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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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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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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2.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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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팔려온 처지

DUMMY

한 번 입이 트이고 나니, 소래는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수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봤니?”


“수씨 가문?”


“이 집에 사는 사람들 말이야. 수장군님의 가문.”


그 말에 소우는 다시 한번 집을 휘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따금 이 집의 종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하나 같이 소우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시 제 할 일로 돌아갔다. 누구 하나 소우를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웬 노리개 하나를 또 샀구나, 생각하고 있겠지.’


소우는 착잡하고 비참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더욱 소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수씨 가문은 염국에서 두 번째로 제일가는 가문이야. 염국의 걸출한 장수 중에는 수씨 가문 출신들이 많아. 주인 나리께서는 대장군의 자리까지 오르셨어. 지금은 나이가 너무 드셔서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만 계시지만.”


“주인 나리면, 그 수장군이라는 사람 말이야?”


소우의 물음에 소래가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맞아, 수장군님. 너도 앞으로는 주인 나리라고 불러.”


그러고는 다시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주인 나리를 뵐 일은 거의 없어. 나도 여기 온 지 5년이 넘지만, 두어 번밖에 뵌 적이 없는걸. 고된 전장 생활 때문에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대. 그래도 마님께서 오시고 나서는 기력을 조금 되찾으셨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주인 나리 거처에 갈 일은 없으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그쪽에 가게 된다면 조심해. 주인 나리가 쉬시는 데 방해될 수 있으니 쥐 죽은 듯이 다녀야 해.”


집이 어찌나 넓은지 소래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목적지가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건물을 빠져나와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좌우에는 높은 돌벽이 늘어서 있었다.


효부인의 거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장원에 기거하는 종들은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소래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와중에 소우를 한 번씩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누구도 소래에게 하듯 소우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이 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주인나리도, 마님도 아니야. 수명 도련님이시지. 주인 나리와 옛날 마님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주인나리가 환갑이 넘으셔서 얻은 독자야. 그래서 지금도 주인 나리께서는 도련님을 금이야 옥이야 아주 귀하게 여기셔.”


“그 사람도 무관이야?”


“물론이지! 장군님이신 걸. 어린 나이에 위장군까지 오르신 훌륭한 분이셔. 무예도 뛰어나시고, 학식도 깊으신 데다 잘생기시까지 했지.”


위장군이란, 황제와 궁성을 지키는 고위 무관이지만, 소우가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그는 다만, 대장군만은 못하더라도 나라에서 이름난 관직에 오른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소래는 저도 모르게 베시시 웃었다.


“도련님께서 왜 아직도 장가를 안 가시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사방 천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 딸 좀 데려가라고 난리인데 말이야.”


그는 소우를 휙 돌아봤다.


“너도 수명 도련님을 보면 한 눈에 알아볼 거야. 키가 훤칠하시고, 얼굴은 아주 날렵하게 잘 생기겼거든. 눈은 꼭······”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소우의 얼굴을 가리켰다.


“꼭 너처럼 푸른 빛을 띠셨어.”


그러고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느새 두 사람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인들이 머무는 도방이었다.


“오는 길은 잘 익혔니?”


소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소래는 물론, 그가 이 넓은 집의 구조를 벌써 익혔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방은 여기야.”


소래는 소우를 한 방으로 안내했다. 바림의 집에서 골패와 함께 머물던 방보다는 조금 작았으나, 그곳보다 더 깨끗하게 정돈된 방이었다. 소래가 말했다.


“전에 있던 애가 쓰던 곳이야.”


“병에 걸려서 쫓겨났다는?”


“그래, 뭐······”


소래는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더니, 방을 나서며 말했다.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푹 쉬어.”


“마님이 내일 나를 부르실까?”


문을 열고 나서려는 소래를 소우가 붙잡았다. 소래는 문지방 너머에 발을 걸친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 말에 소우는 순순히 소래를 놔주었다.


소래가 나가고, 방은 삽시간에 적막해졌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와 바람이 정원의 풀잎을 흔드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으나, 그 또한 적막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우는 침상 위에 가지런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효부인의 귀여움을 받던 그 누군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워있었을 자리였다.


사위가 어둡고 적막하니, 소우는 저절로 바림을 떠올렸다.


바림도 지금쯤 단조마을 어딘가에서 이렇게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을까. 아니면, 소우를 떠올리고 있을까?


소우는 영락없이 노리개 신세가 되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고 아름다운 얼굴밖에 없는 여인이 늙은 남편의 아랫도리에 누워 아양을 떨며 얻은 재물로 산 노리개.


그러나 소우는 그 여인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어떤 한 여인이 그의 마음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은 탓이었다. 아마도 그 비수는 소우가 죽는 날까지 그의 심장 언저리에 꽂힌 채로 그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소우는 영영 바림의 속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왜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는지. 그녀가 정말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소우가 하나 깨달은 것은, 사람은 모두 뭔가를 원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뭐든지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민첩한 데다, 심지가 바위처럼 굳기 때문에 목적을 위해서라면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의 영혼조차 수단으로 삼고 만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수단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영리하지도, 민첩하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심지는 마른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듯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러, 그것을 안다 할지라도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소우는 바림을 원했지만, 그녀는 제 짝으로 맞이할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 시해의 말을 핑계 삼아 그녀를 옥산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자신을 다독이며 합리화했다.


