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63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7 10:30
조회
6
추천
0
글자
12쪽

작은 새의 꿈

DUMMY

인간이었다. 소우의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달도 구름에 가려져 새까만 밤이었지만, 소우의 눈에는 소년의 얼굴을 뒤덮은 상처들이 뚜렷이 보였다.


양쪽 눈은 심하게 부어 과연 앞을 볼 수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앞니 두어 개가 빠진 채로 입 안은 피로 불그죽죽했다. 코는 부러졌고, 광대와 턱도 어그러져 있었다. 왼쪽 귀는 찢어졌는지 덜렁거렸고, 머리카락도 한 움큼 빠져있었다.


소년은 겁에 질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우를 올려다봤다.


교족이 잡아 온 노예가 분명했다. 당장 시해에게 말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소우는 문득 겨울 나뭇가지처럼 바짝 마른 이 쇠약한 소년을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인간 소년의 생존 본능은 소우의 망설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자신을 붙들고 있는 소우의 손아귀가 헐거워지자, 소년은 지체 없이 소우를 뒤로 넘어뜨리고는 그대로 달음질쳤다.


그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는지 소우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바림은 바닥에 주저앉아 멀어져가는 인간을 멀거니 바라보는 소우에게 다가왔다.


“저 사람 뭐야? 기껏 도와줬더니··· 야! 거기 안 서?”


바림이 목소리를 들레자, 소우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저씨랑 먼저 집으로 가.”


“뭐? 너는?”


소우는 자신을 부르는 바림을 뒤에 두고 인간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인간은 낯선 길을 잘도 찾아내었다. 잡히면 죽는다는 위기감을 넘은 공포심이 그를 자꾸 부추긴 탓일지도 모른다.


소우는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지만, 도통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목덜미에 손에 닿을라치면 인간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달음박질했고, 그러면 어김없이 소우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로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서천강변이었다.


강물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 낭떠러지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발을 멈췄다.


소우는 저 절박한 인간이 설마 강물에 뛰어들기야 하겠냐고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요괴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에게는 큰 위협이 됐을 것이다. 이 낭떠러지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사람이 아닌가?


인간은 소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물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강물은 빛을 모조리 삼킨 듯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소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떨어지면 죽어!”


소우의 경고가 도리어 위협이 된 듯, 소년은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창백한 달빛 아래 소년의 얼굴은 그보다 더 창백했다.


“잡혀도 죽는 건 똑같아!”


“아니야!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살려줄 거야. 내가 시해 어르신한테—”


소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년은 서천강에 몸을 던졌다.




소우는 절벽 끝으로 달려가 밑을 내려다봤다. 방금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물은 고요했다. 그러나 창백한 달빛이 일렁이는 수면은 그림자 속에 숨어 먹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맹수의 이빨처럼 번득거렸다.


소우는 시해에게 인간 노예가 도망치다 서천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돌이켰다.


풍덩—!


누군가 또 서천강에 뛰어들었다. 뒤돌아보니, 이번에는 수면을 휘몰아치는 파문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인간 노예를 건지려는 것일까? 아니면, 도망친 또 다른 노예가 치욕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허어억!”


소우가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누군가 폐를 쥐어뜯듯 한줌의 공기도 들이마실 수 없었다. 그의 폐를 움켜쥔 손은 짐승처럼 성난 손톱을 반짝 세우고 그의 폐부를 사정없이 긁어댔다.


소우는 가슴을 움켜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눈물이 핑 돌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필사적으로 벌린 입에서는 멀건 침이 뚝뚝 떨어졌다. 눈은 자꾸만 뒤로 넘어갔다.


그는 아예 바닥에 얼굴을 뭉개고서 헐떡였다. 그때마다 돌을 긁는 것처럼 거칠게 쉰 소리만 나올 뿐 도통 숨은 들어가지 않았다.


뿌연 시야는 이제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마치 서천강 저 깊은 바닥에 빠진 듯, 눈앞에 보이는 것인 아무것도 없었고 살갗은 차갑게 식어갔다. 관절 마디 하나하나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소우는 확신했다. 나는 서천강에 빠진 것이다. 심해의 아귀처럼 서천강이 그 아름답고도 신묘한 달빛으로 나를 홀려 기어코 나를 잡아먹은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지. 나는 서천강에서 태어났으니, 죽더라도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니 소우의 폐부를 괴롭히던 통증은 서서히 사라지고, 안식이 그를 찾아왔다. 뒤로 넘어간 눈은 눈꺼풀 너머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소우. 소우.


누군가 저 아득한 곳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를 데리러 온 서천강의 목소리다.


나의 작은 새.


소우는 강 저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그 낯익은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현실을 벗어난 세계에서 시간이란 덧없는 것이다. 영원과도 같고 순간과도 같은 세계 속에서 소우는 서천강을 유영했다.

그의 몸은 강물에 서서히 녹았다. 살갗이 녹아 없어지고 힘줄이 풀어지고 나니 남는 것은 하얀 뼈뿐이었다.


그럼에도 날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작고 볼품없는 보라색 날개는 마치 지느러미처럼 그의 닳고 닳은 몸을 이끌고 유유히 헤엄쳤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 같은 찰나를 지나 그는 서천강을 가로질러 뭍에 도착했다.


물속에 잠겨 있었음에도 그의 뼈는 바싹 말라 있었고, 그의 날개만이 햇빛을 받아 윤기가 흘렀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그의 뼈는 더 이상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홀로 남은 날개만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우는 이제 작은 새가 되었다.


소우의 몸은 두 손안에 가둘 만큼 작았고, 그의 눈동자는 생전의 그것처럼 싱그러운 하늘빛이었다.


