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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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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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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696

작성
23.12.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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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찾아라 (1)

DUMMY

“이거 참······”


시해는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니, 거의 움켜쥐다시피 했다. 그의 옆에는 초로의 교족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시해와 거래하는 교족 수렵단의 단장인 대무였다.


시해와 대무는 한 시선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서지다 못해 으깨진 우리. 우리와 그 주변 땅을 뒤덮은 피. 돌멩이처럼 사방에 흩어진 살점들과 내장, 그리고 뼛조각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유족 여자와 교족 남자가 누워 있었다. 여자는 하늘을 보고 있었고, 남자는 엎드려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둘의 처지는 아주 똑같았다.


목이며, 팔다리가 관절이란 관절은 부러지고 으깨져 사방으로 뒤틀려 있거나 아예 몸통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그나마 붙어 있는 팔과 다리는, 살점이 군데군데 뜯겨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박살 난 머리통에서는 붉은 피와 허연 뇌가 서로 엉겨 있었다. 파 먹힌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젊은 교족 남자가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는 대무와 함께 단조마을에 온 주구였다. 주구는 시신뿐 아니라, 우리가 부서진 모양 곳곳에 남은 범인의 흔적들을 세밀히 관찰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에 갇혀 있던 녀석은 간만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신이 나 먹잇감을 입에 물고 도리질을 하며 온 사방을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 소란을 눈치챈 시해의 종들이 우리가 있는 뒤 뜰로 얼른 달려왔지만, 우리는 이미 박살 난 채였고, 도견은 없었다.


시해의 명령으로 종들은 시신과 그 잔해에 손도 대지 않았지만, 시해가 뒤 뜰을 청소하라 명령했어도 쉽사리 손을 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종들은 차마 뒤 뜰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구역질을 해댔다.


시해는 잔뜩 찌푸린 얼굴을 반쯤 돌린 채로 죽은 유족 여자를 흘깃 흘깃 쳐다봤다. 얼굴 반편이 물어뜯기고 으깨진 탓에 시해의 종들은 그녀의 얼굴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하낙이라는 과년한 처녀였다. 그녀의 부친은 시해의 사환 중 하나였고, 그녀의 모친은 오늘까지도 시해의 집에서 잔치를 도왔다고 했다. 시해는 말없이 머릿속으로 하낙의 유가족에게 몇 푼을 쥐어 줘야 할지 계산했다.


대무는 우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나뒹구는 교족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피와 뇌가 후드득 떨어졌다.


대무는 그의 얼굴은 물론 이름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단조마을에서 색싯감을 찾기 위해 사냥길에 올랐다는 사실도.


‘동량의 부모를 볼 낯이 없군. 사냥을 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어쩌면 동량은 머리가 채 떨어지지 않은 저 젊은 유족 여인과 달밤에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무가 시해에게 말했다.


“손해가 막심합니다.”


시해는 하낙을 내려다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대무가 그를 추궁했다.


“경고하지 않았소? 피를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지키는 사람 하나도 없이 도견을 이리 방치한 게요?”


시해는 할 말이 없었다. 사환들의 말로는 도견을 단조마을로 싣고 오는 내내 물과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고기만 조금씩 떼어 줬다고 한다. 일부러 기진하게 하여 손쉽게 다룰 셈이었지만, 그 탓에 도견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에게 달려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에 갇힌 그 작은 것이 어떻게 우리 밖에 있는 사람의 피 맛을 봤다는 말인가? 그 의문을 해결한 것은 대무였다.


“일부러 피를 먹인 것이 분명하잖소?”


“누가 그런 짓을 일부러 한다는 거요?”


“그건 댁이 알아볼 일이고.”


시해와 대무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도 주구는 현장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대무는 들고 있는 도량의 머리를 주변을 살피던 주구에게 내밀었다. 주구는 그것을 받아 도량의 몸뚱아리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았다.


“댁이 도견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이 사달이 났으니 반드시 배상받아야겠소.”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부터 알아내야지요.”


시해가 받아쳤다.


“대무 단장의 말대로 누가 일부러 피를 먹이지 않는 이상에야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으니, 우선 그 범인부터 찾아야 순서가 맞지 않소?”


대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도 맞는 말이지.”


그때, 시신을 살피던 주구가 말했다.


“잡아먹히기 전에 죽은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시해의 눈빛이 바뀌었다. 시해의 입술은 여전히 침통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대무는 혀를 찼다.


