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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25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2 19:20
조회
1,173
추천
40
글자
11쪽

난(難)

DUMMY

혼돈이 도시 전역에 창궐하고 있었다.


이 혼돈은, 본래라면 일어나선 아니 되었다. 적사회는 작정하고 흉수의 무리를 짓밟고자 했다.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힘을 똑똑히 알리겠노라고, 그 누구도 다시는 우릴 우습게 볼 수 없으리라 결심하고 벌인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한들 수의 폭력을 무시할 순 없음이오, 따르는 것은 단지 한 줌의 유민 떼에 불과하니.


결과가 눈에 선했다. 그리 예측했다. 합비를 어지럽히는 움직임은 그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내일이 돌아오리라.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으아악! 이쪽으로 온다!”

“도망쳐! 모두 흩어지라고!”

“이 멍청한 놈! 가면 죽는다! 대형을 유지해야···!”


처절한 고함.


살고자 악을 쓰는 외침이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칼을 들고, 위협하고, 더러는 휘두르며 사람을 해하던 이들이··· 지금은 단지 혼란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창연이 이끄는 유민 떼거리는, 독아단 한 개 조를 집어삼킨 이래로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다.


광기 어린 기세로 나아가는 인간의 파도.


그 규모가 점차 불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안 될 거라고, 부질없는 저항이라고 여겨 몸을 숨겼던 이들이, 그치지 않는 흐름을 보고 차츰 합류하고 있었기에.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이 벌어지자, 오래전 잃었던 희망이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기에.


수십에 불과했던 걸음이 수백으로 늘어난다. 인간의 머리가 거리를 빼곡하게 채워간다.


풀리지 않던 원한.


담아두고 있던 증오.


복수를 향한 갈망.


그리고··· 변혁에 대한 기대까지.


다양한 감정이 그들의 낯빛에 떠오르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행색과 신분, 그리고 사연. 그럼에도 그 모두가 지금 같은 뜻을 품고 있었다.


- 끌어내리자.


사파라는 이름 아래 패악질을 부린 무리를 끌어내리자.


협객이라는 이름 아래 제멋대로 날뛴 놈들을 끌어내리자.


무림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다 여겨졌던 것들을 끌어내리자.


오늘 밤이 지나면, 이 합비라는 땅은 영원히 바뀌리라.


“-이럴 순 없는 것이다!!”


그 뜻을 향해 분개하는 자가 있었다.


이룡각 최상층. 신천후는 이 일련의 사태에 분개하고 있었다.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동에,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마구 고함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다. 이따위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소리친다. 발을 구르며 몸부림친다.


헛짓거리임은 알고 있다. 기운만 빠질 뿐 아니라,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면이 서질 않는 추태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왜,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냔 말이냐?”


불합리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제대로 된 별호는커녕 칼 한 번 휘둘러 본 적 없는 천것들이다. 도전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수치스럽기 그지없을 터인데.


그따위 것들이, 이리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나의 목을 노리고.


나의 사람들을 짓밟으며.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남궁의 다리 사이를 향해 제 발로 기어들어 가는 편이 나았다. 차라리 이 사태에 관한 것 일체를 맡기고, 얌전히 꿇어앉은 채 책임에 대한 벌을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아니면, 차라리.


차라리 그 흉수의 손에 모두가 죽었다면. 온 힘을 끌어모아 덤볐으나, 괴소문의 장본인답게 압도적인 힘으로 그 모두를 꺾었다면.


그래서, 그를 중심으로 저 폭동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武)의 세계란 그런 법이니까. 가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고수가 나타나, 오랫동안 지켜져 온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바꾸곤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저 소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은··· 그가 아니잖나.


부하들이 전한 소식이 있었다. 저 패거리를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는 자는, 웬 애꾸눈 계집년에 불과하다고.


겨우 그딴 자가, 흉수 본인도 아니고 단지 그놈한테 빌붙은 년이, 더불어 그년의 몇 자 혀 놀림에 좋다고 따라붙는 얼간이들이.


“이 내게··· 나의 적사회에게, 도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나서 위화감을 깨달았다. ‘도전’이라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침략이었다.


유린이었으며, 동시에 위기였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이따위 놈들’에게 위기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신천후는 거진 포효하듯 외친다.


“귀영객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야!”


“여기다.”


그때.


곧장 돌아오는 대답과 함께, 열린 창문을 통해 웬 검은 괴인이 집무실로 들어온다.


나무 바닥에 미끄러지듯 착지한 귀영객. 그는 어떤 명령이라도 받들겠다는 듯이 신천후 앞에 자세를 갖췄다.


“······.”


갑작스럽고도 황당한 등장, 신천후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허나 그 침묵도 얼마 가지 않는다. 그는 곧장 끓어오르는 역정을 토해냈다.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이 동란(動亂)을 진압해야 할 것 아니야!”


“안 된다.”


이번에도 곧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귀영객은 고개를 들고서 제 손가락으로 신천후를 겨눈다.


“죽는다.”


느닷없이 삿대질을 받은 신천후. 이 순간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뜩이나 미천한 것들이 반기를 들어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이젠 빌어먹을 낭인 나부랭이까지 나를 무시해?


절정 고수고 나발이고, 이젠 상관없었다. 사달을 내야 이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신천후는 곧장 품 안의 소도를 뽑아 들어, 저 건방진 손을 베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아아악!!”


비명이 들린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끔찍하다.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온몸이 경직되었을 정도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온갖 끔찍한 꼴은 다 보았다고 자부한다. 그중 적잖은 경우는 이 손으로 직접 벌인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한낱 그 비명 소리에 몸이 굳는다.


