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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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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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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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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화 고변

DUMMY

613화 고변


“출발한다!”


공순왕 공유덕의 호령과 함께 북경에 주둔하고 있던 팔기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가 말을 달렸다.


그들이 가는 것을 성벽 위에서 보고 있던 북경 순무 왕정지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지 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보이지 않고 멀리 먼지구름 이는 것만 보이게 되자 왕정지는 한결 편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걸로 까다로운 아침 일과는 당분간 없어졌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 왕정지는 문득 깨달았다.


공유덕이 잠시나마 떠난 덕에 그에게 달라진 것은 단순히 귀찮은 아침 일과 하나가 사라진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 북경을 책임지는 자며, 북경에서 가장 고귀한 자다.


물론 심양에서 온 대내시위 사람들이 있으니 아주 무소불위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당장에 북경은 청나라 땅이 아니라고 외치며 이곳 화북을 중심으로 반청복명(反清復明)이나 건국 운운하면 당장 북경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가 그를 이상하게 볼 게 분명했다.


또한 그러한 말이 진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무리에게도 그간 왕정지가 보인 행보로 이해 바로 믿지는 않을 것이니 그러한 외침에 응하는 것이 북경 사는 사람들 가운데 십분지 이, 아니 십분지 일만 되어도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정말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우를 따지고 합당하게 움직이면 그가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시피 하다고 보아도 좋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들을 차분히 머릿속에 담은 왕정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좋은 날이다.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기분 좋게 잘 풀릴 거 같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딱히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으니 왕정지는 대답을 돌아오지 않음에도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왕정지는 말직으로 허드렛일이나 서기며 사무 등등 온갖 잡다한 일을 맡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보았다.


그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하였으나 애써 참고 참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가 조금 들기를 반복했다.


‘윗사람 눈에 들 기회라고 여기는 건가? 하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본디 명나라에서 출세하고자 하면 본인이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일을 잘하고 있음을 기억해줄 주변 사람들이, 특히나 상사가 필요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왕정지가 보기에 저자는 제법 싹수가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당장에 ‘윗사람 눈치만 보는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낙인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았으니 왕정지는 한껏 윗사람의 시선으로 아량을 베풀고자 했다.


“거기 자네.”

“예? 아, 예!”


왕정지의 부름에 그 관리는 크게 놀라서 두려워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왕정지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무슨 일부터 하는 게 좋을 거 같나?”

“어, 그건,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는 모습을 보인 그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이대로는 아니 되겠다고 여겼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예, 예친왕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예친왕 전하께서?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었지.”


공유덕을 구슬리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일, 조총 개량 명령을 떠올린 왕정지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었어.’


물론 나중에라도 떠올리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나중에 떠올리는 것과 지금 떠올리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그 나중이 돌이킬 수 없는 시기, 가령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사람을 보내어 진척을 묻는다던가 하는 순간이라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그리고 더 나중이 되어서 도르곤이 승리한 후에 북경에 돌아와서 이렇게 물었다면 정말 최악이었을 것이다.


-북경 순무, 내가 명한 건 얼마나 진척되었나? 조총을 개량하라고 했잖나.

-어, 그, 그러니까?

-이런, 그간 일을 너무 많이 하여 잊은 건가? 어쩔 수 없지. 업무가 과다하였던 모양이니 잠시 쉬게. 한 십 년 정도면 충분하겠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여긴 왕정지는 알려준 관리에게 작은 보답이나 할 생각을 품었다.


“오늘은 어렵고 내일 장인들에게 전하러 갈 것이니 그대도 동석하게.”


나름대로 자신이 눈여겨 보고 있다는 의미로 동행함을 허락하였으니 왕정지는 이것이 관리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고 여겼다.


하여 저 홀로 만족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왕정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방금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관리의 눈이 기이하게 일렁였다는 걸 말이다.



***



“왕 대형, 천재일우라 할 기회가 왔습니다.”

“조금 진정하시게. 무슨 일인데 그러나?”


북경 수비대 병사 왕일의 물음에 아침에 왕정지의 눈에 들었던 관리, 정공복은 제가 겪은 일을 늘어놓았다.


“조총을 개량?”

“그렇습니다!”


정공복은 어제도 자리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바가 있는 자였다.


그러니 오늘도 이렇게 달려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연유에서 그러한 기회가 되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려웠다.


“이제 우리는 내일 놈이 갈 곳을 압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군이 있으니, 바로 제가 놈을 향해 암습을 가할 수 있습니다!”

“······흐음.”


정공복이 흥분해서 외치는 말에 왕일은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소? 그 자리에 들일 수 있는 물건은 얼마나 되지?”

“예?”

