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던 아리야는 얼마 안 가 눈을 떴다. 아마 일어나마자 맨 먼저 했던 말이,

"으흠, 이런."

무슨 의미인지 프로이드 박사에게 의논을 하고 싶을 만큼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진 않았다. 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회종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이쯤이면 이미 학교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나는 아리야를 재촉하기로 했다.

"어이, 학교 가야지?"

그러자 아리야는,

"옷 갈아입게 나가!"

라고 소리치며 나를 뻥 찼다. 아야, 아파라. 줄리아는 아리야의 시중이라도 드는지 안에 남았다. 나도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문에 기댄 채 약간의 여유를 부리는데 그새 옷을 갈아입은 아리야가 안에서 나왔다.

"가자."

"오냐."

잘 갔다 오라고 배웅을 해주는 메이드 줄리아.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오늘은 김대범 씨가 없구나 생각하는데,

"이거 타고 가자."

날 잡아 끄는 아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순순히 따랐다. 뭘? 바로 눈앞에 자그마한 전차가 있더라고. 그걸 말이다. 개인 전차라… 왠만해선 구경하기 힘든 사치일 것이다.

나는 어정쩡한 기분으로 이런 걸 타도 될까 고민하면서도 결국 아리야를 따라 탔다. 레일이 학교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전차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시니?"

탑승 이후로 침묵이 이어지기에 그냥 한 마디 했다. 아리야는 힐끗 날 쳐다보고는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글쎄, 난 별로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도 않아."

이거 좀 심각한데 그래. 속으로 찔끔하며 지뢰를 밟았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말을 잇는 아리야.

"엄마는 아버질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것 같아."

…………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었지. 엄마와 아버지는…"

국경 초월?

"몰랐어?"

그런 것도 몰랐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날 노려보는 아리야. 무슨 소리냐? 그 눈초리는 뭐고.

"바보. 아버진 영국인이시고 엄마는 한국인이야."

그랬었구나. 짐작도 못했다.

"정말 바보네."

바보라서 미안하다. 하지만…

"하지만?"

고개를 갸웃하는 아리야.

"혼혈인게 뭐 어때서? 아무렇지도 않아."

"으, 음... 뭐,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냥 말한 거야."

나는 가볍게 웃으며 아리야를 따라하는 차원에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인데 정말 일상을 벗어난 현실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달 전에는 꿈도 못 꿀 일상이었다. 아니, 지금이 행복하고 풍족하다, 이런 뜻은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판타지 소설 책에서 나오는 온갖 모험을 겪는 주인공이 부럽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 생각일 뿐이다. 전혀 안 부럽다.

이윽고 전차는 학교에 도착했다. 위치를 확인한 결과 여긴 학교의 후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에드워드가 가끔 보이곤 하던 벤치와는 정 반댓 반향. 내가 등교하면서 못 볼만도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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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완결까지 가려면 아직 여정이 많습니당...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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