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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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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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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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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92화 선후가 바뀐 일

DUMMY

292화 선후가 바뀐 일


“가르침이라니요. 저는, 이 야규 미츠요시는 조선 사람도 아니고 붓을 잡는 것보다 칼을 휘두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김집이 이르는 말에 가장 먼저 입을 열어 대답한 것은 미츠요시였다.


이에 김집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허면 그 사람이 일자무식인 자라고 한들 얼마든지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법입니다.”

“그, 그렇지만······.”


신세 진 김반을 생각하면 그 형인 김집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더할 나위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니 미츠요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배움이라.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알기 보다는 이제 알고자 하니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윤휴가 눈을 빛내며 말을 대신하니, 미츠요시는 잠자코 입을 닫고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살폈다.


그와 반대로 김집은 윤휴가 하는 말에 크게 흥미를 보였다.


“알고자 한다라? 어떤 것들을 이름인지 한번 들려주겠는가?”

“물론이지요. 크게는 나라가, 작게는 사람이 움직이는 도는 그 배움이며 익힌 것에 근간하기 마련입니다. 공부함이나 경험 모두 이에 해당하지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윤휴는 방안에 둔 책장에서 책을 서넛 정도 꺼내어 도로 앉았다.


앉으며 책을 모두에게 보이도록 내려놓으니 김집은 자연스레 그 표지에 시선을 향했다.


“허어.”


분명 생긴 것은 책이나 그 겉면에 쓰인 것은 익히 아는 진서가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언문도 아니니 김집으로서는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자연스레 그 책들이 저 멀리 바다 건너서 온 것들임을 안 김집은 기대를 담아서 물었다.


“이것들은 무엇이오?”

“같은 사물, 가령 나무를 보고 사대부나 백성이나 중은 생각하는 것들이 각각 다릅니다.”

“사대부는 종이 만들 재료라 가장 먼저 생각하고 백성은 땔감으로 여기며 중들은 그것을 부처가 있느니 어쩌니 하겠지.”


예시를 듣고 그 속뜻을 김집이 금방 파악하고 대답하니 윤휴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독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하여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고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자 하면 자신을 기반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기반으로 두며 그 근간을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이오.”


김집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니 윤휴는 더 뜸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 멀리에서 온 자들을 알고자 하면 그들이 믿는 것, 중히 여기는 것들을 알아봄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이것들입니다. 하늘의 도니 하늘에서 보낸 사람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주며, 옛 역사를 통해 어긋남과 불순종을 경계하는 내용들입니다.”

“흥미롭군. 들으니 천자와 어느 정도 상통하는 거 같소만.”

“그것에 대해서도 다시 논할 것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천자와도 그렇고 도교적 사상과도 어울림이 있어 보입니다.”


윤휴는 그렇게 말하며 김집이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로 쓰여진 표지의 책을 들어 옆으로 옮기니 그 아래에 익숙한 진서로 된 글자가 보였다.


“천주집해(天主集解).”


표지를 읽은 김집은 천천히 손을 뻗어서 책을 들었다.


그러자 그 밑에 또 같은 제목이되 한 글자가 더 붙어있으니 김집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같은 천주집해······가 아니군. 신천주집해(新天主集解)?”


“들으니 저들도 우리가 훈고학, 성리학, 양명학을 놓고 다투는 것처럼 여러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백년도 전에는 그 일이 특히나 그 일이 심하여 둘로 나누어 나라마다 달리 믿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로 인해 크게 둘로 나뉘어 익히는 것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알겠군.”


윤휴가 이르는 말을 들으며 김집은 두 책을 번갈아 보았다.


“이쪽이 본래 있던 쪽, 그리고 이쪽이 새로이 일어났다는 쪽이군?”

“그렇습니다. 마침 저 혼자로서는 해석이며 배움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관심이 있어 스스로 짬을 내어 번역하고 익힘은 좋으나 홀로 익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윤휴는 누구 하나 자신과 같이 연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맡기고자 하면 그 대상이 극히 한정되고, 또 그 가운데 윤휴와 친분이 있으며 품은 재지가 뛰어난 이를 골라야 한다.


허나 그가 아는 한 그러한 이들은 모두 하나 같이 바쁘니, 비록 사대부가 배우고 익혀 논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고 하나 차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김집은 정말 예상치 못한, 동시에 이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 훌륭한 논의 상대였다.


이러한 윤휴의 사정이며 속뜻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김집은 즐거이 웃었다.


