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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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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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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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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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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화 의복과 말

DUMMY

621화 의복과 말


“아마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확실하게 말하겠네. 자네들은 모두 대리국까지 가게 되었네.”


승문원 교리 정연이 이르는 말에 유민들은 그런갑다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갈 곳도 없고 하루하루 먹을 것조차 부족하여 비렁뱅이와 다를 게 없는 그들이다.


당장 조선 사람들이 허드렛일시키며 매 끼니 챙겨주니 그것으로 좋았고 조금 전에 청나라 사람과 말하여 물러남이 없이 말하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대리국까지 간다면 적어도 그곳으로 가는 동안은 배곯는 일이 없을 것이오, 대리국에서라면 적어도 당금 화북보다야 먹고살 일 얻기가 쉬우리라고 생각한 것도 반발심이 들지 않는 데 한몫했다.


적어도 그곳은 화북과 달리 청나라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전쟁에서 가장 멀다.


그들이 말을 통할 수 있는 곳만 따진다면 그러하니 대리국은 이들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모두가 만족하진 않았다.


‘대리국이라니, 너무 멀어.’


전에 전령으로 북방군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도 믿을 수 있는 반쪽짜리 진실을 내세워서 곤경을 피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대로 대리국까지 가면 본래 예정하였던 계획, 남경이나 남경에서 온 군대에 북경의 실상이며 그들이 한 일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것이 어려워질 게 뻔했다.


하여 모두가 괜찮게 여기는 가운데 전 북경 수비대 병사 왕일은 슬며시 눈치를 보며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그런 그의 귀에 다시금 정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 역시 아마도 청나라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을 수 있네. 아니, 명나라에도 그럴 수 있겠지. 어쩌면 우리 조선은 물론이고 저기 다른 세 번국도 그러할 수 있네.”


정연이 하는 말에 왕일은 물론이고 유민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그 입을 주목했다.


모여든 시선에 정연은 그들을 한 차례 둘러본 후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감정을 드러내는 장소와 때는 구별하는 걸 추천하겠네. 오늘은 좋게 넘어갔지만 다음도 그렇다는 법은 없네. 무도한 자가, 그저 자신만 알고 순간의 기분에 취하는 이였다면 방금 억지로 끌려가도 이상하진 않았어.”


말을 하며 시선을 돌려 왕일에게 시선을 준 정연은 덤덤하게 말을 덧붙였다.


“요행은 한 번뿐이야.”


정연은 이것으로 제가 할 말을 마쳤다고 하듯 사람들을 떠나 돌아가니 다른 병사들이며 역관들이 이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고자 했다.


“왕일이, 이제 가자고.”

“예? 아, 예!”


멍하니 있다가 대답하는 왕일의 반응에 역관은 그가 어지간히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고 여겨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힘들고 정신없겠지. 내 아껴둔 술이 있는데, 그거 한잔내어주지. 마시고 푹 자게. 그러면 한결 나아질 거야.”

“아이고, 이런 놈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시다니요. 대인께서는 실로 아량이 넓으시니 삼생에 걸쳐 복을 받으실 겁니다.”


역관의 친절에 왕일은 사람 좋은 촌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나 그 머리 한쪽에는 조금 전에 들은 정연의 말이 박혀서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행은 한 번뿐이라고? 설마?’



***



“정 교리, 아니 정 형.”


승문원 교리 임관일이 다가와 말을 거니 정연은 별일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같은 북방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둘 다 성미가 그리 친화적으로 구는 것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대화를 하는 일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고생들을 함께 하였는데 친하지 않다면 그건 참으로 슬프고 문제 있는 일이라 하여야 마땅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친함과 별개로 성향이라는 건은 쉬이 바뀌지 않으니 정연과 임관일의 대화는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임관일이 말을 거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며 이어진 말 역시 그러했다.


“나는 방금 한 말을 이해합니다.”


방금 한 말을 이해한다.


평소에 공감하는 일에도 일일이 이치를 따지는 그답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임관일 역시 그와 비슷한 처지로 북방 출신이라는 걸 떠올리니 정연은 저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저 역시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두 분과 달리 직접 격지는 않았지만 윗세대 분들은 항상 입에 달고 사셨으니 말입니다.”


