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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39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6 21:50
조회
1,521
추천
47
글자
11쪽

강(降)

DUMMY

콰앙!


시전 바닥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청월루의 창문을 부수고 시체 하나가 거리로 튀어나왔다.


더불어,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금속음.


그간 건물 속에 억눌려있던 쟁연(錚然)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로지른다. 곧 들이닥칠 무언가를 예고하는 것처럼.


이윽고.


“크억!”


힘겨운 고함을 앞세워, 두 인영이 거리를 향해 뛰쳐나왔다.


한 명은 자홍색 무복 위에 삼베옷을 걸쳐 입었다. 장년 남짓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두 손으로 자루를 악 쥔 채 연신 검격을 받아넘기기 분주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


짙은 푸른색, 그러나 기이하게도 붉은 기운이 감도는 장포 차림의 그 청년은, 소리 없이 웃으며 남자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거진 한데 뒤엉키다시피 한 그 둘을 중심으로, 검신(劍身)이 서로를 씹어 들려는 격렬한 금속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럴 수가.’


짓쳐 드는 칼날을 간신히 받아내며, 연도근은 생각했다.


도대체 어째서 이리된 것인가.


- 연씨세가의 토벌대는, 몰살당했다.


싸움이 시작되고서 겨우 일각(一刻)조차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싸움’이라는 표현은 부적합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무어라 설명하면 좋은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바닥을 갈라 움직임을 막고, 두 다리와 한 손을 삼족(三足) 삼아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며, 한 명 한 명을 차례대로. 자루조차 없어 슴베를 쥐어야 하는 곡검을 역수로 잡고서···.


한 마리의 야수처럼, 전원을 찢어 죽였다.


그 섬멸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자신뿐.


“······!”


쐐액!


찰나 간의 빈틈조차 순식간에 공략당한다. 잠시 거리를 벌렸다 싶은 순간, 눈앞의 흉수에게서 곧장 섬광 한 줄기가 벼락처럼 작렬해온다.


“하압!”


카가각!


무엇인지 파악할 틈도 없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몸에 새겨넣은 초식이 연도근의 목숨을 구했다.


반사적으로 내지른 횡 베기. 맞부딪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명처럼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그것은, 방금 거리로 내던져진 시체가 쥐고 있던 검 한 자루였다.


작금 보았던 섬광은, 칼몸에 반사된 햇빛이었을 테지.


바로 저것이다.


탈도술(奪刀術), 적의 무기를 빼앗는 다루는 기술.


기량 차가 극에 달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쓸 수 없는 그 기술 탓에··· 청월루 내부에서 벌어진 난전, 그 안에 있던 토벌대의 무사 중 반절 가량이 자신의 검에 꿰이는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


- 어딜 보는 거지?


마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


수십 년 동안 강호를 헤쳐오며 쌓아온 감, 그것이 경고한다. 생존을 위해 당장 움직이라고.


직후.


시야 가득, 강우가 들어왔다.


“이런···!”


휘어진 칼날은 턱을 노린다. 자루를 가슴께로 당겨 가까스로 막아낸다. 카칵!


다시금 비껴간 죽음이, 그를 집요하게 쫓아왔다.


목을 찌른다.


가슴을 벤다.


어깨를 긋는다.


허벅지를, 복부를, 안구를, 옆구리를, 무릎을, 종아리를.


숨 쉴 틈도 주지 않고서 노려온다. 몰아붙인다.


공세를 가져올 기회는커녕,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개미지옥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다가오는 아가리에서 벗어나려 허우적댈 뿐이었다.


‘위험하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몰아치는 공격에, 방어만을 고수한다면.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이대로라면!


“-우오오오!”


연도근은 노성을 질렀다.


생존을 위한 발악.


대지를 밟는다. 발이 땅속에 파묻힐 만큼 전력을 다하여.


허리를 틀었다. 온몸의 근육, 그 모든 것을 한데 움직일 수 있도록.


양완(兩腕)에 힘을 주었다. 이 악력으로, 자루를 으스러뜨리겠단 것처럼.


그 순간.


“······!”


