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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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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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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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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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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DUMMY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아마도 지금쯤이면 남양에 소식이 닿았을 것입니다.”


대리국 내각 대학사 송헌책이 고하는 말에 대리국 국왕 임경업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식은 닿았으나 그저 소식만으로 끝나서야 곤란하겠지.”

“물론입니다. 이미 성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이며 시설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르면 내주에는 적어도 수천이 사용할 화포며 화약이 전해질 것입니다.”

“수천이라.”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순나라에서 요구한 것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니 임경업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화약보다 조총 보내는 일을 우선하면 어떻소?”

“화약이 없이 그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게 더 간단하고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숫자를 갖추고 싶은 게 장수 된 자의 마음이며 바람이요. 그러니 조총을 더욱 우선하여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확실히 그렇소이다.”


제가 섣불리 말하였다는 걸 선선히 인정한 임경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바꾸었다.


“가능한 화약을 준비하여 보내고 조총 역시 계속하여 노력하여 적어도 최대한 빨리 순나라 사람들을 무장하도록 하시오. 그들이 당하면 그 후에 곤란을 당하는 것은 대명이 될 터이니 말이오.”

“대리국이 아니라 말입니까?”

“대명 천하는 남경과 그 주변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외다.”


무얼 당연한 이야기를 묻느냐고 하는 듯한 반문에 송헌책은 참으로 그답다고 여기며 화제를 바꾸었다.


“이로 인해 전쟁이 일단락 되기만 하면 대리국은 순나라를 상대로 큰 이득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돕는 일에 공짜라는 말은 환상 속의 환상이니 당연하게도 이번 일에 대리국은 그저 같은 번국이라는 이유로 더욱 힘을 써 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 대리국 사람들은 자유로이 순나라에 갈 수 있으며, 몇몇 거주지를 얻을 수 있으니 이는 향후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통행이라. 그것이 정말 그렇게나 도움이 되겠소?”

“당연합니다. 그 증명은 이미 한 나라가 해낸 바가 있으니 자유로운 통행함은 분명 힘이 됩니다.”


이미 증명된 바가 있음을 주장하는 말에 임경업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 그는 진중한 얼굴로 충고했다.


“그저 다니기 좋은 곳이라 하면 흥하기보다는 먼저 화를 당할 수도 있소이다. 이 역시 증명된 바가 있으니 부디 대학사는 유념하시오.”

“물론입니다. 사방에 통함은 이득이며 위험이니 항상 기억하여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확실하니 이번 거래는 분명 제대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자부합니다.”

“중심이라.”


송헌책이 하는 말은 대단히 당차며 포부 가득한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대명 천하를 위해 살았고 이제는 대리국 국왕 자리에 앉은 임경업은 그 말에 회의적이었다.


“대학사의 말은 알며, 그대의 뜻도 알겠소. 하지만 천하 지도를 펼쳐 보면 어느 쪽이든 그저 바깥에 있을 뿐이니 중심은 멀고도 먼 이야기라 여깁니다.”

“지금은 바깥이지요. 지금은 말입니다.”


지금을 논한 송헌책은 슬쩍 사방 눈치를 살펴 사람의 눈이며 귀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다음 대가 되면 이것이 크게 달라질 거라 자신합니다. 그러니 이번 순나라와의 거래는 실로 서로에게 이득입니다.”

“이득이라.”

“이득이지요. 저들은 당장을 얻었으며 우리는 나중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송헌책의 말을 차분히 곱씹은 임경업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허나 그 나중이라는 건 이 사람이 보기는 어렵겠지요.”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물론 전하께서 지금이라도 뜻을 달리하시면 반드시 그 전모며 시작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 나는 이미 대리국을 시작하였소. 그리고 대명이 기울어 쓰러지는 것을 막았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며 이상은 바라지 않소. 전에 말하였듯,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소망이오.”


자신이 어떠한 소망을 품고 있는지 확실히 한 임경업은 이 화제에 대해 더 나누지 않겠다고 하듯 말을 살짝 바꾸었다.


“이번 전쟁은 대명과 세 번국이 치르는 첫 합동전이오. 응당 조력에 소홀함이며 미진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 말씀은 실로 아름답다고 하겠습니다.”


말을 받으며 칭송하는 거 같은 대답이었으나 임경업은 송헌책이 그런 뜻만 품고 말하지 않았음을 알고 물었다.


“그것이 끝이오? 대학사께서는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여겼소만.”

“하하, 거리낌 없이 말함은 물론 제 특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특기 하나를 더 가지고 있으니, 말할 시기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아픈 말이며 좋지 않은 때가 많았던 거 같은데 말이오.”


임경업이 반쯤 농을 섞어서 이르는 말에 송헌책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때가 아니면 대답할 생각이 들지 않거나 회피하고 싶어지는 물음들이었습니다.”

“이거 참.”


당할 도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고개를 흔든 임경업은 송헌책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이러니 내 대학사께서 다음에는 무슨 말로 날 어렵게 할지 두렵다니까요.”

“두렵기만 하십니까?”

“······글쎄.”


대답을 회피하는 반응에 송헌책은 더 캐어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물음을 입에 담았다.


“전하, 솔직히 말하면 한 가지는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래, 무엇이오?”


임경업이 어디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물으니 송헌책은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이 일은 분명 저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최종적으로는 전하의 허락을 받았나이다.”

“그렇지요.”

“전하께서는 순나라를 염려하지 않으십니까?”

“순나라를 염려하지 않느냐고?”


송헌책이 물은 것을 잠시 곱씹은 임경업은 이내에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칼을, 아니 조총을 거꾸로 겨눌 것을 걱정하시는 게로군?”

