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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6.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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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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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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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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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819

작성
24.05.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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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6화 스위트룸과 패닉룸

DUMMY

66화 스위트룸과 패닉룸



“방이 없으니, 거기라도 써야죠, 뭐. 대신에 새 침구류랑 깨끗하게 정리가 좀.”


“그거라면 걱정 마슈.”


짝.


“이제 됐으니. 계산하고 올라가슈.”


노파는 박수 한 번 치고는 다 됐다면서 곧바로 가격표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저기요. 할머니... 이거 가격표가 좀 잘못 된 것 같은데요?”


가격표에는 대실은 시간당 1실버 숙박은 하루 3골드라고 적혀있었다.


그리지의 와이스너 여관과 비교하면 숙박비가 15배에 달했고, 중심부의 호화로운 여관들과 비교해도 3배는 족히 넘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타지에서 온 외지인이라지만 이런 허름한 여관이 텃세를 부리는 것까지 감안할 생각은 없었다.


“싫으면 말구. 여기 오는 외지인들은 보면 다~ 방이 없어서 와놓고선 겉모습만 보고 비싸다고들 하지. 이잉, 쯧.”


무너질 것만 같은 건물인데 무슨 호화롭다고 헛소리를 하는 건지...


그렇게 여관을 나가려고 할 때.


딸랑 딸랑.


풍경이 울리면서, 보따리를 가득 들고 있는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오오, 오랜만이구먼. 납품하러 온 거유?”


“예, 어휴. 근데 오늘 납품하는 가게가 쉬는 날이라지 뭡니까. 어쩌겠습니까. 내일까지 기다려야지요. 허허. 대주교님은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대주교? 대주교면 높은 것 아닌가?’


“뒷방 늙은이가 뭐 평안하지, 뭔일이 있겠소? 읎지.”


“하하, 그래도 은퇴하셨으면서도 대주교님만큼 마르지엘라 성국을 위하는 이가 없지요. 그나저나 방은 있습니까? 오늘 성문 입구에 평소보다 북적북적한 게 방이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잠깐만 기다려 보슈.”


노파가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금 실눈으로 주헌을 쳐다보는데.


“어떻게, 예약할 거유? 말 거유?”


“하하. 얼마라고 하셨죠?”


혹시라도 마지막 방을 남자에게 뺏길까 봐, 품에서 바로 3골드를 꺼낸 주헌이었다.


“2층에 2번째 방으로 가슈. 그리고 여기는 처음인 것 같으니 내 특별히 신경 좀 써드리리다.”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노파는 또 한 번 박수를 쳤다.


서비스가 뭐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비싸고 허름하면서도 구석탱이에 있는 여관까지 타지사람도 찾아오는 걸 보면 분명 만족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



“이 할망구가 노망났나!”


주헌은 방문을 열자마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깔린 꽃잎들과 모퉁이에 일자로 이어진 촛불들 하며, 셋이 누워도 될 것 같은 큰 침대 이불에는 꽃잎으로 하트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헌은 곧장 방문을 닫고 이건 아니라며 따지러 대주교인지 뭔지하는 할망구에게 향하려는데.


“으악, 형! 참으세요! 참아요.”


“맞습니다, 선배님. 그래도 방도 넓고 침대도 넓고 이게 어딥니까!”


엘로와 스템이 주헌의 허리춤과 다리를 붙들었다.


“너넨 저곳에서 자고 싶니?”


“아휴. 어차피 남자끼린데 뭐 어때요.”


“그... 그렇슴다. 엘로님 말씀대로 어차피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분위기가 이상하잖아! 분위기가!”


“촛불은 끄면 되고, 꽃잎은 구석에다가 치우면 돼죠. 우리가 뭘 그런 걸 따졌다고~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그렇슴다! 버스에서 동고동락하면 다 본 사이지 않슴까. 저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슴다.”


겨우 2주 남짓 기간동안 보면 뭘 봤다는 건지. 기가 찬다.


“그리고 아까 남자가 하는 말 들으셨잖슴까! 마르지엘라 성국 대주교는 높은 직책이라 건들면 큰일남다!”


“하아...”


결국 엘로와 스템의 만류에 대주교에게 한마디 하려던 주헌은 한 수 물러나게 되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좀 놔. 일단 돈도 지불하고 방도 없다고 하니 여기서 묵는 걸로 하고, 저기 재수 없는 꽃잎들이랑 초는 당장 치우자.”



***


다음 날 아침.


주헌은 오랜만에 개운한 느낌을 받았다. 딱딱한 버스 바닥에서 오래 지내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정말 꿀맛 같은 단잠이었다.


“이상하게 개운하네.”


“엇! 선배님도 그러심까? 저도 깨자마자 피로가 싹 날아간 게 좀 신기했습니다.”