처음으로, 강우의 낯빛에 옅게나마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다.


동시에.


“극연참(隙聯斬)!”


연도근의 초식이 작렬한다.


연씨세가의 비기, 극연참.


강검(强劍)으로 으뜸가는 남궁의 뒤를 따르며, 그 힘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


‘틈(隙) 사이를 잇는다(聯).’ 이름에 담긴 뜻 그대로, 그 초식은 방가(傍家)로서 주어진 책무를 상징한다.


거리 전체를 휩쓰는 대회전(大回轉) 베기.


사력을 다하여 빚어낸 검로와, 완력을 쥐어짜 담아낸 예기(銳氣).


그 필사의 일격으로, 매서운 검풍이 불어닥쳤다.


콰아앙-!


“헉··· 큭, 후우, 허억···.”


한 손으로 무릎을 짚고서, 힘겹게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연도근은 생각했다. 이 지친 몸이 용케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거리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자그마한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된 판국이었다.


좌판을 가린 천막, 황급히 물러나느라 미처 치우지 못한 과실, 한편에 쌓아둔 옹기···.


본래라면 오늘, 시전을 이뤄야 했던 구성물들이 산산이 조각나 엉망이 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해서라도 떨쳐내야만 했다.


다가오는 죽음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허나.


“요란하기는.”


“······!”


겨우 얻은 안도감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곧장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역정 내지 않아도, 뜻은 충분히 전할 수 있었을 진데.”


파괴의 소용돌이가 한 차례 훑어간 거리 한가운데, 흉수가 서 있었다.


‘피한, 건가? 말도 안 된다. 애당초 피한 게 맞나?’


그의 차림에는 흙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참사에 휘말리지 않은 것처럼.


“···뛰어난 무공이로군.”


후우.


애써 숨을 고르며, 연도근은 입을 열었다. 열어야만 했다.


혀를 움직여 말을 빚어낸다. 소진된 체력을 조금이나마 채우기 위해서.


어떻게든··· 저 죽음을 미루기 위해서.


“필시 훌륭한 스승이 있었을 터, 누구에게 사사 받았나?”


“알아내 보아라.”


그 속셈을 간파한 탓일까.


강우의 낯, 그 얼굴에 새겨진 웃음이 한층 지독해진다.


그 웃음 아래에서 손을 놀린다.


둘러멘 장대를 풀어내고, 자그맣게 난 홈에 슴베를 끼워 넣는다.


검(劍)이 겸(鎌)으로 뒤바뀌는 광경에, 연도근의 눈이 커진다.


“그 몸으로 직접···.”


참척(慘慽).


자손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


그 비극은 차마 헤아릴 수 없이 고통스러워, 이 세상 무슨 단어를 쓴다고 한들 완벽히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단지 참혹하고(慘), 또 서러운(慽) 일이라며 피휘(避諱) 하는 것일 테지.


건조한 명칭조차 건드리지 않고자 배려하는 그 상처를.


“너희 새끼가, 무엇에 죽었는지를.”


강우는, 여지없이 헤집었다.


적나라하게.


잔혹하게.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악의를 담아, 들쑤셨다.


이 쓰라린 느낌을··· 혼백 깊이 느껴보라고.


“.”


직후, 연도근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다만 입이 벌어지고.


몸이 경련하고.


“██████████████████!!!”


절규했다.


귀곡성(鬼哭聲).


도저히 인간에게서 날 수 없는 소리가, 그의 폐와 목과 입을 통해 발하였다.


그리고.


‘온다.’


폭(爆).


반응.


이번에 받아내는 쪽은, 강우가 되었다.


-카가가각!!!


노기.


평생토록 수련하여 얻은 무예, 육신을 통제하고 다루는 법도조차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그 분노가··· 전신을 찢어낼 듯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강우의 시야에서, 그것은 태양과도 같은 겁화 덩어리였다.


그러나···.


‘하잘것없군.’


천붕의 흑염 속에서 번뜩이는 천살성에게는, 그조차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터져나간 파공성, 그것은 서로 맞댄 두 칼날이 갈려 나가는 소음에 잘게 조각났다.