‘그래서 내가 바림을 차지했으면?’


어쩌면 바림은 소우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 끝에 소우는 자조하고 말았다.


‘멍청아. 바림은 처음부터 너 따위는 믿지 않았어. 그 애가 왜 날 자기 집으로 들였겠어?’


소우는 몸을 웅크렸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봄기운을 떨쳐버리지 못한 바람은 여름에게 아직 오지 말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상쾌하고 부드러운 바람의 숨결이 소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더니 이내 깃털을 간지럽히며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소우는 한기를 느끼기라도 한 듯, 더욱 몸을 웅크렸다.




“얘, 얘!”


청대는 세 번쯤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잠에서 깼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자기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렸다. 다행히 그녀를 깨운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청대를 재촉할 뿐이었다.


“정신 차렸으면 얼른 일어나라.”


이제 막 자정을 지난 새벽이었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졸음에 겨워 비척거리는 청대를 채근했다.


‘아무리 노예로 팔려 왔다지만······’


하고 생각하며 청대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 모습을 본 상대는 기막히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어둠 속에서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청대는 상대의 툭 튀어나온 앞니를 보고서야 그녀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수씨 집안에 팔려 온 청대는 함께 팔려 온 추명과 함께 목욕부터 해야 했다. 그들이 앞으로 모셔야 할 효부인은 더러운 것을 도무지 참지 못하는 성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대와 추명 모두 그날 효부인을 보지는 못했다. 청대는 자기들을 씻겨주고 도방으로 안내해 준, 그리고 지금, 이 꼭두새벽에 잘 자는 사람을 깨워서 닦달을 해대는 효부인의 여종 소여에게 물었다. “아니, 얼굴을 안 비추면 마님이 누군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청대는 맹점을 꿰뚫는 질문을 던진 자신을 영특하게 생각했지만, 그 질문을 들은 순간부터 소여는 이 시건방진 귀태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집안에서 가장 귀하고, 곱고, 아름다운 분이시다. 보면 알아!”


하여튼, 소여의 무신경한 대답을 들은 청대는 한동안 효부인을 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기회라면 기회라 할 때가 온 것이다.


청대를 깨우는 소리에 함께 자고 있던 추명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여종들은 시체처럼 숨도 쉬지 않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청대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것들이 일부러 자는 척을 하는 것 같은데······’


소여는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추명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청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잠에 취한 추명은 그 모습을 어리둥절 쳐다보다 주변을 휘 둘러봤다. 역시나 다른 여종들은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청대는 제 팔을 움켜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소여에게 짜증을 냈다.


“어디로 가는지 말씀하시면 알아서 따라가지요!”


“쉿!”


소여는 대답 하나 없이 무서운 눈으로 청대를 노려보기만 했다. 팔려온 노예가 신경질을 부리는데도 그 정도로 끝냈으니, 어쩌면 소여는 청대의 생각보다 너그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아주 사안이 위급한 것이거나.


소여와 청대는 곧 효부인의 침소에 도착했다.


자정을 이제 막 넘긴 꼭두새벽. 그러나 효부인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침상 위에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서 청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려왔습니다, 마님.”


소여가 청대를 툭툭 치며 효부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청대는 소여를 따라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효부인은 별 말없이 청대에게 손짓했다. 청대가 몇 걸음 가까이 나아갔지만, 효부인은 손짓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청대가 효부인의 발치까지 다가가서야 효부인이 말했다.


“불라국에서 왔다던데.”


효부인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눈만 치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대를 가만히 쳐다봤다. 입술 끝을 가볍게 말아 올린, 영락없이 미소 지은 표정이었지만 청대는 그녀의 얼굴에서 어떤 웃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대가 눈을 슬며시 내리깔며 대답했다.


“네.”


그러자 효부인은 소여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소여가 침소를 나서자 그 넓은 방에 남은 사람은 청대와 효부인, 둘뿐이었다.


‘여기 있느니 차라리 괴팍하더라도 저 아줌마랑 한 방에서 자는 것이 낫겠다.’


청대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효부인은 이렇다 할 말이나 표정 없이, 그저 그 웃음 같지 않는 미소를 띠우며 청대를 찬찬히 살펴봤다.


청대 역시 눈을 내리깐 채로 조심스레 효부인을 살폈다. 소여의 말대로 이 집안에서 가장 귀하고, 곱고, 아름답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한 얼굴이었다. 간혹 그녀의 머리 깃털이 씰룩거렸는데, 청대는 그것이 효부인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일각이 겹겹이 쌓여 이러다가는 해가 뜨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에야 비로소 효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점치는 재주가 있겠구나.”


청대는 하마터면 눈을 질끈 감아버릴 뻔했다.


‘여기까지 와서 또 저 소리를 듣다니······’


청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효부인은 연신 빙긋빙긋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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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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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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