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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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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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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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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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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국 입성

DUMMY

장날을 맞은 풍주의 융선왕문 앞은 해가 뜨기 전부터 상인들의 장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에 자리를 펴고 온갖 상품을 꺼내어 놓았다.


풍주의 장터는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염국은 마계의 다섯 제국 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손꼽힌다. 그 염국의 서문(西門)이라 일컫는 풍주는 서천강과 연접한 지역으로, 유족은 물론, 서천강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많은 족속으로 구성된 마치 시장과도 같은 도시다.


서천강변의 족속들은 풍주의 정문인 융선왕문을 오가며 유족에게서 산 인계의 물건을 장터에 늘어놓는다. 그리고 풍주에서 산 마계의 물건을 유족에게 되팔아 이윤을 챙긴다.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염국의 성황 염제는 전쟁을 피하고 되도록 외교적 협상을 통해 세를 불려 나갔다. 그가 전하는 농법을 받아들인 주변 세력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와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 결과 염국은 천 년간 마계의 거의 모든 종족을 품을 수 있었다.


염제가 홀연히 사라지고, 이후 500년간은 염국의 국경지대에서 피바람의 전조가 보이고는 했으나, 그동안그 동안 염국의 영토는 더 넓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이방인에게 이런 염국은 자유와 평화를 보장하는 기회의 땅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서천강 너머 인계도 마다하지 않는 시해에게는 이곳 염국뿐 아니라 마계 전역이 장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인간 노예를 팔 때는 주로 유도에서 가까운 풍주에 판을 깔았는데, 인간은 요괴보다 기력이 금방 쇠하고 풍토병에 쉽게 걸리는 탓이었다.


시해의 상단이 풍주 성문 앞에 도달하자마자 그를 알아본 문지기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시해는 사환들을 시켜 그들에게 술을 한 병씩 건넸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히죽 웃으며 술병을 받아들었다.


“참새가 방앗간은 그냥 못 지나가지. 마침 장날에 잘 왔소.”


“장날인 줄 알고 온 거지.”


문지기들은 시해에게 서로 한마디씩 건넨 뒤, 상단의 짐들을 확인했다. 형식적인 절차였으므로, 검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염국의 국법은 엄연히 성문세를 금하고 있으나, 염국의 문지기들은 통과가 금지된 물건을 가져왔다며 있지도 않은 법을 핑계로 돈 좀 만지는 이방 상인들에게 성문세를 요구하는 횡포를 부리고는 했다.


시해의 상단처럼 규모 있고 유력한 상단들은 이를 관아에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횡포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시해는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대신 문지기들과 얼굴을 트기로 했다.


시해의 술을 받은 날이면, 문지기들은 장터와 풍주 시내 곳곳에 시해가 실어 온 상품을 기꺼이 홍보해 주었다. 술 두 병 값을 계산하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들어가시오.”


문지기들은 시해를 순순히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시해가 가만히 서서는 사환에게 수레를 덮고 있는 휘장을 치우라고 명령했다.


천을 젖히자 문지기를 비롯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수레 위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우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인간 노예들과 소우가 웅크리고 있었다.


일구는 확인할 것도 없이 저들의 감탄한 이유가 소우의 날개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저마다 고개를 삐쭉 내밀고 소우를 구경하던 요괴들은 아예 우리에 들러붙어서 그의 날개를 만지려고까지 했다.


“어허! 물러서시오!”


사환들이 그들을 막았으나, 날개를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얼기설기 우리를 가로막은 사환들 사이에 서서 제 할 일도 잊고 소우를 구경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문지기들이 그들을 물리치고 나서야 시해 상단은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해의 그 의기양양한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이 그가 애초에 계획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제 풍주 온 고을에 보라색 날개를 가진 괴이한 요괴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크게 부풀려진다. 그리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시해의 단골손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갈 것이다.


