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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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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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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1.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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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흉신이 지나간 자리

DUMMY

“으아아아아—!”


단조 마을의 남자들은 땅 위에 네 발로 엎드려 울부짖었다. 떨리는 두 손은 흙을 거머쥐었고, 두 다리는 엎드린 채로 버둥거렸다.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용쓰는 꼴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짓누른 것은 바위 따위보다 더 무겁고 참혹한 슬픔이었다.


“아아아아!”


더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구 또한 그들을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불타버린 폐허 위에 엎드려 울부짖는 사람들 사이에서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것뿐이었다.


“이게 뭐냐······ 이게 다, 이게······”


시해가 주구를 향해 겨우 입을 열었지만, 그 역시 자기를 짓누르는 슬픔을 떨쳐낼 힘은 없었다. 그는 주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울었다.


“이게 다아······ 다 무슨 일이냐······!”


주구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에 큰불이 있었습니다.”


“우리, 우리 가족은······ 어엉? 우리 가족은!”


시해는 그렇게 부르짖더니 이내 주구를 버리고 제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일구 역시 울부짖으며 온 마을을 쏘다녔다.


“여보! 도도! 아아아악! 도도!”


일구는 간간이 비명을 섞어가며 가족들을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일구가 다른 사람을 부르더라도 대답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그러나 시해도, 그의 사환들도, 그리고 일구도 염국에 있는 내내 단조 마을에 임한 재앙을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 연기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인근에 있는 다른 유족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단조 마을에 왔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진 뒤였다. 그들은 이 거대한 화마가 단조 마을을 집어삼킨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음 마을까지 먹어 치울 것을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은 단 이틀 만에 꺼졌다. 이틀간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불이 더 번지지 않은 까닭은 바람이 불지 않은 덕이지만, 비도 오지 않는 마당인데 온 마을을 집어삼킨 불이 어떻게 단 이틀 만에 재만 남기고 사라진 것인지 유족들은 의아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기이한 재앙을 향해 품은 유족들의 의구심은 얼마 못 가 공포심이 되었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단조 마을 주변에 금줄이라도 쳐 놓았을 것이다.


온 유도가 쩔쩔매며 뭇별들에게 기도했다. 부디 우리 마을에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동안 시해는 효부인에게서 얻은 은전을 품에 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구름을 밟는 신선과도 같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선녀의 옷자락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수완 좋은 장사꾼을 맞이할 이들은 이제 아무 데도 없었다. 죽은 가족이라도 좋으니 안고 곡을 하려 해도 시커먼 숯덩어리가 된 주검들 사이에서 누가 누군지 분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해와 그의 사환들은 부디 이 사람처럼 생긴 숯덩어리들 사이에서 내 가족만은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온 마을을 헤맸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그들은 산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산 사람들은 교족들과 급히 떠난 그들의 젊은 딸 몇뿐이었다.


해가 저물고 나니 이제 하나둘 주검을 끌어안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끼니도 거르며 가족들을 찾느라 온 힘을 써버린 일구도 결국, 길 한복판에서 아내 세나를 찾았다.


그가 시커멓게 타버린 세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손가락에 남아 있던 가락지 덕분이었다. 그가 인계에서 사다 준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으으······ 으으······”


울 기운도 모조리 다 써버린 일구는 그저 세나를 안고 바닥에 누워 흐느낄 뿐이었다.


남자들은 그런 일구를 마을 공터로 데려갔다. 다른 남자들이 새벽빛을 등에 지고 가족들을 매장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주구도 있었다.


“저 이가 제일 많이 묻었습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요.” 하고, 어느 사환이 주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해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는 제 가족 무덤 위에 엎드려져 있었다.


주구가 일구를 발견하고는 삽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누가 보아도 일구는 시해만큼이나 지쳐 보였다. 땅을 파기는커녕 삽을 들 힘조차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일구는 묵묵히 땅을 팠고,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매장을 마친 남자들은 너나 할 것이 시해처럼 무덤 위에 엎드리거나 그 옆에 주저앉아 울거나 잠들었다.


주구만 다만 멀찍이 떨어져 그들을 지켜봤다.


“큰불이 났다고······”


일구가 말했다. 목이 쉬어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귀가 밝은 주구에게는 또렷이 들렸다.


“누가 불을 질렀나······”


일구의 말에 몇몇 남자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주구는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들을 가만히 마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모릅니다.”


“자네는 왜 여기 남았지?”


주구가 보기에 일구에게는 이제 말할 기운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주저앉은 일구의 곁에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일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옥산의 사냥개였지······ 찾았나?”


“아니오.”


“그놈은 교족인가, 유족인가······”


“유족입니다.”


“그놈이 누군지는 아나?”


“······압니다.”


“그놈이 불을 질렀나?”


그 말에 이번에는 유족들 몇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주구는 그러나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일구의 말에만 얌전히 대답했다.


“모릅니다.”


“그놈도 죽었나?”


“모릅니다.”


“그놈을 찾으려고 여기 남았나?”


“······아닙니다.”


“그럼, 왜?”


일구가 충혈된 눈으로 주구를 돌아봤다. 눈동자도 붉은데 충혈되기까지 한 바람에 어디까지가 눈동자이고 어디까지 흰자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주구가 보기에 일구의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짐승의 것처럼 보였다.


