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23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1 19:20
조회
1,229
추천
34
글자
11쪽

랑(浪)

DUMMY

저 멀리서 들려온 비명에, 짙게 깔린 정적이 깨진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었다. 이 거리에서 누군가 죽어가는 일은 흔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다르다. 이번만은 확실히.


그 비명의 주인이, 다르다.


언제나 들었던 것이 아니다. 저 비명은···.


구걸로 겨우 모은 돈을 깡그리 빼앗기던 거지의 것이 아니다.


자릿세를 내지 못해 죽도록 얻어터졌던 행상의 것이 아니다.


난동 중에 부서지는 집기에 악을 쓰던 사환의 것이 아니다.


약자.


이름만 다를 뿐··· 단지 그리 묶이던 자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바닥을 닦던 이연석이 고개를 들었다.

붓을 놀리던 창연이 책을 덮는다.

창밖을 보던 강우가 슴베를 쥐었다.


위화감.


더불어··· 비명에 실린 그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셋 모두가 깨닫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서로 시선을 맞춘다. 동시에 벌어진 그 일에, 알 수 있었다.


- 비로소 오늘이구나.


소리 없는 말이 그 세 명 사이로 재빠르게 뛰어다닌다. 이제 무엇을 해야 마땅한가.


허나,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금부터··· 무슨 일을 일으킬지.


의논은 필요 없었다. 이 판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맡을지. 무엇을 어찌 행할지. 모든 것은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지, 그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


···문득, 강우는 포착한다. 자신의 시선을 받은 창연이, 무어라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의념을 읽어내는 이 시야가 아니고서야 절대 눈치챌 수 없는, 사실 신호라 말하기도 민망한 눈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 수 있었다.


- 믿어 달라고.


내가 당신을 믿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믿어 달라고.


그녀는 하나 남은 눈으로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 전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희미한 걱정에서 비롯된 자그마한 망설임조차, 이 순간 완전히 사라진다.


즉시, 강우는 훌쩍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이번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먼저 가야 할 목적지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리의 중심에 선 세 명의 주역. 그들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방금, 귀인께서 홀로 급하게 자리를 뜨지 않았나.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 건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대당에 있던 누군가 그리 물었다. 그 순간.


“도망, 도망쳐야 합니다! 지금 당장!”


격한 헐떡거림과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초태, 산을 타던 경험을 살려 정찰을 맡은 그는 더없이 다급하게 외쳤다.


“적사회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독아단 놈들, 지금 이쪽으로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다고요!”


독아단.


안휘 제일의 사파, 그 아래에 있는 무력 집단. 이곳 청월루에 모인 이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자 하나 없었으며, 그 악명에 무지한 자 또한 아무도 없었다.


불안. 그것이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간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서도, 창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침착할 수 있음에 그녀 자신조차 놀랐을 정도로.


단지 마음을 가라앉힌다.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이어낸다. 침착하게, 상대의 수를 읽어낸다.


- 남궁이 움직이기 전에 전력을 끌어모아 급습한다.


암만 수가 많다고 한들, 결국 목숨 걸고 싸워 본 적 한번 없는 유민 떼에 불과하다.


피를 보면, 당황하겠지. 겁에 질릴 것이다. 그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힘을 모을 기회 한번 주지 않고 압도적으로 깔아뭉갠다.


단지 찰나의 시간, 짧게 머리를 굴림으로써 상대의 계략을 간파한다. 적사회가 무엇을 노리고자 하는지, 그 꿍꿍이속을 훤히 들여다본다. 그러자,


- 피식.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에. 몇몇 시선이 창연을 향한다. 놀란다. 경악한다. 어찌 사람이 저리도 지독하게,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유쾌했다.


그날, 양비혁의 죽음을 목격하고··· 귀인의 진면목을 처음 마주했을 적. 스스로의 모습 또한 저리 보였을까 싶어서.


“두렵다면, 도망쳐라.”


두 마디.


귀인께선 어디 있느냐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한창 일어나던 소란에··· 그 나지막한 두 마디가 찬물을 끼얹었다.


수십의 눈동자가 창연에게로 쏠린다. 지금 입을 연 자는, 우리보다 앞서 그 귀인을 따르던 선각자(先覺者)이니.


