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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의 서재

버스기사의 이세계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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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6.27 19:4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0,385
추천수 :
299
글자수 :
550,317

작성
24.02.2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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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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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바둑판과 바둑돌

DUMMY

26화 바둑판과 바둑돌


“자세히 좀 말해보게!”


허리를 두드리고 있던 워커가 주헌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기대감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오목 외에도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게끔 바둑판과 바둑돌이라는 걸 만들어서 사용했어요.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둘 수도 있고, 집에 보관하면서 가족들과 할 수 있게끔요.”


“만드는 방법은? 방법은 어떻게 되나?”

떼쓰는 아이처럼 달라붙는 워커.


주헌은 워커가 부담스러우기도 했지만, 조그마난 쥐족이 그러는 모습을 보니, 나이답지 않게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바둑판 같은 경우는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고, 바둑돌 같은 경우에는 재료를 플라스틱이나 사기, 유리, 아니면 검은색과 흰색 돌로 만들었다고만 알고 있어서 정확한 제조 방법은 저도 잘...”

“아,,,”


워커는 금세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씁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목이 재밌나?’


바둑의 역사는 꽤 긴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처음 만들어진 바둑판과 바둑돌은 뭐였을까?


주헌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일단 떠오르는 대로 실망한 워커를 달래보고자 말했다.


“바둑판 같은 경우는 나무를 깎아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잉크를 이용해서 줄을 그으면 될 거예요. 바둑돌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제가 살던 곳과 똑같이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흠... 조약돌을 주워 진한색과 연한색 같은 걸로 구분해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바둑돌이 무조건 검은색 흰색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구분만 될 수 있으면 충분히 오목을 둘 정도는 되니 말이다.


“오! 그래 그렇군... 구분만 된다면...”


워커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공방으로 향했다.


***


이틀 뒤.


“어떤가? 자네 말을 듣고 내가 한번 만들어 본 건데.”


워커가 자신만만하며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바둑판이었다.

정말 원래 세계에서 판매하는 것이라고도 믿을만한 바둑판, 모난 곳 하나 없고 표면은 매끄러우며 흐트러짐 없이 일자로 그어진 선들도 완벽한 바둑판 그 자체였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자네 말을 듣고 그나마 비슷하게 만들어 본 거라네. 어떻게 자네가 쓰던 것과 비슷한가?”


“이건 그냥 똑같은데요?”


“그거 다행이군. 녀석들이랑 밤을 새서 만든 보람이 있구만 그래, 껄껄.”


“녀석들이라면?”


“누구긴 누구겠나? 우리 목공소 식구들이지.”


주헌은 또 한 번 흠칫했다.


기껏 거짓말로 싸지른 똥을 치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다시 그들을 일만 반복하는 지옥 구덩이로 보내버린 것 같았다.


“하하... 여... 역시 쥐족의 손기술은 정말 대단하네요.”


“이것도 한번 봐주게.”


워커가 예쁘게 만들어진 나무상자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열어 보라는 듯 주헌에게 고갯짓했다.


주헌은 조심스레 나무상자의 뚜껑을 젖혔다.


“이... 이건!”


각각의 나무상자에는 검은색 바둑돌과 흰색 바둑돌이 들어있었다.


모양은 동그라미로 공통이었지만 크기는 조금 뒤죽박죽인 돌들, 하지만 바둑판처럼 표면이 매끄러우면서 제대로 된 광택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이 시대치고는 매우 훌륭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사용하는데, 지장은 없겠어요.”


칭찬으로 한 말이었는데, 워커에게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 역시. 아직은 부족하구만.”


툭-


워커가 나무 상자의 뚜껑을 거칠게 닫아버렸다.


“이건 버리고 녀석들이랑 다시 만들어 봐야겠네.”


워커는 장인정신이 투철했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불량품 취급하며 무가치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을 부숴왔고, 그런 습관 덕에 수공예 기술력은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고생하는 헤일로라던가 목공소에서 일하는 수인들을 봐왔던 주헌은 또다시 같은 지옥을 반복적으로 겪게할 생각은 없었다.


