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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30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3 19:20
조회
1,130
추천
34
글자
12쪽

귀(鬼)

DUMMY

이룡각 최상층, 회주의 집무실.


아래층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그친 뒤로 대략 반각(半刻) 정도 시간이 흘렀다. 허나 신천후도, 귀영객도 섣불리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정적.


그것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집무실 내부를 가득 채운 그 고요함에, 신천후는 질식할 것 같았다.


공포.


그것은 애초에 무지와 더불어 무력감에서 비롯된 마음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에,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도 결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무엇이 다가올지만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 신천후는 공포에 잠식당해 있었다.


어떤 끔찍한 존재가··· 언제, 그리고 어찌 올지 알 수 없어서.


그 순간.


- 콰직!


“흐억···!”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


그 느닷없는 소음이 침묵을 깨트렸다.


신천후는 경악했다. 귀영객은 다시금 자세를 고쳤다.


그 소음과 함께 벌어진 눈앞의 광경은, 그 둘의 온몸을 경직시키기에 충분했다.


굽어진 칼날이 집무실 문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흉수는 기묘하게 생긴 대낫 한 자루를 무기로 쓴다고 했다. 두 명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드, 드드, 드드득···.


굳게 잠긴 문에서 위태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첩이 당겨지며 삐걱대고, 나무가 갈라지며 쩌적댄다.


인력(引力).


외부에서 가해지는 그 당겨내는 힘이, 침입자를 막는 최후의 방벽을 부서뜨리려 하고 있었다.


곧이어···.


빠각!


끝내 뽑혀 나간 경첩과 함께, 문짝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이미 해는 저물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동란 탓에, 미처 복도의 등불을 켜놓지 못했다.


그로 인해 신천후의 시야에선, 문턱 너머로 어둠이 장막처럼 깔린 듯 보였다.


그 어둠이··· 일렁였다.


““······!””


동시에, 사기(死氣)가 방 안으로 침범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만이 풍길 수 있는 사특한 기운.


도저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한 악의(惡意).


그 끔찍한 감각이, 서릿바람처럼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이제 신천후는 그만 넋을 놓아버릴 지경이었다. 자신이 한평생을 바쳐 빚어낸 모든 것이, 다만 헛되게 느껴졌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기운 앞에, 그의 마음에는 절망을 넘어 경외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귀영객은.


- 흐으.


언제나 그랬듯, 그저 숨을 내쉬었다.


대도를 쥔 두 손에 양껏 불거진 핏줄만이, 그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때.


휙, 하고.


어둠의 장막 너머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힘없이 떨어져 땅바닥을 구른 그것은,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잘려 나간 등본건의 머리.


그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죽기 직전 얼마나 두려움에 사무쳤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더불어.


- 기기긱···.


날붙이가 나무 바닥을 긁으며 내는 소리.


고막을 잡아 찢는 것처럼 불쾌했다.


아래로 떨군 낫을 바닥에 끌며··· 어둠 속에서 비로소 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푸른 장포와 얼굴을 가린 하얀 멱리. 어둑한 실내에서 바람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다가오는 그 광경은 마치, 죽음 그 자체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직후.


- 콰앙!


“뭣······!”


폭죽이 터진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귀영객의 대도와 강우의 겸(鎌)이 충돌했다.


강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귀영객은 곧장 대도를 앞세워 돌진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거진 맹수 한 마리가 사냥감을 물어뜯고자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허나, 가뿐히 막힌다.


서로의 힘은 호각. 양측을 밀어내고자 가하는 완력에, 맞부딪친 두 명의 무기는 덜덜 떨리며 금속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흐으···.”


나지막한 한숨을 쉬는 귀영객과, 그런 귀영객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강우.


그 둘을 바라본 신천후는, 도저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먼저 움직였다···? 그 귀영객이?’


낭인 귀영객.


그의 신원은 불분명했다. 절대 벗지 않는 철 가면 아래 얼굴뿐 아니라, 나이와 출신을 비롯한 그 어떤 정보 하나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주로 어떤 전법을 취하느냐였다.


