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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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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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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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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작성
24.01.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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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부엉이의 꿈 (1)

DUMMY

청대는 언제나 행동이 생각을 앞선다. 물론 그녀는 늘 계획하지만, 사실 그녀는 계획과 바람을 혼동할 때가 많다.


계획이 어그러지면 밀어붙인다. 어쨌든 원하는 것이 분명하니,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을 저지르는 성미를 보자면 청대는 남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그야말로 독불장군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장점은 있다. 잡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덕에 남들이 쉬이 간과하는 면을 꿰뚫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청대는 바보가 아니다.


철현이 자신을 도와준 대가로 아주 큰 것을, 이를테면 신변의 안전과 같은 귀중한 것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이해했다.


‘고양이가 사람이 될 거라고는 나도 생각 못 할 일이지.’


철 현은 청대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고(사실 철현이 입장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타당한 처사지만), 청대의 이후 사정에 관해서는 괘념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철현은 끝까지 청대를 걱정했다.


청대가 보기에 철현은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무사히 약실을 빠져나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해 보면 안 되겠소?”


부축을 받아야 겨우 걸음을 디딜 수 있다는 청대를 어떻게 해서든 재주 넘게 하려고 이렇게까지 애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철현은 청대를 업어도 보고,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보기도 하는 등 갖은 애를 썼다.


청대는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기어코 청대를 목말까지 태우고 나서야 철현은 버럭 성질을 냈다.


“자꾸 안 된다고만 하면 어쩌잔 말이오!”


청대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죽었다!’


철현은 청대를 목말 태운 채로 뒷걸음질 쳤다. 그는 겁에 질렸다. 우크미의 투레질이 환청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드르륵.


우크미가 문을 열었을 때는 투레질이 환청이 아니었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 뻔했다.


“너, 뭐하냐? 옷을 어깨에 둘러메고······”


“에?”


우크미는 철현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투레질을 했다.


“탕약 끓였냐? 무슨 탕약을 끓였어?”


청대의 냄새를 가리기 위해 끓인 것이라고는 대답할 수 없었기에 철현을 입을 꾹 다물었다.


성질 급한 우크미는 기다리지 않고 코를 벌렁거리며 휘장을 젖혔다. 그러고는 탕약실 한 가운데 놓인 이불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철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어디 아프냐?”


“에? 네?”


“이거 완전히 맛이 갔네. 얼굴까지 벌게져서······”


우크미는 그 투박하고 두꺼운 손으로 철현의 이마를 짚었다. “절절 끓는구만.”


철현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에 두른 옷가지 안쪽에서 뭔가 기어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철현은 요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천천히 몰아쉬고는 대답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약 먹고 한숨 자고 있었습니다.”


“얼른 가서 쉬어라.”


우크미는 철현을 돌아보지도 않고 탕약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철현이 후다닥 달려가서 도우려 하자 우크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옷이나 좀 치워라. 추워서 그런 게야, 뭐야?”


“땀이 좀, 땀이 나서······”


철현은 옷에 붙은 청대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깨에서 옷을 거둬 대충 둘둘 말았다. 마을 더듬대는 철현을 보고 우크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 죽겠구만.”


그는 뒷걸음질 치듯 우크미의 뒷모습을 살피며 천천히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철현은 청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신줏단지라도 되는 듯 옷더미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제 침소로 향했다.


침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옷더미를 그대로 침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거기 있습니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철현은 옷더미에 얼굴을 들이밀고 한 번 더 청대를 불렀다. “이봐요.”


그렇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이게 무슨 우스운 짓이야.’


철현은 고개를 흔들며 조심스럽게 옷더미 안을 뒤졌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아니 아무도 없었다.


청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철현은 옷가지를 들고 멀거니 서서 중얼거렸다.


“제기랄······”




소우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효부인에게 내밀었다. 그의 손안에는 곤죽이 된 쥐 두어 마리가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소여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효부인은 그렇지 않아도 번들거리는 눈을 더욱 빛내며 소우의 선물을 먹음직스럽게 쳐다봤다.


“기특하기도 하지.”


효부인이 죽은 쥐의 꼬리를 집어 들었다. 쥐가 공중으로 들리며 내장을 후드득 떨어뜨렸다. 효부인은 쥐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소여에게 말했다.


“알아서 잘 손질해. 내장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소여는 소우에게 쥐를 받아 들고 효부인의 침소를 나섰다.


효부인은 손수건 하나를 소우에게 건넸다. 손수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그 붉은 손수건을 다시 가져가더니 별안간 냄새를 맡았다.


소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눈살을 찌푸렸다.


효부인은 피가 묻은 손수건이 향낭이라도 되는 양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네가 날 위해 쥐를 잡아준다기에 조서원에 갈 줄 알았지. 그런데 조서원 밖으로 나갔다며?”


“놓친 쥐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효부인이 소우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소우를 침상 위, 제 옆에 앉히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우가 피가 채 닦이지 않은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얹었다. 효부인이 소우의 손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하는 짓이 하도 가상하여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주의하렴. 조서원 밖에 있는 쥐들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그것들은 내 눈과 귀야.”


“죄송합니다. 그런 줄은 미처 몰랐어요. 저는 조서원에서 도망친 쥐를 쫓느라······”


“조서원의 쥐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


효부인이 소우의 말을 잘랐다. 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러니 내가 알려주는 거야. 다음부터는 이런 짓 하지 마.”


