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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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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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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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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꿈을 훔치는 일

DUMMY

문을 통과하자 보이는 것은 다시 어둠뿐이었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냄새뿐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혼이 냄새도 맡을 수 있나? 그러나 분명 문밖에서는 맡지 못한 냄새가 소우의 콧구멍을 들락날락했다.


옅은 먼지 냄새와 더불어 살덩이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이 온 사방에 진동했다. 오물더미에서 뒹굴고 나온 사람에게서나 날 법한 지린내가 소우를 괴롭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그러자, 갑자기 바람이 그를 덮치더니 순식간에 풍경이 나타났다.


푸른 벌판이었다. 하늘에는 산처럼 구름이 드리웠고, 하늘은 푸른 지면과 만나 한치에 흐트러짐도 없는 곧은 직선을 좌우로 길게 그리고 있었다.


산뜻한 바람이 풀을 흔들 때마다 시원한 풀냄새가 날개 치듯 솟구쳐 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소우는 지평선 끝자락에 그림처럼 서 있는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소우는 하마터면 그 집으로 달음박질할 뻔했다.


바림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손톱으로도 가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소우는 단번에 알아봤다. 바림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정신을 차린 소우는 뒷걸음질 쳤다.


‘내 꿈속에도 들어오더니, 이제는 기억까지 훔쳐보는구나. 그도 아니면 예전부터 나를 지켜본 걸까?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나를 아는 거지?’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다시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그 기이한 목소리가 장난을 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주마등을 보고 있는 것인지.


뒤를 휙 돌아봤지만, 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끝도 없는 하늘과 벌판뿐이었다.


소우는 별도리 없이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말했다.


“그래! 옳지! 이쪽으로!”


공중을 디디던 소우의 두 발은 어느새 풀밭 위를 걷고 있었다. 발목과 정강이를 간지럽히는 풀잎의 손길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손가락 사이를 지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바람의 손길도, 하늘에 충만하다 못해 지면에 흘러넘치는 따뜻한 햇살도.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기만하기 위한 농지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소우는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는 소우를 어르고 달래다가도 채근하기를 반복했다.


“그래, 이쪽으로. 잘 한다. 그렇지··· 빨리! 빨리 오라고! 그래, 그래······”


집 앞에 도착하자, 저절로 대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그가 기억하던 안뜰이 나타났다. 그가 기억하던 나무들과 그가 기억하던 기와. 그가 기억하던 기둥들과 그가 기억하던 그 모든 것이 하나 틀림없이 그의 눈앞에 그대로 나타났다.


소우는 우두커니 서서 정방을 바라봤다.


만약 저 문을 열고 바림이 나타난다면,


‘바림이 나타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그러나 나타난 사람은 바림이 아니었다.


여자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효부인이 입었던 옷보다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이었다.


그러나 아름답냐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는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있는 대로 옷을 겹겹이 온몸에 둘러매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 뒤죽박죽 섞여 저마다 자기를 뽐내는 통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두껍게 쌓인 옷 속에서 여자는 얼굴과 손만 겨우 삐쭉 내밀고 있었다. 그나마도 제 모습이 다 보이지 않았는데, 온갖 장신구를 마구잡이로 걸친 탓이었다. 그녀가 걸친 머리 장식만 눈으로 대충 세어봐도 열댓은 넘어 보였다.


손가락마다 가락지가 네다섯 개씩 걸려 있었고, 소매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손목마저 팔찌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절그럭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소우가 반가운 듯 양손을 번쩍 들고, 그에게 손짓했다.


“얼른, 얼른 들어와!”


여자가 절그럭절그럭하며 정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소우는 얼떨떨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여자가 말했다.


“똑같지?”


소우는 바림의 집에 있던 것과 똑같은 도자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여자는 소우의 또래로나 보일 만큼 어렸고, 그만큼 미소는 해맑았다. 얼핏 제 또래를 만나 신이 난 소녀의 미소와 같았으나, 그것이 실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는 표정일지야 모를 일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저 형상 너머에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 소우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나를 왜 불렀죠?”


여자는 소우를 보며 빙긋 웃었다.


“궁금한 게 많지?”


여자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상기된 얼굴로 연신 두 손을 마주치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궁금한 것 다 말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음, 명이 알면 곤란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니, 그깟 게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나나 그놈이나 서로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기왕이면 서로 웃는 낯으로 보는 것이 좋지.”


여자는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다급해 보였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는 듯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러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딱 하나만 가르쳐 줄게. 아주아주 중요한 거거든. 알고 나면 분명 네게 유익이 될 거야. 대신 너도 날 도와줘야 해.”


“대체 당신이 누군데요? 여기는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안 돼, 안 돼!”


소우가 몰아치자, 여자가 버럭 화를 냈다. 벼락같은 음성이었다. 소우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여자가 부리나케 소우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는 소우의 옷자락을 잡고 소리쳤다.


“하나만! 하나만 알려준다고 했잖아!”


“알았, 알았어요.”


소우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여자는 금세 진정되었다. 그녀는 다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시간이 없단 말이야. 약속해. 날 도와줘. 알았지? 넌 착한 아이니까, 약속을 꼭 지킬 거라고 믿어.”


소우는 또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는 한 여자가 뭘 원하든 소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우는 올무가 될지도 모를 저 약속 이면에서 제 몸을 찾고 살아날 실마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여자가 말했다.


“명이 네 꿈을 훔치려고 해.”


“네?”


꿈을 훔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간혹 꿈을 사고파는 사람은 보았으나, 그저 농담으로만 여겼던 일들이었다.