상대가 먼저 공격하도록 유도한 뒤, 빈틈을 노려 일격에 약점을 친다.


일부러 공세를 내어주어 상대방의 특징을 살핀다. 더불어 순순히 선공을 넘겨줌에 따라, 상대를 다소 방심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언뜻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전에선 이보다 말도 안 되는 짓이 또 없었다.


목숨이 오가는 전투에서 섣불리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는 일은, 제 목을 내어주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귀영객은 ‘그깟 공세’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줘도 도로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는 대도의 넓적한 배면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받아넘기는 데 능숙했다.


그런 귀영객이 선공을 가져갔단 것은, 즉···.


‘아예 기회 자체를 넘겨줘선 안 된단 뜻인가···!’


신천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만찮은 상대임은 진즉 알고 있었다.


저 아래 거리에서 폭동을 벌이고 있는 유민들이라면 모를까. 소문의 흉수를 얕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강대하고, 또 끔찍한 존재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남궁이 무슨 징벌을 내릴 것인가. 그에 전전긍긍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태를 완벽히 오판하고 있었음을··· 신천후는 뒤늦게 후회했다.


“흠!”


짧게 끊어지는 기합성. 귀영객은 순간 대도의 무게를 이용하여, 한 차례 강우를 밀쳐낸다. 간신히 깨지는 교착 상태.


하지만, 그것은 바라던 바였다.


왼쪽으로 들어오는 회전 베기.


정면으로 짓쳐들어오는 찌르기.


그리고 도끼처럼 내리찍는 종 베기까지.


강우는 읽어낼 수 있었다. 떨어지는 즉시 허공에 그어지는 세 개의 궤적.


귀영객이 곧 어찌 공격할지를 알려주는 암녹색 궤적이··· 시야에 선명히 잡힌다.


그 궤적의 틈새로, 붉은빛이 파고들었다.


무림인을 죽일 때마다 강우의 시야는 더욱 많은 것을 담아내었다. 상대의 검로(劍路)는 물론이오, 그 검로를 어찌 파훼할지.


그 빈틈을 노리면 상대는 어떻게 대처할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


살육을 거듭할수록 그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자신은 그저, 그 붉은 궤적에 몸을 맡기면 될 뿐.


회전 베기에 앞서 낫의 자루로 명치를 찍어낸다.


들어오는 찌르기는 슬쩍 손을 돌려 칼날을 내리찍어 저지한다.


끝에, 본디 곡검이었던 이 칼날의 바깥 면으로 가슴팍을 베어낸다.


수는 완벽히 짜였고, 망설일 것은 없었다. 그리고,


캉! 카각, 칵!


“흠···!”

“···?”


세 차례의 충돌.


힘 있는 숨소리를 내며, 귀영객은 충격에 몇 발짝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강우가 느낀 것은 의아함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막힐 일이 없었을 공격이, 부딪쳤다.


무언가 이상했다. 의념을 꿰뚫어 보는 이 시야에 거짓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귀영객은 지금, 예측한 검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니, 그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동작.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다기보단, 서로의 검로가 겹친 듯한 모양새.


생사를 가르는 싸움을 한다기보단, 사전에 합을 맞추고 벌이는 대련에 가까운 형국.


그리고···.


‘저 호승심···.’


강우는 생각했다. 저자는 무엇 때문에 내게 이토록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는가.


단순히 ‘강자와의 사투’를 고대하는 것을 넘어,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자신과 엇비슷하게, 암녹색으로 타오르는 그의 마음속 불꽃은···.


“아.”


그 순간, 깨닫는다.


“흐, 흐흐.”


동시에, 그 가면 너머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알아챘음을 상대도 눈치챈 것 같았다. 탄성과 웃음, 그것은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서로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자미성(紫微星).


떠올랐다. 천살성과 대극 되는 존재.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나···.


‘그래.’


오직 그것만이 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끝없는 원한에 문드러지는 자신처럼, 그 또한 주체할 수 없는 투쟁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것이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증오에서 비롯되었는가.


아니면 상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경쟁심에서 비롯되었는가.