“말리지 않는다. 비난하지도 않겠다.”


두렵다면, 도망쳐라.


“허나··· 너희는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냐.”


묻는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다 말하던 것이, 너희 아니었느냐.”


거듭하여.


“그저 엎드리고, 빼앗기고, 짓밟히기 위해··· 너희의 삶이 존재하더냐.”


파묻는다.


“더는 그리 살지 않겠다는 뜻에, 귀인께서 너희에게 기적을 내리지 않았더냐.”


공포를.


“너희의 가슴 속에 아직 심장이 뛰지 않더냐.”


일깨운다.


“너희의 머리가, 아직 울분을 기억하지 않느냔 말이야!”


분노를.


“일어서라.”


그 말에 광철이 일어난다.


“나아가라.”


그 말에 홍선이 나선다.


“맞서 싸워라!”


그 말에.


안대를 찬 애꾸 의원의 그 말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길이 인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어.


그 말을, 모두와 함께 되뇌면서.


“···그러니,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살아보겠나.”


가벼이 거든 이연석의 그 말에, 사람들이 일어난다.


“함께 하겠습니다.”

“어차피 맞아 뒈질 거면, 그놈들 대가리에 한 방 먹이고 가련다!”

“독니인지 지랄인지, 그 잘난 아구창 쥐어패도 성하나 보자!”


억눌렸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원한 서린 외침이 허공을 울리고 있었다.


들고 일어난다. 연장을, 무기로 쓸만한 것들을 각자 한 손에 챙겨 든다. 이대로 살 순 없다고.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각오하며.


원한이라는 장작에, 마침내 불을 지핀다.


순식간에 피어오른 증오의 겁화 앞에, 창연이 선다.


- 자아.


“죽이러 가자!”


그녀를 선두로, 사람의 무리가 청월루를 나선다. 이 거리를 가득 채울 듯 쏟아져 나온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은 불타는 것 같았다. 시커먼 창공 아래, 다만 태양이 걸린 지평선만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황혼의 끝자락에, 독아단이 있었다.


길거리 맞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노을을 등지고 다가오니, 검게 뒤덮인 듯한 행색이 더없이 흉흉해 보였다.


폭력에 취하여 무기를 휘두른다. 사람을 패고 또 사람을 벤다.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땅에서 누가 우릴 막겠느냐.


그러다, 다가오는 패거리를 발견한다.


남루하고 꾀죄죄한 인간들의 무리. 더불어 그를 맨 앞에서 이끄는 애꾸눈 계집을 발견한다.


“저기다! 흉수랑 붙어먹은 그년이다!”

“잡아라! 저 따까리들을 죽이고, 남은 눈알 하나도 뽑아버리자!”


소리를 지른다. 조롱하고, 모욕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쪽을 향해 진격한다.


무슨 자신감으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나를 안다고 생각하겠지.”


무예에 무지하고, 싸움에 무지하고, 투쟁에 무지한···.


그저 헛된 시비와 무의미한 푸념만을 거듭할 뿐인, 의원 일 한다고 귀한 핏줄조차 내팽개친 얼간이라고.


“틀려.”


일촉즉발.


다섯 척(尺)도 되지 않는 거리에, 선두에 선 단원이 거치도를 내려치려는 순간.


빠악!


확, 앞서 파고들어 박치기를 날린다.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휘청인다.


예상하지 못한 위력에 당황한다.


양쪽 모두 동요가 일었다.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며, 으깨진 코를 감싸 쥐며··· 단원은 생각한다.


어떻게.


손에 굳은살 한 점 배기지 않고, 눈깔조차 한 짝 없는 계집년이··· 도대체 어떻게.


‘사술인가, 아니면··· 정녕 요괴가 실존하는 건가?’


“전혀.”


소리 없는 생각을 읽어낸 듯한 그 말에··· 동요한다.


“그런 게 있었다면, 세상이 이토록 혼란했을까.”


그 말과 함께, 창연은 슬쩍 암기를 뽑아 든다.


날 빠진 단검. 연씨세가의 토벌대에게서 빼앗은, 그 무딘 칼을 악쥔다.


그제야 허둥지둥 태세를 정비한다. 반격을 시도한다. 제기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모가 있었나.


