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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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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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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1.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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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탈출 시도

DUMMY

—짝!


손찌검 한 번에 청대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귀가 얼얼하고, 눈에서는 번쩍 빛이 돌았다.


—짝! 소여는 청대가 맞은 자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반대쪽 뺨을 올려붙였다. 얼굴이 반대편으로 또 휙 돌아갔다. 청대는 입을 떡 벌리고 소여를 노려봤다. 소여는 그런 청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마님께서 사흘 동안 굶으라고 하신 말씀 못 들었어?”


청대가 대꾸하지 않자, 소여는 기세 좋게 웃었다.


“내가 너 같은 년들을 다루는 데는 아주 도가 텄지.”


그러고는 또 한 대를 후려갈기는 것이다.


세 번째로 맞으니, 청대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번만 더 때려라.’ 또 손이 올라오면, 청대는 다음번에는 소여를 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주 뺨을 치든, 머리채를 잡고 땅바닥을 구르며 싸우든 더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청대의 속내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소여는 팔짱을 끼고는 뒤로 홱 돌아섰다. 그리고 종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저년한테는 물도 주지 마! 주다 걸리면 저년 몫까지 굶을 줄 알아!”


종들은 대답도 없이 그저 묵묵히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소여는 눈치만 살피는 그들을 휙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소우! 얼른 나와! 마님을 기다리시게 할 참이야?”


소우가 방에서 빠끔 고개를 내밀자, 소여가 신경질적으로 그에게 손짓하고는 도방을 나섰다. 청대는 그 기세등등한 꼴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욕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소우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곧장 소여를 쫓아 나갔다.


소여와 소우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추명이 청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차가운 물로 적신 수건을 청대의 뺨에 갖다 대었다. 청대가 저도 모르게 우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소래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은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소여가 널 찾으면 내가 대충 둘러댈 테니까. 먹지도 못하는데 일까지 하면 얼마나 힘드니.”


청대는 그 말은 듣지도 않고 버럭 화를 냈다.


“누구야! 누가 까바쳤어!”


종들은 여전히 눈치만 살필 뿐 말을 아꼈다. 청대도 범인을 찾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솟구치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을 굴러대며 되는대로 욕을 쏟아냈다.

“하여간!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놈들이 있다니까! 아니, 잘되는 꼴이 다 뭐야? 굶어 죽는 꼴이 보고 싶은 거 아냐?”


그러고는 여종들의 침소로 쑥 들어가 버렸다. 청대를 쪼르르 쫓아가는 추명의 뒷모습을 보며 소래는 고개를 흔들었다.


“쟤도 웬만한 성질은 아니구나.”


“소여한테 잘못 걸렸다, 저거.”


하며, 융이 피식 웃었다.


“오빠가 이른 거 아니지?”


“누구 좋자고? 콩고물도 안 떨어지는 짓을 내가 왜 하냐? 귀찮게.”


그러더니만은 주변을 둘러보며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집에 쥐새끼가 오죽 많냐? 그러니 알아서 조심해야지.”


소래는 그런 융의 옆구리를 툭 치고는 침소로 들어갔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청대와, 그런 그녀를 달랠 줄을 몰라 애먹는 추명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웬만한 성질머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소래는 청대에게 연고 통을 건넸다.


“이거라도 좀 발라.”


“고마워!”


청대는 언제 그렇게 화가 났냐는 듯 빙긋 웃으며 양 볼에 약을 치덕치덕 발랐다. 그러자 추명이 약을 빼앗고는 청대를 침상 위에 앉히고 꼼꼼하게 약을 발라주었다.


소래가 청대에게 말했다.


“소여가 작정한 모양인데, 성질 죽이고 적당히 맞춰줘. 나쁘게 보여서 좋을 거 뭐 있니?”


청대가 고분고분 말을 들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소래는, 그래서 청대가 한숨을 쉬는 소리에 조금 놀랐다.


“네 말이 맞아. 우리 아버지가 성질머리 좀 고치라고 그렇게 잔소리하셨는데······”


‘웬만한 성질은 아닐지 몰라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


소래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어쩌다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속상하고 억울한 일 있으면 혼자 성내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털어놔. 나한테 말해도 좋고.”


청대가 씩 웃더니 말했다.


“난 청대야.” 추명도 한마디 했다. “난 추명.”


소래가 마주 웃으며 인사했다.


“난 소래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안타깝게도 청대는 소래와 잘 지낼 생각이 없었다. 소래는 물론 이곳에 있는 그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낼 생각이 없었다.


오늘 밤, 이 곳에서 탈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계획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 이 거대한 궁궐 같은 집을 탈출할 것인지 청대는 그 무엇도 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한 것이라고는 고작 ‘새벽, 다들 자빠져 자고 있을 때 월담한다.’ 것 뿐이었다.


다행히 청대에게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우선 타고난 담력. 누군가는 그것을 웬만하지 않은 성질이라고 평가하고, 또 누군가는 시건방진 성격이라고 깔보기도 하지만, 청대는 그것만큼 대단한 소질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담력 덕분에 남들은 간만 보다 끝내는 일을 그녀는 수도 없이 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그녀에게는 또 다른 타고난 능력이 있었는데, 요괴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 능력으로 그녀는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을 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바로 둔갑이었다.


그녀는 원한다면, 산골짜기를 뛰어넘는 호랑이로도, 풀뿌리로 파고드는 땅강아지로도 둔갑할 수 있었다.


마계에는 인계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이한 형상을 한 요괴들이 차고 넘치지만, 자유자재로 신통력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청대가 보기에는 그랬다.

타고난 담력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둔갑술 덕에, 청대는 마계에서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벗어났다.