효부인이 소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속삭이듯 말했다. 소우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였다.


“죄송합니다.”


때마침 소여가 돌아왔다. 소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여를 본 효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소우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소여에게 부산스레 손짓했다.


“드세요, 마님.”


효부인은 소여가 대령한 쥐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빈 그릇을 소여에게 내밀었다.


효부인은 만족스러운 듯 두 팔로 침상을 짚으며 몸을 뒤로 쭉 뻗었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것도 잊고 소우에게 말했다.


“이 집 사람들은 밤에 뭘 먹는 일이 없어. 자느라 바쁘지. 우리 도족들은 밤이 되어야 기운이 나거든. 오히려 낮이 자는 시간이지.”


그녀가 소우를 돌아봤다.


“근데 소여 말이 네가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더라. 그래, 시해도 그런 말을 했었지. 난 노래 듣는 취미 같은 건 없는데, 자장가를 잘 부른다기에 한 번 불러 봤어. 어쨌든 난 이 집 안주인이니, 이 집의 풍습을 따라야지.”


소우는 그때까지도 잊고 있었던 시해의 말을 떠올렸다.


“노래를 잘한다지?”


하마터면 죽을 위기에 처했던지라, 정신없는 와중에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시해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을까? 바림이 그를 시해에게 팔려고 그그런 있지도 않은 말을 했을까?


아니면 바림이 그의 자장가를 듣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소우가 아는 노래라고는 골패가 부른 그 자장가뿐이었으니 말이다.


소우가 소여에게 효부인을 핑계로 노래를 들려준 것은 순전히 일하라며 닦달하는 소여로부터 청대를 구해주기 위해서였다.


서천강에서 왔다며 자신을 불길한 물건 취급했던 종들로부터 구해준 보답을 갚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무모하게 도망치려다 얻어맞은 청대가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우는 같은 처지인 청대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소우는 청대에게서 슬기의 얼굴을 봤다.


소우는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효부인을 향해 대답했다.


“딱 하나, 제가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있습니다. 들으시면 모든 시름 다 잊고 편히 주무실 거예요.”


“시름?” 하며, 효부인이 소리 높여 웃었다. “내가 시름이 있어?”


효부인은 소우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그래, 한 번 들어보자. 온갖 시름 다 잊고 편히 자게 해다오.”


효부인이 소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소우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눈을 감았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바람이 분다, 강이 운다.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얼굴을 쓰다듬던 효부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효부인이 그의 무릎을 벤 채로 쌕쌕 숨을 내뱉으며 잠들어 있었다. 짐작도 못 한 일이었기에 소우는 놀라 소여를 바라봤다. 그것은 소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놀란 듯, 한편으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우와 효부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소우에게 더 노래하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한 번 더 부르고 나니 소여도 이제는 됐다는 듯 손짓했다.


“마님께서 깨실 때까지 여기 있어라.”


“예?”


소우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들레자, 소여가 “쉿!” 하며 입가에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네가 움직이다 마님이 깨시면 어쩔 거야?”


“그렇다고 밤새 여기에 있어요?”


“마님은 밤잠을 자주 설치시니 금세 깨실 거다.”


“안 깨시면요?”


소여가 웃었다.


“잘 된 일이지.”


‘일부러 날 곯리려는 거야, 아니면 정말 이 여자를 걱정하는 거야?’


어느 쪽이든 소우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소여의 홀가분한 표정을 보자니 전자가 틀림없었다.


소여는 쥐새끼처럼 낄낄 웃으며 침소 밖으로 나가버렸다. 소우는 효부인과 단둘이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부인을 깨우지 않고 침상에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침상을 확인할 수 있어. 내가 본 꿈이 진짜인지 아닌지······’


효부인의 머리를 들어 올리려던 소우는 생각을 바꿔 자장가를 몇 번 더 불렀다.


효부인은 이제 코를 골기까지 했다. 밤잠을 설치기는커녕 누가 업어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소우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대로 머리를 들어 올린 뒤 엉덩이를 옆으로 천천히 움직여 침상에서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효부인의 머리에 손을 대는 순간, 소우는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누구든 갑자기 머리를 떨구고 한숨을 푸욱 내쉬며 눈을 감는 소우를 봤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소우는 자신의 혼이 효부인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사실상 그의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 다를 바 없었다. 몸뚱이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은 저 멀리 사라지고, 소우의 정신은 태풍에 휘말려 날아가는 나뭇잎처럼 효부인의 머릿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갔다.


찰나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동안 소우는 효부인의 모든 기억을 봤다.


화첩을 펼치듯, 효부인이 제 눈으로 봤던 모든 장면이 소우의 눈 앞에 펼쳐졌다. 그것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있는 뱀처럼 소우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아아아아!!!”


소우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기억의 뱀은 소우의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며 그를 희롱했다. 소우는 그때마다 까무러치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만약 그가 몸뚱이 안에 있었다면 진작에 속에 든 것을 전부 게워 냈을 것이다.


그렇게 영겁 같은 찰나의 시간이 끝나고, 소우는 비로소 완전히 눈을 떴다.


온 세상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부엉이 한 마리가 처량하게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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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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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4 0 12쪽
»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4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6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6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6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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