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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26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3 21:50
조회
1,894
추천
66
글자
13쪽

성(惺)

DUMMY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달포가 지났음에 놀라게 된다. 시간의 흐름보다도, 아직 놀라움을 느낄 만한 여력이 남은 스스로에게.


연정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연씨세가의 장남이었다. 달포 전 열린 백무회에서 동생을 잃었다. 동생의 이름은 연은청이었고, 애월객잔에서 벌어진 학살에 목숨을 잃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신해 시신을 확인했다. 직후, 그는 그리 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찢겨나간 이목구비 대신 자리한, 쳐다보다가 빨려들 것 같은 구멍. 수많은 생각이 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훗날 가주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많은 기대를 받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오빠와, 둘째 공녀라는 ‘좋게 말하면 마냥 이쁨받을 만한, 나쁘게 말하면 그 누구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자리에 있던 동생.


남매 사이는 데면데면했다. 각별한 기억을 주워섬기려 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을 정도로.


그 사실을 깨달았던 그 순간, 연정호는 머릿속이 우그러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다만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를 더욱 괴롭게 한 것은 부모의 변화였다. 아버지는 겉으로나마 평정을 유지했다. 세가로 돌아온 그가 부고를 전할 때, 아버지는 눈물 흘리긴커녕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것이 되려 최악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칼을 갈았다. 강호에서 한평생을 함께한 그 칼을, 아버지는 매일 같이 숫돌에 갈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굳은 얼굴을 한 채. 마치 날을 부서뜨릴 것처럼.


그런 식의 푸닥거리를 하지 않고선,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벌이는 발악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그만 하세요.’


어머니는, 매일 같이 동생의 방에 아침상을 가져다 놓았다. 어머니는 하루 대부분을 그 방에서 보냈다.


스무날째 되던 날, 보다 못한 그는 어머니를 말렸다.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꺼내기엔 얼마 되지 않았으나,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나대로 하련다.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어머니는 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자상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뚜렷한 선이, 이 순간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그어졌음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남궁의 곁을 지키던, 안휘의 왕을 보좌하던 연씨세가는 사라졌다. 초상집이라는 표현으로도 담아낼 수 없었다. 세가 전체가 거대한 사당으로 전락한 것 같았다.


망자를 기리고, 그 슬픔에서 비롯된 한을 떨쳐내기 위해 다들 푸닥거리만도 못한 몸부림을 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는 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묻고 싶었다.


그 자에게.


동생을 죽이고, 부모님을 망가뜨리고, 가세를 기울게 한··· 그 흉수에게.


너는 대체, 왜 그랬느냐고.


무사들을 모아 조사단을 꾸렸다. 직접 하성으로 찾아가 현장을 살폈다. 당시 객잔에 있던 인부들을 수소문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 같이 말을 꺼렸다. 그나마 입을 연 자들도, 온몸을 감싼 차림 탓에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고만 했다.


짙푸른 장포, 얼굴을 가린 멱리, 그리고 흉기로 사용했다던 낫.


고작 세 가지뿐인 단서를 길잡이 삼아 추적했다.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수색에 투자했다.


불자(佛子)가 경전에 의지하여 고행을 버티는 것처럼, 기다렸다.


수사의 진척이 막혔을 때도.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청월루주가 죽었단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도.


적사회가 쫓는다던 그 범인이, 그간 쫓던 흉수의 이야기와 일치함을 알게 됐을 때도.


주인 없는 청월루를 점거하여, 그를 중심으로 사람을 풀었을 때도.


연정호는 계속 기다렸다.


동생의 복수를 이룰 순간을. 부모의 한을 풀어낼 순간을. 더불어, 기울어진 세가를 바로 세울 그 순간을.


그렇기에.


“너냐?”


어찌 소식을 들었는지, 당돌하게도 이쪽으로 먼저 쳐들어온 흉수를 마주한 순간.


“네가 그런 거냐?”


그는 지금껏 억누른 원한을 터뜨리며 대갈(大喝)했다.


“네가 죽였느냔 말이다, 이 악적 놈!”


***


죽여라.

무인을 죽여라.

많이, 더 많이 죽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외침들.


망령 같은 속삭임. 힘줄을 끊고 뼈를 발라내어라. 대가리를 깨부숴라. 아래턱을 찢어 다만 울부짖게 하라. 발목을 잘라 땅을 기게 하고, 안구를 터뜨려 그저 허우적대게 하라.


