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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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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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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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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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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불

DUMMY

소우가 염국으로 떠나기 전인 사흘간, 시해는 대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우를 판 돈을 어떻게 나눌지, 앞으로의 거래에 관한 계획은 어떻게 세울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좋은 결말을 맞이했지만, 뜻이 맞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시해는 타향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도량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해주겠노라 제안했지만, 대무는 거절했다.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상 치르는 방법이 있소.”


대신 시해는 도량의 명복을 빌며, 쌀 몇 가마니를 대무에게 맡겼다.


“이것으로 떡이라도 하라 하시오.”


시해는 대무와 바림의 혼처에 관해서도 논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에 옥산으로 시집오겠다는 처녀들이 있지 않소? 좀 봅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고, 산 사람은 또 자식을 놓고 살아야지.”


시해는 그 말을 왕대에게 전했고, 하루 만에 유족 처녀 열댓이 시해의 집을 찾았다.


올망졸망하고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처녀들은 상기된 얼굴로 저들끼리 바짝 붙어 제 앞에 서 있는 교족 남자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교족 남자들도 그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이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처녀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폈다.


“하나가 부족한데?”


하며 대무가 시해를 쳐다봤다. 시해는 뒷짐을 지고 느긋한 투로 말했다.


“바림은 아직 몸이 성치 않아서 나오질 못했소.”


그러자 대무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오지 않는 게 좋겠소.”


시해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거 참나.”


대무가 고개를 흔들었다.


“못 들었소? 도량이 마음에 두었던 처녀가 그 바림이라는 애요. 누가 걔를 데려가겠다고 나서겠소? 어차피 몸도 성치 않다는데, 그냥 두시오. 여기 오늘 온 아이들도 아주 보기 좋구만.”


그리고는 시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교족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닳겠다, 닳겠어! 오늘 밤에 그냥 초야를 치를까?”


대무의 짓궂은 농담에 처녀들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허둥지둥했고, 교족 남자들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해댔다. 대무는 껄껄 웃고는 처녀들의 부모들에게 말했다.


“자, 얼굴은 봤으니, 오늘은 여기서 파합시다. 조만간 이놈들이 좋은 소식을 들고 갈 테니, 대문이나 활짝 열어 놓으시오!”


유족들은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지절거리며 시해의 집을 나섰다. 교족 남자들도 흥분을 영 가라앉히지 못하고 저들끼리 컹컹 짖으며 숙소로 향했다.


안뜰에는 시해와 대무만 남았다.


대무도 뒤이어 집을 나서려는데, 시해가 그를 불렀다.


“그러지 말고 좀 보고 가시오.”


“애가 아프다며? 병들어 골골대는 것을 데려가면 그게 짐짝이지, 뭐요? 당장에 아버지 상도 치러야 할 텐데, 다음에 또 봅시다. 우리가 오늘 한 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니고.”


대무는 시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달랬다. 그러나 시해는 영 포기할 줄을 몰랐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죽어서까지 하나뿐인 딸 앞길을 막고 싶을까? 상은 간소하게 2일장으로 치르고, 사흘 후에 데려가시오. 이제 아버지도 없고, 집도 없는 아이요. 불쌍한 인생 하나 건진다 생각하시고 데려가 주시오. 애초에 약속하지 않았소? 좋은 혼처가 있다고.”


대무가 혀를 찼다.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은 참 안 된 일이지. 어찌 보면 또 아버지 걱정은 인제 그만 두고 새 인생을 살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 상을 치르자마자 혼례를 올리는 것은 경우가 없는 일 아니오? 혼처는 걱정 마시오. 옥산에 널리고 널린 게 남자요. 옥산으로 돌아가면, 또 좋은 혼처가 있나 알아보리다. 그리고 다음 거래 때 만나서 얘기하면 되지 않겠소?”


시해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 꽤 측은했던지라, 대무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지고 말았다.


“친 자식도 아닌 애를 참 살뜰히도 보살피십니다.”


“그 애 아버지가 내게는 참 가족 같은 사람이었소. 우리 상단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었지. 정신을 그렇게 놓지만 않았어도······ 내게 자식이라고는 아들뿐이오. 그래서 바림을 더 내 딸처럼 여기지요.”


그러고는 별수 없다는 듯,


“내 생각이 짧았소. 단장 말이 맞소. 상을 치러야 할 아이에게 혼례복을 입히려 하다니, 마음이 아무리 조급한들, 해서는 안 될 짓이오.”


시해는 예의 그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곧 염국으로 갈 것이오. 단장께서 좋은 물건을 구해주신 덕에 이윤을 많이 남길 듯싶소. 내가 없더라도, 안사람이 정성껏 모실 터이니, 내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쉬다 가시오.”

그리고 시해가 염국으로 떠난 그날, 대무는 교족들에게 눈여겨본 처녀가 있으면 가리지 말고 데려오라고 일렀다.


“싫다고 하면 겁박을 하든, 그 자리에서 겁탈을 하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데려와라.”


그 말에 교족들은 적잖이 놀랐다.


“그래도 됩니까?”


“정 여자가 궁하면 그렇게라도 하란 말이야.”


교족들은 대무의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저들끼리 이야기했다. 그러다 한 젊은 교족인 태승이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주구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게 다 무슨 소리냐?”


주구는 그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좀 전부터 손에 들린 뭔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뭐야?”


