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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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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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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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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작성
24.01.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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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부엉이의 꿈 (2)

DUMMY

온 세상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면은 물안개로 자욱했고, 물안개 너머로 깎아지를 듯 높은 산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산등성이부터 산 아래까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빗물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어찌나 사납게 내리는지 소나무는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양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려 버렸다.


산 밑에는 강이 세차게 흘렀다. 빗줄기에 성난 강은 부글부글 끓으며 좌우에 서 있는 절벽을 후려쳤다.


그러나 산은 담담했고, 물안개는 여전히 지면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소우는 생경했다.


수장군의 집이 아무리 넓기로서니 산을 병풍 삼고, 물안개를 이불 삼을 만할까.


그러나 더욱 그 풍경이 생경한 이유는, 소우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먹과 물로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소나무 밑에서 처량하게 비를 맞는 저 부엉이 또한 먹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소우는 제 손을 들어 쳐다봤다. 그의 몸 역시 먹과 물로 그린 그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소우는 양손을 주먹 쥐어도 보고 머리카락을 당겨보기도 했다. 얼굴을 주무르고 꼬집고 나서야 소우는 몸이 종이처럼 구겨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꿈인가?”


꿈을 꾸면서 꿈인 줄 알다니, 소우는 참으로 해괴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그는 강이 왼쪽에서 세차게 흐르는 둔덕 위에 서 있었다.


부엉이는 거기서 돌 하나 던지면 떨어질 자리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건지, 앉아있는 건지······’


소우는 나무 위에 앉지 않고, 길짐승처럼 땅바닥에 붙어 있는 부엉이가 영 의아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살펴보니, 부엉이는 산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그곳에 시선을 못 박은채 고개를 앞뒤로, 위아래로 빙글빙글 돌려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흥, 하고 울었다.


뭔가를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부엉이는 그렇게 몇 번을 우흥, 우흥 하고 울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산등성이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훌쩍 넘어왔다. 그것은 물뱀처럼, 혹은 바람에 떠밀리는 구름처럼 순식간에 강을 건너 부엉이 앞에 당도했다.


그제야 소우는 그것이 하얀 개라는 것을 알았다.


개가 부엉이에게 머리를 숙이자, 부엉이가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개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개와 부엉이는 소우를 돌아봤다.


소우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노란 눈을 빛내며 부엉이가 목을 휙휙 돌렸다. 그것이 말했다.


“네 손에 달려 있어.”


순간 머리가 욱신거리더니, 뜨겁고 끈적끈적한 것이 그의 머리에서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만져보니 그것은 피였다.


검은 먹과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진 세상에서 소우의 피만이 붉은색이었다. 피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통증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소우는 그 감각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저번에도 본 적 있잖아?”


이번에는 늙은 개가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그걸 이제야 기억하다니.


부엉이와 붉은 개. 붉은 주단이 깔린 집. 자신을 훔쳐보던 수장군의 종들.


불붙은 바림의 집에서 절굿공이에 머리를 얻어맞고 잠든 사이에 봤던 꿈. 그 꿈은 소우가 수장군의 집에 팔려 올 미래였다.


“하지만 창문이 닫혀 있었는데?”


소우의 말에 늙은 개가 웃었다.


“꿈으로 뭐든 다 알 수 있으면 못 할 일이 없지.”


“그럼, 그 꿈은? 수명 장군이 꿈에 나타난 것도 장래 일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거야?”


“네가 직접 확인해.”


늙은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부엉이를 머리에 얹은 채 몸을 돌이켜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려!”


소우가 그를 급히 따라나섰다.


늙은 개는 느릿느릿 걸었고, 소우는 헐레벌떡 뛰었지만 좀처럼 둘 사이의 간격은 좁아지지 않았다.


늙은 개가 말했다.


“더 쫓아오면 후회할 거야.”


그러나 소우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길,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있겠으나, 소우는 이 꿈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소우가 비를 파헤치며 물었다.


“넌 누구야?”


“날 미리 봤으니, 언젠가 날 만날 거야.”


“그 부엉이는?”


“이미 만났지.”


‘효부인이구나.’


소우는 효부인의 번들거리는 눈과 머리 깃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는 저 늙은 개의 정체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수장군!”


늙은 개가 웃었다.


“우리는 아직 만나지 않았으니, 그때 확인해도 늦지 않아. 꿈으로 미래를 먼저 보는 건 누구나 탐내는 재주지만, 너도 알고 있지?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저 미리 볼 뿐이지.”


늙은 개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갑자기 온 세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막 점을 찍고 붓을 놓은 그림 위에 물을 뿌리듯, 산과 하늘이, 나무와 땅이 흘러내렸다.


늙은 개도 흘러내렸다.


“잠깐만!”


소우가 재빨리 늙은 개의 꼬리를 붙잡았지만, 그 한줌 털마저 소우의 손가락 사이로 모두 흘러내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 위에 부엉이, 아니 효부인과 소우만 덩그러니 남았다.


소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뭘 보여주실 겁니까?”


그러자 부엉이가 날아올랐다.


그녀는 빈 종이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날아간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수장군의 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붕이, 그다음에는 벽과 문간이, 그리고 창문이, 보이지 않는 붓으로 누군가 수장군의 집을 일필휘지하듯 그려 나갔다.