그러나 소우는 그간 명이 먹인 약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약을 먹고 이레나 괴이한 꿈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꿈을 훔친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꿈을 훔쳐서 뭘 어쩐다는 겁니까?”


그러나 여자는 더 대답할 수 없었다. 소우가 들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고, 무엇보다 더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왔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소우를 밀어버렸다.


그 순간, 바림의 집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소우는 아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소우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약초 냄새와 탕약 냄새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와중이었기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는 소리였다. 소우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휘장 밑으로 철현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우크미는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엉엉 울고 있었다.


소우는 벌떡 일어나 휘장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크미의 뒤에 서 있던 명이 소우를 힐끔 보더니, 우크미에게 말했다.


“저놈은 살았군.”


“예, 예······ 살았습죠. 예······”


우크미는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거학이 소우에게 다가왔다. 그는 소우의 어깨를 붙잡고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멀쩡하냐? 아픈 데는 없어?”


소우는 철현에게 시선을 못 박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거학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죽었다네?”


“죽었다고요?”


철현에게서 겨우 시선을 뗀 소우가 이번에는 거학을 보며 물었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습니까?”


“나흘을 꼬박 누워 있었지. 아무튼 안 죽었으니 다행이다.”


소우는 거학의 말에 경악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죽은 사람 옆에서 태평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태평하자면, 명의 무덤덤한 표정은 거학보다 더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얼핏 보아서는 우크미가 애도를 끝내기를 잠자코 기다리는 듯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애통함으로 반쯤 정신 나간 우크미에게 궁금한 것을 죄다 물어보았다.


“약 때문이 아닌 것이 정말인가?”


“예, 아닙니다. 저놈 몸이 허해서 그랬던 겁니다······ 억지로 영안을 뜨느라 있는 기력을 다 끌어다 쓴 탓이지요. 기력을 보하는 약을 쟀으니 그걸 먹이시면 며칠 내로 멀쩡해질 겁니다. 환약은 그 후에 먹이십시오······”


더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우크미는 결국 곡하는 것을 멈추고 명에게 순순히 대답했다. 다행히 명은 우크미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거학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거학이 소우의 옆구리를 낚아채서는 제 옆구리 옆에 꼈다.


놀란 소우가 버둥거렸다.


“제 발로 가겠습니다!”


거학이 낄낄댔다.


“안 돼. 기력을 보충해야 한단 말 못 들었어? 너는 앞으로 누워서 약이나 받아먹어.”


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약이라면 지긋지긋했다.




명은 소우에게 도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앞으로 사흘간이다.”


자비로운 명은 다행히, 소우가 창밖을 구경하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창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황량한 안뜰과 그곳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대련하는 명과 거학뿐이었다.


백곡은 하루에 두 번씩 소우에게 탕약을 갖다주었다. 탕약은 아주 쓰고, 텁텁한 맛이었다.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마시거라.”


백곡은 소우가 혹여라도 탕약을 남길까 싶은지 그 미간에 있는 눈을 번쩍 뜨고 그가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소우가 그릇을 내려놓으면 곧장 그의 입에 엿을 물려주었다.


그렇게 소우가 엿을 쪽쪽 빨고 있으면, 그제야 백곡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러기를 꼬박 사흘.


그동안 소우는 몇 번이나 백곡에게 이 저택에 관한 비밀을 물으려 했다. 사방이 벽돌로 둘러싸인 길과 약실의 정체에 관해서.


그러나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백곡은 소우가 예사로운 눈빛만 보여도 시답잖은 말들로 화제를 돌리거나 아예 자리를 떠버렸다.


‘내가 두 눈 멀쩡히 뜨고 명과 함께 여기로 돌아왔는데, 백곡이 내 속내를 모를 리가 없어. 괜히 더 캤다가는 명의 귀에 들어갈지도 몰라. 심기를 거스르지는 말자.’


유일한 안내자인 백곡은, 그러나 안내를 거부했고, 거학은 틈만 나면 소우를 찾아와 약 올리기나 할 뿐, 이 집안에서 소우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여자······ 정말 그 말이 사실일까? 내 꿈을 훔치려 한다고?’


소우는 여자와의 대화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효부인과 수장군이 나왔던 꿈에서 그렇게 말했지.’


‘저번에도 본 적 있잖아?’


그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소우는 우연이리라 생각했다.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선조나 하늘의 뭇별들이 불쌍한 마음으로 은덕을 베푼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명이 소우의 꿈을 훔치려 한다고 말했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명은 소우에게 자꾸 꿈을 꾸게 한다.


소우는 그가 이제껏 꾼 꿈들을 헤아려 보았다. 슬기를 구하려다 정신을 잃은 그날 밤에 꿨던 꿈.


‘뭔가를 봤지. 강물 속에 빠지는 환상을 보고 하늘을 날고.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꿈이었구나.’


그리고 부엉이와 늙은 개를 지나쳐 붉은 주단이 깔린 집을 거닐던 꿈.


‘그 꿈대로 내가 이 집에 온 것이 맞는다면, 서천강 너머로 날아가던 그 꿈도 결국에는 이루어질 일이라는 걸까?’


그러나 수씨 가문에 와서는 명에게 목이 잘리는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꿈속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해 봤자, 대개 꿈이라는 것이 그렇듯, 그가 꿈 꾼도 혼잡하고 어지러운 형상들이 두서없이 떠오르다 사라지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꿈을 해석하는 해몽가도 아니었고, 점복하는 점쟁이도 아니었다.


소우는 창가에 기댄 채 두 팔에 얼굴을 반쯤 묻고 눈을 감았다. 꿈에 관해 고심한 탓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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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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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 꿈을 훔치는 일 24.01.24 6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6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6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8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7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7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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