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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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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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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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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넌 절대로 안 죽어

DUMMY

소우는 주검처럼 누워있었다. 백지장처럼 하얀 낯에는 핏기 하나 보이지 않았고, 눈과 입 주변은 거먼빛으로 물들었다.


향이라도 피운 듯 탕약실 안은 탕약과 약초 냄새로 진동했다. 그 때문인지 거학의 눈에 소우는 정말로 죽은 지 사흘쯤은 지난 사람 같았다.


거학이 속으로 낄낄 웃는 동안, 우크미는 그 뒤에서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두 손을 그러모으고 기가 죽은 채로 서 있었다.


명이 소우를 빤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부작용이 아니라는 말인가?”


우투미가 다급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러고는 생각을 깊이 곱씹은 뒤 다시 대답했다. “약은 문제 없습니다.”


“약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문제가 있다는 말이군. 어찌 되었든······”


명은 우크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되도록 빨리 고쳐라. 시간이 많지 않아.”


“알겠습니다.”


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거학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입꼬리를 잔뜩 말아 올리며 그 뒤를 따라나섰다.


명과 거학이 사라지자, 그때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구석에 병풍처럼 서 있던 철현이 우크미에게 물었다.


“이놈은 누굽니까?”


고민에 빠진 우크미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한참이 지난 후 우크미가 철현을 소우 앞에 세우고 말했다.


“이렇게 생긴 요괴를 본 적 있냐?”


“아뇨. 스승님도 처음입니까?”


“생전 처음 보지. 아마 이렇게 생긴 놈은 마계에 이놈 하나뿐일 거다.”


“그렇게 이상한가요?”


날개가 두 쌍이나 달린 사람도 있고, 어깨 사이에 소머리를 얹고 사는 사람도 있는 곳이 마계인데, 보라색 날개를 가진 사람은 없다는 우크미의 말을 철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계가 얼마나 넓습니까? 보라색 날개를 가진 요괴가 이놈 말고 하나쯤은 더 있겠죠.”


“네 눈에는 이것이 그저 보라색으로만 보이냐?”


“네.”


우크미가 큰 눈을 껌벅거렸다.


“내 눈에는 밤하늘로 보인다.”


“꼭 그런 빛이기는 하죠.”


“아니, 영락없는 밤하늘이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이야. 하늘에서 떨어진 뭇별이 죄다 이 날개에 박힌 것처럼 영롱하고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이 보이는구나.”


철현은 눈이라도 씻고 올까 했다. 그의 눈에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윤기가 흐르는 보라색 날개일 뿐이었다. 시상이 깊은 시인이라면 이 평범한 날개를 보고도 은하수니, 별 무리가 춤추는 밤하늘이니 하는 구절을 읊겠지만 우크미는 그런 인사가 못 되었다.


그러나 우크미의 눈은 심지어 우수에 잠기기까지 했다.


“이 날개를 보고 마음이 취하지 않은 요괴는 없을 것이다. 그래, 마님이 욕심을 부리신 것도 이해가 된다.”


“술 드셨습니까?”


“이놈이 근데!” 하며 우크미가 철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철현은 머리를 문지르면서도 생각했다. ‘정신은 멀쩡하신데.’


우크미가 예의 그 사나운 투로 말했다.


“요괴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 말이야.”


“저는 인간이라서 못 본다는 말씀입니까?”


“다른 인간을 데려와 봐야 알겠지. 어쨌든, 네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하구나.”


“그래서 이놈은 대체 누굽니까? 부작용이니 하는 말은 또 무슨 소리고요?”


우크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탕약실을 나서며 푸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어 말을 아꼈는데,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러고는 마음을 굳힌 듯 굳은 표정으로 뒤따라 나온 철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철현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곧 마음이 벅차지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수장군을 보게 해주시려나?’


철현은 들뜬 마음을 감추고 우크미의 말을 기다렸다.


우크미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소우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소우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자기 몸이 이 이름 모를 약실에 실려 왔을 때부터 이곳에 함께 있었다.


명이 우크미에게 약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할 때도, 시간이 없으니, 소우를 빨리 치료하라고 명령할 때도, 그리고 우크미가 소우의 날개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입술이라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대강 알아들을까 싶어 그들에게 가까이 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눈앞에서 흐려졌다. 거리를 둬야만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제 몸뿐이었다.


정신을 놓고 사흘 밤낮 잠을 자는 동안만 해도 그의 영혼은 육신 속에 있었다. 그간 그는 꿈도 꾸지 않고 간만에 꿀 같은 잠을 잤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몸에서 쑥 빠져나오고 만 것이다.


그의 몸은 끈 떨어진 연처럼, 공기처럼 공중에 둥둥 떠올랐다.


주변을 보니, 제 방에 누워 있어야 할 소우의 몸은 거학에게 들려 있었다. 거학은 그를 한 팔로 들어 옆구리에 낀 채로 명과 좌우가 돌벽으로 둘러싸인 길을 걷고 있었다. 좌우뿐 아니라 천장과 바닥까지 깎아 만든 돌로 짜 맞춰져 있었다.


길의 좌우 폭은 장정 둘이 걸으면 딱 알맞을 만큼 좁았고, 벽에는 쪽창문 하나 없어, 빛이라고는 명이 들고 있는 등이 전부였다.