“잠시만요.”


그러한 가운데 한 사람이 석연치 않은 얼굴과 목소리로 끼어드니 윤휴와 김집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끼어든 사람, 미츠요시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주라고 하여 어디서 들은 것 같다고 여겼는데, 그거 키리시탄 이야기 아닙니까?”

“키리시탄?”

“나는 조정의 선례에 따라 길리시단으로 쓰나 아마도 맞을 겁니다.”


듣지 못한 단어에 반응하여 되묻는 김집과 달리 조정 신료로서 이미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찾아본 바가 있던 윤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윤휴가 긍정하니 미츠요시는 이제는 석연치 않음을 넘어서 껄끄러움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나라에 반역하여 위도 아래도 없이 하고자 한 이들입니다. 어찌 그런 흉험한 것을 연구하고자 하십니까?”

“반역하였다?”


김집이 흥미를 드러내며 윤휴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반란이 있었는데, 일어난 이들 다수가 이 천주를 믿는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들고 일어나게 하는 종교 따위, 어디서건 혹세무민하는 잡술이라 칭하면 충분합니다. 명망 높으신 선생들께서 굳이 이것들을 아실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미츠요시가 하는 이 말들은 진심이었다.


시마바라에서 일어난 난을 토벌하기 위해 들은 군사며 재물이 얼마나 많고 그 뒷처리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고생이 뒤따랐는지 미츠요시는 아비인 무네노리에게 따로 들은 바가 있었다.


그로 인해 막부는 그들을 향한 강력한 탄압과 배척을 강고하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 반란을 일으킨 이들의 학문이며 배움을 공부하다니, 그가 생각하기에 조선이라고 이러한 일들을 좋게 볼 거 같지 않았다.


“내세를 내세워 사람을 홀리는 일 따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군. 하지만 알아야 나쁜 점을 드러내어 계도할 수 있는 법, 옛날 삼봉 정도전이 불씨잡변을 지어 계도하였던 것처럼 말이외다.”

“계도? 모두가 죽을 때까지 저항했던 이들이 과연 그러할까 생각하면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말은 이해하나 걱정은 여전하여 미츠요시가 다시 이르니 이번에는 윤휴가 나섰다.


“그것은 선후가 뒤바뀐 일입니다.”

“예?”

“선후가 뒤바뀌었다라. 그건 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군.”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 미츠요시와 달리 김집은 곧장 그 저간 사정을 얼추 짐작하고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언제고 난이라는 건 몰릴대로 몰리고 썩을때로 썩은 다음에 결국 죽으나 사나 하는 심정이 되어 일어나는 법이지.”

“그렇습니다. 상께서 일본에서 난이 있다고 들으셨을 때 이르시길, 동래 부사께 자세한 사정을 더 캐어보라고 명하신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상인들이 전한 것보다 상세한 것을 알게 되니, 그 일에서 중요한 것은 이 천주라는 걸 믿은 자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번역한 책에 손을 올린 윤휴는 동정심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그들을 다스리던 이가 더 컸지요.”


윤휴가 이르는 말에 미츠요시는 시마바라를 다스리던 번주, 마츠쿠라 카츠이에가 영지 몰수는 물론이고 참수까지 당한 사실을 기억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는 사람은 압니다. 정말 죽을 만해서 죽은 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이 아래에 있다면 설령 믿는 것이 천주가 아니라 부처나 상제라도, 아니 참된 선비들로만 백성이 있다고 한들 참을 수 없는 게 정상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같은 일을 그대가 꿈꾸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느낄 필요 없다는 말에 미츠요시는 조금은 얼굴이 밝아지나 완전히 밝아지진 못했다.


지금 오간 짧은 대화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시야가 좁고 일률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까, 문득 미츠요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함께 이들과 공부하고 살피고 싶다. 그리고 배우고 싶다.’


함께하여 이들 자체를 배우고자 하니 미츠요시는 곧 마음에 먹은 것을 입에 담았다.


“신독 선생이라고 하셨지요. 제가 교신사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오. 말하고 듣는 것은 그저 그뿐이니, 들은 후에야 내가 능히 대답할 수 있을 듯하외다.”

“부디 두 분께서 하시는 일에 함께하여 배우고 익히게 하여주십쇼. 저 역시 오늘 시야가 좁고 생각이 짧음을 알았으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배움을 청하며 거짓이 없다고 하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니 김집은 물론이고 윤휴 역시 그 얼굴에 웃음과 희색이 감돌았다.


