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새글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623 회
조회수 :
346,172
추천수 :
15,981
글자수 :
3,678,712

작성
23.07.22 21:00
조회
315
추천
25
글자
11쪽

290화 사제의 탐구

DUMMY

290화 사제의 탐구


“대사간 영감께서 돌아가셨다고?”

“예, 방금 소식을 전하러 사람이 왔습니다.”

“허허, 허허, 허허허.”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마친 후 오늘 할 일이 많다 여기며 고심하기도 잠시, 뜻하지 않은 소식에 심기원은 허탈함을 담아서 소리내었다.


“나,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모시는 이가 돌연 실성한 듯 보이니 소식을 전하러 온 하인은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그 소리에 자신이 체통도 없이 굴었음을 자각한 심기원은 작게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험험. 사람을, 아니 직접 찾아뵙는 것이 낫겠구나.”


처음에는 사람을 보내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허나 이어서 김반과 전에 함께한 것을 떠올리니 직접 찾아감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서 그가 맡은 일이 떠오르니 심기원은 안색을 흐렸다.


“······이런.”


본디 조정에 매인 신료들은 그 거주며 업무로 인해 자유롭지 않으나 심기원은 지금 더욱 그러하니, 그가 얼마 전 맡게 된 일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를 따라 일본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일이니, 통신사로서 일본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심기원은 그야말로 적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먼 길을 또 가라니 썩 달가운 것은 아니나 갈 사람이 마땅치 않으며 또 이번에 가면 보국친왕이며 동행하는 청나라 예부 승정에게 맞추어 품계며 직책을 높여 줄 것이라고 하니 심기원은 고심 끝에 이 일을 받아들였다.


“시일이······아슬아슬하구나.”


말은 아슬아슬하다고 하나 실지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부족하니 심기원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에 들어선 아쉬움을 달랜 심기원은 하인에게 일렀다.


“이거참,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을 하기가 이리도 쉽지 않구나. 일단 사람 보낼 준비를 해두거라.”

“예, 알겠습니다.”


심기원이 마음을 다잡고 명하니 하인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하인이 물러난 후 심기원은 자리로 돌아와 앉더니 씁쓸함을 가득 머금고 중얼거렸다.


“대사간, 잡을 일이 없다고 너무 급히 가신 거 아닙니까? 아직 몇 마디 정도는 더 해주고 가셔도 되지 않습니까.”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 먼 길을 함께 하였던 것부터 시작해서 김반은 심기원에게 있어서 새로운 스승과도 같았다.


“사대부답게, 그리고 성급하게 하지 말라.”

“나으리.”


예전에 들은 말들을 되새기며 김반을 추억하고 있자니 하인이 고하는 말이 들렸다.


홀로 감상에 젖고 있을 때 부르는 것은 썩 달갑지 않으니 사정을 묻는 심기원의 대답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냐?”

“그, 객이 찾아오셨습니다.”

“객? 어디서 온 누구라고 하시더냐?”

“연산에서 온 신독 선생이라고 하십니다. 청년 하나와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연산, 신독 선생.


이 두 말을 통해 누가 찾아왔는지 안 심기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신독 선생께서 찾아오셨다고? 당장 안으로 뫼셔라!”



***



“야인 김집이 영감을 뵈오외다.”


형제임을 주장하듯 이목구비가 익숙하게 여겨지는 김집이 들어와 인사를 올리니 심기원은 곧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그냥 수지라고 불러주십쇼. 신독 선생이 야인이라고 무시하다니, 어디 그런 무도한 일을 하겠습니까.”


심기원은 그렇게 말한 후에 슬쩍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데 이런 시기에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혹시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큰일이라. 사람이 나고 죽으니 큰일이긴 하지요. 또한 그 유지를 이어 찾아오니 작은 일이라고 하면 떠난 자며 그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작게 여기는 것이니 차마 작은 일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소 돌려말하나 김반이 무언가 말을 남겼다는 뜻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은 심기원은 묘한 감정을 느끼며 물었다.


“안 그래도 오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던 참입니다. 무슨 말이건 달게 듣고 새길 터이니 거리낌 없이 이 사람에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참으로 고맙고 기꺼운 일이나, 기실 말을 들을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 김집입니다.”

“예?”