“그대의 검솜씨는? 아니면 곤이나 철퇴가 나은가? 그도 아니면 송곳을 준비하여 쓰는 게 낫고?”

“그, 그게 그러니까-.”


연이은 질문에 정공복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런 정공복을 가만히 보던 왕일은 주변에서 귀만 기울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시오? 이 일에 나서서 확실하게 그를 해치울 수 있다, 그렇게 자신하는 분이 있소이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씁쓸한 일이나 왕일은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오기며 만용을 부리진 않았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럴 거라고 여겼소이다. 나를 제하면 병기 하나 제대로 쥐어본 일이 없으신 분들이 아니오. 그러니 부끄러워할 것은 없소.”

“와, 왕 대형.”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는 정공복을 돌아본 왕일은 그에게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씀하시오.”

“이 기회를 살릴 방법은 정녕 없는 것입니까?”


묻는 말에는 이미 자신이 따라간다고 한들 해하기 어려움을 인정함이 있었으니 왕일은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하루가, 이 밤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소이다.”

사실 그는 어제 정공복이 강하게 주장하던 때부텨 여러 가지 방안을 궁구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정공복이 오늘 와서 이야기함으로 한 가지 방안이 뚜렸하게 떠올랐다.


문제는 이 방식이 대단히 과격하며, 성공과 실패를 가리지 않고 왕일은 반드시 북경에서 떠나야 했다.


‘과연 이들이 유지를 제대로 이어줄까?’


자신이 죽는 일이야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그러했다면 전에 태감 조화순이 그들을 다그쳤을 때 동료를, 아니 동행하던 이를 죽이고 황자들을 보지 못한 척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욕심을 내거나, 아니면 돌아가서 말을 고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거짓을 지어서 올렸다.


그것이 필요하고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다시금 나서고자 하니 이는 오로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왕일은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와 같은 이들이, 이들과 같은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왕일은 주저하는 얼굴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저마다 입을 열어 말했다.


“사내로 태어나 이러한 일에서 발을 뺀다면 평생을 부끄러워하며 살 것입니다. 저는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명을 위해 이름을 남긴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없습니다.”

“이미 여기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고난은 예상하였고 목숨을 걸 각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연이어 하는 말에 왕일은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 의심을 버릴 수 있었다.


이에 왕일은 굳은 얼굴로 정공복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게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성공을 자신할 수는 없소. 무엇보다도 정공복, 그대는 앞으로 좋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니 더욱 행보에 조심하여야 할 것이며 칭송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오. 그럼에도 하시겠소?”


진중하게 이르는 말에 정공복은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움직여서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어떠한 시선을 받게 됩니까?”

“아는 자들에게는 존경과 공경을 받겠지. 하지만 모르는 자들에게는 멸시와 경멸을 받을 것이오.”


굉장히 상반된 시선이며, 전자가 후자에 비하면 극히 적을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당장 여기에 있는 이들을 세어도 두 자리가 되기 어려우니 북경, 나아가서 한인들 전체에게 그런 시선을 받는다고 하면 정공복은 실로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동시에 친구를 데리고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강요하진 않을 것이오. 그대가 어렵다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 될 것이며, 남은 뜻은 속에 열정을 품은 누군가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왕일이 나직이 이르는 말에 정공복은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하겠습니다. 제가 주장하여 시작한 일이며, 계획된 일입니다. 비록 계획한 것은 제가 아니며 시행하는 것이 제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훌륭하오.”


정공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한 왕일은 그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두 눈을 맞춘 왕일은 세상 진지하게 일러주었다.


“나 다음 대형 자리는 정공복, 그대의 것입니다.”

“대, 대형.”


자신에게 뒤는 물론이고 자리마저 맡긴다는 말에 정공복은 어깨가 돌연 크게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 무게에 정공복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늘어트리며 힘겨운 얼굴로 왕일을 바라보나 이미 뜻이 정해진 이상 이어지는 말은 계획에 대한 것뿐이었다.


“병기를 다루는 일이 부족하다면 더욱 강한 힘에 의존해야 하는 법. 정공복, 다음 대형인 그대에게 대형으로서 마지막 권유를 하고자 합니다.”

“마, 말씀하시지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말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정공복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옳다고 하듯 왕일의 입이 열리며 나온 말은 모두를 대경하게 했다.


“그대는 날이 밝으면, 아니 당장 가서 고변하시오. 전 사례감 왕승은 대감의 뜻을 이어서 북경 순무를 살해하고자 모의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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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3 12 13쪽
» 613화 고변 +2 24.06.18 67 12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3 12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69 11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2 10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68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5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75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75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68 10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83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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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7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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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596화 전쟁에서 가장 먼저 부르짖는 말 +1 24.05.31 82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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