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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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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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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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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DUMMY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나으리,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제게 알리러 온 역관의 말에 승문원 교리 임관일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는 이들을 살핀 임관일은 오는 길에 함께 하였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올 때에 비하면 단촐하기 짝이 없구만그래.”


본디 천 단위 규모였으나 이제는 셋으로 갈라졌고 또 그 셋 가운데 하나에서 일부를 뽑아내어 준비했다.


당연히 규모부터 해서 뭐든 간에 처음에 비하면 부족하고 단출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출발하고 나면 당분간은 소식 전하기가 어렵겠지.”

“일정을 늦출까요? 며칠이라면 더 늦출 수 있습니다.”


역관이 묻는 말에 임관일은 쓰게 웃었다.


분명 그렇게 하여 며칠이고 늦출 수는 있었다.


출발 준비가 되었다고 하여 그 모습을 보러 오긴 했지만 임관일이 원하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정확함만 중한 게 아니라 신속함도 중하니 이 이상 늦추는 것은 신속함이 결여될 터, 임관일은 그 점에서 이 이상 늦추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겼다.


굳이 그렇게 늦추어서 무언가 더 들을 것이며 전할 것이 있는가 하면 딱히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말이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라 이들이 떠난 후에 그러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허나 그런 식으로 매사에 가정을 세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임관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고 예정대로 출발하게. 양나라에서 오는 사람들하고도 얼추 맞추어야 하니 기다릴지언정 기다리게 해서야 곤란해.”

“알겠습니다.”


역관이 대답하고는 그대로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기 시작하니 임관일은 그 모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시일이 조금 늦었던가. 어쩌면 순나라에서는 이미 출발하여 남경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



“김 역관, 사람이 찾아왔네.”

“사람?”

“뭐, 정확히는 사람들이지만 말이야. 그거 있잖나. 자네가 낸 소문 말이야. 그에 응해서 또 넷이 찾아왔어.”


무슨 일인가 묻던 역관 김근행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 찾아오라고 소문을 그가 내기는 했지만 근래 소문 듣고 찾아오는 이마다 제대로 된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떨거지 넷이 찾아왔군그래.”


그 감정을 담아서 중얼거리니 말을 전하러 온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몰라.”

“복색이라도 제대로 차려입었나? 그러면 노력은 했다고 말하겠네.”


전 북경 수비대 병사이나 김근행은 그저 북방군 출신 유민으로 아는 왕일의 부탁은 사실 들어주기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는 것은 적으며 찾아야 할 장소는 명나라에서 사람 많기로 손에 꼽히는 남경이다.


거기에 남경은 거하는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오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찾는 수고가 배는 더 든다고 보는 게 옳을 지경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만약 이 일이 쉽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근행은 당장에 그에게 절을 올리며 부탁할 생각이 충분했으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여 김근행은 온전히 제가 할 일이 된 이번 일을 해내고자 꾀를 내었으니 그건 바로 남경에 소문을 흘리는 것이었다.


-북쪽에 사는 왕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는데, 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께 사례하고자 한다. 전에 말과 바꾼 것보다 귀한 것을 드리고자 하니 부디 짐작이 있는 분은 찾아오시오.


이 소문을 남경에 퍼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가 그 ‘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이가 적잖이 찾아왔다.


허나 그들 모두가 그저 ‘귀한 것’을 노리고 찾은 사기꾼들이었다.


‘왕씨 성 가진 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소?’

‘왕유?’

‘후우. 나가시오.’


‘그래, 자제분 이름이 어찌 되시오?’

‘이 사람은 홀몸이오만.’

‘나가.’


‘전에 말과 바꾼 것은 무엇이오?’

‘그야 패물이지요.’

‘너도 꺼져.’


이렇듯 누구 하나 온전히 대답을 취하는 이가 없으니 김근행의 태도가 나날이 삐딱하여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복색을 갖추어 입은 거야 전에도 있었지 않나.”

“그리고 단박에 내쫓았지.”


입술을 비틀며 대답하는 김근행의 말에 말을 전하러 왔던 이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 사람은 본인이랍시고 찾아오지 않았네. 주인이 대신 보내어 왔다고 하던데?”