“아우가 이르길, 부사가 하는 일들이 다망하니 무언가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부사가 하는 일들이 다망하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심기원은 김반이 소문을 들었으며 어떤 의도로 김집에게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알았다.


이에 가슴이 먹먹하여 울컥하니, 심기원을 애써 시큰거리는 콧잔등이며 눈가의 촉촉함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는 길에 이 부족한 사람을 신경 써 주시니 실로 감사함이 한없습니다.”

“들으니 이제 곧 떠나신다지요. 하여 이리 급히 찾아뵈었습니다. 내 비록 글재주 말고는 재주가 없는 자이나 최선을 다해 도우리니 부디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김집이 이르는 말에 심기원은 본래 계획하였으나 보국친왕이 제물포에서 양선 하나를 준비하여 떠나기로 하여 포기한 일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말을 들었다고 넙죽 말하자니 민망한 일이다 싶어서 주저하니 심기원은 크게 주저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를 알고 김집이 다시금 말하니 심기원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사실 본래 대사간께 부탁드릴까 고민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시문입니다. 일본에 사는 이들은 조선 사람들이 써주는 시문을 보고 좋아하여 가보처럼 여기니, 전에 대사간께서 정사로 가셨을 때에 여러 사람이 즐거워하여 좋아했습니다.”


심기원은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움을 한층 강해지는 걸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험험, 부끄럽지만 부족한 저와 달리 대사간께서 쓰신 것은 모두가 만족하였습니다. 심지어 일본 대군, 그들이 국왕이라 여기는 자도 그리했습니다. 저는 그에 미치지 못하여 이번에 사람을 보내어 청할까 하였으나 예가 아닌듯하여 주저하였습니다.”

“과연.”


전에 김반이 들려준 이야기도 비슷한 것이 있으니 김집은 곧장 심기원이 바라는 바를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제가 부족하나마 몇 자 적겠습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함께 온 제자와 적고자 하는데, 어떻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제자라는 말에 동석하였으나 말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던 청년이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이니 심기원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사간께서 이르시길, 인의학을 주창한 정랑 송시열에 비견될 인재가 신독 선생 아래에서 수학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모쪼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기원이 말과 함께 고개 숙여 부탁하니 그는 미처 청년의 눈에 열기가 잠시 감도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은 다르다고 하는 것인지 김집은 곁눈질로 자제할 것을 이르고 다독이니 열기는 금세 사라졌다.


제자가 진정한 것을 확인한 김집은 바로 마주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미욱하나마 전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다만 사흘 정도 방이며 먹과 종이를 빌렸으면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



“그러면 부사께서 다녀오시는 길이 평안하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작게나마 성의로 준비하였으니, 가는 길에 노자로 쓰십쇼.”


사흘이 지나 일을 마친 김집이 떠나려고 하니 심기원은 대문 바깥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했다.


이에 김집은 곤란한 얼굴로 받은 주머니를 도로 내밀었다.


“이것은 재주를 사고파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러하나······.”

“그저 베풀었고 유지를 따랐을 뿐이니, 혹여 기억하신다면 나중에 이 성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로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신독 선생께서는 정녕 훌륭하시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여봐라!”


김집이 하는 말에 감탄한 심기원은 하인을 부르니 한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고개를 숙였다.


“예, 나으리!”

“안으로 가서······.”


심기원이 무어라고 하니 그 하인은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하인이 돌아오니, 그 손에는 다른 주머니가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가시는 질에 드시라고 준비한 먹거리들입니다. 이것은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십쇼.”

“흐음.”


김집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음 갈 곳이 머지않음을 알려주었다.


“그, 바로 돌아가지는 않고 제물포에 한 번 들릴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음식이 귀하여 넉넉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만하면 오히려 낫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물포에서 온 음식이니 한번 드셔봄도 좋을 겁니다.”

“제물포에서 온 음식?”

“가수저라라고, 달달하며 부드러운 떡입니다.”


심기원이 이르니 김집은 잠시 고민하다가 주머니를 받았다.


“거절하고 싶으나 호기심이 허락지 않는군요. 내 염치 불고하고 받겠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오로지 큰일을 도와주셨는데 이것밖에 대접지 못한 제게 있어 마땅합니다. 살펴가십쇼.”


