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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69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8 21:50
조회
1,411
추천
51
글자
10쪽

소(甦)

DUMMY

온 거리를 뒤흔드는 처절한 단말마에.


“아.”


창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마치 방금까지 꿈을 꿨던 것 같았다. 멍해진 정신이 확 죄어든다. 안개처럼 끼어있던 몽롱함이 걷히고, 비로소 시야가 또렷하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파괴된 대당(大堂).


널려있는 사체.


그리고··· 검흔(劍痕).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밟힌 그 처참한 흔적은, 청월루 내부를 뒤덮을 것처럼 아니 새겨진 곳이 없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이 새겨놓은 것이었다.


‘서로’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으며 빚어낸 것이 아니오, 단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살해당하는 와중 살고자 발악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창연은 그 검흔의 ‘흐름’을 따라갔다. 거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중앙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난 창문으로 이어진다. 안에서 박살 난 그것을 넘어 청월루 밖으로 나선다.


눈에 들어온 시전. 텅 비어있는 거리 끝자락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더불어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서 있는 자는 낫을 쥐었으며, 쓰러진 자는 얼굴이 없었다.


연도근의 죽음.


더불어, 강우의 승리.


그 순간, 창연의 머릿속에 지난 삼일 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갑갑한 마음이었다.


기껏 찾은 귀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리 간청해도 변치 않는 만용의 자세에.


그러나, 애당초 그 갑갑함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정면으로 맞서 이기리라는, 믿음이 없어서.


그 갑갑함의 실체는··· 결국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두려움 아닌가.


결과를 보기도 전에 실패할 것을 예상한다.


패배할 것을 단정한다.


스스로를 한계 짓는다.


그래서 그저, 그 패배 이후만을 가늠하며··· 생각하고, 또 행동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그랬던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지금 벌어진 것’은 무어란 말인가.


“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짧고, 또 기막히다는 듯이.


그리고··· 기쁘다는 듯이.


제대로 정제되지 않는 감정이 제멋대로, 입을 통해 새어 나온 것 같았다.


소리의 형태를 취하고.


웃음이.


“하하하하하하하!”


그 사실을 깨달은 찰나, 창연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귀인은, 무림을 불태울 겁화는···.


그녀 자신이 그토록 바래 온 ‘기존 세계의 종말’은···.


애당초 완성되어 있었다.


너무나도 충분한 상태였다.


부족한 것은 단지, 그녀 자신의 믿음뿐.


“하, 하하, 흐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단지 내가 모자랐던 거다!


기껏 주어진 기회가,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질 못한 거다!


얼마나 패배에 찌들어 있으면, 이런 얼간이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느냔 말이야!


그때.


“움직이지 마!”


실성한 듯 쏟아내는 웃음을 헤치고,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누군가 확, 배후에서 목을 팔로 걸어 당긴다. 그와 동시에 시야에 섬광이 치밀어 들었다.


잠시간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재빨리 안구를 굴려 살펴 발견한다.


피 묻은 무복 소매와 제 목에 겨누어진 단검 한 자루.


“그 자리에 꼼짝 있으란 말이다, 이 미친 자야!”


그와 동시에 귓전을 때리는, 처절한 고함까지.


창연의 웃음소리에도 돌아보지 않던 강우가, 그 공포에 찬 목소리에 몸을 돌린다.


그래서, 지금 무엇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했다.


연씨세가의 토벌대. 그중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


운 좋게 미처 명(命)이 끊기지 않은 이 무사는,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강우가 벌인 일방적인 학살에, 거진 돌아버린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도저히 그냥 빠져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걸 테지.


“움직이면은, 어! 이 년은 죽는다! 죽일 거라고!”


그래서 인질을 잡은 거다.


살아남은 무사는, 창연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세게 붙들었다. 한쪽 팔로는 목을 휘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암기로 숨겨뒀던 단검을 꽉 쥔 채.


강우는 무사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성가심.


아직 죽일 상대가 남아있단 사실과, 상대의 처절한 공포에서 비롯된 흥미.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느끼는 걱정까지.


강우의 낯빛에 스쳐 지나간 그 감정들을, 창연은 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불쾌했다.


강우의 얼굴이 동경(銅鏡)처럼 비춰준··· 자신을 인질로 잡은 무사를 향해 짙은 불쾌감을 느꼈다.


그의 태도가.


단지 눈앞의 적에 온 정신이 팔려서, 자신에게는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실이.


약자를 보는 듯한 자세가.


무예를 익히지 못한, 한낱 힘없는 여식으로 취급하는 모습이.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제멋대로 굴 수 있는··· ‘범인(凡人)을 대하는 무림인의 태도’가.


너무나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느껴진다.


심장을 중심으로 흐르는 진기가.


자신에게 깃든 내공이.


포식자의 발톱이자, 목소리를 낼 수단의 존재가.


···그를 자각한 순간.


“한 발짝이라도 떼면- 크악!”


창연은 기습적으로 무사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빠악! 고개를 젖혀 뒤통수로 코뼈를 가격한다. 예상치 못한 일격. 무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린다.


헐거워진 구속에, 곧장 복부를 팔꿈치로 찍었다.