소우의 기억에 농명보에 이런 장소는 없었다. 백곡이 농명보에 관해 그에게 빠짐없이 가르쳐줬다면 말이다.


소우는 다시 몸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몸에 손이라도 닿을라치면 아지랑이 같은 것이 몸 주변에 일렁이면서 그의 손을 밀어내었다.


‘죽은 건가? 죽어서 영혼이 육신을 떠난 건가?’


덜컥 겁이 난 소우는 명과 거학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도련님! 거학! 어떻게 해 봐요! 지금 내 몸이 정말로 죽게 생겼단 말입니다!”


소우는 두 사람 앞에서 소리치기도 하고 온몸을 마구 비틀며 흔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마치 소우가 보이지 않기라도 하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어 서학의 멱살을 잡아보려고까지 했는데, 자기 몸에서 밀려난 것과 마찬가지로 서학의 몸에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정말로 내가 안 보이는구나.”


게다가 그들의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생각건대,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 자기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공간에 있었으나, 소우는 그들과 또 다른 공간에 격리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소우를 어느 이름 모를 약실로 데려갔다.


약실의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동굴 같은 길 저 끝에 웬 빛이 반짝였는데, 다가가 보니 벽에 달린 등이었다. 양쪽에 등이 하나씩 달려 있었고, 그 사이에는 미닫이문이 있었다.


문에 대고 거학이 뭐라고 소리쳤고, 그러자 기다리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소머리를 한 요괴가 나타났다. 소우는 그 요괴가 거학에게 업힌 자기를 보자마자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소가 놀란 표정은 아무래도 사람이 놀란 표정보다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다.


명과 그자의 대화를 지켜보며(비록 들을 수는 없었지만), 소우는 그자가 영안을 뜨게 하는 약을 만든 장본인임을 짐작했다.


‘명이 한 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며 연신 굽신거렸지. 내가 이렇게 된 건 그 약의 부작용일지도 몰라.’


소우는 철현에게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우크미를 보며 생각했다.


‘명이 날 죽이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저 소머리에게 날 고치라고 데려온 거야. 그렇다면, 여기서 내 몸이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나?’


소우가 생각에 잠긴 사이 철현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눈이 조금 커지더니, 다음으로는 턱이 툭 떨어졌고, 그다음에는 뒷걸음질을 조금 치더니만 잠시 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뒤늦게야 그 모습을 본 소우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살기 글렀나 보다.’


그는 탕약실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듯 누워 있는 자기를 보던 소우는 문득 서글퍼졌다.


‘나는 어쩌다 서천강에 버려져 이리 고되게 살까? 하지만 이제 그 짧은 생도 끝나게 생겼구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러나 그 눈물은 소우의 몸에 닿지 못하고 아지랑이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리 죽는 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우크미가 탕약실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는 철현이 약초들을 꺼내어 손질하고 있었다.


‘운이 좋아 살게 된다면, 언제가 됐든 꼭 고맙다고 인사하겠습니다.’


그는 비장한 마음으로 약실 입구 앞에 섰다. 죽을 때 죽더라도 미련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바림을 찾자. 그 애에게서 무슨 말을 들을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가자. 미운 얼굴이든, 사랑하는 얼굴이든······’


소우는 약실 문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쑥 밖으로 나갔다.


“뭐야?”


머리는 문밖에, 몸은 약실 안에 둔 채로 몸이 문 안에 걸려버렸다.


소우는 머리를 다시 안으로 가져왔다가 다시 천천히 문밖으로 들이밀었다. 미끄러지듯 몸이 문을 통과했다.


‘죽으니 이런 건 좋구나.’


몸이 가벼워진 탓인지 마음도 생전보다 가벼워진 듯했다. 공중에 둥둥 뜬 채로 이리 돌며 저리 돌며 날뛰던 그는 그대로 왔던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약실을 얼마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빛이 없으니 먹을 엎어 놓은 듯 온 사방이 캄캄했다.


‘망자가 됐다고 해서 어둠 속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며 소우는 자기 손을 쳐다봤다. 손가락 하나하나 뚜렷하게 잘 보였다. 다행히 제 몸은 보이는 모양이었다.


소우는 위를 한 번 쳐다봤다. 문을 통과한 것처럼 천장을 통과해 위로 올라갈 셈이었다.


‘여기가 지하든 아니든 올라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이쪽으로······”


소우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어둠, 저 깊은 어둠. 마치 뱀의 목구멍 같은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야. 이쪽······”


사람일까? 망자일까? 소우는 선뜻 소리를 따라나설 수 없었다.


“이쪽······”


소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소우를 불렀다. 그것은 소우를 분명히 보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소우를 자기 곁으로 부르려 애쓰고 있었다.


겁에 질린 소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산 사람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 소우의 귀에, 저 정체 모를 소리가 닿았다.


만약 저 소리를 따라간다면, 영영 산 자의 땅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를 빠져나가자. 빛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위를 쳐다보던 소우는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아직 저 멀리서 약실의 빛이 희미하게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내 몸이 있는 곳으로 가자. 정말 살아날지도 모르잖아.’


그러나 그다음의 말이 소우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내가 말했지? 언젠가 날 만나게 될 거라고.”


소우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그것이 말했다.


“이쪽으로. 겁낼 것 없어. 넌 절대로 안 죽어. 아직 그런 꿈은 꾼 적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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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6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6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6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5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8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6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9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8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7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7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7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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