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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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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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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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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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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DUMMY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끼이잉


군을 이끄는 장수로서 나서게 된 대리국 사람 손가망은 천천히 열리는 진지 문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정말 최선인지부터 해서 진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참으로 시끄럽다는 생각까지 오만 생각이 드는 걸 느끼던 그는 완전히 열린 문을 보며 호흡을 골랐다.


“후우.”


멀리 쩍 진지가 보인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참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가망의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있음도 아니고 사방에 어둠이 내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유는 조금 더 단순했으니, 대리국은 처음부터 출입구를 저들이 올 수 있는 정면에는 만들지 않았다.


대신 후방에만 출입구를 내었으니, 이는 혹시 모를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한 작은 술수였다.


물론 적들에게는 그러한 걸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문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꾸며두기는 했다.


다만 그건 말 그대로 꾸밈이라 문으로 기능하진 않았다.


그러니 이제 진지를 빙 돌아서 가야 청나라 군사들이 있는 곳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출발한다.”


나직하게 명령을 내리자 엄선하여 뽑은 대리국 사람들은 천천히 진지를 떠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문이 난 방향이 아님은 물론이고 청나라 군사들이 있는 방향도 아니었다.


만약 바로 적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자 진지를 바로 옆에 두고 돌면 당장 행하는 것은 편할 터였다.


하지만 그 불빛에 비쳐서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니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일단은 진진에서 떨어지고 멀리서 진지를 일종의 육지의 등대 삼아서 움직여야 했으니 그들은 어두운 곳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갔다.


이들은 대부분 보병이며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움직였기에 속도는 느릿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나아가니 점차 진지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잘 보이던 것들이 어둠에 점차 잠겨서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조금씩 두려움을 품었다.


본래도 그래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은 자연스레 말을 줄이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하여서 들리는 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익

끼익끼익


“제길, 이거 너무 시끄러운 거 아냐?”

“망할 마차 같으니라고.”

“빌어먹을, 이러다가 걸리겠다.”


사람의 힘으로 이끌던 마차들이 소리를 내자 병사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욕했다.


그 숫자는 그리 많다고 하긴 어렵지만 하나 같이 바퀴며 대가 엇물리는 소리를 내기 일쑤니 고요한 밤에 어둠을 틈타려는 그들에게는 고함과도 다름이 없이 들렸다.


“조용!”


그러나 그 소리에 지지 않게 병사들이 내는 소리도 작지 않으니 지휘관 하나가 엄한 얼굴과 어조로 주의를 주었다.


물론 어두워서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 말이며 어조로 충분하여 병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마차 끄는 소리, 걷는 소리만이 되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진지에서 켜둔 횃불에서 거리를 어느 정도 두었음을 확인한 손가망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방향을 바꾼다. 각자 선두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여 조심히 잘 따라오도록.”


말에 따라서 다시 어둠 속을 전진하니 가끔 울리는 마차 소리며 걷는 소리를 제하면 들리지 않는 상태가 다시금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옆이 아니라 뒤를 보아야 아군 진지를 볼 수 있게 된 순간 새로운 명령이 내려졌다.


“이쯤이면 되겠군. 모두 정지. 짐을 내리고 준비한다.”



***



“놈들이 멈췄습니다.”

“흐음.”


어둡다고 하지만 달이 보이기는 하는 날씨에 처음부터 있다고 가정하고 찾고 있던지라 팔기들과 그 지휘관 구왈기야 오보이는 조금 전부터 손가망과 그가 이끄는 이들을 발견한 상태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저들을 치면 조금 도망치게 하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적들이 도망하여 전과는 없고 그저 한번 훼방하는 정도에 그칠 게 뻔하여 잠시 기다리고자 했었다.


그러다가 저들이 야습을 시도하려는 찰나에 역으로 기습하여 전과를 올리고 살아남은 놈들은 몰이하여 적들의 진지로 간신히 도망하게 할 생각이었다.


헌데 지금 대리국 군사들이 멈춘 곳은 다소 거리가 애매하여 나서기도 아니 나서기도 곤란하여 고민이 되는 위치였다.