연도근의 검, 그리고 강우의 겸. 두 날붙이는 예리함을 망각한 듯 서로에게 격돌했다.


오로지 강(強)만을 담아,

상대를 강(降)하기 위해.


부모 잃은 자식과 자식 잃은 부모.


두 생존자 간 충돌에서···.


“크흡···!”


먼저 떨어진 것은, 연도근이었다.


겨우 한 발짝.


연도근의 돌진을 받아내고서도, 강우는 겨우 한 발짝 밀려났을 뿐이었다.


‘아직도 부족한가.’


이 힘으로도.


이 한으로도!


“그아아아아-!!”


기합과 함께 다시금 달려든다. 콰직, 육중한 진각에 땅바닥에 균열이 새겨진다.


한 번 더, 쇠붙이와 쇠붙이가 충돌한다.


“······!”


그제야, 약간의 저림이나마 느끼는 건가. 강우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진다.


“죽어라!”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쳐선 안 된다. 외공을 짜내고, 내공을 끌어온다.


검을 토대 삼아 쏘아내는, 힘의 포탄.


초식도 뭣도 아닌, 단지 공력의 덩어리일 뿐인 그것을 내지른다.


피해야 마땅하다. 무공을 익혔다면, 공방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나마 있다면, 잡기조차 될 수 없는 그 공격은 피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예상이 빗나간다.


- 쾅!


“우욱!”


격통이 밀려든다. 손목을 타고, 팔꿈치를 지나, 어깨를 통해 가슴팍에 치밀어 든다.


이번에도 물러나는 것은 연도근이나,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쯧.”


불쾌감.


약간이지만 뚜렷하게, 강우의 낯빛을 스쳐 지나간다.


짧게, 팔에 경련이 찾아왔다. 양쪽 모두를 가리지 않고. 그런데도.


- 카앙!


세 번째 충돌. 강우는 흘려내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로의 인(刃)이 정면으로 맞부딪친다.


그 위화감을, 연도근이 간파한다.


‘네놈은, 대체 뭣 때문이냐.’


눈앞의 흉수,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증스러운 존재를 보며 묻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집요한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물러서지 않느냐.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연도근은 강우의 그 어떤 것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강우는 온갖 불합리만을 가져와 뭉쳐둔 존재였다.


불규칙한 검로.


보법조차 되지 못한 맹수 같은 움직임.


쉬이 흘려낼 만한 공격을, 기어이 정면으로 받아내는 고집까지.


“······?”


그 순간.


연도근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하.”


더불어 슬쩍 새어 나온 웃음 한 조각.


제 스스로도 웃음 지었단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비웃음을 도저히 거둘 수 없었다.


저 원수에게 되갚아줄 기회를,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네놈 같은 자들은, 이미 많이도 상대하였다.”


연신 부딪치고 밀려남에도, 연도근은 혀를 놀렸다. 말하지 않고선 배길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별나지만, 결국 하등 다를 바 없지.”


본인이 진실이라 추정한 이 가설을,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싸움 하나 못해본 주제에, 우연찮게도 자질을 깨우친 자들.”


공청석유나 만년하수오 따위를 빌어, 어느 날 갑자기 내공을 얻게 된 자들.


태생적으로 무기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식칼 한 자루로 어쭙잖은 낭인 따윈 회 쳐버릴 수 있는 자들.


“넘치는 힘에 진정으로 강함을 손에 넣었다고 여겼나?”


- 재능과 행운에 눈이 먼 오만한 자들.


“분에 넘치는 보물을 얻어, 천하가 우습게 보였더냐?”


그 누구도, 강호에서 일 년을 넘기지 못한 자들.


“한낱 운과 한낱 감 따위로··· 감히 무림에 발을 들일 자격이 생겼다 믿었느냔 말이다!”


연도근은 대갈했다.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오만한 하룻강아지를 꾸짖듯.


후려치듯 검격을 내지르며 지탄하는 그때.


- 풋.


어째서인지.


강우의 면(面)에, 불길한 비웃음이 스쳐 갔다.


작가의말

降: 깎아내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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