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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50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4 21:50
조회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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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12쪽

뢰(蕾)

DUMMY

“그래. 있을 리가 없지.”


그때.


강우는 골몰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방금 자른 연정호의 수급(首級)을 손에 쥔 채, 향후 어찌 움직이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연씨세가, 자신에게 한을 품은 자들. 상황이 이리 흘러간 이상, 필시 자신을 쫓아올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이 악연은 끝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고민했다.


몸소 걸음하여 그들을 먼저 쳐야 할까. 아니면 그들이 내게로 걸음하도록 기다려야 할까.


그렇기에.


“납득할 수 있는 죽음 따위, 있을 리 있겠나.”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강우는 반사적으로 겸을 내뻗었다.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시선이 옮겨가기 전에 먼저 팔이 움직였다.


천살성의 감각. 그것을 빈 덕인지, 튀어 나간 낫은 목가로부터 정확히 한 치(寸)의 간격을 두고서 멈추었다.


그제야 강우는 돌아보았고,


“큭, 흐흐, 맞았군.”


무정했던 그의 눈빛에, 약간의 놀라움이 깃들었다.


“내가, 내가 맞았다고. 히힉.”


그자는 실실 웃고 있었다.


찢어질 듯 당겨진 입꼬리, 그 사이로 주체하지 못하고 거진 딸꾹질마냥 웃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경외감에 압도당한 것처럼. 환희에 경련하면서.


그러나 그 기괴한 모습보다도 강우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요 며칠 내내 당신을 추적했어. 오늘에서야 겨우 따라잡았지.”


낯익은 얼굴.


“그리고··· 오늘 벌인 판을 보니, 이젠 믿지 않을 수 없겠어.”


“지금 날 쫓았다 했나.”


창연, 강우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천만에.”


내가 누구인지, 더불어 무엇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강우의 말에는 그 물음이 서려 있었다.


창연은 답했다. 이 말을 꺼냄에 있어 오래도록 굶주렸던 것처럼.


“백무회의 흉수. 하성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범인. 연회 때 홀연히 나타나, 현장에 있던 오십이 넘는 무인을 참했다지. 그러고도 모자라 이젠 남궁의 오른팔 연씨세가의 대를 끊어버렸는데, 그만한 악적을 내 어찌 우습게 보겠나.”


하지만, 그녀는 겨우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두렵지 않아. 오, 결코 두려울 리가 없지. 이 굽이진 칼날이 멈추지 않았나. 그야, 그도 그럴 것이.”


당신.


무림인만 죽이잖아.


“······.”


강우는 침묵했다. 지난번과 달리, 창연은 그 침묵 앞에 더욱이 지독한 웃음으로 답했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헛된 추측을 내놓았다. 양비혁의 비자금을 노린 것이다. 아니다, 적사회에 원한을 진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들 사이의 자작극이다. 남궁의 숙청이다···.


시전에 도는 풍문. 그중에서 진실을, 그의 진심을 짚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무림인.


오직 그 이유로.


단지 그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그 어떤 문파도, 세가에도 속하지 않고서··· 무림 그 자체에 화가 되고자 하는 존재를 도대체 누가 알아낼 수 있을까.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허나.


“돕게 해줘.”


지금, 눈앞의 의원은 품지 않은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뭐?”


“칼 든 것들을 증오해. 주먹을 휘두르며, 사람 해치는 일밖에 모르는 것들을 증오해. 무를 숭상하는 것들, 오직 그것만을 추종하며 모든 잣대를 그리 꿰맞추는 것들을 증오해.”


그 말에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한평생 이날만을 기다렸어.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노라고, 몇십 몇백 번을 되뇌었어.”


그 목소리에는 독기가 깃들어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간청해. 돕게 해줘. 쓸모 있을 거야. 약속할게.”


그 시선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익숙했다.


문득, 과거의 기억 하나가 그의 의식 속에 떠올랐다. 벌써 몇 년은 지난 것처럼 아득했으나···.


‘복수를 원하나.’