태승이 묻자, 주구가 그것에 시선을 못 박은 채로 말했다.


“부적.”


“어느 동네에서 그런 부적을 쓰냐?”


“인간들이 쓰지.”


그 말에 태승이 입을 다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부족은 주구가 쫓는 사냥감과 관련된 물건일 것이다. 사냥감을 찾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교족들에게는 옥산의 사냥개에게 사냥감에 관해 묻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문제는 이 젊은 교족에게 궁금한 것은 절대로 못 참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태승은 주구에게 캐묻는 대신 곁눈질로 부적을 훔쳐봤다.


그것은 돌을 열심히 깎아 만든 것이었다. 손바닥의 반절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은 그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위는 넓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타원형의 형태였다. 앞면은 판판으로 넓적했으며, 그 위에는 쥐의 얼굴을 음각으로 새긴 형상이 있었다.


주구는 그것을 빤히 보다가 냄새를 맡았다.


피 냄새가 났다.


타고 남은 바림의 집터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그런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그것은 타다 남은 가죽 주머니 안에 있었고, 그 탓에 텁텁한 연기 냄새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가죽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닦고 또 닦으니, 부적에 스며들어 있던 오래된 냄새가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피 냄새였다.


마계 온 천지를 다니는 교족이라 할지라도 이 부적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라면 서천강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건너는 옥산의 사냥개 중에는 이것의 정체를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주구가 그랬다. 그러나 주구도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주구는 부적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때까지도 부적을 훔쳐보는 태승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는 아까 들은 질문에 답했다.


“단장 말대로 해. 여자를 데려가고 싶으면 지금 데려가. 해가 지기 전에.”


“당장 떠난다는 말이야? 그런 말은 없었는데.”


“곧 말씀하실 거야.”


주구가 자리를 뜨려 하자 태승이 그를 붙잡았다.


“왜 당장 떠난다는 거야?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지? 그건 말할 수 있잖아.”


그러나 주구는 순순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주구는 점잖게, 그러나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태승이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는데, 과연 대무가 교족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 옥산으로 돌아간다. 해가 지기 전까지 떠날 채비를 마쳐라.”


교족들은 아쉬운 듯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대무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단조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옥산으로 함께 갈 처녀들을 찾았다. 물론, 대무의 시답잖은 농담처럼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처녀들을 겁박하거나 그들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유족들이 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호쾌하던 웃음을 거두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처녀를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리니 누군들 그들에게 딸을 맡길까. 시해의 주선을 받은 처녀들마저 고개를 흔들었다.


교족들은 겁먹은 처녀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어르고 달래, 겨우 처녀 대여섯 명을 데려올 수 있었다.


“친정에 지참금을 넉넉히 보내줄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한 젊은 교족이 제 신붓감에게 하는 말을 들은 대무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주구뿐이었다.


대무는 교족들을 모두 마을 북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모았다. 대무가 재촉하는 통에 처녀들은 발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어갔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단조마을은 고요했다. 집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들도 땅거미 속으로 고요히 침전했다.


“흐윽······”


유족 처녀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다른 처녀들도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교족들이 처녀들의 등을 쓸어내리거나 어깨를 안고 달랬지만 울음은 좀처럼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무는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짜증을 내었지만, 주구는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상을 치르는데 곡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대무가 주무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 말대로 했다. 이젠 어쩌냐?”


“돌아가야죠. 아니면,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을 한가운데서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처녀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어쩌면 좋아!”


“불이야, 불이야!”


어떤 여자는 무작정 마을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대무가 나서서 여자를 가로막았다. 대무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돌아가 봤자 늦었어.”


그 말과 함께 마을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처녀들은 아예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대무는 교족들에게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교족들은 울며불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여자들을 둘러업고, 서둘러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대무가 주구에게 물었다.


“너는 이제 어쩔 테냐?”


불길은 삽시간에 온 마을 전체로 퍼졌다. 불꽃이 홰치는 소리와 사람들이 비명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주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마을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의 손에는 부적이 들려 있었다. 대무는 주구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간다.”


그러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교족들을 따라갔다.


주구는 아예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불타는 마을을 지켜봤다. 무리의 비명은 한동안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만, 얼마 지나고 나니 들리는 것은 장작이 불타는 소리뿐이었다.


간혹 저 멀리서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불길은 굶주린 뱀처럼 그들을 추적해 한입에 집어삼켰다.


주구는 가만히 앉아서 그 모든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두 눈에 담았다. 그의 표정은 바위처럼,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지만, 부적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은 너무 세게 쥔 탓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교족 중 주구의 다음 여정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들 모두 이 갑작스러운 화재와 주구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도통 호기심을 참을 줄 모르는 태승이 결국, 대무에게 물었다.


“불이 날 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무는 주변을 잠시 살피는 듯 가만히 있더니 태승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마을에 흉신(凶神)이 있다.”


“네?”


대무는 마치 불길한 기운을 털어내려는 듯 말을 이었다.


“재앙이 흉신의 발뒤꿈치를 물고 있어서, 흉신이 가는 곳마다 재앙이 일어나는 거야.”


“그걸 대체 어찌 아시고······”


“주구가 뭔가를 찾은 거지.”


태승은 우뚝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주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재앙의 불만 산등성이 너머에서 넘실넘실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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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6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6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 재앙의 불 23.12.18 8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7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7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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