“지금 치시겠습니까? 물길을 조금 건너면 금세 칠 수 있습니다.”


휘하 팔기의 말에 오보이는 전장을 살폈다.


그가 방금 들은 말처럼 저들이 있는 곳 근방에는 작은 강이 흐르는데 그 강의 폭이며 깊이는 오보이가 보기에 개울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치는 순간 분명히 저들이 알아챌 거라는 점이었다.


‘물에 들어가는 순간 소리가 안 나기 어렵지. 거기에 저곳은 달빛이 반사되고 있는 곳, 우리가 보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건너면 또 금방이긴 해.’


고민하였으나 이내에 그의 마음은 실행하는 쪽으로 기울었으니 이윽고 오보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물을 건너기 전까지 조용히 움직인 다음에 단숨에 친다.”

“예.”


오보이가 결정을 내리자 팔기들은 말을 몰아서 물을 건너고자 했다.


한 팔기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을 먼저 건너서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자 오보이는 더 볼 거 없다고 하듯 말을 달리며 외쳤다.


“달려라! 저들을 치고 낮에 승리라고 여겼던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해주는 거다!”


그들의 습격을 알아챈 듯이 지금껏 불을 켜지 않던 대리국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에 불을 붙이는 게 보였다.


그 빠른 반응 속도는 칭찬할 만했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한 오보이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은 이내에 쏙 들어가고 당황이 대신 자리를 채웠다.


적들이 기이하게도 자신들을 향해 마차를 세우고 방어할 준비를 마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그걸 확실하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조준! 쏴라!”


타다당!


다소 앳되게 느껴지는 고함과 함께 조총이 그대로 그들을 노리고 쏟아지니 오보이며 팔기들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뿐, 그들은 생각 이전에 경험에 따라서 몸을 움직였다.


“산개!”


오보이의 명령보다 빠르게 동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팔기들은 말에 바짝 몸을 숙인 상태로 활을 재었다.


“으윽.”

“윽.”


팔기 몇몇은 운 없이 몸에 납덩이를 맞고 그 몸을 땅에 굴렀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적었으니 오보이는 운이 없던 몇몇에게 명복을 빌어준 후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활을 쏘는 것에 맞추어서 같이 달리는 팔기들 역시 활을 쏘았다.


“아악!”

“커헉!”

“끄륵.”


이미 가까워진 거리는 그들의 활을 더욱 매섭게 하여 대리국 병사 여럿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았다.


그런 상황에서 대리국 병사들 일부는 다시금 조총을 겨누어 쏘고 일부는 재장전하고자 했으나 그들이 쏘는 것이며 재장전하는 것보다는 팔기들이 다시 활을 재어 쏘는 게 훨씬 더 빨랐다.


“끄윽.”

“커억, 죽고 싶지-.”

“수, 숨이-.”

“쉽군.”


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하였을 때는 당황했으나 가벼이 저들을 쏘아죽이니 오보이는 다시금 자신을 되찾았다.


“이대로 뛰어넘어 들어가서 휘젓는다!”


이미 목전으로 다가온 마차 방벽을 보며 오보이는 자신있게 외치고는 그 자신 있는 외침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듯 솔선수범하여 가장 먼저 말을 타고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허리에서 칼을 빼어 마구 대리국 병사들을 베며 진군하니 오보이는 물론이고 그를 따라서 방벽을 넘은 이들은 거침없이 사방을 휘저었다.


“준비한 창을 들고 적들을 찔러라! 말이 멈추면 그대로 여럿이 덮치면 된다!”


다시금 다소 앳되다는 생각이 드는 음성이 들리니 오보이는 자연스럽게 그 목소리를 좇았다.


이윽고 목소리의 주인, 손가망을 발견한 오보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적장인가. 베는 게 나을까, 아니면 돌려보내는 게 나을까?’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그에게 명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오보이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목적이 적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함이라는 걸 기억한 그는 뜻을 정했다.