아우성이 가득했다.


머릿속에서,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수많은 목소리가.


여한이 들려주는 부르짖음이.


남을 여(餘) 자에 원통할 한(恨) 자. 해묵은 증오가 타오를 적 함께 전소되지 못해서, 장작조차 되지 못하고 푸르름을 되찾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찌꺼기.


사라지지 않는 열감에 신음하는 그 잔재를 식힌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강우를 움직이게 했다.


청월루라는 곳으로 걸음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풍문을 들었다. 양비혁이라는 사람. 청월루의 주인. 적사회의 자금원.


‘그리고 내가 죽인 자.’


정작 그때, 강우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강우에게 있어 그는 단지 무림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죽였다.


그가 모아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그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었는지 따위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적사회니 연씨세가니 하는 작자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그 기루에 진을 치고 사람을 푼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의 감상은 단지 하나뿐이었다.


- 그렇담 그리 쳐들어가면 무림인들이 많겠지.


다 죽여야 한다. 베어야 한다. 그래서 죽였다. 그래서 베었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요?’


주방에 숨어 있던 점소이에게서 그런 질문을 들었다. 답하기 위해 멈춰 섰다. 금방 나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경험. 첫 이유는 이것이었다.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두 번째, 그리고 진정한 이유는 이러했다.


‘살인에 왜 이유를 찾는 걸까.’


뭐라고 풀어 말해야 알아들을까. 애당초 왜 이유를 묻는 걸까. 그것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것인데.


사람을 죽이는데, ‘마땅한 이유’라는 건 존재할 수 없는데.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게.”하는 빈말에 비웃음을 담아 넘겼다.


한 층 계단을 올랐다. 마저 무림인을 베었다. 기둥과 벽과 창호지. 그 셋으로도 온전히 막지 못한 겨울의 한기가 흘러나오는 핏물에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너냐?”


자신을 부르는 고함을 포착했다.


아니, 그것은 고함이라기엔 작았다. 분명 크게 소리친 것도 아니고, 목소리 자체에 특별함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귓전에 들어왔다.


“네가 그런 거냐?”


의아함을 느꼈다. 강우는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년 한 명. 자신보다 서너 살가량 위인 듯 보였다. 퍽 멋들어진 무복을 보아하니 좋은 집 자식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따로 있었다.


의념을 읽는 이 시선을 빌어, 익숙한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청년의 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원한.


일찍이 자신이 품었던, 끈적하게 타오르는 검붉은 화염.


“네가 죽였느냔 말이다, 이 악적 놈!”


닥쳐오는 검로. 붉은 궤적. 그리고 캉!


손쉽게 검격을 간파한다. 큰 힘 들이지 않고 걷어낼 수 있었다. 허나 그렇기에 더욱 놀라웠다.


발작적으로 작렬하는 칼날이, 가슴팍을 꿰어내고자 하는 도신이, 너무나 낯익었기에.


그래서.


“글쎄.”


혀를 벼려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관심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감정을 담아 토해낸 외침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하잘것없는 무언가를 마주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 무심함에 분노하도록.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선 못 배기도록.


마음을 후벼파는 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무엇에 아파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어찌해야 고통을 줄 수 있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 자식···!”


청년은 치아를 악물었다. 눈알에 핏줄이 돋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토해내지 않고선 버틸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는 게워냈다.


“ ”


그리고 강우는 듣지 않았다.


한 마디.


그 첫 글자를 입에 담는 순간, 강우는 이해했다.


그가 연씨세가의 연정호임을 이해했다.


그가 동생의 원수를 갚고자 왔음을 이해했다.


그가 동생의 죽음에 슬퍼함을 이해했다.


그가 부모의 비탄에 가슴 아파함을 이해했다.


그가 내게 한을 품어 마땅하단 것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가 이 모든 일에 이유를 묻고자 함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내가 겪은 일은 어떠한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기에, 내가 그러한 수모를 겪어야 했던 걸까.


떠올랐다. 칠 년간의 기억.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막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매일 같이 투전판에 불러내었던 기억. 빚을 져서라도 나의 노름에 어울리라는 말 없는 압박.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 각인시키려는 것처럼, 네가 밥을 빌어먹으며 살 수 있는 방도는 오직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뿐이라 깨닫게 해주려는 것처럼.


비웃음을 당하고, 술을 얻어맞고, 다 짜여진 판에 겨우 끌어모은 돈을 탕진하게 만들고, 당하는 역할을 떠넘겨 접대를 강요하고.