배웅하는 심기원을 뒤로 하고 길을 가기 시작하니 길을 가기 오래지 않아 심기원이며 그 집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김집은 슬그머니 제자 송준길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심하다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간 더 걸어 한양을 나선 후에야 적당하다 여긴 김집은 송준길에게 물었다.


“명보야, 영보에 비견된다는 말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안다. 뒤집히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스승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송준길이 잠시 주저하다가 그렇다고 대답하니, 김집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네게도 기회가 올 것이야.”

“정녕 그럴까요? 저로서는 신풍 부원군의 일처럼 사대부라면 누구나 의견을 가질 일이 그리 흔하다고 생각기 어렵습니다만.”

“그런 일이 흔하다고는 하지 않으마. 하지만 말이다 명보야, 그런 기회가 꼭 백 년이고 천년씩 기다려야 오는 게 아니다.”


김집은 그렇게 말하며 멀리 제물포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다.


“제자백가가 다투던 시절에는 성현이 여럿 나왔다. 그리고 인정을 받건 받지 않았건 제 주장을 펼 수 있는 자리가 많았지. 지금 세상이 내가 보기에는 딱 그러하구나.”

“스승님께서는 지금이 난세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라고 하기에는 왜란부터 해서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으냐. 이제 나라는 안정되었으나 천하는 여전히 요동하고 있지.”


스승이 하는 말을 들은 송준길은 가만히 되새기니 과연 그른 말이 아니다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그리함이 달가움인가, 김집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제 가는 길에는 온갖 나라 사람이 모인다. 마치 옛 제자백가가 다투던 시절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모인다고 들으니 그들의 말들을 새기는 것으로도 새로운 것이 보일 거라고, 나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

“스승님······.”


김집이 어찌하여 새로운 것을 찾는지 알고 있는 송준길은 안타까움을 담아서 그를 불렀다.


그러나 김집은 이제 할 말이 없다고 하듯 입을 닫고 빙그레 웃을 뿐이니 송준길 역시 더는 무어라 말하기 어려움을 느끼며 묵묵히 길을 걸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8 297화 유모의 소망 23.07.29 290 22 11쪽
297 296화 경유지 +3 23.07.28 307 21 12쪽
296 295화 도망칠 고향 23.07.27 288 23 13쪽
295 294화 세 번은 사양 +3 23.07.26 289 21 12쪽
294 293화 천하 물산 +3 23.07.25 304 23 15쪽
293 292화 선후가 바뀐 일 +3 23.07.24 318 21 12쪽
292 291화 저 너머 +1 23.07.23 305 22 15쪽
» 290화 사제의 탐구 23.07.22 316 25 11쪽
290 289화 여정 +1 23.07.21 311 20 13쪽
289 288화 이상과 현실 +4 23.07.20 303 20 13쪽
288 287화 모사들 +3 23.07.19 320 19 12쪽
287 286화 소열의 비원 +3 23.07.18 345 19 11쪽
286 285화 선점 +1 23.07.17 313 19 11쪽
285 284화 어디로 갈 것인가 +4 23.07.16 313 20 12쪽
284 283화 병졸 하나 +2 23.07.15 311 20 15쪽
283 282화 동쪽에서 온 벼락 +1 23.07.14 320 20 16쪽
282 281화 길항 +2 23.07.13 322 18 13쪽
281 280화 기회와 고향 +3 23.07.12 319 20 12쪽
280 279화 계획은 틀어지는 게 전제다 +3 23.07.11 312 19 13쪽
279 278화 누구나 계획은 있다 +2 23.07.10 322 21 13쪽
278 277화 그 사람의 출신은 +3 23.07.09 329 21 14쪽
277 276화 바다 건너 온 사람들 +2 23.07.08 344 22 12쪽
276 275화 알아서 하는 고생 +4 23.07.07 335 20 15쪽
275 274화 서운함은 질시를 불러온다 +1 23.07.06 324 20 13쪽
274 273화 재주는 곰이 넘는다 +3 23.07.05 322 23 15쪽
273 272화 술은 흐려진 이성과 넘치는 감성의 친구다 +1 23.07.04 330 18 13쪽
272 271화 시기에 맞지 않는 초청 +1 23.07.03 332 23 13쪽
271 270화 더 잘 싸울 수 있는 장소 +2 23.07.02 351 21 14쪽
270 269화 우선할 사람 +2 23.07.01 337 19 11쪽
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53 2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