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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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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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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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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6화 바다 건너 온 사람들

DUMMY

276화 바다 건너 온 사람들


당금 청나라 정세는 확실히 말해서 평안이나 안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사람에 따라서는 혼란하다는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겼으나 실질적인 득은 적다.


물론 명나라에서 화친을 청하여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이 우위는 언제까지 보장될 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 우위가 자칫하면 금세 뒤바뀔 수 있다는 것만 어림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전쟁의 승리와 그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그 이후를 생각하고 대비하니 승전하였음을 즐길 틈도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계승 문제가 불거지니 친왕들을 위시로 청나라 사람들은 졸지에 눈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아랫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눈치 보기 시작하니 조금씩 경색되어가는 분위기는 확실히 이분법으로 말하자면 혼란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만 놓고 보았을 때 일이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듯 명나라에 비하자면 청나라는 혼란의 ‘ㅎ’도 꺼낼 수 없었다.


명나라에 비하자면 이러한 일들, 그저 산들바람에 나뭇잎이 하나 흔들리는 정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



“병사들의 상태는 어떤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노상승 휘하 장수로 일했던 이, 왕유는 어두운 얼굴로 되물었다.


대답 대신 질문으로 갈음하는 것은 그다지 보기 좋은 일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왕유가 그간 모신 사람들을 생각하면 죽은 노상승을 제하면 이런 말을 하였을 때 건방지다며 역정을 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허나 왕유는 곧 죽어도 입에 바른말은 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안 잘리고 살아남은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그가 모시는 사람은 이런 질문에 노승상처럼 관대했다.


“거짓을 말하여 무슨 득이 있단 말인가? 좋지 않음도 예상하고 있으니 가감 없이 이르시게.”


그가 지금 모시는 사람, 병부시랑 임경업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솔직히 말하라고 하니 왕유는 어두운 얼굴을 조금 밝게 하며 입을 열었다.


“전선이나 지키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그만하면 아주 나쁘진 않군그래.”

“······예?”


나쁘지 않다는 말에 왕유는 외려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에 임경업은 무엇이 이상하냐는 얼굴로 말해주었다.


“실전 경험 하나 없는 이들이 다가 아닌가? 아무리 노상승 장군이 이끌던 정예한 이들이 선임으로 이끈다고 하나 그 숫자는 고작해야 1할에도 미치지 못하지.”


임경업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시선을 주고 주변 정세를 표시한 표식들을 살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굶을 일이 없게 해주겠다는 말로 이끌린 백성들이며 유민들이 대다수인 군대에 무얼 바라겠는가. 그저 자리 지키고 도망치지 않고 배반하지 않으면 족한 일이지.”

“장군, 아량 넓으신 말씀은 실로 감읍합니다.”


먼저 임경업이 생각보다 현실을 살핀다는 점에 왕유는 진심으로 감탄하나 이어진 말은 감탄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제가 드리는 것도 조금 이상하나, 이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장 밀리는 듯 보이면 이들은 당장에 저 반란군에게 가담할지도 모릅니다.”


장수가 할 말인가 싶긴 하나 이는 왕유가 진심으로 우려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당초 민란을 토벌하기 위한 군사는 노상승 휘하 군사 말고도 남경 수비대에서도 어느 정도 차출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하여 못 해도 군사 3할은 숙련병으로 채우고 가능하면 절반은 그리하여 쓸만한 토벌군을 만들 예정이었다.


태자 주자랑은 물론이고 남경 총독 양사창 역시 이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일은 그대로 순탄히 이루어질 듯이 보였다.


그러나 북경을 포위한 척 위장한 청나라 군세, 버일러 아이신기오로 요토가 이끄는 이들이 북경과 남경 사이를 아예 휘젓고 뒤엎으니 남경 조정 신료들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나라가 북경을 무시하고 남경으로 내려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그들은 전전긍긍했고, 급기야 그들은 힘을 모아 태자 주자랑과 총독 양사창에게 청하기에 이르렀다.


남경 수비대를 차출하지 말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서 아예 새로 병사를 징병하자는 청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민란이 커져 남경에서 수비하기를 간청한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청나라가 들이닥치는 걸 걱정하다니, 이웃 동네에 불이 났으니 제 집에 불이 나는 걸 두려워하여 불 끄러 도우려고 가는 이들을 막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통용되고 말았다.


남경 신료들이 그저 청한 게 끝이 아니라, 재물을 모아서 군자금으로 내놓으며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정예병을 내어주는가, 아니면 정예병을 보존하고 군자금을 풍족히 하는가.


