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72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2.04 14:01
조회
6
추천
0
글자
13쪽

범인을 찾아라 (2)

DUMMY

“목을 조른 흔적입니다.”


주구의 말대로 하낙의 목에는 두꺼운 줄이 목을 조이며 만들어진 멍 자국이 있었다.

“저자가 목을 졸라 죽이고 도견에게 갖다 바쳤을지 모르지!“


시해가 죽은 교족의 머리를 가리켰다. 대무가 발끈하기도 전에 주구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량의 머리를 들어 그 입에 제 코를 들이밀었다. 냄새를 몇 번 맡은 그가 말했다.


“독을 먹고 죽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나? 피 냄새가 진동하는 와중인데 독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무슨 수로 확인한단 말이야?”


그러자 주구는 태연하게 시해에게 도량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입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거품 자국이 보입니다. 독을 먹고 거품을 문 겁니다.”


과연 그 입가에 허연 거품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핏자국에 뒤섞인 탓에 아주 자세히 살펴봐야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해는 주구처럼 죽은 사람의 머리에 얼굴을 들이밀만큼 비위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몸을 멀찍이 뒤로 젖히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대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더는 시해를 상대할 필요 없다는 듯, 주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죽인 놈을 찾을 수 있겠냐?”


주구는 당장 대답하지 않고 대무를 빤히 바라봤다. 그제야 대무는 주구의 신분을 떠올렸다. 대무가 다른 사람을 부르려는데 주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맙다.”


대무가 겸연쩍은 마음으로 대답했다.


주구가 곧장 자리를 떴다. 대무는 그제야 시해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견을 빨리 잡아야 합니다.”


시해는 자신에게 상의 한마디 하지 않고 멋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대무가 못마땅했지만, 더는 불필요한 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와주시오. 우리끼리는 그 괴물을 잡을 도리가 없소.”


대무도 더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무에게도, 시해에게도 중요한 것은 또 언제 살육을 벌일지 모를 도망친 수괴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해와 대무가 해야 할 일은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만약 범인이 교족이라면, 대무는 단조마을에 도견과 하낙의 죽음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범인이 유족이라면 시해는 도견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 도량의 죽음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


대무가 사냥꾼들을 이끌고 시해의 집을 나섰다. 시해는 아직도 멀찍이 서서 벌벌 떨고 있는 사환들에게 뒤뜰을 청소하라고 재촉했다. 그런 뒤, 평단을 불러 범인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유족이면 어찌할까요?”


시해가 목소리를 낮췄다.


“깔끔하게 처리하게. 대무가 그 사실을 알면 곤란해.”


평단은 시해의 호위 무사 몇 명을 이끌고 범인을 찾아 나섰다.




“무슨 일이야?”


소우의 웃는 낯을 보면서도, 바림은 어쩐지 불안한 기색이었다.


“도견이 도망쳤대.”


“도견? 교족들이 잡아 온 수괴 말이야?”


바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도견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소우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다독였다.


“괜찮아. 지금 마을 청년들이 전부 도견을 찾고 있어. 교족 사냥꾼들도 나설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집에 얌전히 있으면 돼.”


그 말에 바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골패를 살피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그 사이 소우는 만일을 대비해 몸을 지킬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창고로 가자. 절굿공이라도 들고 있어야지.’


소우는 서둘러 창고를 뒤졌다. 그러나 너무 어두운 탓인지 절굿공이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절굿공이가 없으면 녹슨 쟁기나 낫이라도······”


소우는 아예 창고 구석, 몇 년째 아무도 손대지 않고 낡을 대로 낡은 물건들을 쌓아 놓은 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졌지만 도저히 적당한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창고가 이렇게 넓은데 몽둥이 하나 없다니······’


바림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소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몸을 돌이키는 순간, 소우는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북 속에 갇힌 것처럼 머리가 안팎으로 진동하며 울렸다. 이마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그러나 눈이 감기는 그 찰나의 순간, 그는 똑똑히 봤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절굿공이가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을.




부엉이는 늙고 하얀 개의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노란 눈을 빛내며, 그것은 목을 휙휙 돌렸다.


“네 손에 달려 있어.”


부엉이가 소우에게 말했다.


소우는 부엉이과 개를 지나쳐 걸어갔다.


미로 같은 복도였다. 붉은 기둥이 건물을 바치고 있고, 기둥 위에는 등불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기둥마다 그 노란 눈을 빛내던 부엉이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장은 붉은 색과 황금 색, 옥처럼 푸른 색들이 뱀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며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다. 소우는 그 붉은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빛이라고는 등불이 전부였다.


어디선가 향냄새가 풍겨 나왔다. 산자락의 안개처럼 무겁고, 밤하늘처럼 짙은 향이었다. 소우는 그 냄새를 이정표삼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는 더 짙어지지도, 옅어지지도 않고 얽힌 실처럼 소우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 뿐이었다.