서천강에서 벗어난 소우는 뒤돌아보지 않고 구름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날개를 재촉했다. 그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자꾸만 자꾸만 날개 쳤다.


그러다 태양이 손을 뻗쳐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눈 부신 햇살을 이길 수 없었던 이 작은 새는 날개를 빠르게 홰치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제야 세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너른 광야. 회색과 모래 빛이 뒤섞인 광활한 대지. 기둥처럼 산맥이 땅 위에 우뚝 서서 하늘을 버티며 서 있고, 그 아래로 푸르른 생명들이 간간이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향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모래를 머금은 바람은 소우에게 참으로 정겨운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소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향의 향취를 만끽했다.


소우는 알고 있었다. 자기 고향은 서천강이 아니라, 이 태고의 광야라는 것을. 자신은 저 푸른 생명들 사이에서 알을 깨고 나왔으며, 자신의 일생 대부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날개치며 지저귀는 일이었음을.


소우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혹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늘을 누볐다.


그러나 나는 것이 일인 새라도 언젠가는 지치게 마련이다. 피로를 느낀 소우는 이제 쉴 곳을 찾아야만 했다. 앉아 쉴 만한 나무를 찾던 소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남자였다.


남자는 6척은 족히 넘는 장신에 어깨는 나무를 이고 갈 만큼 넓고 단단했다. 거기다 양가죽으로 겹겹이 만든 옷을 입었으니, 소우는 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마치 땅을 디딘 것 같았다. 작은 짐승의 털로 만든 모자 아래로는 까마귀처럼 검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이 얼핏 비쳤다.


그리고 그 뒤로 그보다 더 새까맣고 깊은 눈동자가 우리 구슬 같은 빛을 내며 박혀 있었다.


그는 산등성이 끝자락에 서서 광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우는 곧장 남자에게로 날아가 그의 어깨에 발을 디뎠다. 남자는 말없이 자신의 어깨에 깃들인 작은 새를 바라봤다.


온 하늘을 누비느라 있는 힘을 다 쏟아버린 소우는 기진맥진해서는 남자의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는 작은 새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는 억센 손으로 소우를 낚아챘다. 그를 노려보는 남자의 눈초리는 먼 하늘에서도 바위틈 사이에 숨은 먹이를 단번에 찾아내는 독수리의 그것처럼 매서웠다.


남자는 소우를 멀리 던져버렸다. 소우는 날개를 채 펼치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내팽개쳐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소우는 땅에 처박히기 전 겨우 날개를 펼쳤다. 그러나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검독수리가 날아와 소우를 향해 발톱을 뻗치고 있었다.




소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침상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사위가 어두운 것이 한밤중임이 분명했다.


소우는 일어나려 했지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은 아직도 아득한 꿈의 경계에 발이 묶여 있었고, 몸은 물에 젖은 듯 무거웠다.


“으아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골패였다. 잔뜩 성이 난 그는 바림을 찾으며 집기란 집기는 손에 닥치는 대로 내던지고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온 집안에 한 사람의 발광으로 떠들썩했다.


소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골패를 찾았다. 골패는 막 화병을 집어 던지려던 참이었다. 분명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라며, 바림이 골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둔 이 집안에서 몇 안 되는 고가품 중 하나였다.


“안 돼요, 아저씨!”


소우는 골패의 두 팔을 덥석 잡고, 그와 힘겨루기했다.


“이이익!”


골패는 이를 갈며 소우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소우는 번쩍 치켜든 그의 팔을 든 채로 그를 벽까지 밀어붙였다. 그런 다음 몸을 옆으로 틀어 어깨로 그의 가슴을 압박했다.


“으아, 으아아······!”


골패가 신음과 함께 항복을 선언했다. 소우는 그에게서 조심스럽게 화병을 빼앗았다. 골패는 눌린 가슴이 아픈 듯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작은 짐승처럼 울먹였다. 그 모습을 보는 소우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소우는 집 안에 바림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바림은 어디 갔어요?”


하고 골패에게 물은 소우는 곧 후회했다. 그걸 알았다면 골패가 집안에서 혼자 악을 쓰며 화병을 집어 던지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림을 부를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괜히 골패의 부산스러운 정신만 들쑤시는 꼴이 되지 싶어, 그는 우선 골패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골패를 방으로 데려간 그는 그를 침상에 눕히고 자장가를 불렀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바람이 분다, 강이 운다.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골패는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도 잠들 기색 없이 소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소우는 문득 태연하게 자장가나 부르고 앉아 있는 자기 꼴이 우스워 얼굴을 붉혔다.


‘내가 엄마도 아니고······’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던지라 그는 골패의 가슴을 토닥이며 그야말로 젖먹이를 재우는 엄마처럼 자장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우의 처지를 헤아리기라도 한 듯, 다행히 골패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래도 잠이 귀찮은 듯 몇 번 눈을 껌뻑거리며 잠을 쫓아내려 애썼지만 한 번 몸을 점령한 잠의 기운과 싸워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골패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소우는 숨죽여 뒤로 물러나 방문을 살짝 연 채로 집 밖으로 나섰다.


바림은 안뜰 한 편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있었다.


‘그 난리가 났는데도······’


소우는 서운한 마음에 말도 없이 바림의 옆에 앉았다. 바림은 그제야 소우의 기척을 눈치챈 듯 놀랐다.


“너 괜찮아?”


그 순간 서운한 마음은 먼지처럼 날아가고, 남은 것은 바림을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바림이 울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5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7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9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 작은 새의 꿈 23.11.27 7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