임관일에 이어서 안복삼이 건네는 말에 정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북방은 두 번이지만 남방도 한 번, 그것도 가장 먼저 데이고 오래도록 당했으니.’


북방은 왜란과 호란을 맞았고, 대국을 자처하는 명나라에게 시달린 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남방은 안전하였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니 왜란에서 가장 먼저 당하고 가장 나중에 안전하여진 것도 그들이다.


더불어서 남방은 그전에도 왜구들에게 시달렸던 역사가 있음을 생각하면 으외로 세 사람의 정서는 가까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사방을 향한 분노와 나라를 향한 실망이 그러한 공통점이었다.


정연은 그러한 것에 가까운 감정을 왕일에게서 엿보았다.


또한 그것을 본 것은 그만이 아니니 임관일이며 안복삼은 저마다 슬쩍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북경에서 뭘 했을까?”

“만주족 고관을 노렸겠지요. 아마도 적잖이 중상을 입었을 겁니다.”

“멀쩡해도 그런 시도 자체를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어.”

“그건 또 그렇습니다.”


서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임관일은 조심스럽게 정연을 향하여 충고했다.


“정 형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이번 일, 자칫하면 큰 실책이 될지도 모르오.”

“임 형께서 하시는 말이 옳습니다. 기록하는 것은 조선에서 문을 익혔다고 하는 이들은 다들 습관적으로 한다고 하여도 무방한 일입니다.”


자신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반드시 다른 이들을 통하여 조정에서 알게 될 것이라고 넌지시 이른 것이니 정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두 사람이 걱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으니 정연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임 교리, 아니 임 형께 터무니없는 짐이며 뒤처리를 맡긴 셈이 되었군요. 죄송합니다.”

“마땅한 도리지. 저들을 순나라에 데려다주겠소, 아니면 양나라에 데려다주겠소? 순나라는 전쟁 중이고 양나라는 사람을 들이는 일 자체를 극히 경계할 것이니 대리국에 보내는 게 가장 합당하고 옳은 처사였소이다.”


임관일이 나서서 이리 말하니 정연은 마음에 자리 잡은 불안이며 짐이 살짝 덜어지는 걸 느끼며 웃었다.


“하하,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정말 임 형이라서 다행입니다.”

“아니, 그러면 나였으면 돕지 않았고 이해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안복삼이 끼어들어서 투덜거리니 정연과 임관일은 그저 말없이 웃었다.


“저기요? 그렇게 그냥 웃으면 진짜 같지 않습니까! 예? 예?”

“그저 농이며 놀림이니 걱정 마시게.”

“나도 그렇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안복삼이 안달하여 묻자 그제야 두 사람은 안심하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작은 놀림과 장난으로 이 일이 마무리되고 며칠이 지나 이들에게 다시 변화가 생겼다.


이들이 새로이 방향을 정할 때가, 각각 가는 나라에 따라서 셋으로 나누어질 날이 된 것이다.



***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거, 적지만 제 정성입니다.”

“아니, 자네 사정이 뭐 대단하다고 이런 걸 주나?”


왕일이 건네는 주머니에 역관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유민으로 받아들인 이가 가지고 있다면 무얼 가지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왕일은 슬그머니 다가가서 귀에 속삭였다.


“제가 다른 건 없지만 아주 작은 밑천은 있었습니다.”

“작은 밑천?”


왕일이 이르는 말에 호기심이 든 역관은 슬쩍 주머니를 여니 거기에는 작은 은 조각 둘이 있었다.


적은 재물은 아니지만 왕일이 처했던 상황에서는 세상 쓸모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여 도시라면 쓸모가 있는가 하면 그건 옳으나 그 쓸모가 대단하진 않았다.


말그대로 적지만 치례는 할 수 있는 수준의 재물인 것이었다.


이것을 소중히 지켰을 왕일을 생각한 역관은 도로 그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건 대리국에 가서 자네가 쓰게. 사람이 베풀면 끝까지 베풀어야지 이런 걸로 은공을 챙기는 건 좀생이스럽지 않나.”

