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67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2.25 17:00
조회
5
추천
0
글자
12쪽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DUMMY

효부인은 서쪽에 있는 규국이라는 소국의 부족인 도족 혈통이다. 도족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절색이며, 그 명성은 마계 온 땅에 걸쳐 자자할 정도다.


늘그막에 조강지처를 먼저 보내고, 혼자가 된 수장군이 효부인을 후처로 들인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녀의 미색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효부인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수장군은 효부인을 위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주었다. 하여간, 그의 부와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주었으니, 황제 다음으로 호사를 누린다는 소문이 영 거짓은 아닐 것이다.


효부인은 특히나 아름다운 것들을 참으로 좋아했는데, 물건이든 살아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고 제 집에 모았다. 그중에는 어린 사내들도 있었지만, 수장군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 역시 오직 효부인의 미색을 보고 그녀를 맞이했으니, 어쩌면 두 사람은 하늘 아래 가장 어울리는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효부인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집에 상인들을 들이고, 그들이 펼쳐 놓는 물건들을 고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오늘 역시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날이다.


시해는 효부인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장사꾼 중 하나다. 시해는 한 번도 그녀가 실망할 만한 물건을 가져온 일이 없다. 다른 얌체 같은 장사치들처럼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효부인을 시험하는 일도 없다.


시해는 여느 장사꾼들과 다르게 고상하고, 학식과 견문이 높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놀라운 이야기까지 공짜로 들려주니, 효부인에게는 귀한 손님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오늘 유독 효부인의 마음이 들뜬 이유는, 그가 가져올 뜻밖의 물건 때문이었다. 시해가 풍주 성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소문이 파다했던 그 물건.


소문에는 그것이 새벽에 수국밭을 나는 나비 같다고 했다. 신묘한 보라색 날개는 별이 무성한 밤하늘 같고, 맑은 눈동자는 하늘을 그대로 떠 놓은 것도 같다고.


풍주 온 동네와 저잣거리마다 소문을 몰고 다녔으니, 효부인은 시해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내놓을지 기대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효부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하마터면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이리 가까이.”


효부인은 기품 있는 손짓으로 앞에 서 있는 소우를 불렀다.


소우가 주춤하자, 시해는 웃는 낯으로 효부인을 마주 보며 손가락으로 소우의 등을 찔렀다. 소우는 별수 없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수장군의 집은 소우가 이제껏 본 적 없는 대궐 같은 저택이었고, 그 안에서도 효부인의 거처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과 온갖 진귀한 사치품들로 꾸며진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으나, 소우에게 그런 것들을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효부인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그 소문은 시해와 일구를 통해 소우에게도 전달되었다.


소우는 시해의 집에서 자신을 치료해 줬던 술사의 말을 떠올렸다.


“가면 여기보다는 사는 것이 넉넉할 게다. 네가 얌전히 굴기만 한다면 말이야. 아양 떨고, 재주 좀 부리면 평생은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소우에게는 괴팍한 귀부인을 즐겁게 할 만한 재주가 없었다.


“얼굴을 좀 보자.”


효부인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소우는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우는 효부인의 미색에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효부인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을 만큼 앳된 여인이었다. 햇빛에 나가 고생해 본 일이 없을 그녀의 피부는 백옥처럼 반지르르했고, 곱게 빗어 온갖 장신구로 꾸민 머리 위에는 깃털이 뿔처럼 붙어 있었다.


눈동자는 부엉이의 그것처럼 노랗게 빛났고, 반면 검은 홍채는 호수의 깊은 밑바닥처럼 어떤 빛도 없이 그저 새까맣기만 했다.


효부인은 작고 앙증맞은 입술을 좌우로 말아 올려 웃고 있었다. 마치 웃는 버릇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소우는 그녀의 입술 언저리에서 묘한 향내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효부인은 그 우아한 손짓을 곁들이며 말했다.


“차라리 분을 지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


시해가 나섰다.


“부인의 안목이야 따라갈 이가 없지요. 분만 지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벗겨 놓고 보셔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 말에 효부인이 까르르 웃었다. 소우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옷자락을 쥐었다.


앞으로 이 모욕을 얼마나 자주 받으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소우는 자신을 보는 효부인의 눈빛에서 도무지 어떤 인정도 느낄 수 없었다.


노란 안광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은 마치 단단한 돌 같았다. 조각가가 온 정성을 기울여 모난 곳은 모조리 깎아내어 둥글게 만들었지만, 태생이 돌인 까닭에 그것에 맞으면 머리가 깨지도 피를 흘리듯, 그 돌멩이 같은 눈은 조용히 소우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효부인이 소우에게 말했다.


“이름이 뭐니?”


“······소, 소우라고 합니다.”


효부인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었다.


“목소리는 영락없이 남자로구나. 뒤로 좀 돌아보거라.”


그녀는 소우를 돌려세워 그의 날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그러고는 그 깃 하나하나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소우는 버릇처럼 옷자락을 질끈 움켜잡았다. 바림의 손길과 달리 그녀의 손길은 섬세한 듯하면서도 예리하고 서늘했다.


“장군께서 천하에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다 내게 주셨는데도, 여태 이런 것은 보지 못했어.”


그녀가 소우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니? 어느 족속 사람이지?”


“서천강에서 왔습니다.”