시해는 자신 있었다. 소문이 좋지 않은 모양으로 부풀려진다면, 오히려 소우의 미모를 보고 손님은 반가워하며 웃돈을 얹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까다롭고 배부른 손님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님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노예가 염국에 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할지라도 문제없다.


시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값을 손에 넣을 것이다.


해가 중천으로 향할수록 장터는 더욱 북적거렸다. 거기다 소우의 소문이 어찌나 빨리 퍼졌는지, 장터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소우가 갇힌 우리를 빙 둘러서서 그를 구경했다. 그들은 소우를 두고 귀태니, 매의 자손이니, 청국의 요괴니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소우는 그들의 말 중 태반이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기괴하고 이상한 존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하는 이 시간이 피곤할 따름이었다.


사실 인간들과 유도를 벗어난 일이 없다는 데서는 인간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소우에게도 풍주의 장터 역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풍주의 장터는 마계의 요괴들을 죄다 모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살면서 요괴란 유도와 교족을 본 게 고작인 소우와 인간들은 정신이 현황 할 지경이었다. 저마다 다른 얼굴과 몸뚱이를 한 요괴들이 눈을 빛내며 소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속이 울렁거려······’


소우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나 인간들은 창살에 바짝 붙어 서서 곁눈질로 요괴들을 구경했다.


북쪽에 산다는 노란 눈의 도족, 돼지의 얼굴을 한 활족, 여우의 귀와 꼬리를 가진 폐폐족, 그리고 백은처럼 하얗게 빛나는 머리카락과 꼬리를 가진 백견족까지.


요괴들은 소우를 구경하고, 그런 요괴들을 소우와 같은 우리에 갇힌 인간 노예들이 구경하는 모습 또한 진풍경이라면 진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소우는 그저 이 시끄럽고 야만스럽기까지 한 곳을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소우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시해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어서 소우를 구경하라고 부추기며, 풍주에서 가장 귀한 분에게 소우를 팔 거라고 은연중에 자랑을 해댔다.


오늘 장터의 주인공은 과연 시해와 그의 재주부리는 곰 소우였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 별이 우수수수 떨어지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다니던 시절에 신농님께서 불가마를 타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들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다.


연희패였다. 시해가 없었다면 장터 한 가운데 보란듯이 자리를 펴고 인형극을 선보였을 테지만, 오늘은 자리를 뺏기고 장터 한 편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별수 없이 성벽을 등지고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를 썼다.


그들은 목각인형을 들고 온갖 악기를 불고 두드리며 오래된 이야기를 읊었다.


“신농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고, 가련한 백성들이여! 황무지를 갈아 밭을 일구는 법을 가르쳐주리니, 일어나서 쟁기를 잡아라!’”


그러나 누구든 염국 백성이라면 갓 말을 뗀 어린아이도 아는 옛날이야기를 돈 주고 듣느니, 요괴의 눈에도 괴이한 이 보라색 날개를 가진 요괴를 공짜로 구경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오히려 저 애처로운 인형극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다름 아닌 소우였다.


그는 눈을 감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연희패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시며 사람들에게 쟁기와 보습을 주시매, 사람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니, 신농님께서 조화를 부려 비를 내리시고 해를 보내셨더라.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니, 하늘이 간절한 기도에 감복하여 땅을 만지사 곡식을 충실히 맺게 하셨더라.”


소우는 고개를 슬쩍 들어 연희패를 찾았다. 사람들 틈 사이로 목각인형이 들썩이며 춤추는 것이 언뜻 보였다.


머리에는 소의 뿔을 달고, 황금빛이 찬란한 황제의 의복을 입은 신농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쳤다. 그러자 인형의 입에서 불이 솟구쳐 올랐다. 도술이 분명했다.


인형극을 구경하던 몇몇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소우는 여전히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모로 돌려 한 눈으로 인형극을 지켜봤다.