- 우욱!


무사는 괴로워하고, 창연은 풀려난다. 절호의 기회. 강우는 움직인다. 인질이 풀려났으니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아아아아아악!”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광경에 걸음이 그친다.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창연과 무사 간의 몸싸움이 벌어진다. 처절한 박투전, 그것은 무사가 손에 쥔 단검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빼앗는다.


그 생각에, 후려친다. 할퀸다. 짐승과 다름없이 날뛰며 악귀처럼 들러붙는다. 이미 심각한 공황에 빠져 있던 탓일까. 짓쳐들어오는 창연의 손아귀에, 무사는 겨우 허우적대듯 발버둥 칠 뿐이었다.


그러다.


촤악!


얼굴이 그어진다.


뜨거운 감각이 끼얹어지고, 시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정신없이 뒤엉키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왼쪽 눈을 잃은 창연, 그 피가 무사의 얼굴에 흩뿌려진다.


당황한다.


노린 것이 아니다. 물론, 생존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몸부림치던 중 얼떨결에 그어버린 탓에, 피부에 맞닿은 혈액에 그 사실을 자각하자 저도 모르게 경직하고 만다.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건지.


하지만, 놀랄 시간도 없이.


“으아아아!”


대놓고 보인 빈틈에, 창연은 기어이 단검을 빼앗아낸다.


그 단검을, 무사의 이마에 찍어버린다.


“그 - 억···!”


억눌린 비명.


중간이 뚝 끊겨 있었다. 그 괴상한 신음과 함께 온몸이 바짝 굳어버린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뽑는다. 이번에는 뺨에.


뽑는다. 이번에는 목에.


뽑는다. 이번에는 눈에.


뽑아내고.


찍어낸다.


다시금 뽑아내고.


또 한 번 찍어낸다.


무사가 쓰러지고 나서도 그치지 않았다. 널브러진 몸 위에 올라타 머리를 마구잡이로 쑤신다.


상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창연은 거진 무아지경에 빠진 채 단검을 내리찍었다.


난도분시(亂刀焚柴).


그 귀기 서린 모습에, 강우조차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끝내 함몰된 얼굴 뼈와 함께, 단검의 날이 빠지고 나서야.


“헉, 헉··· 하아, 헉···.”


그녀의 손에서 자루가 흘러나왔다.


뒤덮인 혈흔에, 온 세상이 시뻘겋게 보였다.


심장이 쿵쾅댄다.


몸이 제멋대로 떨린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뼈를 타고 핏줄을 훑는다.


살인.


내가.


일찍이 사람을 살리려고, 의원이 되기로 한 내가.


지금 저지른, 첫 번째 살인.


그 전율에, 제자리에서 조용히 경련하던 중에.


“미쳤나?”


강우의 그 한마디가 창연의 귓전에 닿았다.


홱, 꺾일 것처럼 거칠게 고개가 돌아간다.


시야에 그가 잡혔다.


상한 칼날이, 자루가, 이 난리에도 여전히 짙은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는 장포 자락이.


턱이 벌어졌다.


“아아, 미쳤지.”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입이 움직였다.


“미친 거지. 미쳤고 말고! 하하하!”


곧이어 몸을 틀었다.


자세를 고쳐잡고, 엎드린다.


절을 올린다.


쿵!


이마를 땅바닥에 찧어가며, 외친다.


“단지, 단지 나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뿐이야! 귀인이시여! 의심하여 죄송합니다! 하하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프고, 뜨겁고, 어지러움에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창연의 그 웃음은, 방금 거리에 울려 퍼진 연도근의 단말마보다도 소름 끼쳤다.


광신(狂信).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강우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처참하게 웃으며, 연신 제 앞에 머릴 숙이는 창연을 보니··· 가장 먼저 그 단어가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어라 말 한마디 꺼낼 수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말할 필요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역설적인 기분이 두개골을 핥는 듯했다.


분명 어제, 이연석과 이야기를 나눌 적만 해도··· 강우는 이리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세운, ‘복수의 대행자’라는 뜻.


무림에 핍박받은 이들이 가진 원한, 그를 대신 풀어주겠노라는 맹세.


그것이··· 한낱 명분에 불과하다고 자조하고 있었다. 자신은 단지 주체못할 여한에 불타고 있을 뿐이라 여기고 있었다.


- 아니라고.


그 생각이 틀렸다고.


지금, 눈앞에서 절을 올리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자신이 품었던 그 자조 어린 생각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좋았다.


직감한다. 지금, 이 순간에···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그러한 생각이 아직 제 마음속에 피어날 수 있음에 놀란다. 하지만 그보다도.


좋았다.


어째선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상관없을 정도로.


지금은 그저, 미치도록 짜릿했다.


엎드린 자와, 그 앞에 서 있는 자.


믿음을 바치는 자와, 그 믿음에 응하는 자.


둘 사이엔 그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다.


‘ ‘드디어’ ’


두 사람 모두, 같은 뜻을 품고 있었기에.


‘ ‘시작이다.’ ’


전하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알 수 있었기에.


작가의말

甦: 깨어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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