이 양자택일 가운데 군사에 밝지 못한 주자랑은 자연스레 그의 스승으로 자리한 양사창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양사창의 선택은 후자였다.


없는 것들을 더욱 짜내고 짜낼 바에는 하나라도 풍족히 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덕분에 두 달 정도로 예정되었던 징병와 훈련 그리고 편제는 반년을 넘도록 질질 끌게 되었다.


돈은 있으나 그것으로 시간을 사기에는 부족하였던 탓이었다.


양곡이며 무기 준비하는 일로 이미 군자금을 탕진하였으니 그래도 당분간은 병사들이 굶지 않고 싸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가담까지야 하진 않겠지. 대부분의 사람은 모험하지 않고, 편한 걸 좋아해.”

“그러니 가담하지 않겠습니까?”

“편을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세. 비슷한 처지에 있음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반대로 돌아서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지.”


경험에 의거하여 말한 임경업은 문득 정반대로 돌아섰던 이에 대해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풍문으로 그 죗값을 치렀다는 말은 들었던지라 불쾌함은 금세 가셨다.


“군대 모으는 일에 너무 오래 걸렸어. 좋으나 싫으나 이제 북방은 소강으로 접어들었다고 들었네. 아마 황상께서는 더 시간을 주지 않으실 걸세.”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사실 이만큼 오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숭정제 주유검이 임경업이며 양사창을 믿고 총애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총애도 이제 한계에 달할 시간이니, 그걸 암시하듯 북경이고 남경이고 가릴 것 없이 복왕 주상순의 이야기를 두어마디 논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장군, 송헌책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송 선생? 들어오시지요.”


바깥에서 들리는 말에 임경업은 바로 그를 안으로 들였다.


근래 보급이며 물자 마련하는 일을 맡아 분주하던 그가 찾아오다니, 임경업은 무언가 일이 생겼나 싶어서 걱정을 담아 물었다.


“양곡이나 화약이 부족합니까? 아니면 화살이나 신발이?”

“이런, 누가 보면 제가 장군께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는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그간 선생이 내게 말한 것들이 다 그런 것들입니다.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이 낡았다 하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이지요.”


송헌책이 농담 삼아 말하니 임경업은 보란 듯이 예시를 들어주었다.


그에 송헌책을 기억을 곰곰이 되새기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니 또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허면 무슨 일입니까?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임경업은 딱히 무언가 대단한 바람을 품지 않고 의례적으로 물었다.


그저 최악은 아니지만 상황이 무엇하나 마음에 차지 않으니 조금이나마 기뻐할 여지가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실어 물은 것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송헌책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송헌책은 자신이 그 바람을 채워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쓰게 웃었다.


“죄송하지만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아.”


진심을 담아 한숨을 토해낸 임경업은 곧장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말씀하시지요.”

“흉보입니다. 양양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양양이 떨어쳤다.


이 말에 임경업은 정녕 더는 출병을 미룰 수 없음을 직감하고 안색을 흐렸다.


‘하다 못해 앞에서 이끌 자들만 있었더라면 나았을 것을.’


선두에서 싸우며 사기를 올려줄 자들이라도 있다면 모은 토벌군도 좀 더 활약을 기대할 수 있으나 지금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이자성이라고 했던가요? 반란군의 수장 말입니다. 낙양에 이어서 양양이라니, 제법 능력이 있는 자인가 봅니다.”

“장군, 이자성이 아닙니다.”


이자성이 아니다.


이 말에 임경업은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음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입니까?”

“장헌충이라는 자입니다. 전에 이자성과 함께 고영상 휘하에 있었던 자입니다.”

“하나도 버거운데 둘이라. 그자는 이자성에 비하면 어떻다고 합니까?”


임경업이 두통을 느껴 이마를 짚으며 물으니 송헌책은 일단 들은 바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듣기로는 장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데, 몇몇 부하들은 아예 환생이라고 떠받드는 모양입니다.”


송헌책은 그렇게 말하며 내심 적아를 가리지 않고 보면 훌륭한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대한 영웅의 후손 혹은 환생으로 가장하여 사기며 또 다른 정당성을 확보한 셈이니 그가 생각하는 도참 이용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선조께서 다시 환생하셨다는 말인가?”

“예?”

“아, 그저 실없는 농입니다. 아무도 진지하게 여기진 않는 그런 농 말입니다.”


예전에 건너건너 들은 풍설을 입에 담은 임경업은 이곳이 조선이 아님을 새삼 깨달으며 말을 바꾸어 물었다.


“그렇게 자신할 정도면 용력이 제법 대단하겠습니다.”