“허?”


과연 이러한 접근 방식은 처음이라, 김근행은 저도 모르게 솔깃한 기분을 느꼈다.


“어디, 한번 만나나 볼까. 출발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적어도 일주일은 기다릴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요약하여 보낸 서신은 이미 어제 출발하였으니 늦음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럤지.”


함께 가서 말하기 위해 남경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순나라에 도착한 일이며 듣고 본 것을 요약하여 적은 내용을 담은 서신이 제물포 향하는 배에 실렸음을 기억한 김근행은 한결 안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허면 그치들을 만나러 가볼까. 기왕에 지금까지와 다른 김에 아주 달랐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만나서 반갑네. 내 우연히 소문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귀에 익인지라 한번 사람을 보내었네.”

“예, 예.”


아주 달랐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란 것은 분명 김근행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김근행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그 친구하고 이분이 아는 사이라고?’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도 맞물리는 느낌이 없으니 김근행은 도무지 알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허나 전에 들은 말, 그 사람의 이름이 양이며 그 아들은 삼계라고 하는 것이 들어맞는다는 걸 기억하니 왜 이제 이걸 깨달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어느 의미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북방군 출신 유민과 눈앞에 있는 이가 연이 있다는 말은 한양에 계시는 성상과 제주에 사는 아무개가 돈독한 인연이 있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맞다면 이는 분명히 말해 내가 찾아가야 맞는 일이네. 허나 안타깝게도 내 지위가 그리 낮지 않으니 함부로 나서서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참 민망하지 않겠나.”

‘암요, 민망하지요.’


민망한 것은 당연하고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치니 김근행이 이리 걱정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눈앞에서 그와 말하는 사내, 제독 오양은 그저 지위가 낮지 않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누구에게 들은 말인가?”


오양이 묻는 말에 김근행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서 물었다.


“북쪽에서 왕씨 성을 가진 이와 만났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왕씨 성을 가진 이는 내 제법 알아서 솔직히 말해 누구를 말하는지 잘 모르겠네. 조금 더 상세히 말하여 줄 수는 없는가?”

“허면 이것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는 나중에 대인께서 곤궁하실 때에 말을 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말이라.”


김근행이 들려준 이야기에 오양은 눈을 침잠하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나는 그런 적이 있기는 했네.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친구에게 말을 받은 적이 있어. 그것은 힘든 때에 빌린 터라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지.”

“빌렸다? 제가 들은 것은 교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교환?”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거린 오양은 이내에 한 가지 광경을 떠올렸다.


귀한 사람들, 황녀들과 황자들을 데리고 도망하던 때에 쫓아왔던 두 병사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두 병사 가운데 하나가 탐심을 드러내자 다른 병사가 그를 징치하니 그 병사는 그들에게 안녕을 빌어주며 말을 한 필 내어주었다.


대신하겠다고 하듯 옷가지 몇을 받아 갔으나 그것은 그가 쓰거나 팔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을, 오양과 그가 모시던 황족들이 무사히 피하게 하기 위한 공작을 위해 가져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효용이 있어 그들은 무사히 남경에 닿았고, 오늘까지 목숨을 제 것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랬지, 그랬어. 정녕 보기 드문 친구였지.”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되새긴 오양은 그립다는 얼굴로 김근행에게 물었다.


“왕일이라는 친구였어. 병사였고, 내게 많은 걸 베풀어주었지. 그는 잘 지내고 있나?”


오양이 반가움과 그리움을 담아 묻는 말에 김근행은 믿기 어렵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왕일이 그에게 부탁한 소식을 전할 대상이 바로 오양이라는 걸 말이다.


‘대단도 해라. 대체 어디서 연이 있었을까?’


사뭇 궁금하나 이는 알기 어려운 것이니 그는 그저 상상력을 발휘해 왕일이 북방군에 있을 무렵에 우연찮은 기회로 연을 쌓았다고 여겼다.