무슨 속내를 품고 있는지, 무슨 감정을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눈이었다.


그러나 주고는그러나 주구는 값진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러분을 기다렸습니다.”


일구는 대답 없이 주구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든 것인지, 우는 것인지 주구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유족들 역시 다시 주저앉거나 무덤 옆에 드러누워 조용히 곡했다.

주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마을에 남아있는 동안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 큰불을 끌 힘도 없었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도울 힘도 없었다.


그저 산등성이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무덤을 팠을 뿐이다.


만약 시해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면, 그래서 어쩌면 혼자 이 많은 주검을 묻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주구는 불평 없이 그 일을 해냈을 것이다.


마을의 주인들이 돌아왔고, 주검도 모두 수습했으니 더는 주구가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주구는 유족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비록 그 누구도 그의 마지막 인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텁텁한 재 냄새를 가르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저 뒤에서 일구가 그를 불렀다.


“주구!”


주구가 멈춰서자 곧장 일구가 그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주구의 몸이 휘청했다. 일구가 그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서 말했다.


“불을 지른 놈이 누구야!”


“모릅니다.”


“누구야—!”


일구는 주구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주구의 온몸을 흔들어대며 제 할말만 쏟아냈다.


“누구야! 누가 세나를 죽였어! 누구야아!”


주구가 아예 입을 닫아버리자, 일구는 약이 바짝 오른 까마귀처럼 울어댔다.


“너지! 네가 불을 질렀지? 그래서 너만 산 거 아니냐!”


일구의 발악을 들었는지, 저 멀리서 유족들이 하나둘 걸어오기 시작했다. 잿가루가 날리는 뿌연 공기 속에서 유족들의 눈이 붉게 빛났다.


“아닙니다.”


“그럼, 누구냐고! 말해!”


주구는 다시 입을 열다가 이내 다물었다. “따라오십시오.” 그는 제 어깨를 잡은 일구의 손을 단번에 뿌리치고는 그대로 몸을 휙 돌려 저 앞으로 걸어갔다. 일구가 잰걸음으로 그를 쫓았다.


유족들은 더 쫓아오지 않고 멀어지는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무덤가로 돌아갔다.


주구는 일구를 데리고 서천강변으로 향했다. 녹음이 강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흩날리고 있었다. 여름을 목전에 둔 계절이었음에도 강바람은 서늘했다. 풀어헤친 일구의 머리가 꼭 강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녹음 같았다.


주구는 멀거니 서서 강너머를 바라봤다. 일구는 조바심을 못 이기고 윽박질렀다.


“네놈이 맞는구나! 날 서천강에 빠뜨릴 셈으로 데리고 왔느냐?”


주구가 그를 휙 돌아봤다.


“저는 사냥개지, 사냥꾼이 아닙니다.”


“뭐야?”


“전부 다는 못 가르쳐드립니다.”


아예 주먹까지 휘두를 기세로 씩씩거리던 일구의 눈빛이 바뀌었다. 주구는 혀끝으로 한 번 마른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름 없는 흉신이 있습니다.”


“흉신? 그게 네가 쫓는 사냥감이냐? 아까는 유족이라고 했잖아.”


주구는 일구의 말을 무시하고서 제 할말만 계속했다.


“그 흉신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그 흉신은 아마 자기가 흉신인지도 모를 겁니다.”


밑도 끝도 없는 흉신 타령에 일구는 주구의 멱살을 잡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 마을에 남아 죽은 유족들의 무덤을 파주기까지 했던 주구가 이제 와서 농지거리나 하며 자기를 희롱할까 싶기도 했다.


일구는 그때까지도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얌전히 주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흉신에게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재앙이 그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흉신은 제 주머니가 터진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 재앙은 그 뒤에 바짝 붙어서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먹이를 받아먹었습니다. 어느새 재앙은 점점 덩치가 커졌습니다. 어금니는 날카로워졌고, 발톱도 제법 쓸만해졌죠. 흉신의 주머니에서 찔끔찔끔 나오는 먹이로는 도저히 배를 채울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그래서 재앙은 흉신의 발뒤꿈치를 물어버렸습니다. 흉신의 피로 배를 불리려는 속셈이었죠.”


주구는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나 일구는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입을 뻐끔거리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머리를 싸매고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구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강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한참을 울던 일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흉신은, 그럼, 흉신은 지금 어디 있냐······”


“모릅니다.”


“왜 흉신을 쫓지 않고 여기 있나······”


“여러분을······”


주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신을······ 시신을 수습하고······”


주구의 서서히 목소리가 잠겨 들어갔다.


“네 힘으로는 도저히 흉신을 막을 수 없더냐?”


주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다 봤느냐?”


“······ ······”


“내 아내가 죽는 것도?”


“······ ······”


“도도가 없더라.”


일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도의 주검은 없더라. 죽은 마을 사람들은 모조리 묻었는데, 그중에 내 딸 도도는 없더라.”


“교족이 데려간 것 아닙니까?”


“아니야. 도도는 여기 남겠다고 했어. 바림이 걱정된다고······”


하던 일구가 갑자기 입을 떡 벌리고는 주구를 쳐다봤다.


“바림도 없었다.”


주구가 고개를 숙인 채로 눈만 굴려 일구를 마주 쳐다봤다. 일구가 다시 한번 말했다.


“바림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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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4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5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4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6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6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6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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