“용력은 모르나 인망이며 용맹은 있어서 맹장 소리는 들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나 뒤를 돌아보지 않음은 정녕 장비와 같겠습니다. 독우를 때린 것처럼 뒤를 생각지 않은 일을 벌였으니 말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을 벌였다.


이 말에 임경업은 아직 듣지 못한 일이 있으며, 그 일이 어쩌면 양양이 함락된 것보다 더 큰 일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무슨 일을 벌였습니까.”

“이자성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나은 일이지요.”


이자성과 비슷한 일.


그 말에 임경업은 나올 말을 직감하고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귀를 막은 것도 아니고 정신을 놓은 것도 아니니 이어서 송헌책이 이르는 말은 똑똑히 그의 귓가를 울렸다.


“장헌충이 양양을 함락하고 양왕 전하를 잡아 처형했다고 합니다. 양양 사람들이 보는 백주 대낮에 양왕 전하와 그 일가 그리고 시중들던 이들 전부입니다.”


복왕에 이은 두 번째 죽음.


이에 임경업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아무래도 정녕 남겨진 시간이 없는 모양입니다. 왕유, 출병을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왕유 역시 두말없이 군례를 올리며 바깥으로 나서니 그도 임경업이 하는 말처럼 시간이 남겨지지 않았음을 크게 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북경에서 급보가 도착하니, 양왕 주익명의 죽음에 대한 숭정제의 분노와 함께 토벌군에게 이제 움직일 것을 재촉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같은 날 남경에서 사자와 함께 수백에 이르는 기세 엄중한 이들이 임경업에게 보내졌으니, 그 수백명 가운데 가장 앞에 선 대표는 시마즈 타다아키라 이름하는 자였다.


작가의말

[첨언 - 장비의 이름값?]

삼국지의 유명세 덕인가 이 시기에는 그 이름값을 빌린 듯한 일화가 몇몇 있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관우가 만력제의 꿈에 나타나 만력제는 유비의 환생이고 선조는 장비의 환생이니 도와달라고 청했다는 야사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 말기에는 여럿이 영웅호걸을 자청하며 나섰는데, 이 가운데 장헌충은 자신을 장비의 후예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더불어서 장헌충은 이를 자신의 정당성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모양인지 이후 근거지를 사천에 잡기도 하였습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비르지니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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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297화 유모의 소망 23.07.29 290 22 11쪽
297 296화 경유지 +3 23.07.28 307 21 12쪽
296 295화 도망칠 고향 23.07.27 288 23 13쪽
295 294화 세 번은 사양 +3 23.07.26 289 21 12쪽
294 293화 천하 물산 +3 23.07.25 305 23 15쪽
293 292화 선후가 바뀐 일 +3 23.07.24 318 21 12쪽
292 291화 저 너머 +1 23.07.23 305 22 15쪽
291 290화 사제의 탐구 23.07.22 316 25 11쪽
290 289화 여정 +1 23.07.21 312 20 13쪽
289 288화 이상과 현실 +4 23.07.20 303 20 13쪽
288 287화 모사들 +3 23.07.19 320 19 12쪽
287 286화 소열의 비원 +3 23.07.18 345 19 11쪽
286 285화 선점 +1 23.07.17 313 19 11쪽
285 284화 어디로 갈 것인가 +4 23.07.16 314 20 12쪽
284 283화 병졸 하나 +2 23.07.15 311 20 15쪽
283 282화 동쪽에서 온 벼락 +1 23.07.14 320 20 16쪽
282 281화 길항 +2 23.07.13 322 18 13쪽
281 280화 기회와 고향 +3 23.07.12 319 20 12쪽
280 279화 계획은 틀어지는 게 전제다 +3 23.07.11 312 19 13쪽
279 278화 누구나 계획은 있다 +2 23.07.10 322 21 13쪽
278 277화 그 사람의 출신은 +3 23.07.09 329 21 14쪽
» 276화 바다 건너 온 사람들 +2 23.07.08 345 22 12쪽
276 275화 알아서 하는 고생 +4 23.07.07 335 20 15쪽
275 274화 서운함은 질시를 불러온다 +1 23.07.06 324 20 13쪽
274 273화 재주는 곰이 넘는다 +3 23.07.05 322 23 15쪽
273 272화 술은 흐려진 이성과 넘치는 감성의 친구다 +1 23.07.04 330 18 13쪽
272 271화 시기에 맞지 않는 초청 +1 23.07.03 332 23 13쪽
271 270화 더 잘 싸울 수 있는 장소 +2 23.07.02 351 21 14쪽
270 269화 우선할 사람 +2 23.07.01 337 19 11쪽
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53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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