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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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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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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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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27화 등롱

DUMMY

627화 등롱


“하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소인이 그간 격조하였습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제 앞에서 인사와 함께 얼마간 성의를 표하는 상인을 본 제독 오양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모 대인께서 어찌 여기까지?”


물론 아주 없을 일이 아닌 것은 알았다.


눈앞의 상인, 모장욱에게 사람을 보냈으니 무언가 반응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상인, 이렇게 말하는 건 모장욱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가장 부족하고 단순하며 어리숙한 말이었다.


남경 상인계를 이끄는 필두 모장욱.


다시 말해 남경 상인들에게는 왕이나 다름이 없이 구는 자인 것이다.


일이 있고 없음을 별개로 그런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이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부르면 오는 사람과 불러도 오지 않는 사람.


달가운 여부와 별개로 어느 쪽이 더 비싸게 굴고 있는지는 명백하니 말이다.


“대인께서 북쪽 일을 알고자 하신다고 들었는데, 마침 근래에 제법 기이하고 소란한 말을 들었습니다. 필시 누군가에게는 알려드림이 마땅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대인께서 제게 사람을 보내시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늘이 정한 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모장욱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더욱 정확히는 오양이며 명나라 사람들이라면 응당 관심을 기울일 이야기를 들은 건 바로 어제였다.


당연히 이야기에 대한 판단은 하였으나 진위는 파악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모장욱이 찾아온 것은 검증되지 않은 상품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나 그렇게 할 정도로 모장욱은 나름대로 다급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기껏 남경 상인 배태경이 서방으로 떠난 후 그의 손아귀에 온전히 쥐어진 무역로가 기대만큼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흑자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에 배태경이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고작 이득이 조금 늘어난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매사 일은 상대적인 법이니 백에 오십을 더하는 것과 천에 오십을 더하는 것이 같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 이득은 온전히 그에게 있다고 하나 모장욱은 이 상황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심 전에 적당히 먹고살 만하던 놈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였다면 자신이 그걸 얻은 순간 전에 비해 두 배는 크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는 명백히 현실을 도외시한 욕심이니 이루어질 리가 없는 소망이기도 했다.


문제는 단순히 기대만큼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최근 슬금슬금 다른 상인들이 그를 통하지 않고 상행하는 길을 찾아 조선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는 게 문제였다.


‘망할 새끼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사방 모든 게 마음에 차지 않고 거슬리던 차에 오양이 사람을 보내었으니 그는 이걸 기회로 삼고자 했다.


조정과 연줄을 더욱 크게 하여 다른 놈들이 함부로 나서는 순간 눌러버릴 생각을 품은 것이다.


그러자면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모장욱은 그 마음을 숨기며 굽실거렸다.


“또한 이야기가 작지 않아 사람을 통하여 전하면 반드시 빠짐이나 다름이 생기기 쉬우며, 전하는 데 반나절이 걸려 다시 전하는데 반나절이 걸리니 도합 한나절을 소모합니다. 만약 잘못된 점이나 이상한 점 혹은 알고 싶은 점이 있다면 보내신 사람으로는 어찌 대답하겠습니까? 응당 제가 오는 것이 옳지요.”

‘딴에는 또 그렇긴 한데.’


말 자체는 그럴듯하여 옳게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야기꾼 노릇 하려고 모장욱이 직접 발걸음하였다는 게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후, 일단은 듣고 생각할까.’


그렇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얼굴에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 오양은 그저 반색하는 감정만 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내 모 대인이 이리 나서준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작은 예의가 오간 후에 입을 열어 본론을 꺼낸 것은 모장욱이었다.


“북쪽에서는 최근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산둥에 말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경우 없는 말을 내는 일을 시작으로 더 위로 가서 살피자면 심양에서 유구국 왕제가 산둥을 시작으로 여러 곳 오가는 일도 있었지요. 딱히 흥미가 있으실지는 불분명하나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을 통하여 일본에 큰 행렬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흥미를 끌지 않는 일이 없으나 오양은 무엇하나 캐어묻지 않고 기다렸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 앞선 것들보다 확연하게 주의를 끌 이야기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오양이 예상한 대로 이어진 말은 과연 그가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귀를 기울이고 살필 만한 이야기라면 북경지변라 하겠습니다.”

“북경지변?”


북경에서 있었던 변이라는 말에 오양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변이라고 함은 보통 변고를 뜻하는데, 혹여 누가 죽었는가?”

“대명충의지사가 죽었고, 한간이 크게 다쳤습니다.”


모장욱이 이르는 말에 오양은 침중한 얼굴로 물었다.


“죽은 것은 누구며 다친 것은 누구요?”

“왕일이라는 이를 필두로 한 한 줌의 충성스러운 이들이며 크게 다쳐 보중하고 있는 것은 북경 순무인 왕정지라고 들었습니다.”

‘왕일? 죽었다고?’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오양은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일러보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술술 흘러나오니 북경이 오랑캐 천지가 되는 걸 더는 참지 못한 의인들이 일어났다는 말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들이 안타깝게도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하고 잡혀서 죽었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그 모든 이야기를 귀에 담으며 생각하니 오양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모장욱이 하는 이야기가 그가 아는 것과 한 가지는 다르다는 걸 말이다.



***



모장욱이 북경지변 이야기를 들려주고 몇몇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자 하였으나 오양은 바쁨을 들어서 거절했다.


대신 다음에 다시 자리하여 다른 이야기 듣기를 청하니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여긴 것인지 모장욱은 군말 없이 물러갔다.


그가 물러난 후 홀로 남은 오양은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왕일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대리국에 있으며 북경에 지인을 하나 두어 다음을 노리고자 하고 있다.”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내긴 했으나 오양은 이내에 쓰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한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당장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할 도리가 보이지 않는구나.”