“은인, 하지만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왕일이 간절하게 말하나 역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일 없네. 정히 신세 갚고 싶으면 나중에 대리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부유해지면 그때나 갚게. 촉금 열 필을 하루에 사고도 부족함이 없을 때에 촉금 한 필로 갚으면 그걸로 좋네. 아니면 옥도 좋고.”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들리나 이 말을 마지막으로 어깨를 두드려주고 주머니 역시 억지로 넣어준 후에 몸을 돌리니 역관의 말은 부자가 된 후에나 생각나면 갚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이에 왕일은 감동하였고 동시에 뜻을 정했다.


‘이분께 부탁하면 적어도 새지는 않겠구나.’


뜻을 단단히 품은 왕일은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며 다시금 역관을 붙잡았다.


“대인.”

“어허, 왜 이러나? 나 이제 가야 하네. 순나라 쪽이라 나중에 오가다 볼 수도 있을 테니 너무 아쉬워 말라고.”

“제가 부족하지만 먼 친척이 남경에 산다는 말을 오래전에 들은 바가 있습니다.”

“남경에?”


남경에 먼 친척이 산다는 말에 역관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에 왕일은 역관을 향해 다시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정히 받기 어렵다면 이걸 제 작은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취하여주십쇼.”

“아하.”


왕일이 바라는 바를 어렵지 않게 깨달은 역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순나라에 도착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보고를 겸하여 남경이며 산둥을 통해 조선에 소식을 보내야 한다.


그러는 중에 개인적인 소식 하나나 둘 정도 전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 어디에 계시는 어느 분인지 아나?”

“잘은 모릅니다. 성이 다르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것뿐, 들은 것은 그분과 그분 아들의 이름 몇 자가 다입니다.”


왕일은 이렇게 말한 후에 크게 긴장하며 말을 덧붙였다.


“어른의 이름은 양이고 아들의 이름은 삼계입니다.”

“성은 모르고 양과 삼계라. 양과 삼계, 양과 삼계.”


몇 번이고 중얼거리는 역관에게 왕일은 마른침을 소리 없이 삼키며 다시 말했다.


“다행히 전에 그분과 그 이웃분들이 함께 계신 걸 보고 안면은 익혔는데, 제 이름은 잘 모르실 겁니다. 서로 정신이 없이 바쁜 때여서 말입니다.”

“그거 아니 되었군. 전하는 내용은?”

“제가 대리국에 갔다는 사실, 그리고 얼마 전에 헤어진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북경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자네 동생이 있었어? 아니, 그보다 북경?”


여러모로 당황스러워 물으니 왕일은 민망한 얼굴로 변명했다.


“어느날 지쳤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마지막에 굶느니 오랑캐에게 빌붙어서라도 먹고 살겠다고 외쳤습니다.”

“그것참.”


이해하는 하나 참으로 안타까운 이유라고 여긴 역관은 제 딴에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덧붙였다.


“자네 동생, 어쩌면 녹영이라는 자들이 되었을 수도 있겠어.”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나 속은 언제나 그렇듯 올곧다고 믿습니다. 허니 저와 동생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겠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왕일이 하는 말에 역관은 그를 대견하게 보며 말했다.


“알겠네. 내 반드시 전해주겠네. 헌데 자네 이름을 기억 못 한다고 하면 무어라 말하면 그 사람들이 알겠나?”


역관이 묻는 말에 왕일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가지 사실을 일러주었다.


“전에 의복을 받고 말을 내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마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복에 말?”

“그분 사정이 당시에 곤궁하셔서 없는 살림에 도왔습니다.”

“그거 훌륭한 일이군그래.”


대단치 않은 대가를 받고 도와주었다는 말에 역관은 왕일을 더욱 좋게 보았다.


“내 이런 훌륭한 청년의 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겠지. 내 꼭 전하도록 하겠네.”

“그저 한번 힘써 봐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들이 여직 남경에 있다고는 장담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왕일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냈다.


“세상이 그러한 때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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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57 13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64 14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65 11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65 12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68 11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66 14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7 13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7 13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71 13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8 13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75 12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8 11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71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7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79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79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7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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