이따위 계집년에게 당할 만큼, 독아단이라는 이름이 우스울 리 없지 않은가!


“개소리 집어치우고 죽어라!”


그러나.


푹, 가슴에.


푹, 그리고 배에.


칼날을 쑤셔 박을 때마다, 진기가 박힌 심장이 울었다.


온몸의 핏줄을 타고··· 정체 모를 짜릿함이 흘러갔다. 창연은 생각했다.


아, 그래.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게, 내가 갈망했던 것의 실체구나.


날을 비틀어 빼내자, 딸려 나오는 살점과 함께 핏물이 쏟아진다. 선두에 섰던 그 단원은 지혈할 시도조차 못 하고 제자리에 쓰러진다.


쥐고 있던 거치도가, 떨어진다.


독아단의 상징이자, 적사회의 힘을 증명하던 그것이··· 힘없이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군다.


챙그랑.


그 별것 아닌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그 별것 아닌 소리에, 등 뒤의 기세가 살아난다.


그 소리에, 깨닫는다.


- 할 수 있다고.


나도, 우리도.


모두가, 저렇게 할 수 있다고.


희망이 피어오른다.


의지가 타오른다.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제, 더는.


“자아.”


그러니, 다시금.


“죽여라!”


누가 외쳤는지 모를 그 소리와 더불어, 사람들이 진격한다.


방망이와, 단검과, 부지깽이 따위를 휘두르며 진격한다. 빼앗은 기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두 패거리가 충돌한다.


사람이 사람을 후려치고, 쥐어패고, 뒤엉키며, 짓밟는다.


더러는 베이고, 더러는 쓰러져도,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수와 더 많은 폭력으로 찍어누른다.


무기를 빼앗는다. 내뻗을 여유조차 주지 않을 만큼, 밀어붙인다. 그 시점부터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지고 만다.


뱀의 독니가 아무리 날카롭다고 한들··· 그들 모두를 물어낼 순 없었다.


그러다 한 명.


최후방에 있던 누군가가, 등을 돌리고 달아난다. 도주한다. 걸음을 재촉하며, 단지 이곳에서 빠져나가고자 발악한다.


한 명이 시작하자 다른 한 명이,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물러난다. 공포가 전염된다. 포기가 번져가고 있었다.


사파라는 이름 아래··· 화려한 수식어와 위협적인 태도로 치장한들, 그들 자신도 결국 하등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은 변치 않아서.


대항할 수 없는 폭력 앞에 무릎 꿇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해서.


그 실체를 까발리자, 기세가 더욱 끓어오른다.


저 하잘것없는 놈들한테 지금껏 당하고 살았다니 원통하다. 자기들이 불리하면 저렇게 꽁무니나 내뺄 거면서, 지금껏 뭘 믿고 설쳐댄 걸까.


굴종의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약탈할 밤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격랑(激浪)이, 거리를 질주한다. 저항하는 자, 도망치는 자, 투항하는 자, 그 모두를 가리지 않고 집어삼킨다.


제 자신조차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그 흐름이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단 하나.


이룡각.


수많은 피와 눈물을 마시며, 용이 되고자 했던 이무기의 탑이었다.


작가의말

浪: 물결 랑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귀(鬼) +1 24.05.23 1,130 34 12쪽
17 난(難) +1 24.05.22 1,173 40 11쪽
» 랑(浪) 24.05.21 1,230 34 11쪽
15 기(起) +2 24.05.20 1,301 39 12쪽
14 집(集) +3 24.05.19 1,377 56 11쪽
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12 경(憬) 24.05.17 1,473 54 13쪽
11 강(降) 24.05.16 1,521 47 11쪽
10 모(侮) +3 24.05.15 1,628 55 13쪽
9 뢰(蕾) +2 24.05.14 1,761 57 12쪽
8 성(惺) +2 24.05.13 1,894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4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7 83 17쪽
5 개벽(開闢) +15 24.05.10 2,928 101 17쪽
4 천붕(天崩), 그리고···. +11 24.05.09 2,835 91 13쪽
3 하루 전. +12 24.05.08 2,831 88 10쪽
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1 칠 년, 그리고 사흘 전. +10 24.05.08 4,664 113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