주헌은 나무상자를 뺏었다.


“아니, 이렇게 잘 만든 걸 왜 버려요?”


“자네가 살던 곳에서 쓰던 것과 다르다고 하지 않았나?”


당연스레 묻는 워커에 당황한 것도 잠시 주헌은 머리를 굴렸다.


‘이 꼰대같은 노인네를 설득하려면...’


“그... 그! 제가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바둑돌의 재료는 흑요석이나 동물의 뼈, 조개, 옥 같은 것을 이용하기도 했다구요. 제가 아쉽다고 한 거는 그... 그래! 재료가 조금 고급품으로 했으면 더 최상품이 됐을 거란 의미로 말한 겁니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생각나는 대로 그냥 입 밖으로 꺼냈다.


“아까는 크기와 모양이 아쉽다고 하지 않았나?”


‘눈치 빠른 할아범 같으니라고...’


“하하... 크기와 모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촉감과 내구도! 바둑판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바둑돌의 소리가 중요하다구요! 엘로!”


주헌은 다급히 말을 끊으며 엘로를 불렀다.


“네. 왜요?”


“나랑 오목이나 한판 두자고. 여기 앉아, 앉아.”


“예? 갑자기요?”


엘로는 어리둥절하며 앉았다.


워커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주헌을 바라봤으나, 주헌은 식은땀을 흘려가며 목공소 수인들을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부터 둔다.”


탁-


주헌의 바둑판의 중간에 먼저 돌을 뒀다. 그러곤 엘로가 바둑돌을 들 틈도 주지 않고 바둑판과 바둑돌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소리좀 봐. 완전 똑같아!”


“예?”


엘로는 무작정 불려와서 오목을 두자고 하던 상대가 대뜸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자 미친놈인줄 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워커를 속이기 위한 사투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탁-


다음 차례인 엘로가 두자. 또다시 대뜸 칭찬을 늘어놓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보통 돌의 종류가 달라서 소리도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울리는 소리가 비슷하다니! 이건 최상품입니다! 최상품! 이건 바로 팔아도 되겠어요. 엘로 이거 바로 팔자!”


“술 마셨어요?”

엘로는 점점 주헌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목표는 오직 워커.


주헌은 워커의 표정을 슬쩍 바라봤다.


미세하게 입꼬리가 떨리며 올라간 것이 보였고, 주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헤일로... 내가 너 살렸다.’


“확실히 나뭇가지로 하는 것보다 편하네요. 이렇게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돌을 놓기만 하면 되고, 다 두고 나서도 통에 바둑돌을 나눠서 넣으면 되니까요.”


“그렇지? 바로 팔아도 되겠지?”


주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워커를 확실히 무너뜨리기 위해 회심의 한방을 더 날렸다.


“이건 확실히 새 놀이도구이고 방법은 형님... 아니 비서님이 잘 알고 계시니, 특허를 내는 게 좋겠어요. 오목이라는 놀이가 지금은 랫트 마을에서만 유행이지만 특허 등록을 해두면 자연스레 홍보 효과도 생길 거예요.”


이세계에도 원래 세계와 비슷한 특허가 있었다.

엘로가 말하기로는 아무래도 도적들이 많다 보니 각 상단에서 만들어 낸 기술이 도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타이칸 제국에서 만들어진 게 특허제도.

본인이 만들어 낸 제품을 특허로 등록하면 판매 독점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상인 길드 자체에서 특허권을 보장하면서 설계도가 도난당하더라도 절차상의 허가 없이 판매하는 경우 직접 나서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특허는 상인 길드에 가서 내면 되는 건가?”


“그렇죠?”


주헌은 때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마부길드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상인길드도 같이 방문하면 되겠네. 어쨌든 워커 할아버지! 이건 시제품으로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



랫트마을에서는 아침 댓바람부터 쥐족 남자 전원이 동원됐다.


바로 팔 물건을 버스로 옮기는 것.