강우와 귀영객의 차이는 단지 그뿐이었다.


뜻을 읽고, 행동을 예측한다. 상대의 궤적을 보고, 자신의 궤적을 그린다. 마찬가지였다.


어찌하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지.


어찌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는지.


오로지 그것만을 궁구할 뿐인, 싸움에 미친 귀신(鬼神)들.


그 사실을 깨닫고서··· 멱리와 가면 너머의 두 시선이 서로를 마주한 순간.


다시금, 쾅! 하고.


양측 모두 진격한다. 겸과 대도가 부딪친다.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금속음.


더 이상의 탐색은 의미가 없었다.


충돌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리치고, 올려 베고, 왼쪽과 오른쪽 가리지 않고, 서로의 칼날이 단지 상대방의 것에 끊임없이 막힌다.


그 폭발적인 쟁연(錚然)이, 이룡각을 무너뜨릴 기세로 터져 나온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다. 참격이 참격에 베이고, 충격이 충격에 뚫린다.


머리를 노리고 찍어내는 낫을 아래에서 위로 대도가 튕겨낸다.


옆구리를 후려치려는 도신을 굽이진 칼날이 낚아챈다.


목과 허벅지.


종아리와 가슴.


팔꿈치와 무릎.


두 날붙이는 서로의 근방에서 계속해서 가로막혔다. 바닥과 천장과 벽에 수없이 상흔을 새기며, 상대의 기세를 빼앗고자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 두개골을 열고 뇌를 핥아먹듯.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가슴팍을 째고 심장을 쥐어뜯듯.


상대방의 의식 속에서, 미래에서, 거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장소에서··· 강우와 귀영객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 난전 속에서, 강우는 알 수 있었다.


무림을 향한 자신의 증오가 천붕의 원한에서 비롯되었듯, 귀영객의 그 투쟁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 무(武)의 극에 닿고 싶다.


간절한 소망.


-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법한, 어린아이 같은 바람.


- 이 자랑스러운 이름과 이 차가운 얼굴을 내려준 자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그 소망을 쥐여준 이를 향한 동경과···.


- 내게 살아갈 방도를 알려준 자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그 바람을 일으킨 이를 향한 충성.


암시라도 걸린 것일까. 그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에게 친절했고 또 자상했던 사람이었음은 분명했으나, 그자의 얼굴만은 귀영객 자신 또한 기억나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사실은···.


‘역겹구나.’


애당초 중요하지도 않았다.


강우의 뇌리에 공헌명이 떠올랐다.


이어서 양비혁이, 연정호가, 연도근이, 그리고 등본건이 떠올랐다.


한평생 자기 뜻대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주제에, 정작 자기한테 닥쳐온 칼날 앞에선 한없이 추레해졌던 이들.


오직 자신의 뜻만을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이 강요받을 땐 한사코 거부하던 자들.


- 이 나에게, 무림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자들.


저 거리에 나온 수많은 이들의 원한을 산 자들.


그렇기에··· 단지 죽어 마땅한 자들.


그때, 강우는 비로소 입을 열었고.


“너도··· 결국 똑같다.”


그 순간, 귀영객의 왼쪽 어깨가 잘려 나갔다.


작가의말

鬼: 귀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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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5 물에비친달
    작성일
    24.06.14 14:55
    No. 1

    귀영객도 마피아가 자기한테 잘해줬다고 마피아 된거나 마찬가지지
    누구보다 총을 잘쏴서 사람을 잘죽이고 싶어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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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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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난(難) +1 24.05.22 1,174 40 11쪽
16 랑(浪) 24.05.21 1,230 34 11쪽
15 기(起) +2 24.05.20 1,301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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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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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惺) +2 24.05.13 1,895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4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7 83 17쪽
5 개벽(開闢) +15 24.05.10 2,928 101 17쪽
4 천붕(天崩), 그리고···. +11 24.05.09 2,835 91 13쪽
3 하루 전. +12 24.05.08 2,831 88 10쪽
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1 칠 년, 그리고 사흘 전. +10 24.05.08 4,664 1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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