아주 틀리진 않지만 맞지도 않은 상상을 한 김근행은 그 생각을 잠시 미뤄두고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나 잘 지낸다고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북방군 출신으로 유민이 되어 떠돌고 있던 걸 만난 거라 말입니다.”

“음?”


북경 수비대가 아니라 북방군 출신으로 유민이 되었다는 말에 오양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굳이 입에 담지는 않고 계속 귀를 기울였으니 김근행은 그 기대에 응하듯 말을 이었다.


“다만 이제 대리국에 가서 지내게 되었고, 거둔 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일자리며 살 곳을 알아봐 주기로 약조하였으니 적어도 앞으로는 사정이 나아질 것입니다.”

“그런가.”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금 들은 말을 궁리하던 오양의 귀에 김근행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그는 전하여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대리국에 있으며,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북경으로 가서 먹고살 거리를 찾겠다고 말입니다. 또한 그 동생은 아쉽지만 청나라에 빌붙어서라도 먹고살 거리를 찾겠다고 했는데, 왕일이 이르길 자신의 동생은 겉은 몰라도 속은 언제나 그렇듯 올곧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오양은 사례할 생각으로 패물함을 내밀었다.


“이런 세상이니 목숨이라도 부지하였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라 함도 이상하지 않겠지. 여기, 좋은 소식을 전해준 대가일세.”

“말씀은 감사하나 그것은 받지 않겠습니다.”

“받지 않겠다고?”


당황하는 오양의 말에 김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지금 조선을 대표하는 사절 가운데 하나로서 이곳에 있습니다. 비록 남경에 파견된 것은 아니나 엄연히 공무를 수행하는 몸입니다. 그런 자가 어찌 사사로이 재물을 받아 오해를 사며 나라 간 의리를 상하게 하겠습니다.”

“허어.”

“또한 이 일은 선의로 시작하였으니 그저 선의로 끝내고 싶습니다. 물론 때때로 재물은 선의가 되기도 하나 불의하는 일이 더 많음은 누구나 아는 진리입니다. 부디 대인께서는 헤아려 주십쇼.”

“참으로 훌륭하구나, 참으로 훌륭해.”


눈앞에 있는 조선 사람이 적잖이 마음에 든 오양은 패물함을 뒤로하고는 물었다.


“내 자네를 기억하여도 되겠나?”

“나중에 달리 왔을 때 대인과 같은 분이 저를 기억하여 주신다면 그만한 은혜가 따로 없으니 오히려 제가 부탁하여도 모자랄 일입니다.”

“그러면 이번은 그것으로 마치고 나중에 다시 갚겠네.”



***



나중을 논한 오양은 몇 마디 말을 더 물은 후에 김근행을 돌려보냈다.


재물은 주지 못하나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아니라 여긴 오양은 김근행에게 과일이며 육포 등등을 얼마간 내어주니 그도 그것은 거절하지 않고 감사와 함께 챙겨서 떠났다.


이윽고 그를 대문에 나와서 배웅한 오양은 안으로 들어가며 전해진 소식을 곱씹었다.


‘무슨 연유로 이러한 소식을 내게 보내었단 말인가?’


그저 옛일을 논하여 의탁하고자 함이라년 대리국이 아니라 남경으로 직접 와서 말함이 옳았다.


그런데 왕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무언가 더 있음이 분명했다.


“여봐라.”

“예, 대인.”


방에 들기 전에 소리 내어 사람을 부르니 시종 들던 하인이 곧장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그 하인을 본 오양은 곧 진중한 얼굴로 명을 내렸다.


“내일 날이 밝으면 곧장 남경 상인계에 찾아가 모장욱 대인을 청해라.”

“무어라 전하면 되겠습니까?”

“북경 일을, 아니 북쪽에서 조금 알고 싶다고 해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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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627화 등롱 +1 24.07.03 47 9 12쪽
»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2 24.07.02 51 11 13쪽
626 625화 자질구레한 일 +1 24.07.01 51 11 12쪽
625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2 24.06.30 59 11 13쪽
624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60 13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61 11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60 13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66 14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68 11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68 12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70 11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68 14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8 13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8 13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71 13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8 13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77 12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9 11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72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7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81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81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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