암벽 마을만 아니었다면 버스를 끌고 올라와서 물건을 챙겼을 텐데... 암벽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 썩은 나무 위를 걷는 것뿐이었고, 버스가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쥐족 남자들이 물건을 한 보따리씩 짊어 메고 암벽을 내려와 버스로 옮기는 대작전이 시작됐다.


주헌 역시... 물건을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쏟아져 내린다.


물건이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꽁꽁 언 흙길이 미끄러워 긴장됐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천천히 다 내려오고, 겨우 버스에 도착했더니 온몸이 젖었다.


“어우... 덥다... 더워.”


주헌은 보따리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 팔로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버스 문을 수동으로 열기 위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버스를 처음 본 수인들은 신기해하며 버스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약간 겁을 먹는 이들도 있었지만, 같이 내려오던 엘로가 자랑하듯 버스에 대한 칭찬을 끊임없이 귀찮을 정도로 늘어놓았기에 거부감이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뒤쪽부터 차곡차곡 놓으면 됩니다.”


주헌은 문이 열린 버스 위로 다시 보따리를 들고 올라탄 후 제일 구석자리에 짐을 내려놓았다.


뒤이어서 한명 한명 들어오던 쥐족 남자들도 뒤에서부터 차곡차곡 짐을 놔뒀다.


“세상에 이렇게 넓다니... 마차보다 훨씬 크잖아? 짐을 더 실을 수 있겠는데?”


“그래서 스승님이 하루 종일 일을 시켰던 거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아.”


“큰 것 말고도 빠르다는 게 제일 중요하지! 버스는 말이야!”


엘로는 콧대가 높아져서는 자랑하듯 또다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주헌은 그 모습에 질색팔색하면서 바로 다음 사람의 짐을 옮겨받아 차곡차곡 물건을 쌓아 올렸다.


쥐족 남자들도 엘로의 말을 또 듣는 건 싫었는지, 떠드는 엘로를 무시하고 짐을 옮겼다.


“그래서! 3일 만에 랫트마을로 올 수 있었다는 거지! 어? 다들 어디 갔지?”


“엘로! 아니 상단주님 일 좀 합시다! 자꾸 이러시면 일 같이 못해요!”


“아! 갑니다. 가요!”


마을과 버스를 두세 번 왕복하고 나서야 모든 물건을 버스에 실을 수 있었다.


“엘로. 너 장사할 때 이렇게 많이 팔았었냐?”


저번에 창고를 한번 훑어보긴 했었지만, 막상 버스에 짐을 다 옮기고 나니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분명 마차보다 버스가 더 클 텐데도 운전석과 엘로가 앉을 앞쪽 좌석이 있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버스의 총 3분의 2가 짐으로 가득찼으니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이만큼을 제가 팔겠어요?”


“어?”


엘로도 버스 안의 물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게 원래 들고 다니는 물건의 서너 배는 되는 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헌이 처음에 완판을 했다느니, 인기가 많다느니 호들갑을 떨어서 이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게 왜 거짓말을 해서는... 쯧.”


“너는 형님한테 쯧이 뭐냐 쯧이!”


주변에 보는 이들이 많아 눈치를 보며, 귓속말로 말다툼을 이어가는 둘.


이걸 지켜보는 이들은 그게 또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세상에 엘로와 비서님 좀 봐. 표정이 심각한 게 아무래도 중요한 사업 얘기를 하는 거겠지?”


“역시 사업가들은 달라! 저 표정 좀 봐. 아마도 물건을 팔기 위한 전략을 짜고 계신 게 아닐까?”


하지만 실상은.


“넌 출발하면 처맞을 준비나 해라.”


“우웨에에에에~ 싫은뒈?”


“됐어. 나가! 너 안 태워줄 거야! 넌 걸어와!”


“와... 쪼잔하다. 쪼잔해.”


사업 얘기는 전혀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다툼을 이어가는 둘일 뿐이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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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큰일 났네, 큰일 났어! 24.04.25 5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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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화 파격적인 조건 24.04.08 8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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