갓 태어난 교족은 개와 다름이 없다. 그들은 어두운 회색빛 털을 온몸에 두르고 태어난다. 몸통에는 여느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가 붙어 있지만, 손가락, 발가락마다 검은 발톱이 갈고리처럼 달려 있고, 귀는 날카롭게 버쩍 솟아 있다.


갓난 교족 아이들은 사람처럼 울지 않고 개처럼 낑낑 짖는다. 납작 엎드려 벌벌 떨며 기는 아이들을 교족 부모들은 연신 핥으며 따뜻하게 보살핀다.


그렇게 약 칠 년이 지난 후에야 교족은 비로소 사람의 형상을 띠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개처럼 네발로 기던 몸이 벌떡 일어서고, 온몸의 털은 날마다 몇 줌씩 빠져 보름 만에 살갗이 드러난다.


그러나 교족의 몸에는 여전히 개의 피가 흐르고 있다. 버쩍 솟은 귀는 회색빛 털로 무성하다. 그 귀로 교족은 공중에서 새가 퍼덕이는 소리와 계곡에서 물고기가 뻐끔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벌름거리는 코는 흙 내음와 풀냄새로 자욱한 산속에서도 용케 어린 짐승의 누린내를 찾아낸다.


그들은 두 발로, 마치 네발로 뛰는 짐승처럼 바위와 계곡을 뛰어넘고 산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 늑대처럼 울부짖는다.


교족은 항상 무리 지어 다닌다. 어떤 사냥감이든 혼자 잡는 일이 없다. 충성과 책임은 교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덕이다. 무리는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다하고, 우두머리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무리의 안전을 지킨다.


무리와 함께라면 교족은 어디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떤 사냥감도 놓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도 기어코 익숙한 냄새를 찾아낸다. 마계 사방을 돌아다니며 그들은 반드시 사냥감을 손에 넣고야 만다. 그리고 사냥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옥산의 주인은 서천강이 땅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이래로 단 한 번도 바뀐 일이 없다. 전설에는 교족의 시조가 하늘에서 떨어져 이 옥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교족의 시조는 옥산에 사는 온갖 짐승 중 가장 지혜롭고 포악한 종류를 골라 차례로 짝을 맺었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교족이다.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라면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별들의 시체뿐이라는 세상 끝이라도 갈 교족이지만, 일평생에 교족이 옥산을 영영 떠나는 일은 없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절기마다 철새가 고향으로 돌아가듯, 교족의 넋은 언제나 옥산을 향해 있다.


옥산을 떠난 사이 죽음이라도 찾아오면, 교족은 하던 일을 모두 마치고 옥산으로 향한다. 만약, 옥산에 채 발을 들이지 못하고 죽게 되더라도, 그 교족은 하다못해 그 머리를 옥산으로 향하고 숨을 거둔다.


그런데 간혹,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옥산에서 아주 먼 곳을 떠도는 교족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교족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타 교족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외로움에 익숙하다.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혼자 먹고 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다.


외로움이야 그에게도 찾아오지만, 그것을 이기기 위해 혼자 산을 쏘다니며 울부짖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 목소리를 듣고 행여 사냥감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족들 중에서도 탁월한 사냥꾼이다. 그의 온 정신은 사냥감에 몰려 있다. 옥산의 교족들은 그를 사냥개라고 부른다. 사냥개가 부리는 사냥개인 것이다.


옥산의 사냥개들이 주로 사냥하는 것은 동족을 죽인 원수나 옥산의 우두머리에 반기를 든 반역자, 또는 도망친 사냥감이다.


주구는 옥산의 사냥개다. 대무가 자기 사환이 아님에도 주구를 무리에 끼워준 이유는, 옥산의 사냥개는 모든 교족을 대신해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족으로 교족은 사냥개에게 적절한 칭찬과 함께 좋은 먹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무의 협조 덕에 주구는 어려움 없이 유도로 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무는 주구에게 무엇을 쫓고 있는지 물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옥산의 불문율이다. 옥산의 사냥개가 쫓는 사냥감은 한편으로는, 교족의 수치이기도 하다. 사냥감 중에는 외간 남자와 바람나 제 남편을 죽이고 월담한 여자도 있고, 세 치 혀로 아둔한 부자를 속이고 재산을 가로챈 사기꾼도 있다.