“저도요! 그리지 집 보다 더 편한 느낌인데요?”


혼자 느꼈다면 우연이겠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다.


주헌은 설마 치우지 않고 딱 하나 켜둔 양초 때문인가 싶었다.


아로마 향이 나는 양초가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건만.


“다들 얼굴이 좋구먼. 원래 피로회복 스킬은 무리가 가서 잘 안 써주는데 말이야.”


카운터에서 있던 노파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쩐지 너무 개운하다 싶더라니.”


“대주교님께서 해주신 모양임다!”


엘로와 스템이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 아~주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잤어요~”


주헌은 어제의 사태가 아직 앙금에 남아 비꼬듯 말하면서 노파를 아니꼽게 바라봤다.


“그쪽은 말하는 것이 꼭 불만족스러운가 보우?”


“잠은 잘 잤지만, 어제 같은 장난은 치지마십시오.”


“장난?”

“꽃잎이랑 초 말입니다!”


“아아~ 난 또 셋이 그런 사이인줄 알았지.”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나?


“오랜만에 재밌는 걸 보나 싶었는데 말이우, 다 치워버리고 금방 자버려서 좀 아쉬웠다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고 보니 어제 남녀한쌍이 내려오는 걸 딱 알아맞추고... 지금 말하는 뉘앙스를 봤을 때, 이 할망구는 벽을 뚫어보는 투시 같은 것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사생활 침해다!

“설마 우리 방을 훔쳐 본 겁니까?!”

“아아, 뭐 어떤가, 다 늙은 노인네가 좀 봤다고 문제될 것도 없지.”


‘그게 문젠데요.’


할 말은 많았지만, 어차피 하루만 묵는 거였고 다시는 올 일이 없을 테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딱 하나만 물어보고.


“아... 예 그러시구나... 그건 그렇고, 저희가 성당에 좀 방문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죠?”

“성당 구경하려고?”


주헌은 입밖으로 ‘세례’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슬쩍 스템의 눈치를 보고는 말하던 걸 멈췄다.


“엘로~ 여기 키 줄테니까. 스템 씨랑 먼저 버스에 가 있어라.”


“아이씨, 귀찮...”


엘로는 귀찮다는 듯 짜증을 내다가 주헌이 윙크를 빠르게 날리는 것을 보고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템 씨 우리 먼저 가요~”


“어...어! 넵!”


엘로가 스템을 끌고 여관을 나서자, 주헌은 곧바로 노파에게 고개를 돌리며 본론을 꺼냈다.


“세례를 좀 받고 싶어서요.”


“잉?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데?”


“나이가 중요한가요? 돈 때문에 뒤늦게 받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흠... 뭐 그렇긴 하지만, 내 그쪽을 위해서 한마디 하자면 안 하는 게 좋슈.”


마르지엘라 성국의 대주교였다는 사람이 세례를 받지 말라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예?”


“그 나이 동안 잘 지내왔으면서 세례는 무슨 세례우? 내 말 믿고 그냥 조용히 여행이나 하다 가시오.”


처음에는 농담인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면 진담인 것 같은데.


덜컥. 딸랑딸랑~


“대주교님 큰일! 흐읍!”


다 찢어질듯한 허름한 사제복 차림의 남자가 급히 들어오더니 무언가 말을 하려다 주헌을 보고 입을 가로막았다.


평소에 실눈으로 있던 노파는 남자의 등장에 한쪽 눈을 크게 떴다.

백내장이라도 걸린 것인지 눈동자가 새하얗다.


“말 안 해도 다 아네, 볼레르 추기경이 또 사람을 보낸 모양이구만.”


노파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앞쪽으로 나왔다.


“피 보기 싫으면 카운터 바닥에 있는 지하실로 가시게.”


짝!


노파는 주헌의 등을 떠밀며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박수를 한번 쳤다.


주헌은 카운터 뒤로 떠밀리며 곧장 지하실 문을 여는데. 커다란 굉음과 함께 창문의 유리가 깨지며 거대한 바람이 여관 안을 가득 채웠다.


먼지와 잔해들이 휘날리며 앞은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태풍과도 같은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주헌은 바닥에 몸을 바짝 붙여 겨우 지하실로 내려갈 수 있었고, 바람에 닫히지 않는 문을 있는 힘껏 당기며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바깥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비명과 함께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지는 소리와 액체 같은 것이 쏟아지는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주헌은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바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두 손으로는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조차 흘러가지 않게끔 했다.


들키면 그야말로 죽음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갖 파열음과 타격음, 비명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버티고 버텨, 어느덧 바깥은 조용해졌다.


드디어 끝났나 싶어, 지하실 문을 살짝 여는데.