그날의 겨울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나도 이리 보였소?’


어머니의 죽음, 천붕의 비탄. 도로 옥에 갇힌 채, 원한으로 가득 차 혈루(血淚)를 쏟아냈던 기억. 억눌렸던 살의가, 해묵은 증오가 울부짖던 기억.


그 외침에··· 신神이 답하였던 기억.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현실이, 겹쳐진다.


의념을 읽어내는 이 시선 속에서.


온몸을 불사르는 원한의 겁화가 넘실대는, 창연의 모습을 보며···.


“무엇에···.”


강우는 물었다.


“복수하길 바라나.”


“전부.”


그녀의 답에, 그는 맥문을 잡았다.


***


“아.”


눈을 떴다.


방 안은 어둑했다. 빛이 잘 들지 않았다. 창에 바른 창호지가 밝은 꼴을 보고서야 지금이 낯임을 알 수 있었다.


괴이할 정도로 몽롱한 기운. 창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여기는, 어디지.


간신히 깨어난 머리가 그리 의문을 품었다. 그때.


“깨어났소? 늦게도 일어나는구먼.”


툴툴대는 목소리. 그녀는 거진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살 난 문짝 너머로, 두건을 두른 채 회랑을 청소하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래층 대당(大堂)에 있소. 깨어나면 찾을 거 같아서, 전하라고 시키더군.”


“아···.”


바보같이 목소리를 흘리고선, 대충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제야 깨닫는다.


어제 있었던 일.


지난 며칠 간의 추적 끝에, 간신히 이루어진 재회.


오밤중에 합비 전체를 횡단하다시피 뛰었다. 층마다 쌓인 시체들을 넘었다. 말을 붙인 직후 칼날이 날아왔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죽을 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참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마음 깊이 새겨진 간절함이 떠오르자,


“아!”


창연은 황급히 자신의 맥을 짚었다.


제 손목에 서둘러 손목을 얹는다.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피부 아래서 벌어지는 흐름에 집중한다.


- 느껴진다.


그간 느껴왔던, 답답하게 이어지던 혈액의 흐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


안구가 팽창하는 것 같았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휘둥그레 뜨인다.


- 내공이다.


기氣라는 것이··· 느껴진다.


내게서.


지난 평생토록 얻고자 했음에도 결코 갖지 못했던 그것이.


직후.


“대체 뭘 하는 거요?”


두건을 쓴 남자, 이연석은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꼴을 보고 그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창연은 혈도를 따라 제 온몸을 훑다시피 구석구석 짚었다. 다 큰 처자가 제 몸을 비틀어대는 그 모습은, 남사스러운 걸 넘어서 괴이할 지경이었다.


“기를 느끼고 있지.”


“기?”


“그래, 기라고. 내가, 내가 내공을 익혔어! 흐하하하!”


창연은 기쁨에 겨워 날뛰었고, 이연석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어제, 강우에게서 살아남은 뒤로 그의 정신은 더없이 피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청월루를 떠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이해 못할 흉수가 또 무를 모른다며 순순히 보내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먼저 말 붙일 용기가 없었다.


“···실컷 기뻐하시오. 아무튼, 난 전하란 대로 전했으니까.”


청소나 마저 하자며, 이연석은 물러났다. 창연 또한 괘념치 않았다. 그녀는 지금, 이 기적 같은 일 외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질과 체질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무공. 이를 기적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제갈세가 밑에서 수학할 적부터였다. 제 체질을 극복할 방도를 얼마나 찾았던가.


날 때부터 막힌 혈도. 전신에 쌓인 탁기. 하다못해 외공이나마 단련하려 해도, 답은 없었다.


그 어떤 심법도, 값비싼 영약도 이 저주받은 몸은 무(武)를 받아들이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창연은 중얼댔다. 육체가 전하는 감각을, 머리의 지식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단전이 아닌 심장을 기해(畿海)로 삼는다. 핏물이 흐르는 혈관 자체를 기로(氣路)로 삼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생명의 힘, 그 자체를 공력으로 삼는다.