“하하, 사대부란 본디 평생 배우고 익혀 그것을 전하며 논하는 법. 영명한 젊은이가 수학하고자 하면 응당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지. 내 그대를 가르, 아니 함께 수학하는 자로 보겠소.”


김집은 이리 말하고는 안심하라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이건 내 동생이 남김 말과 별개요. 그대가 교신사가 아니라 일개인으로서 내게 요청하니 어찌 그것으로 갈음할 생각을 하겠소이까.”

“그것은 과합니다.”

“받아두시오. 쓸일이 없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니.”


김집이 이르는 말에 미츠요시는 고마움을 듬뿍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셋, 혹여 여기에 더 함께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까?”


함께하고자 하는 이가 없는지 묻는 질문에 미츠요시는 고개를 저으나 김집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보가 나와 함께 왔지. 그 녀석도 함께 할 걸세.”

“명보 형님도 오셨습니까? 그거 잘 되었군요.”


송준길이 동행하였다는 말에 윤휴는 아주 좋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더니 그가 이리 말한 연유를 꺼냈다.


“저는 종사관 한 분을 함께 하게 하고 싶습니다.”

“종사관? 이런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 좌랑 말고 또 있소이까?”

“관심은 잘 모르나 도움이 되실 분입니다.”


윤휴는 그렇게 말하며 두 종류의 천주집해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박연이라는 분인데, 이것들을 옮기는데 도움을 주신 분이니 말입니다.”

“호오.”

“아하.”


김집은 흥미를 보이고 미츠요시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윤휴는 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온 곳에서 오신 분이기도 하지요.”

“그거 기대가 되는구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안 보이시는데, 어디 나가셨습니까?”


미츠요시가 묻는 말에 윤휴가 대답하려고 하니 그보다 앞서서 바깥에서 크게 외쳐 찾는 소리가 들렸다.


“좌랑 나으리, 왔습니다! 양선이, 청나라 양선이 왔습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개운산지기님,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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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300화 예상 밖의 제안 +2 23.08.01 319 22 13쪽
300 299화 재물은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3 23.07.31 301 20 12쪽
299 298화 부모가 이기기도 한다 23.07.30 282 18 12쪽
298 297화 유모의 소망 23.07.29 290 22 11쪽
297 296화 경유지 +3 23.07.28 307 21 12쪽
296 295화 도망칠 고향 23.07.27 288 23 13쪽
295 294화 세 번은 사양 +3 23.07.26 290 21 12쪽
294 293화 천하 물산 +3 23.07.25 307 23 15쪽
» 292화 선후가 바뀐 일 +3 23.07.24 320 21 12쪽
292 291화 저 너머 +1 23.07.23 306 22 15쪽
291 290화 사제의 탐구 23.07.22 317 25 11쪽
290 289화 여정 +1 23.07.21 313 20 13쪽
289 288화 이상과 현실 +4 23.07.20 305 20 13쪽
288 287화 모사들 +3 23.07.19 322 19 12쪽
287 286화 소열의 비원 +3 23.07.18 346 19 11쪽
286 285화 선점 +1 23.07.17 314 19 11쪽
285 284화 어디로 갈 것인가 +4 23.07.16 315 20 12쪽
284 283화 병졸 하나 +2 23.07.15 312 20 15쪽
283 282화 동쪽에서 온 벼락 +1 23.07.14 321 20 16쪽
282 281화 길항 +2 23.07.13 323 18 13쪽
281 280화 기회와 고향 +3 23.07.12 320 20 12쪽
280 279화 계획은 틀어지는 게 전제다 +3 23.07.11 313 19 13쪽
279 278화 누구나 계획은 있다 +2 23.07.10 326 21 13쪽
278 277화 그 사람의 출신은 +3 23.07.09 331 21 14쪽
277 276화 바다 건너 온 사람들 +2 23.07.08 347 22 12쪽
276 275화 알아서 하는 고생 +4 23.07.07 337 20 15쪽
275 274화 서운함은 질시를 불러온다 +1 23.07.06 327 20 13쪽
274 273화 재주는 곰이 넘는다 +3 23.07.05 327 23 15쪽
273 272화 술은 흐려진 이성과 넘치는 감성의 친구다 +1 23.07.04 333 18 13쪽
272 271화 시기에 맞지 않는 초청 +1 23.07.03 335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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