“사람들이 뭇별 중 가장 존귀하고 지혜로우신 신농님을 찾아가 그 앞에 무릎 꿇고 아뢰기를, ‘신농님, 신농님! 부디 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사 인자와 자비와 지혜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사람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신 신농님께서 친히 그들의 왕이 되셔서 나라를 세우시고, 그 땅의 이름을 염국이라 부르셨더라.”


신농이 다시 불을 발했다. 그러자 공중에 작은 먹구름이 만들어지더니 물방울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까무러치도록 웃었다.


그쯤 되어 소우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도 조금씩 식기 시작했다. 그와 달리 인형극은 점점 활기를 더했다.


신농은 이제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용의 혀처럼 불을 날름거리며 염국의 평화를 헤치는 적들을 단숨에 무찌르고 있었다.


“자, 가자!”


더는 장터에 볼일이 없다는 듯, 시해가 미련 없이 말했다. 사환들이 소를 재촉하자 수레가 덜컹, 우지끈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신농이 어떻게 됐는지 아냐?”


별안간 일구가 소우에게 말을 걸었다. 소우가 별말이 없자, 일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침소에 자기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준다는 말만 남겨놓고 사라졌다지. 신농은 염국을 천년이나 다스린 매(魅)였고, 그의 자식들은 매와 요괴 사이에서 태어났어. 아버지와 달리 자식들의 명은 100년을 넘지 못해서 지금까지 황제가 몇 번이나 바뀌었지.”


“매?”


소우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소우는 자기 기억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마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일구가 대답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말하는 거다. 이 땅은 원래 하늘의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별들의 시체로 만들어졌어. 그러나 간혹 죽지 않고 살아서 이승을 밟은 별들이 있었는데, 마계에서는 그들을 매라고 부르지. 인계에서는 신선이라 부르고.”


신선이라는 익숙한 단어에 인간 노예들이 고개를 돌렸다. 일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매는 사람보다 살기는 수천 년을 넘게 살고, 개중에는 불로불사 하는 매도 있지. 신농이 그러했다. 그런 대단하신 분이 왜 자기 자리를 아들에게 넘겨줬을까? 염국 사람들은 신농이 본래 부와 권력에는 관심 없는 청렴한 분이었기에, 나라가 안정되자마자 아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고 믿지. 하지만 수천 년을 살고 풍운조화를 다스리는 신통력을 부리는 매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인육을 먹는 습관이야.”


일구가 소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매의 시체에서 태어난 것들이 수괴다. 수괴가 고기와 피를 좋아하는 건 매의 습성을 닮았기 때문이야. 천 년하고도 5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신농이 사람 고기를 그리워해서 황제의 지위도 버리고 도망쳤다’고.”


어느새 일구의 이야기에 푹 빠진 인간들은 그의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소우는 무심한 얼굴로 일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계는 그런 곳이다. 사람 고기를 먹는 괴물을 왕으로 세우고, 요괴들은 자기 안위를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식도 바친다. 신농은 그래도 자비로운 왕이었기에 천 년 동안 인육을 참고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렸지만, 마계의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왕관을 쓴 매에게 해마다, 절기마다 사람 고기를 바치지.”


“겁주는 겁니까?”


소우가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일구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조심하라는 거다. 염국은 마계에서 가장 문이 넓은 곳이야. 마계 곳곳에서 오지 않는 요괴들이 없어. 그들 중에는 자기 왕에게 사람 고기 바치는 것을 당연시할 뿐 아니라, 영광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어. 그러니 사람 봐 가면서 행동해라.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 어떤 곳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어서 버려지기도 한단 말이다.”


그 순간, 소우의 눈이 빛났다.


“아저씨는 제가······!”


그러나 한순간이었다. 마치 소우의 몸속에 거대한 구멍 같은 것이 있어, 빛이란 빛은 모조리 집어 삼키기라도 하는 듯, 소우의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탁한 어둠에 묻혀버렸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일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일구는 어쩐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네가 무죄라고 생각하냐고? 글쎄다. 난 모르겠구나, 아직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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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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