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새글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6.26 21:00
연재수 :
621 회
조회수 :
345,222
추천수 :
15,933
글자수 :
3,667,742

작성
24.06.11 21:00
조회
74
추천
11
글자
11쪽

606화 쇠와 나무

DUMMY

606화 쇠와 나무


“놈들이 움직입니다.”


대리국 장수 이정국은 곁에서 함께 바깥을 살피고 있는 사제 손가망의 말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숫자는 열세하며 준비한 것들 가운데 비격진천뢰와 그 주변에 얕게 묻어둔 화약 주머니들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완성한 진지뿐이었다.


“그래도 완성이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늦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어젯밤까지도 다들 녹초였다만.”

“하루 쉬고 아침에는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요.”


손가망이 하는 말에 이정국은 계속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에 그것이 자신에게, 더욱 정확히는 지휘관이라는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란 걸 기억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아주 다물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가 다시 연 입에서는 다른 화제가 나왔다.


“오랑캐들이 참으로 많구나.”

“소문에는 청나라 놈들은 하나 같이 말을 타고 복색도 우리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들 모두가 오랑캐는 아닐 겁니다.”

반절이 넘는 병사의 복색이 익숙함은 물론이고 말에 타고 있지도 않으니 아마도 그들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인들, 본래는 그들과 같은 명나라 사람일 터였다.


‘명나라 사람이라.’


이정국은 문득 그러한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었다.


그는 명나라 사람으로 태어나 명나라를 버리고 서나라를 따랐다.


그리고 서나라가 그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일도 없이 망하자 이제는 대리국을 따르고 있었다.


이렇듯 나라라는 것을 몇 번이고 바꾼 이정국은 저기에 있는 한인들에게 무어라고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두고만 볼 생각도 없었으니, 그는 손가망에게 명령을 내렸다.


“화포를 준비해라.”

“예?”


이정국의 말에 손가망은 적잖이 당황하였는데, 이는 지금 그들의 수중에 있는 화포라고는 오로지 비격진천뢰를 쏘는 게 주된 용도인 화포, 완구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완구밖에 없는 건 나도 알아. 아무렴 내가 지시했는데 모를까.”


본래부터 홍이포는 얼마 없었으며 그 얼마 없는 것도 전에 저들이 불을 지르는 걸 보고 다음을 생각하여 뒤로 돌린 상황이었다.


또한 그 명령을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이정국 본인이니 그는 진중에 남은 화포가 완구뿐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적들은 홍이포 같은 걸 가지고 있겠지.”


사정을 안다고 말한 이정국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바로 뜨면서 말을 덧붙였다.


“저들은 북경을 얻었으니 그곳에 있는 것 절반만 가져왔어도 우리 화포로는 상대도 아니 되겠지.”


이정국이 하는 말에 손가망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소리로 놀라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적어도 적들에게 대항하고 있다는 인식은 아군에게 줄 수 있으니까.”

“화약 낭비가 될 겁니다. 그리고 포를 쏘는 병사들은 늦건 빠르건 깨달을 겁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는 걸 말입니다.”

“그럼 있게 하면 그만이야.”


이정국은 그렇게 말하더니 굳은 얼굴로 다가가서 손가망의 귀에 말을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손가망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먹히겠습니까?”

“먹히든 먹히지 않든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어.”


선택지가 없다고 한 이정국은 멀리서 청나라 군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딱딱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할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해.”



***



“전진.”

“전진하라!”

“전진하라!”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의 명령에 따라서 사방에 명령에 전달되었다.


동시에 팔기들이 아니라 한인들로 이루어진 부대, 개봉에 있는 이들을 보고 새로이 모여든 녹영들이 걸음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있기는 했지만 두려움은 아니었다.


이들은 아직 제대로 실전을 경험하지 못하였으니 막연한 두려움은 있으나 그것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앞서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전에 개봉에서 살아 돌아온 녹영들이 받고 보여준 부와 지위 그리고 영예가 일으킨 욕망이었다.


-나도 할 수 있어.

-우리도 부유해질 수 있다.

-같잖은 관리들이 이제 내 아래야.