그 소리가, 아래층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기에.


경악한다. 그 유민 놈들이 벌써 이곳에 다다른 건가. 간신히 다리를 재촉해 창밖의 거리를 살핀다.


하지만··· 이상하다.


거리의 모습은 변함없다. 여전히 곳곳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다. 기세가 꽤 위협적이지만··· 이곳까지 닿기엔 아직 멀었다.


헌데, 어째서인가.


비명과 금속음이 뒤섞이는 소란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자아내는, 지독한 소음이.


어째서···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 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단 말인가?


“······!”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른다. 피가 식는 기분을 느낀다.


제대로 자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한껏 부글대던 분노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 자리를 대신해 차오르는 것은, 공포.


깨닫는다. 어째서 저 폭동을, 흉수가 이끌지 아니한지를.


어째서 이 동란에, 흉수의 모습을 본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는지를.


- 이미 이룡각에 당도했기 때문에.


단신으로, 무사들을 뚫고서, 먼저 쳐들어왔기 때문에.


귀영객의 그 말은 ‘내가 이곳에 있지 않으면 당신은 죽는다’ 하는, 경고의 뜻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미친 듯이 몸이 후들거린다. 줄줄 흐르는 땀이 손바닥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그 와중에도 비명은 그치지 않는다.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하고 두려움에 압도당한 신천후를 두고서··· 귀영객은 그저, 말없이 등에 멘 대도를 풀어 쥐었다.


양손 가득 감기는 자루에 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대도를, 수년 동안 함께 이 강호를 헤쳐 나간··· 둘도 없는 벗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 흐으.


숨을 내쉰다.


전투 태세를 갖춘 귀영객은, 신천후를 뒤에 두고서 문가를 향해 선다.


더없이 훌륭한 싸움을 고대하며.


***


이룡각 일 층.


“으, 아아···.”


난자당한 시체들이 널브러진 그곳에, 아직 한 사내가 살아있었다.


“으아아악!”


거진 절규나 다름없는 기합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 비도를 내던진다.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내공. 손끝, 신체 말단부에 점으로 압축되어··· 비수를 촉매 삼아 작렬한다.


그 모습은 마치, 벼락이 뛰쳐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쾅 - 카칵!


회전조차 없이 일직선으로 발사된 암기가··· 거친 금속음과 함께 튕겨 나간다.


날아가는 비도는 소리보다도 빠르다. 정적 속에서 허공을 가르고, 찢겨나간 공기가 뒤늦게 단말마를 내뱉는다.


“아, 아···.”


헌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등본건은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비도 실력만큼은 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다고. 독아단의 수장. 그 직위에 걸맞게, 자신의 비도는 무조건 적에게 독니를 박아넣는다고.


설령 소림의 금강불괴라 할지라도, 지금 이 거리에선 뚫어낼 자신이 있었다. 음속을 초월한 속도를 누가 막아낼 수 있으랴.


헌데···.


“넌, 도대체 누구냐···?”


뒷걸음질 치던 다리가 저도 모르게 꼬인다. 털썩, 등본건은 꼴사납게 주저앉아 다가오는 자를 바라보았다.


짙푸른 장포.


얼굴을 가린 멱리.


그리고··· 방금 가벼이 휘둘러 자신의 비도를 튕겨낸, 대낫 한 자루.


분명히 포착했다. 연습과 실전으로 사람의 한계까지 끌어올린 안력(眼力)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저 흉수의 손이, 자신의 비도가 날아가기도 전에 움직였음을.


예측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오롯이 투척술을 연마하는데 투자했으니. 거리와 습도, 시간, 더불어 상대의 동작과 시선까지. 그 모든 것을 계산에 넣었다. 착오 따윈 존재할 리 없었다.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도망쳐 온 단원들을 수습하여, 이곳 본진에서 맞서고자 했다. 허나 당도한 것은 폭도로 변한 유민 떼거리가 아니오, 오직 그들이 귀인이라 섬기는 자 하나뿐이었으니.


저놈만 잡으면 된다. 저놈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 생각으로 벌인 싸움이었다. 단원들을 다독이며, 그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다.


그런데,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나.


“넌, 도대체 뭐냔 말이야···!”


내공을 끌어모아 직선으로 날린다. 기둥과 천장 따위에 도탄 시켜 배후와 측면을 노린다.


변칙적인 접근. 온갖 각도에서 쳐들어오는 비도의 세례. 그 만천화우(滿天花雨)에 버금간다고 자부할 만한 공격을··· 눈앞의 흉수는 모조리 튕겨냈다.


이곳에 있던 단원 중 반절이, 튕겨 나간 비도에 맞아 절명했을 정도로.


불합리.


압도적인 폭력 앞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불합리.


“도대체 네놈은!”


그 불합리가, 등본건을 절규하도록 만들었다.


“정체가 뭐야!”


- 피식.


그 앞에 강우가 웃는다.


멱리가 가리고 있음에도, 슬슬 날이 저물어 완연한 어둠이 깔려 들고 있음에도··· 등본건은 그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웃음.


양잿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하게 표백된 그 낯가죽에··· 웃음이 떠올랐음을.


더없이 지독하고.


더없이 광기 어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웃음과 함께.


강우는 다만, 겸(鎌)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등본건은 깨닫는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칼날을 보며.


끝내 잘려 나간 머리가 바닥에 굴러, 어지러이 회전하는 시야 속에서.


- 죽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그것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흉수의 정체임을.


작가의말

難: 어려울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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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難) +1 24.05.22 1,174 40 11쪽
16 랑(浪) 24.05.21 1,230 3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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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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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惺) +2 24.05.13 1,894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4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7 8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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