그 수많은 위기를 생각하자면, 다 늙어 이빨 빠진 노장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고작 한다는 짓이 어린 여종들을 굶기고, 사내종과 숨바꼭질이나 하는 철없는 귀부인이 사는 집에서 탈출하는 것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축시가 되면 탈출 계획을 감행할 것이다. 청대는 어떤 짐승으로 둔갑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인가. 그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악!”


어찌나 기운이 좋은지, 소여는 그 작은 발로 저보다 머리 둘은 더 큰 청대의 몸을 자근자근 잘도 밟아댔다. 청대는 몸을 웅크린 채로 어떻게든 맞지 않으려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지만, 오히려 발이 작은 탓인지, 아니면 청대의 몸이 그보다 큰 탓인지 소여의 발길질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청대를 밟아대던 소여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번에는 채찍으로 청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추명이 작게 소리를 질렀다. 소래가 그녀를 붙들지 않았다면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나, 나 때문이야......”


하며, 추명이 눈물을 흘렸다.


추명에게서 이미 사정을 들은 터라, 소래는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더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추명의 말로는, 소래와 다른 종들이 일하기 위해 도방을 모두 뜨자, 청대가 추명에게 새벽에 탈출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탈출하는 상상만으로도 겁에 질린 추명은 걱정을 표하며 당장 대답하지 못했고, 그러자 마음이 다급해진 청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며 추명을 채근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효부인이 키우는 쥐새끼들이 들은 것이다.


융의 말대로 이 집에는 쥐새끼들이 많다. 조서원에서 효부인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쥐새끼들부터, 그녀가 고향에서 데려온 쥐새끼들까지. 소여는 그 쥐새끼들의 대장 격이고, 이 집 구석 구석에는 소여와 효부인의 명령만 듣는 쥐새끼들이 바글바글한다.


소문에는 그 충성심이 참으로 대단하여, 수장군님과 수명 도련님의 말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소래는 이 사달이 성급했던 청대의 탓도, 얼른 대답하지 못했던 추명의 탓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내 탓이지. 내가 좀 더 단단히 일러둘걸.’


그러나, 설마 저 귀태 아이가 팔려 온 지 이틀 만에 탈출을 도모할 줄이야 누군들 알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소여는 참으로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한 식경이 넘도록 소여의 매타작은 계속됐다. 그동안 소여는 도방 사람 중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하도록 엄포를 놨다. 본보기를 삼기 위함이었다.


소여의 무서움을 익히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끔찍한 체벌에 그저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지만, 추명은 이제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맞을 때마다 악 소리를 내며 욕을 하던 청대는 기운이 진한 듯 맞으면 맞는 대로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 조금 못되어 매타작이 끝이 났다. 소여는 거친 숨을 쌕쌕 몰아쉬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땅바닥에 채찍을 몇 번 휘두르고는 도방을 떠났다.


추명은 울며 청대를 부축했다. 융도 그녀를 도왔다. 청대는 질질 끌려가다시피 방으로 들어갔다.


소래와 몇몇 여종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청대의 옷을 조심스레 벗기고 줄줄 흐르는 피를 닦았다.


“죽으면 어째?”


“괜찮아. 약 바르고 좀 쉬면 금세 기력을 회복할 거야.”


약을 모두 바른 소래는 우는 추명을 달랜 뒤, 여종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융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좀 봐라.”


소우였다. 그는 도방 정원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청대 그 계집애보다 저놈이 더 이상해.”


융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러나 소래는 어쩐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소우가 바라보는 것은 청대의 피였다. 종들이 부리나케 물을 뿌리고 닦아내어 이제는 거의 남지도 않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분명 청대의 피였다.




청대는 밤새 앓았다. 추명은 자지도, 깨지도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청대를 돌봤다. 그러나 소래는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잠을 청했다. 어쨌든 신음을 낼 기운이라도 남아있다는 뜻이니까.


다음 날 이른 아침, 소여는 부리나케 도방에 돌아와 청대를 깨웠다.


“아프다고 누워만 있으면 나을 병도 안 나아. 얼른 일어나서 일해! 바쁘면 아픈 줄도 모르지.”


그런 소여를 말린 것은 다름 아닌 소우였다.


“마님께 들려드릴 노래가 있는데, 마님께서 좋아하실지 들어봐 주세요.”


소래는 되지도 않을 핑계라고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소여는 순순히 소우를 따라 나갔다. 덕분에 청대는 저녁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었다.


청대는 기운이 좋았다. 소래는 그렇게 맞고도 하루 만에 기력을 찾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침상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청대는 해가 중천에 뜰 때쯤에는 몸을 일으켰고, 저녁쯤 되어서는 침소에 들어가 보니 추명과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었다.


“혹시라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소래가 말하자 청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래는 안심했다.


‘그래, 그렇게 맞은 것은 안 됐지만, 그렇게 맞고서도 나갈 생각을 하면 미친 거지. 하루빨리 여기에 마음 붙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일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고, 그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온몸이 절절 끓는 와중에도 청대는 두 번째 탈출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청대는 자신의 성급함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추명이는 우선 두고 가자. 쟤는 심약해서 데려갔다가는 오히려 발목 잡힐 판이야. 무사히 탈출하면 그때 다시 데리러 와야지. 편지라도 남겨놓을까? 아니야,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것 같고, 괜히 한 패라고 누명 쓰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그리하여 다음 날 새벽.


청대는 모두가 잠든 밤, 조용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잠들었음을 확인한 그녀는 소리도 없이 훌쩍 재주를 넘었다.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 하얀 빛이 그녀의 몸에서 번쩍 발했다.


그리고 옷가지만 풀썩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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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6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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