마음과 같아서는 포상하고 이 일을 이용하여 북경 수복을 이루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하기란 요원하니 당장 이 일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물론이고 눈앞에 닥친 적들이 있음을 기억하면 어렵고 어렵기만 하게 보였다.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차선으로 다른 사람들, 가령 의흥제 주자랑이나 내각 대학사 겸 병부 상서 양사창에게 논하여 머리를 맞대면 좋은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효력을 잃기 마련이니 이는 생각은 하나 시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무언가 좋은 패를 쥐게 된 건 맞는데, 그걸 사용할 방도가 보이지 않으니 오양은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한 사람에게만 이 일을 전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는 자신이 혹여 무슨 일이 있다면 묻히지 않기 위함이니 오양은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 그뿐이라고 여겼다.


“어디, 정갈하게 써보도록 할까.”


이윽고 종이와 붓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한번 쓰기 시작한 글은 일필휘지라는 말에 어울리게 막힘이 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서 글쓰기를 마친 오양은 한번 살피고 또 한 번 더 살핀 후에 서신을 봉했다.


그리고 나가서 서신을 보내니 그 서신이 북경을 떠나서 향한 곳은 개봉 전선이었다.



***



“청나라 놈들이 옵니다!”

“그럼 물러나야지!”


주저 없이 외친 하남수군 총병 좌량옥은 뭘 망설이냐는 듯이 다그쳤다.


“어서 배를 물려라!”

“예!”


좌량옥의 호령에 하남수군이 배를 물리기 시작하나 다가오던 청나라 수군이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쫓아올 생각이 없는 모습이며 이미 수없이 본 광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좌량옥은 저들이 시야에서 아주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으니 지금 그가 하는 일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그대로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도 어느 정도 적들이 그를 노리리라는 건 예상하였다.


오래전에 개봉에서 벌인 일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초를 친 셈이니 청나라에서 좌량옥을 상대로 이를 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도 처음부터 사릴 생각으로 이렇게 물길을 오가며 수공할 장소를 물색했다.


당장 발이 묶이면 위험하니 적들을 속이겠다는 변명을 무기 삼아서 일을 늦게 할 생각도 품었다.


허나 그를 괴롭게 한 것은 정작 병부 시랑 오삼계의 독촉 같은 게 아니었다.


반대로, 어느 의미로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이게도 청나라 군사들이 그를 크게 괴롭게 했다.


조금만 제방이 있는 곳이며 쌓을 만한 곳으로 접근하면 청나라 수군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며, 그게 아니면 멀리서 팔기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어 경계하기 일쑤다.


심지어 녹영 부대가 성난 파도처럼 달려드는 꼴을 겪기도 하였으니 이제 좌량옥은 단순히 사리는 것이 아니라 나섰다가 적이 머리 꽁지라도 보이면 그대로 내빼곤 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전이 없음은 물론이고 그의 역할은 어느덧 그저 타초경사,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하는 일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목숨이야 건졌으며 나름대로 싸워서 이겼다고 주장하여 전공은 차곡차곡 쌓고 있었지만 사실상 홀로 강행 정찰을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좌량옥은 이 상황 자체가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그를 열받게 하는 것은 적군만이 아니라 아군도 그러했다.


“빌어먹을,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곘군.”


의도하였던 아니든 기껏 그가 적들을 끌어내었다면 응당 반대쪽에서 노림이 있어야 마땅하거늘 이상하게도 오삼계가 이끄는 군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을 미끼로 삼아서 제가 편하게 공격하고자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 좌량옥은 답답함에 짜증이 절로 치밀어 올랐다.


‘망할 오가 놈 같으니라고. 아주 하는 짓거리가 양사창 그 자식하고 똑같다니까.’


속내 검은 거야 잘 알고 있었다.


그 양사창 아래에 있는 놈이며 후계로 생각하는 놈이니 어련할까 싶었다.


그래도 아직은 그보다 못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좌량옥 보기에 치졸한 짓은 이미 전부 배운 모양이었다.


“대인! 무사하셨습니까!”

“부총병인가.”


멀리서 다른 배에 탄 하남 수군 부총병 황주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니 좌량옥은 그를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에 소리를 올리니 그 외침이 뜻하는 것은 명백했대.


“배를 붙여라! 부총병과 긴히 논할 것이 있다!”


좌량옥이 내린 명령에 따라 배와 배가 접안하여 판자를 놓아 통행할 수 있게 되니 좌량옥은 곧장 황주를 제게로 불렀다.


“부총병,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이리로 오시게!”

“예, 대인!”


부르는 소리에 한달음에 배를 건너온 황주에게 손짓하여 선실로 함께 들어간 좌량옥은 주변을 돌아보아 다른 눈과 귀가 없음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어떻게 생각하나?”


단순하지만 대답할 여지가 아주 많은 물음이니 황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그 모습에 좌량옥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놓고 말했다.


“이 등롱 같은 신세,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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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5 ageha19
    작성일
    24.07.03 21:18
    No. 1

    적의 시선을 끄는 등롱같은 존재... 근데 제놈이 얕은 꾀를 부려서 주변에 민폐끼친 정도를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꽤나 후하게 봐주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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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7화 등롱 +1 24.07.03 48 9 12쪽
627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2 24.07.02 51 11 13쪽
626 625화 자질구레한 일 +1 24.07.01 52 11 12쪽
625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2 24.06.30 59 11 13쪽
624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60 13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61 11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60 13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66 14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68 11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68 12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70 11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68 14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68 13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78 13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71 13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68 13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77 12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69 11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72 13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67 13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81 10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81 11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7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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