-위로 간다.


이러한 생각들이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이미 위험한 거리에 들어왔음에도 주저 없이 전진하게 하는 근간이기도 했다.


허나 그렇게 구는 것은 녹영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듯 도르곤의 눈은 냉철하게 빛났다.


“공격하지 않는군.”

“적당한 거리가 되길 기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화살이 닿을 거리라고 하여 쏘는 게 아니라 화살이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할 거리에서 쏜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을 잘 알고 있는 팔기 지휘관 구왈기야 오보이는 저들이 아직 공격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는 그가 불을 지른 흔적이 남아 있는 곳까지도 조금이나마 거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도르곤은 생각이 다른 것을 드러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적당한 거리다. 홍이포, 아니 홍의포가 있다면 말이다.”


얼마 전에 엇갈리는 명칭을 확실하게 정한 화포 명칭을 입에 담은 도르곤은 가만히 대리국 진지를 살폈다.


“극단적으로 방어적이군. 저 타버린 구간, 그 터지는 쇠공이 있다고 했지? 비격진천뢰라고 하던가?”

“그러합니다. 뿐만 아니라 얕게 화약 주머니 같은 걸 묻어둔 모양입니다.”


오보이가 하는 대답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던 도르곤은 확신하는 얼굴로 말했다.


“없군.”

“무엇이 없습니까?”

“적들에게 화포가 없어.”

“그럴 리가요.”


분명 화포 소리를 들었고, 그 공격을 직접 경험했던 오보이는 도르곤의 말을 부정했다.


그에 도르곤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바투루 오보이, 그대를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기에 적들에게 지금 화포는 없다. 아마도 있었던 거겠지.”

“있었다?”


도르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단박에 이해한 오보이는 고개를 돌려서 대리국 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돌연 그는 무언가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적들 진지가 이제 보니 만듦새 자체가 화포를 쏘기에 적합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것도 근거의 하나긴 하지.”


오보이가 말하고 도르곤이 수긍하였듯 대리국 진지에는 화포를 내밀고 쏠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멀리서 그 사실을 알았으나 도르곤은 오히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명중을 고려하지 않고 안전하게 쏘는 것만 생각한다면 저렇게 만든 후에 벽 뒤에서 넘겨서 쏜다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도르곤은 저들의 화포가 없다는 직감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꼈다.


“시험해 볼까. 화포를 전진 배치한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적들의 기만이라면 괜한 전력이 상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도르곤은 선선히 오보이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나 뜻을 바꾼 것은 아니니 그는 눈동자에 야수와 같은 빛을 깃들이며 말했다.


“만약 아니라면 우리의 일방적인 전투가 될 것이야.”



***



콰광!

쾅!


연달아 들리는 화포 소리에 이어서 목벽에 포탄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만이라면 차라리 나으련만, 대리국 병사들은 곧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콰직


“목벽이 무너진다!”

“으아아!”

“소리 지를 시간이 있으면 몸을 굴려!”


적들이 전진해 온다 싶어 그들을 보며 긴장하며 자신들이 들고 있는 병기에 의지하기도 잠시, 대리국 병사들은 단단히 다진 각오가 무색하게 피하기 바빴다.


두 겹이고 세 겹이고 보강한 벽이라고 하지만 소재적인 한계도 그렇고 몇몇 벽은 급히 세운 탓인지 완벽히 맞물리지 않아 내구도가 생각보다 약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메워! 여분, 여분은 어디에 있지?”

“아래에 있다! 어서 내려가!”

“내려갈 길이 없어!”


윽박지르는 동료를 향해 성을 내는 병사의 말처럼 아쉽게도 그들은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방금 부서진 목벽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게 안쪽으로 떨어져서 길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대리국 병사는 이를 악물더니 손에 든 조총을 내려놓고 달려갔다.


“좀 거들어라!”


잔해를 밀어서 내려갈 공간을 만들고자 용을 쓰는 그의 모습에 주저하던 주변 병사들도 달려들어서 그를 도왔다.