어느새 효부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장군의 집이 혼자 덩그러니 남은 소우를 향해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소우는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의 눈에 비친 수장군의 집은 이상했다. 그가 생시에서 보던 것과 다른 모양을 한 것들이 언뜻언뜻 눈에 띄었다.


어떤 벽은 산처럼 높았고, 또 어떤 집은 쥐나 두더지 같은 작은 짐승이나 드나들 만큼 작았다. 벽이 있어야 할 어떤 곳에는 거대한 부엉이 상 몇이 나열해 있었고, 저택 위에는 거대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과 지붕 사이의 거리는 한 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가까웠다. 지붕 위에 올라서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저 달이 떨어진다면 소우는 이 집과 함께 달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겁에 질린 소우는 서둘러 나길 길을 찾았다. 그러나 소우가 있는 이곳은 그가 아는 수장군의 집이 아니었다.


왼쪽으로 꺾어 돌아가면 나와야 할 길은 벽으로 막혀 있었고, 오른쪽으로 두 번 돌면 나오는 길 앞에는 쥐들이 바글바글했다. 그것들은 고기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를 정신없이 뜯어먹고 있었다.


“효부인!“


안타깝게도 이 순간 소우가 믿을 만한 사람은 효부인 뿐이었다.


—우흥, 우흥.


효부인이 소우에게 화답하듯 울었다. 소우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그가 길을 잃어버릴 만하면 효부인은 어디서 알고 우흥, 우흥하고 울었고, 덕분에 소우는 쥐 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효부인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침소 안에 있었다.


그곳에 수장군이 있었다.


바싹 마른 노인의 몸에 늙은 개의 얼굴을 얹은 모습으로 수장군은 침상 위에 누워 효부인을 향해 천천히 손짓했다. 그러자 효부인이 부리로 제 살점을 떼어 늙은 개의 입에 넣어주었다.

피를 맛본 수장군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기분 좋은 듯 혀를 날름거리더니 꼬리를 한 번 휘저었다.


소우는 깜짝 놀라 그를 자세히 쳐다봤다. 이불 밑에 감춰진 그의 꼬리는 개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소우는 명의 꼬리를 떠올렸다. 하얗고 긴 털이 풍성하게 덮은 명의 꼬리와 달리 수장군의 꼬리는 좀 더 길었고, 그 위로 볼품없이 짧은 털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어 창백한 살갗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영락없이 쥐의 꼬리였다.


소우가 이불을 걷어 올리자, 수장군의 몸이 그대로 물처럼 녹아내렸다.


그리고 침상이 있던 자리에는 새까만 구멍이 있었다. 끝도 없이 깊은 구멍 안쪽에서는 개가 짖는 소리만 컹, 컹! 울려 퍼졌다.




“소우!”


소우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헐레벌떡 일어났다.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자, 소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소우를 조심스레 다시 침상에 눕혔다. 그 사이 그 옆에 있던 융이 밖으로 나갔다.


“가위 눌렸나 보다.”


소우가 물었다.


“여기 어디야?”


“네 방이야.”


“내가 왜 여기 있어?” 하며 소우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융이 다시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수장군의 집을 지키는 경비원 둘이 서 있었다.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라.”


소우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새벽 동이 터오는 시간이었다. 도방 사람들은 저마다 침소 밖으로 나와 불안한 눈빛으로 소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우는 혹여나 하는 생각에 소래를 돌아봤지만, 그녀 역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소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경비원들은 소우를 끌고 다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격하고 냉랭한 태도였지만, 소우를 업신여기거나 흉악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다리를 건너자 보인 것은 또 다른 저택이었다. 소우가 머물던 곳보다 반절 작았지만, 벽은 더 높았고, 그 안에 있는 집들은 더 웅장했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무렵에 이르러서야 소우는 누군가의 처소에 도착했다.


그를 나와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명이었다.


명은 손짓으로 경비원들을 돌려보내고는 소우에게 안으로 들라며 다시 손짓했다.


소우는 고개만 넙죽 숙이고는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우를 탁자 앞에 앉히고, 손수 소우의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들어라.”


소우는 명의 이 친절하고 점잖은 대우가 감개무량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북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러나 명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차만 홀짝였다. 소우도 별수 없이 차를 마시며 그의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명은 찻잔을 반쯤 비우고 나서야 말했다.


“효부인께서 돌아가셨다.”


소우는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차를 마시려던 그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인 채로 눈만 치떠 명을 쳐다봤다. 찻잔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네?”


그러나 정작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명은 태평하게 차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말했다.


“효부인께서 돌아가셨다.”


소우는 차를 마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찻잔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설마 내가 효부인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순식간에 지난밤 일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그녀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던 것,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무릎에 얹은 채 잠들었던 것뿐이었다.


명은 소우의 생각을 눈치챈 듯 그에게 손짓했다.


“마저 들어라.”


차가 아니라 사약이라도 별수 없이 마셔야 할 판이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소우를 효부인을 죽인 범인으로 여기는 중이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소우의 목을 베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생각이 마음을 스치는 순간 요동치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떨림도 사라졌다. 그는 명이 그랬듯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차를 마저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놨다.

소우는 늙은 개의 말을 떠올렸다.


‘미래를 바꿀 수는 없어.’


어쩌면 이 남자는 정말로 소우의 머리를 베기 위해 그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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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4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6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6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6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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