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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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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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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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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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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DUMMY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여긴?”

“정신이 드십니까?”


눈을 뜨고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막사 천장을 본 사내, 대리국 장수 손가망은 자신을 향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손 장군, 정신이 드십니까?”


재차 묻는 소리에 손가망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여긴 어디지?”

“진지 내부입니다. 이건 부상병들을 위한 막사 가운데 하나고요.”


여기까지 들은 순간 그제야 손가망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자가 아군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동시에 온몸에 힘이 빠지니 그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장군? 장군!”

“괜찮아. 그저 힘이 빠졌을 뿐이야.”


눈을 감은 체로 대답한 손가망은 눈을 감았음에도, 아니 어쩌면 눈을 감았기에 굉장히 선명한 광경을 보았다.


적 장수가 그에게 무어라고 말하며 죽이려고 하고 그걸 막는 아군 병사.


“하하, 하하하. 살아남았구나.”


안도와 죄책감을 담아서 중얼거리니 곁에 있던 자는 딴에는 위로한다는 생각으로 말을 건넸다.


“훌륭하게 공을 세우고 살아남으셨습니다. 장군은 우리 모두의 영웅이십니다.”

“영웅? 내가?”


영웅은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드니 손가망은 곧장 입을 열어서 물었다.


“영웅은 직접 싸운 자들이네.”

“그러면 장군께서도 영웅이시군요.”


제가 틀리지 않았다고 하듯 확신을 품고 말하니 손가망은 그걸 고쳐주려고 몇 번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일일이 설명하여 말하기에는 기력이 부족하였으니 손가망은 얼마 없는 기력으로 더 중요한 것을 묻고자 마음먹었다.


“혹시 말인데, 이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누구 말씀입니까?”


방금 한 말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 영양가가 없는 질문 방식이었다고 여긴 손가망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의 생김새를 일러주었다.


가만히 듣던 그는 이내에 대단히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오래도록 함께하였고, 나여재 장군 휘하에 있기도 했었습니다. 허나 나여재 장군 아래에 함께 있던 이라고 한들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윽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니 민망함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자 환자를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일단은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벌써 닷새는 족히 기절하듯 지내셨으니 아직은 기력이 부족하실 겁니다.”

“그렇습······뭐, 뭣!?”


자신이 이삼일도 아니고 벌써 닷새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말에 손가망은 대경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끄응. 좀 도와주겠나? 영 일어나기 어려운데.”

“장군, 아직은 보중하셔야 합니다.”

“그럴 수가 없지 않나. 적들이 닷새간 긴밀하게 움직였지 않나.”


손가망이 하는 말에 그를 보살피던 자는 안심하라는 투로 입을 열어 말했다.


“진정하십쇼. 적들은 그날 이후로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흉험한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봄이 옳겠군. 그간 우리가 하는 일을 여지없이 꿰뚫고 부순 상대다. 당장 사형께, 어엇!?”


바로 사형인 이정국을 보고자 생각하여 다리를 움직인 것도 잠시, 손가망은 다시금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에 간호하던 자는 어두운 얼굴로 그를 부축했다.


“고, 고맙네.”

“······장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실로 송구하나 이제 홀로 걸으시려면 저걸 쓰셔야 합니다.”

“저거?”


의아한 얼굴로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서 시선을 향한 손가망은 그곳에 있는 지팡이 하나를 보고 제 다리를 보았다.


이에 손가망은 방금 그가 휘청거린 게 그저 닷새 동안 제대로 섭취한 게 없어서 기력이 빠진 것만이 이유가 아님을 알았다.


물론 그것도 이유의 하나이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허허, 허허허. 그래, 그랬지.”


잊고 있던 일을, 다리가 아주 못 쓰게 되었음을 기억한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염세적이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손가망은 지팡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몸을 일으킨 손가망은 불타는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또박또박 말을 내었다.


“사형께 갈 것이다.”


당당하게 하는 말에 더는 막을 수 없다고 여겼는지 간호하던 이는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안내하겠습니다.”



***



“고생했다.”


사형 이정국이 그를 보자마자 따스하게 건네는 말을 들은 순간 손가망은 모든 걸 다 잊고 먼저 이 말을 하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승리의 주역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아.”


위로하듯 말을 건넨 이정국은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따뜻한 시선으로 손가망을 살핀 그는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앞날 창창하다 못해 무궁무진하다고 말해도 좋을 젊은이, 아니 아직은 약관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린아이로 보일 수도 있는 손가망이다.


그런 손가망이 자신을 대신하여 전장에 나선 것은 물론이고 이제 더는 지팡이 없이 걷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


마음과 같아서는 백 마디, 천 마디 말이라도 하여 짐을 덜고 제 마음에 박힌 가시를 빼고 싶었다.


허나 이러한 말을 직접 하는 것은 오히려 손가망에게 실례라고 여겼으니 이정국은 에둘러 위안과 사과를 전하고자 했다.


“희생이 너무 크구나.”

“크지요. 고작 반쪽짜리 승리, 아니, 반쪽은 될까 의심스러운 승리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손가망은 그 말을 하면서 저를 구해준 이를 떠올리며 한층 더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여전히 그는 그 병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못했다.


어쩌면 저번 전투로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가 죽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손가망은 절로 마음이며 어깨가 천근이고 만근이고 무겁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제.”

“필요한 죽음이었다고는 말하지 마십쇼.”

“그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 적어도 너는 공을 세웠다.”