그렇게 광대만도 못한 비참한 꼴을 감수시키고서, 덕분에 잘 웃었다며 몇 푼을 적선하고. 그 몇 푼에 생활을 의지하게 만들어, 끝없는 모욕의 수렁 속에 빠트리고.


그런 것에 이유가 존재할까.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짓이겨진 삶.


붕괴된 가세부터 천붕의 비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필연적이었다고 이해시킬 수 있는 이유가 과연 존재할까.


‘그럴 리가.’


그 순간.


겸(鎌)이 튀어 나갔다. 내리찍는 낫의 칼날. 연정호는 막아낸다. 일찍이 몸에 새겨넣은 초식이 반사적으로 공격을 흘려낸다.


처음부터, 그리 막아내길 유도한 줄도 모르고.


몸통이 텅 비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캉, 허점을 노린 칼날이 막힌다. 좌측에서 파고들려던 횡 베기가 틀어쥔 장대에 막혀 튕겨 나간다.


“네 이놈!”


텅, 그리고 또다시 캉! 움츠렸다 확 치미는 찌르기. 그때 연정호는 경악했다. 낫. 거의 상대해본 적 없는 병장기이나, 횡으로 굽어진 칼날을 휘둘러 베어내는 데 중점을 뒀음은 알고 있었다.


그 탓에, 그의 모든 신경은 날붙이가 어찌 움직이는지에 쏠려 있었고··· 따라서 봉술 마냥 장대 부분을 세워 찌르기가 날아올 것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자그마한, 사소한 실수.


그러나 그것이 결정타였다.


콱, 명치에 둔탁한 충격이 작렬했다. 큭, 짧은 신음과 함께 찰나 간 몸이 굳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왼쪽 어깨.

왼쪽 무릎.

오른쪽 정강이.

그리고 오른쪽 팔꿈치.


어찌 이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궤적.


그 불규칙한 칼날의 흐름이, 찰나의 순간 네 부위를 차례대로 베어낸다.


“크악···!”


뒤늦게 비명이 터져 나오며, 연정호는 주저앉았다. 실이 잘려 나간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는 차마 쓰러지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허물어졌다.


힘없이 놓친 칼이 땅바닥을 구르고, 겸의 인(刃)이 목가에 들이닥친다. 그때,


“내가 무어라 답하길 바라나.”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무어라 답해야, 네가 이해할 수 있겠나.”


일찍이 동생을 죽이고, 이제 자신을 죽일 흉수의 목소리.


그 어떠한 감흥 하나 없는, 높낮이 없는 그 목소리에··· 부아가 치밀어 들었다.


연정호는 고개를 들었다. 이를 악물고서, 눈을 부릅떴다. 저 빌어먹을 낯짝을 봐야만 한다.


누가 동생을 죽였는지, 내가 누구한테 죽는지만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선,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겠지.”


마주한 순간, 분노가 지워진다.


멱리 사이로 설핏, 흉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압도당했음을 깨달았다.


양잿물을 뒤집어쓴 듯 희멀겋게 표백된 낯가죽에.


귀기라는 단어조차 모자란, 푸르게 발광하는 그 안구에.


사람의 면(面)에, 그토록 악의가 서릴 수 있음에.


···칼날이 움직이고, 떨어진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적.


의식이 끊기기 직전, 연정호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이러했다.


“이해할 수 있는 죽음 따위··· 있을 리가.”


- 자신은, 악마를 보았노라고.


작가의말

惺: 깨달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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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난(難) +1 24.05.22 1,174 40 11쪽
16 랑(浪) 24.05.21 1,230 34 11쪽
15 기(起) +2 24.05.20 1,301 39 12쪽
14 집(集) +3 24.05.19 1,377 56 11쪽
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12 경(憬) 24.05.17 1,473 54 13쪽
11 강(降) 24.05.16 1,521 47 11쪽
10 모(侮) +3 24.05.15 1,628 55 13쪽
9 뢰(蕾) +2 24.05.14 1,761 57 12쪽
» 성(惺) +2 24.05.13 1,894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4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7 83 17쪽
5 개벽(開闢) +15 24.05.10 2,928 101 17쪽
4 천붕(天崩), 그리고···. +11 24.05.09 2,835 91 13쪽
3 하루 전. +12 24.05.08 2,831 88 10쪽
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1 칠 년, 그리고 사흘 전. +10 24.05.08 4,664 1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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