재산 싸움에 휘말리거나 불륜의 씨앗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망친 사생아, 아버지의 유품을 장사꾼에게 비싸게 팔아먹은 배은망덕한 자식.


옥산의 사냥개는 교족의 수치와 허물을 소리소문없이 처리하는 청소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족이라 할지라도 사냥개에게 사냥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오히려 동족의 허물을 들추는 꼴이 되는 것이다.


주구는 유도에 도착하는 즉시로, 사냥감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무의 배려에 보답하고자 잠시 그의 곁에 머무르며 호위를 자처했다.

유족들이 동업자이자 손님인 교족들에게 해코지할 일이야 있겠냐마는, 간혹 그들이 들고 온 수괴의 부속물들을 노리는 간 큰 도둑들이 있었으므로 대무는 주구의 보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옥산의 사냥개는 그 어떤 교족보다 영리하고 날렵한 데다 완력도 뛰어나다. 곁에 두어 나쁠 일은 없다. 또한 어쩌면 주구의 보답은 그의 목표를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주구는 대무의 명령을 잠자코 수행했다. 인간 노예가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두말하지 않고 빠지면 죽는다는 서천강에 몸을 던져 기어코 잡아냈다.


도견이 물어 죽인 시체를 손수 살핀 것도 그가 자원한 일이었다. 눈썰미가 좋고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경험이 많은 주구는 어렵지 않게 시체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을 찾아냈다.


“잡아먹히기 전에 죽은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제 발로 도견을 찾아간 것이 아니란 말이야?”


대무의 물음에 시해가 코웃음을 쳤다.


“제 발로 찾아갔다 해도 웃긴 노릇이지요. 아니면, 이 두 사람이 도견에게 일부러 생고기를 먹이기라도 했겠습니까?”


시해는 점잖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이지만, 장사꾼은 장사꾼이다. 그가 상대와 상황을 가리며 가면을 바꿔 쓰듯 낯을 바꾼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대무는 처음부터 유족을 믿지 않았다. 교족과 유족은 언제나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손을 맞잡을 뿐이다.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그 증거라면 증거일 것이다. 유족은 항상 교족을 몸종처럼 부릴 기회만 엿본다. 적당한 꼬투리만 잡힌다면 유족은 언제든 교족에게 상당한 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교족이 유족과 언제나 악수하는 이유는, 유족의 그 탁월한 장사수완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죽과 뼈라도 팔 줄 아는 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대무는 시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구의 대답만 기다렸다. 주구가 하낙의 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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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림 24.01.31 4 0 13쪽
34 흉신이 지나간 자리 24.01.29 7 0 12쪽
33 인사 24.01.26 4 0 13쪽
32 꿈을 훔치는 일 24.01.24 5 0 13쪽
31 사람을 죽이는 일 24.01.22 5 0 12쪽
30 넌 절대로 안 죽어 24.01.19 5 0 11쪽
29 영안을 뜨게 하는 약 24.01.17 5 0 14쪽
28 장례 24.01.15 5 0 14쪽
27 부엉이의 꿈 (2) 24.01.12 5 0 12쪽
26 부엉이의 꿈 (1) 24.01.10 6 0 12쪽
25 어머니 덕이지 24.01.08 4 0 13쪽
24 탈출 시도 24.01.05 4 0 12쪽
23 꿈에서 본 남자 24.01.03 4 0 13쪽
22 불청객 24.01.01 4 0 14쪽
21 부추의 효능은? 23.12.29 4 0 13쪽
20 팔려온 처지 23.12.27 7 0 12쪽
19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집 23.12.25 5 0 12쪽
18 수완 좋은 장사꾼 23.12.22 5 0 12쪽
17 염국 입성 23.12.20 8 0 13쪽
16 재앙의 불 23.12.18 7 0 13쪽
15 충분한 시간 23.12.15 7 0 12쪽
14 희생양 23.12.13 6 0 13쪽
13 사람 잡는 귀신 23.12.11 8 0 13쪽
12 고향의 자장가 23.12.08 6 0 13쪽
11 바림 23.12.06 6 0 13쪽
10 범인을 찾아라 (2) 23.12.04 6 0 13쪽
» 범인을 찾아라 (1) 23.12.01 7 0 12쪽
8 떠나면 안 돼 23.11.29 6 0 12쪽
7 작은 새의 꿈 23.11.27 6 0 12쪽
6 달빛 아래에서 23.11.24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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