“공이라. 자랑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씁쓸함을 가득 담아서 이르는 손가망을 본 이정국은 못내 미안함을 느꼈다.


본인을 대신하여 나선 것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지금 말할 것이 듣기에 따라서는 한층 더 손가망을 괴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랑해야 한다.”

“······그랬지요.”


안색을 가득 흐리면서 고개를 내린 손가망은 그 말을 인정했다.


이 일을 한 이유부터가 사기가 높아서 무엇이든 한번은 해볼 수 있을 때에 나가서 승기를, 아니 사기를 굳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자면 당연히 나가서 싸운 일은 실책이나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며 승리라고 말해야 마땅했다.


“자랑하겠습니다. 그걸로 아군이 승할 수 있다면 이 보잘것없는 놈의 부끄러움 따위, 중요한 게 아니지요.”

“고맙다.”


짧지만 더 없이 무거운 감사에 손가망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에 그는 의도적으로 활기차게 웃으면서 물었다.


“하하, 이긴 사람이 언제까지 풀이 죽어서야 이상하겠지요. 상황은 어떻습니까?”

“예상이지만 더는 충돌이 없을 거 같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들이 후퇴하기라도 했습니까?”


당황하며 묻는 말에 이정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그렇기도 하지.”

“꼬지 말고 속 시원히 좀 알려주십쇼.”

“놈들이 일부를 남겨서 우리를 견제하고 하고 일부는 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움직였다.”

“과연.”


머릿속에서 상황을 그린 손가망은 이내에 그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인들은 남고 오랑캐들은 움직였겠습니다.”

“정확하다.”

“허면 물러나······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그래.”


녹영들이 자신들을 견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서로 향했다고 하는 팔기들이 물러나는 순간 뒤나 옆을 칠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생각하면 이제 이정국을 비롯한 대리국 병사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였다.


현 위치를 지키며 이제는 의미가 옅어진 시간 벌기를 계속한다는 선택지 말이다.


“둘째 사형이 준비하는 일이 다른 의미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이제 우리가 아니라 저기 순나라 사람들에게 달린 일이 되었다. 아니면 개봉에서 대치하고 있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하여야 할지도 모르지.”


본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 자신들이 무엇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는 말에 손가망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하아, 이거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인생이 다 그런 법이지 않겠느냐.”


빙긋 웃으며 대답한 이정국은 진심을 담아서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난 꾸준히 참고 기다리며 칼을 갈다 보면 반드시 휘두를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이정국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서 어느 한 곳을 응시하니 손가망은 그곳이 개봉이 있는 쪽임을 꺠닫고 물었다.


“명나라에 기대하고 계십니까? 과거의 저희가 듣고 보면 놀라 기겁하겠습니다.”

“하하, 아마도 그렇겠지.”


명나라에 기대하다니, 한참 이상하고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일이었다.


허나 상황이 이렇게 되니 기이하게도 이정국은 돌파구를 명나라에서 찾고, 또 그들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순나라가 좀 더 잘해주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이정국이 하는 말에 순나라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여긴 손가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순나라에서 다시 군사 모으는 일이 그렇게 지지부진합니까?”

“그 반대다.”

“반대?”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손가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이정국은 그가 모르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순나라가 아무래도 이번에 진정 크게 나서려는 거 같다.”



***



“우 선생.”

“전하, 선생이라는 말은 이 자리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순나라 정왕 이자성이 부르는 소리에 순나라 예부상서 우금성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를 말렸다.


그에 이자성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상서니 하는 것보다 선생이라는 말이 좋소이다. 우 선생이며 이 선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지요. 실로 금세의 장량과 소하라는 말이 아깝지 않소이다.”


사람을 평하고 칭찬하며 옛사람에 비하는 것은 흔한 표현이다.


하지만 우금성은 지금 말을 그저 칭찬으로 받기보다는 여전히 이자성이 속에 활활 타오르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소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장량과 소하는 모두 한삼걸로 불리는 이들이니 그들을 휘하에 두고 있는 이자성은 과연 자신을 어디에 비추고 있는가 살피면 이 답은 명백했다.


“전에는 패배했소. 물론 한번 전투에서 패하였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지. 초한쟁패 시절을 생각하면 이는 명백하오. 허나 이번에도 패배하면 순나라는 그 존재가 위태롭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이부상서께서 그를 위해 군을 모아 계속 이곳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다를 것입니다.”


이는 그저 빈말이 아니니 순나라 이부상서 이암은 남양에서 계속해서 징병을 행하고 있었다.


순나라 권역에 있는 이들을 모아 평정산으로 보내니 벌써 평정산에 모인 순나라 군사들은 그 숫자가 십만을 넘었고 이대로 있다면 이십만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달라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덩치만 불린 오합지졸이니 저들이 의지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오.”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우금성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으니 그 모습에 이자성은 기대를 담아서 물었다.


“대답이 왔소?”

“왔습니다. 그리고 제 옛 친구는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오오!”


기뻐하며 반색하는 그를 향해 우금성은 확실하게 하겠다고 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곧 대리국에서 대량의 화약과 무기가 도착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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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1 24.06.30 47 10 13쪽
»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56 13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57 11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56 13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64 14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65 11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65 12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68 11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66 14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7 13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7 13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71 13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8 13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75 12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8 11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71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7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79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79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71 10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86 10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81 12 12쪽
603 602화 희생이 더 크면 의미가 없다 24.06.06 74 12 12쪽
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77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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