“저는 적어도 거래가 파하기 전에 전조가 있을 것을 알고, 또 그에 대한 대책이며 경계하는 법을 고려한 바가 있습니다. 헌데 전하께서는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렇고 이번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이상하게도 아무런 걱정을 품지 않으신 듯이 들립니다.”


여기까지 말한 송헌책은 진중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순나라를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들은 태생이 그러하니 결국 명나라와 끝까지 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노리고자 하면 어느 순간에는 후방을 평정할 생각을 할 것입니다. 늦건 빠르건 말입니다.”

“먼저 주장한 사람이 그리 걱정을 하다니, 재밌는 일이오.”


재밌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 임경업은 바로 말을 이었다.


“화약과 병기며 양곡을 우리가 주지 않으면 오기 힘들다느니, 아니면 이 사천은 천혜의 요지며 방어에 용이하여 침공하기 어렵다는 말은 치워두고 생각해 봅시다.”


자신감의 근간으로 볼 수 있는 사실들을 다 제하고 생각하자는 말에 송헌책은 살짝 당황했다.


그에 임경업은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대학사, 아니 선생. 그대는 순나라의 근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왕과 신하가 아니라 전에 있던 관계, 객인과 선생이라는 관계로 돌아가 논해보자는 말에 송헌책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자성이라는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실패하였음에도 일어나 다시금 민란을 일으키고 이제는 왕이라 이름하여 나라를 세운 걸출한 영웅 말입니다.”

“하하하!”

송헌책이 한 대답을 들은 임경업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송헌책이 자못 궁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니 임경업은 이내에 웃음을 그치고 입을 열었다.


“방금 답을 말하였건만 간과하다니, 선생답지 않습니다.”

“예? 답을 말하였다?”


당황하여 반문한 송헌책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민란이 순나라의 근간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 나라의 근간이니, 그 민란을 일으킨 이들을 설득하여 전쟁에 다시 나서게 할 생각을 품지 않는 한 순나라는 대리국에 올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임경업은 확신을 가득 담아서 말을 덧붙였다.


“저들은 결국 먹고 살기 팍팍하여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마음으로 일어난 이들이외다. 그런 이들이 과연 당장의 안정과 평안이 있는데 그걸 버린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특히나 그 안정과 평안을 흔드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과연. 그것은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리국은 아니라도 남경을 향하여 적대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응징할 뿐이오.”


주저 없이 돌아오는 대답에 송헌책은 임경업이 실로 기이한 인사라 여겼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순나라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지 모르며, 혹은 시간을 들여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게 근간이 되는 것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은 당장에 대한 것이니 적당하지 않으며 고려할 이유도 없습니다.”


딱 잘라서 단언하는 말에 송헌책은 묘한 얼굴이 되었다.


전에 했던 말, 임경업이 자신이 죽은 후에나 도모하라고 하였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전하께서는 대단히 현재지향적이시군요.”

“글쎄, 그건 모르겠소이다. 현재만 중요하게 여겼다면 과연 이 사람이 여기까지 왔을까 싶소이다.”

“그것은 또 그렇군요.”


그 말이 맞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인 송헌책은 돌연 떠오른 생각에 빙그레 웃었다.


“떠나왔지만 쫓아온다. 실로 재밌는 일입니다.”

“쫓아온다?”

“조선을 떠나 명나라에 적을 두시고 이제는 사천에 자리하였으나 조선 사람들은 다시금 찾아와 과거를 묻고 있지요.”


송헌책이 이르는 말에 며칠이면 도착할 사람들에 대해 기억한 임경업은 쓰게 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선생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걸 너무 잘하시오.”



***



“조선에서 온 승문원 교리 임관일이라고 합니다. 조선을 대표하여 소통하는 이로 당분간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전 의주 부윤이시며 전 사천 총독 그리고 현 대리국 국왕이신 전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다소 장황한 호칭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임관일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임경업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물었다.


“종씨인가?”

“어디선가 얽힐 수는 있겠으나 임씨가 적지 않으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리를 두는 말에 임경업은 임관일이 자신을 다소 적대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니, 억누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그래.’


나라와 나라를 대표하여 만나는 자리가 지금 자리니 어지간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공적인 태도를 보여야 마땅했다.


또한 승문원 교리라고 하면 품계는 종5품이니 높다고 하기 어려우나 임관일의 나이며 이곳에 파견된 자리의 중함을 생각하면 능히 그만한 수완이나 경험, 혹은 그 양쪽을 모든 갖춘 인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자신을 향한 거리낌이며 적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니 임경업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물었다.


“의주 부윤이라. 오래전에 내려놓은 직책을 지금에 와서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나. 의주 출신인가?”

“그러합니다.”

“허면 나를 아는가?”

“압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상반된 두 가지 대답은 얼핏 들으면 그저 횡설수설하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지금 대답에 담긴 확고한 뜻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니 임경업은 두 가지 모두 임관일의 대답이라고 여겼다.


이에 호기심이 샘솟은 임경업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돌연 물었다.


“그대에게 나는 누구요?”

“대리국 국왕이십니다.”

“그것뿐이오?”


다시 캐어 물으니 임관일은 잠시 주저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렇다.


이 말에 과거나 나중은 다를 수 있음이 담겨 있으니 임경업은 조금 더 캐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것은 대리국왕 임경업으로서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는 아쉬움을 달래며 의례적인 말을 입에 담았다.


“대리국은 조선의 사절을 환영하는 바요. 서로 절차탁마하여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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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625화 자질구레한 일 +1 24.07.01 47 10 12쪽
»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1 24.06.30 52 10 13쪽
624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59 13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60 11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59 13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65 14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67 11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67 12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69 11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67 14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8 13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8 13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71 13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8 13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76 12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8 11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71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7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80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80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71 10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87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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