말도 안 된다, 단지 그 말만을 몇 번이고 되뇔 일이었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주화입마에 빠진다. 혼백이 조각난 채, 배냇병신만도 못한 꼴로 전락하는 것마저 운이 따라야 할 테지.


그나마 자신은 누군가 미리 뚫어놓은 길을 걸을 뿐이니, 과분한 짓을 벌이지 않는 한 그런 끔찍한 꼴에 처할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런 위험천만한 마도를··· 어찌 개척한 것인가.


어찌 그 위에서, 그토록 자유로이 날뛸 수 있단 말인가.


천재(天才).


혹은, 천재(天災).


결코 운이 좋다고 넘어갈 수 없는 경지였다. 그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서둘러 층계참을 내려간다. 원대한 꿈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기존 세계의 종말’, 무림을 불태울 방도, 그 계획과 지혜 모두를 바칠 참이다.


그간 원망하던 이 남궁의 피가 처음으로 자랑스럽다.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대세가가, 구파일방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들의 강함은 무엇이며 또 약함은 무엇인지.


무엇을 어찌 노릴 수 있는지, 무엇으로 어떻게 꾀어낼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귀인이시여!”


창연은 강우를 보았다. 대문 근방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그를 발견한다. 충성을 다하여 섬길 자를 향해, 그녀는 엎드려 절하며 외친다.


“어제 내리신 보은에 이리 감사의 절을 올리며 감히 아룁니다. 본녀의 명을 거두셨으니 온 충정을 바쳐야 마땅하여,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계(計)를 밝히고자 합니다.”


답은 오지 않으나, 느낄 수 있었다. 이편을 향해 시선이 옮겨진 것을. 창연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연씨세가와 적사회를 향해 본때를 보여주신 일, 너무나 통쾌하였습니다. 하나 장자와 차녀를 잃은 세가가 노기에 사로잡혀 날뛸 것이 자명한바, 그들은 남궁의 힘을 빌어서라도 귀인을 치고자 칼을 갈 것입니다. 화를 피하여 보중保重하십시오. 뜻 있는 자들을 모으며 때를 기다리소서.”


열과 성의를 다한 창연의 일장 연설에, 강우는 답했다.


“필요 없어.”


“예?”


반사적으로 반문한다. 짙은 당혹감. 창연은 고개를 들고서 강우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얼얼했다. 피가 식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그녀는 다시금 탄원했다.


“귀인이시여. 세가 미약할 때 물러나는 것은 한낱 줄행랑이 아니오, 되려 지혜로운 수임을 동서고금의 병서에서 읊고 있나이다. 저희의 수가 적고 그 경지가 높지 않으니 우선···.”


“필요 없다, 나는 그리 말했어.”


딱.


강우는 안고 있던 장대를 땅에 짚으며 일어섰다. 창연은 목이 바짝 타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이곳에 세가가 쳐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침착하게 말을 고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를 생각한다. 겨우 찾아낸 기적이 이런 식으로 사그라들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우의 말이 먼저 돌아왔다.


“몸은 좀 쓰나?”


짧게 당황하고,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전혀-”


“되려 잘 되었군.”


그 말을 끊고서, 강우는 걸음을 옮겼다.


“싸움이 벌어지면,”


자루 없는 검을 차고, 장대를 둘러메고서.


“움직이는 것은 죄다 베어낼 테니.”


그 말과 함께 대문 밖으로 향한다.


그 한마디에 깨닫는다. 더불어 전율한다.


- 올 테면 오라지.


그 말에 담긴 뜻을, 절대적인 믿음을 이해한다.


그 무엇이 찾아오던, 그저 죽일 거라고.


문득 창연은 제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작가의말

蕾: 꽃봉오리 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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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뢰(蕾) +2 24.05.14 1,762 57 12쪽
8 성(惺) +2 24.05.13 1,895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5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8 8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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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루 전. +12 24.05.08 2,832 88 10쪽
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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