이윽고 사람이 지나갈 공간이 생기자 그는 곧장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래에 둔 여분 자재를 힘이 닿는 한 짊어진 그는 그며 함께한 동료들에 앞서서 올라가는 이들을 목격했다.


“오오, 그래! 그거지!”


그들을 본 그는 환호하여 기운이 솟는 걸 느꼈으니, 그가 본 이들은 다름 아닌 완구들을 목벽 위로 올리는 이들이었다.



***



“완구 배치, 곧 끝납니다..”

“너무 오래 걸려. 조금 더 빨리는 안 되었나?”

“어쩔 수 없습니다. 갑자기 그런 걸, 그것도 병사들이 거의 모르게 준비하라니요.”


손가망이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하니 이정국은 제 말이 조금, 아니 상황이 당장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었음을 생각하면 좀 많이 급작스러운 명령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개나 만들었지?”

“일단은 백 단위는 되고, 병사 수십을 따로 골라서 계속 만들고 있으니 당장은 쓸 수 있을 겁니다.”


듣기에는 참으로 든든하게 들리나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은, 말 깊숙이 감춰두고 있는 감정은 걱정이라는 걸 이정국은 쉬이 알아보았다.


손가망은 그것을 숨길 수 없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숨길 생각이 없었던 건지 곧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이정국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하지만 완성도는 정말 형편없습니다. 쏘는 사람이며 나르는 이들은 금세 차이를 알 거고, 눈썰미가 좋다면 쏘는 걸 보면서도 알 겁니다.”

“그럼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알지 못하고, 적들은 알아도 늦게나 알 거란 말이지?”

“그게 왜 그렇게 됩니까?”

“아니냐?”


확인하듯 묻는 말에 손가망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마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금 그가 보고 온 이 ‘대용품’이자 ‘사거리 대책’은 완성도가 너무 낮았다.


“그냥 둥글고 검을 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해.”

“이거 진짜로 조잡합니다. 먹과 진흙으로 검게 보이게 한 겁니다. 심지어 어느 것들은 둥근 게 아니라 그냥 각지기만 해요.”

“어차피 쏘면 죄다 박살 나서 몰라.”


대화가 되는 듯하면서 되지 않는 상황에 손가망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악!”

“벽이 또 무너진다!”

“자재, 자재 가져와!”

“이쪽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귓가에 울리는 아군의 외침에 그는 이것저것 가릴 떄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며 마지막 양심을 담아서 말을 토해냈다.


“들키면 위험합니다.”

“들켜도 된다.”


손가망이 하는 걱정을 오히려 당당하게 받아들인 이정국은 완구들이 전부 배치된 걸 확인하고는 멀리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사람 머리에 떨어지는 거다. 쇠가 아니라 나무라고 아주 무사하긴 어렵지.”

“정말 그러길 바랍니다.”


간절함을 담아서 이르는 손가망의 말에 이정국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여 동감을 표하고는 크게 외쳤다.


“완구들은 준비가 되는 대로 적들을 향해 쏴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6월 22일(토) 휴재 안내 24.06.22 8 0 -
공지 6월 9일(일) 휴재 안내 24.06.09 11 0 -
공지 [연재 기록 - 2024.06.01 기준] +1 24.05.18 48 0 -
공지 제목 변경했습니다. 22.11.17 392 0 -
공지 연재시간은 매일 오후 9시입니다 22.11.01 2,943 0 -
621 620화 정면돌파 NEW 7시간 전 22 6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46 10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54 11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57 10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59 13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1 12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3 12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66 12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3 12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69 11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2 10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68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5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75 10 14쪽
»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75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68 10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83 10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76 12 12쪽
603 602화 희생이 더 크면 의미가 없다 24.06.06 74 12 12쪽
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76 13 13쪽
601 600화 동상이몽 +5 24.06.04 68 16 14쪽
600 599화 의도와 결과 +1 24.06.03 72 14 13쪽
599 598화 영웅 +1 24.06.02 74 13 12쪽
598 597화 상상할 수 없는 세상 +2 24.06.01 72 15 13쪽
597 596화 전쟁에서 가장 먼저 부르짖는 말 +1 24.05.31 82 1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