손가망을 잡기로 말이다.


‘승리에 취하여 그 취함이 깨기 전에 과감하게 야습을 걸자고 주장한 놈이다. 아마도 저들 가운데서 용맹하고 지혜가 있는 자겠지. 저만한 자가 죽으면 승패와 별개로 기운과 기세가 바뀐다.’


평가를 크게 한 오보이나 사실 그의 진심은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가 한 생각은 그저 자신을 향한 합리화, 그리고 나중에 혹여 도르곤이 장수를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를 물을 경우에 대답할 변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직은 그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본심을 들추면 그 속에는 슬슬 바투루라 이름하게 된 용맹을 떨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울림이 있었다.


그러한 울림을 달래고 만족하게 하려면 적당한 먹이가 필요했고, 손가망은 부족하나마 만족감을 채울 정도는 되었다.


“청나라에서 가장 용맹한 자인 나, 바투루 구왈기야 오보이의 손에 쓰러지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



손가망은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깨달았다.


떠는 것은 손만이 아니라 전신이었다.


다가오는 적이 두려운가?


두렵다.


그러면 그것으로 인해 떠는가?

아니, 그것만은 아니다.


적과 마주하여 싸우면 아마도 열에 한번은 살아나서 이길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백에 한번, 아니 천에 한번은 정도로 운이 좋아야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여 주저함이 있었으나 그도 잠시, 손가망은 느릿하게 보이나 빠르게 닥치는 오보이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만만하니 제법 전공 좀 올린 놈이겠지. 딱 좋다. 나와 함께 가자.’


그저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손가망은 제 사형인 이정국을 대리하여 나선 게 아니었다.


그의 사형은 몰랐겠지만 사실 손가망은 본래 논의했던 방식, 저들이 야습을 눈치챌 것에 대비하여 아예 들통나고 야전으로 유도하자는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간 생각을 품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야전을 확실하게 승리로 포장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며 생각이었다.


물론 그게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참혹할 거라는 걸 손가망은 잘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으면 버틸 수 있었기에 손가망은 결심을 굳히고 행동에 나섰다.


타닥

치이익


결심을 굳힌 손가망이 병사들은 아직 미처 깔지 못했다고 여기는 비격진천뢰들을 실은 마차에 불을 붙였다.


미리 준비하여 내놓은 도화선이 타들어 가기 시작하니 손가망은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이걸로 됐어. 이걸로 며칠이고 더 버틸 것이고, 그만하면 애 사형이며 순나라에서 일을 모두 준비하겠지.’


이곳에 없는 둘째 사형, 애능기를 떠올리며 생각한 손가망은 어느새 제 눈동자가 촉촉하게 된 것을 느꼈다.


“이 오보이가 목을 받겠다!”


동시에 목전에 달하여 검을 휘두르는 오보이가 그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만주어를 외치는 걸 본 순간, 그리고 그의 귓가에 들리던 타들어 가는 소리가 멈춘 순간 손가망은 생각했다.


‘나, 난 주, 죽고 싶지 않아.’


각오를 다졌다고 생각한 순간 우습게도 횃불을 반사하는 서슬 퍼런 칼날에 손가망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걸 생각한 그는 곧장 도움이 될까 싶었던 마지막 준비를 떠올리며 몸을 굴렸다.


터엉!


“응?”


간발의 차로 손가망은 마차 아래에 굴러 들어갔고 칼은 마차 곁을 치게 되었으니 오보이는 제 손끝에 이상한 감촉을 느끼게 되었다.


‘철?’


마차 바닥에 철이 깔려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오보이는 눈앞에 있는 마차에 실린 것을 그 틈으로 보게 되었다.


“이, 이건!? 물러나라! 어서 다들 물러나!”

“모두, 도망가라!”


오보이와 손가망이 각자 아군에게 외치는 소리가 메운 그때, 그것들을 묻어버리겠다고 하듯 사방에 폭음과 쇳조각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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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3 12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69 11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2 10 14쪽
»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68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5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75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74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68 10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83 10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76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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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7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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