“아이고, 이 할망구가 뭐라고 이리도 오래 걸렸는지. 쯧.”


부서진 카운터 틈으로 검정색 차림에 검정 복면을 쓴 남자가 쓰러진 노파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노파의 얼굴은 피범벅이로 흰색 옷은 염색한 듯 빨갛게 물들어버렸다.


“대장~ 바깥에 있는 놈들은 어쩔까요?”


“어차피 부랑자들 아니야? 힘도 제대로 못 쓸 거, 남자들은 다 죽여. 여자들은 전부 추기경님께 데려가고.”


“넵!”


“아니지, 잠깐!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알겠습니다!”


검은옷의 사내들이 여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주헌은 조심스레 지하실 문을 바깥쪽으로 완전히 열어젖혔다.


흙먼지와 함께 잔해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깐! 방금 안쪽에서 무슨 소리 안 들렸나?”


‘이런 젠장!’


멀리 나가서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귀가 어찌나 밝은지. 주헌은 곧장 지하실로 다시 들어가 문을 당기려는데.


푹, 푸북, 퍽석.


재수도 없지... 금이간 벽면이 무너지면서 지하실 문 위로 거대한 잔해가 떨어져버렸다.


거대한 잔해를 치우지 않는 이상, 절대로 닫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하실 문 위의 잔해를 치워보려 했지만, 거대한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혼자선 무리였다.


파삭. 파사삭.


바닥의 유리 잔해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포기하고 가만히 지하실 입구에 주저 앉아있을 때.


카운터의 갈라진 틈으로 피범벅의 노파의 새하얀 눈동자가 보였다.


죽은 줄 알았던 노파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노파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지하실을 가리켰다.


지하실 문을 덮고 있던 거대한 잔해가 조금씩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주헌은 곧장 지하실로 들어가며 문을 잡아당겼다.


문이 거의 닫히기 직전 주헌은 노파와 눈을 마주치며 감사인사를 표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숨을 버리게 될뻔했으니.


노파는 눈만 두어 번 껌뻑거리며 주헌의 인사에 화답했다.


퍼석, 퍼석.


바닥의 유리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검은 옷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이 할망구 아직 살아있어? 목숨줄 하나는 진짜 끈질기네.”


검은 옷의 사내가 검집에서 장검을 꺼내 들고는 그대로 내려친다.


푸슉!


차가운 날붙이가 노파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으며 노파의 눈동자는 점점 총기를 잃어갔다.


주헌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으로 살짝 열어놓았던 지하실 문을 그대로 닫았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은 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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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세례 24.05.06 49 3 12쪽
68 68화 신벌 24.05.05 47 2 12쪽
67 67화 감옥 24.05.04 47 2 12쪽
» 66화 스위트룸과 패닉룸 24.05.02 51 1 12쪽
65 65화 마르지엘라 성국 최서단 24.05.01 46 0 12쪽
64 64화 뫼비우스의 띠 24.04.29 47 0 12쪽
63 63화 누가 봐도 1등은 나지 24.04.28 47 1 12쪽
62 62화 길잡이 스템 24.04.27 48 1 12쪽
61 61화 큰일 났네, 큰일 났어! 24.04.25 56 0 12쪽
60 60화 레벨업 24.04.24 59 0 13쪽
59 59화 클레임 처리 참 쉽습니다 24.04.22 58 1 13쪽
58 58화 쿠폰 20장 모아오세요 24.04.21 57 0 12쪽
57 57화 무료 시식하고 가세요! 24.04.20 61 1 13쪽
56 56화 투자를 받다 24.04.18 66 0 12쪽
55 55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24.04.17 61 0 11쪽
54 54화 네브린 남작의 시찰(2) 24.04.15 63 1 12쪽
53 53화 네브린 남작의 시찰 24.04.14 64 1 13쪽
52 52화 헤일로의 사정 24.04.13 68 2 12쪽
51 51화 매표소를 만들어요 24.04.11 76 1 12쪽
50 50화 파격적인 조건 (2) 24.04.10 76 1 12쪽
49 49화 파격적인 조건 24.04.08 77 1 14쪽
48 48화 그리지를 집어삼킨 산사태 24.04.07 84 0 13쪽
47 47화 몸소 보여주는 게 답 (2) 24.04.06 83 1 12쪽
46 46화 몸소 보여주는 게 답 24.04.04 86 1 12쪽
45 45화 일꾼을 데려오겠습니다 24.04.03 84 1 13쪽
44 44화 내 집 마련(2) 24.04.01 81 2 12쪽
43 43화 내 집 마련 +1 24.03.16 110 3 11쪽
42 42화 장인 +2 24.03.15 94 2 14쪽
41 41화 폭탄 돌리기 24.03.14 9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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