똑 같은 창문과 똑 같은 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이따금 사람들이 벽 너머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고 소우를 쳐다봤다. 그들은 소우가 자신들을 지나쳐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는 탁한 분냄새가 났다. 입술은 바닥에 깔린 주단만큼이나 붉었고, 머리카락은 기름을 바른 듯 반지르르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커다랗게 치뜨고 소우를 감시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분냄새와 온 집안에 진동하는 향냄새에 소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대로는 영원히 이 집에 갇힐 것이 분명했다. 소우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의 발은 마치 족쇄를 찬 듯 무거웠다. 뛰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쉬지 않고 걸은 탓인지, 극심한 피로가 소우를 덮쳐왔다. 어깨는 돌덩이라도 인 듯 무거웠다. 그는 혹사당한 어린 나귀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느릿느릿 걸었다.


—쾅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소우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쾅쾅쾅!


문이 떨어져 나갈 듯이 흔들렸다. 소우는 겁이 났다. 저 문너머에 얼마나 사납고 고약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을까?


—쾅쾅쾅!


그 소리는 채찍질하듯 소우를 몰아붙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은 듯 벽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벽 너머에서, 창문에서, 기둥 뒤에서, 천장에서 사람들이 소우를 향해 목을 길게 내밀고, 그의 행동을 기다렸다.


—쾅쾅쾅!


더는 지체할 수 없다. 그 생각에 소우는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자 뜨거운 불꽃이 그의 얼굴을 덮쳤다.




“으아악!”


소우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온 사방이 불꽃이었다. 화마가 바림의 집을 집어삼켰다. 용광로 같은 열기가 지글거렸다.


소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띵 울리며 몸이 비틀거렸다. 뒤통수를 만져보니 끈적끈적한 것이 만져졌다. 굳다 만 피였다.


소우는 그제야 방금 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기억났다. 그는 창고에서 절굿공이를 찾던 중 누군가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자기 침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침상은 원래 형태를 전혀 볼 수 없을 만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골패의 침상도!


소우는 이미 불타 무너져버린 문을 뛰어넘어 골패와 바림을 찾았다.


“바림! 아저씨!”


그러나 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멀리 가지 못했다. 바림과 골패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림! 아저씨!”


연기를 마신 탓에 소우는 더 크게 소리지를 수 없었다. 그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섭게 타오르며 광란하는 불꽃뿐이었다.


“아아아!”


갑작스러운 비명에 소우가 뒤를 돌아봤다. 불꽃이 사지를 버둥거리며 소우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골패였다.


“으으으······”


골패의 신음은 죽어가는 네발짐승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변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소우는 물이라도 끼얹을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온통 불바다인 이 곳에서 어떻게 물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는 급히 자기 옷을 벗어 골패의 몸 위에 내리쳤다.

그러나 소우의 몸부림이 무색하게도 골패에 붙은 불은 그 몸의 기름을 연료삼아 더욱 거세게 타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패의 신음은 끊어졌다.


“안 돼, 아저씨······”


골패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소우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여전히 타오르는 그 몸을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바림!”


소우는 저도 모르게 골패처럼 온 몸에 불을 붙이고 어딘가에서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바림의 모습을 떠올렸다.


“바림!”


그러나 바림을 아무리 불러도 여전히 답은 없었고, 그 사이 허물어진 집은 이제 소우의 몸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는 별 수 없이 보이는 통로로 무작정 움직였다. 그때마다 무너지는 벽과 기둥, 천장이 그를 어느 한 곳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사냥개에게 쫓기는 작은 짐승처럼 그는 화마에 쫓기다 겨우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온 집이 불타고 있었다. 창고며, 손님방이며, 뒷간까지, 불에 타는 것은 모조리 화마가 집어삼킨 뒤였다.


“바림, 바림!”


소우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바림을 찾았다. 그러나 혼자서는 화마 속에서 바림을 구할 길이 없었다. 소우는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대문마저 불에 휩싸인 탓에 담을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거리가 조용했다. 저 큰 집이 온통 불에 타도록 아무도 거리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가축도 잠자는 새벽이라지만, 불구경을 나온 사람조차 없을 리 없었다.


“불이야! 불이야!”


소우는 연기 때문에 상해버린 탁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집집마다 다니며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우물가에 다다를 때까지도 집을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좌절할 여유가 없다. 소우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몸에 끼얹고는 다시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웬 유족 남자가 대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히 내미는 것이었다.


“도와주세요! 저희 집에 불이 났어요!”


남자는 그리 놀라지도, 그렇다고 태연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소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바림은 서천강으로 갔어.”


그리고는 소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소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서천강을 향해 달려갔다. 바림이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그녀에게 골패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비통함이 거칠게 몰아쉬는 숨과 함께 그의 목구멍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울음은 나지 않았다. 적어도 바림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울 수 없었다. 울기 시작하면 생각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달렸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내달린 적이 있었던가. 비록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그는 단연코 이번이 처음일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바림의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푸셔서 다시는 바림을 홀로 두지 말아 달라고. 골패의 빈 자리를 자기가 채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서천강은 고요했다. 안도감과 비통함, 감사함과 절박함이 휘몰아치는 소우의 심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천강의 물결은 잔잔하기만 했다.


소우는 바림을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 100걸음은 걸어야 할 거리에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소우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바림! 바림 못 봤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림이 무리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우의 얼굴이 웃음이 번졌다. 그는 바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바림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6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6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7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7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