소우의 대답에 그의 날개를 쓰다듬던 효부인의 손이 멈췄다. 시해가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서천강변에 부모가 버린 것을 제가 주워 길렀지요. 갓난 시절부터 부모 없이 자랐기에 제 부족도,고향도 모릅니다. 보시다시피 이런 요괴는 마계 온 천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귀태 중에는 간혹 이런 희귀한 것들도 있지요.”


“귀태라······” 하며, 효부인은 중얼거렸다.


시해는 아차 싶었다. 효부인은 아름다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기 때문에,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그것이 심지어 집 몇 채는 팔아야 얻을 수 있을 만큼이라도 무슨 수를 쓰든 손에 넣고야 마는 성격이다.


그래서 시해는 서천강에서 건져 온 불길한 요괴도 아름답기만 하다면 효부인의 눈에 들 것이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진작에 효부인에게 소우의 출신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의 관념 속에도 서천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불길하다는 미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효부인은 잠시 소우를 물러나게 한 뒤 시해를 앞으로 불렀다. 시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정중히 그녀에게 나아갔다.


“값은 얼마나 쳐 주는 것이 좋을까?”


“부인의 안목으로 헤아려 주십시오.”


시해는 기꺼워하는 기색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효부인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제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남자가 어디선가 쟁반 하나를 가져왔다. 쟁반 위에는 은자가 15냥이 줄 맞춰 쌓여 있었다.


시해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효부인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러자 효부인은 기다렸다는 듯, 남자에게 다시 손짓했다. 남자는 은자 두 냥을 더 꺼내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시해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차고도 넘칩니다, 부인. 이리 값을 많이 쳐 주실 줄이야.”


“마음에 들어.”


값을 다 치르고 나니 효부인은 이제 시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우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않고 그 버릇 같은 미소를 얼굴에 얹은 채 빤히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효부인의 눈빛이, 소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쳤다.


그렇게 한동안 소우를 구경하던 효부인은 여종들을 불렀다.


“가서 이 촌스러운 분칠은 다 지우고, 옷도 새로 입혀. 좀 더······ 단순하고 말끔한 것으로.”


그러고는 그제야 시해를 자리에 앉혔다.


“오늘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왔는지 들어볼까?”




여종들 역시 효부인처럼 소우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놀리거나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소우의 옷을 벗기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그의 몸을 닦았다.


“제가, 제가 닦을게요!”


소우가 몇 번이나 하소연했지만 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시해가 판 상품에 하자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으므로,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 것뿐이었지만, 소우는 살면서 다시는 겪지 않을 수치를 온종일 겪은 탓에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소우의 얼굴이 벌게졌다가 새파랗게 질렸다가 하얗게 질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목욕이 끝났다.


그들은 효부인의 말대로 소우를 시해가 입혔던 것보다 훨씬 단출한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러나 피부에 닿는 감촉을 볼 때, 옷감만큼은 시해가 소 두 마리 값을 주고 산 그 옷보다 훨씬 귀한 것임이 분명했다.


옷을 다 입히고 나자 여종들이 물러나고 그중 하나만 남았다. 소우와 비슷한 또래의 요괴였다.


특이하게도 그녀에게는 귀가 네 개나 있었는데, 머리 위에는 원숭이의 귀 두 개, 관자놀이 옆에 사람의 귀 두개가 있었다. 엉덩이에는 길다란 원숭이 꼬리가 달려 있었다.


“따라와.”


그녀는 앞장서서 소우를 안내했다.


그제야 소우는 소장군의 집을 조금 더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여종과 소우는 긴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마치 미로 같았다. 붉은 기둥이 건물을 바치고 있고, 기둥 위에는 등불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기둥마다 그 노란 눈을 빛내던 부엉이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밤이 되었지?’


창밖을 보니 소장군의 정원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소우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붉은색과 황금색, 옥처럼 푸른색들이 뱀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며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창문은


‘닫혀 있어야 하는데?’


소우는 우뚝 멈춰 섰다. 여종이 뒤를 돌아봤다.


“뭐해? 따라오라니까.”


그러다 소우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전보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소래라고 해. 넌 소우랬지?”


그 말에 소우가 정신을 차렸다.


“응. 저기,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말에 소래는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마님의 시중을 들어야 해.”


“시중은 어떻게 드는 건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건가?”


소래는 소우의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그래.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마님은 예쁜 것들은 귀하게 여기시거든. 흠집 나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매질을 당하거나 굶는 일은 없을 거야.”


“······다행이네.”


소우의 처지가 딱하기는 했는지, 소래는 그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님은 하루에도 기분이 백 번은 들쑥날쑥하셔. 기분 좋게 일어나셔서는 조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화를 내실 때도 있고. 그러다 영 기분이 안 풀리면 널 부르실 거야. 그럼 가서 듣기 좋은 말을 들려드리고,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돼.”


“어떤 일들을 시킨다는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 있어 보지를 않았으니.”


“다른 사람은 없어? 나처럼, 효부인의 시중을 드는······”


“없어. 전에 하나 있었는데, 병이 들었다고 마님이 내치셨다더라.”


그러고는 제 말에 놀라 얼른 덧붙였다.


“못 고칠 병에 걸리지만 않으면 그렇게 될 일은 없어. 겁먹지 마.”


그러나 소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병에 걸려서 쫓겨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노리개 취급이나 당하며 수치스럽게 살 바에야 굶어 죽는 것이 낫지.’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땅거미가 내려앉았던 땅 위에는 이제 새카만 어둠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6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